첫째 날
북쪽으로는 안토니 가우디의 최고 걸작품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Sagrada Família이 보인다. 이곳은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이 웅장한 미완성 건축물이다. 바실리카(대성전)의 외관은 기괴하고 몽환적인 영화를 만드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에 등장할 법한 비현실적이고 기괴한 석상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1882년에 착공했지만 중앙의 탑은 아직 미완성이다. 스페인의 속도는 느긋하다. 한 포스터에 진행 과정이 나와 있다. 믿거나 말거나, “2026년 완공 예정.” 가우디가 설계한 성당의 자태는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넓고 많은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그 넓은 공간을 포물선 구조의 아치가 받치고 있다.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넓게 퍼진다. 여기선 무조건 셀카를 찍어야 한다. 신이 내린 필터가 있으니까. TIP: 인터넷으로 입장권 구매 시, 입장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20분을 걸어서 타파스점인 칼 펩Cal Pep에 도착했다. 이곳은 14세기 고딕 양식의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Basilica Santa Maria del Mar이 있는 유서 깊은 보른Born 지구의 좁다란 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칼 펩에는 좌석이 21개밖에 없으며, 바의 조명은 수술실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환하다. 직원에게 주문한 후, 음식이 도착하는 과정을 지켜보라. 맛조개가 완벽하게 조리돼 나온다. 그리고 쑥스러워 말고, 마늘로 양념한 홍합에 얹은 소스를 빵에 꼭 찍어서 먹어보길.
둘째 날
몬세라트 수도원Santa Maria de Montserrat Abbey으로 향하는 승합차에 올랐다. 11세기에 건축된 이 성소는 바르셀로나에서5 6km 떨어진 몬세라트산the Montserrat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그 성배the Holy Grail가 숨겨진 곳이다. 최근 몬세라트산은 UFO가 출현하는 장소로 더 유명하다. 사실이다. UFO 신봉자들이 외계인(외계인을 다룬 동영상이 유튜브에 많으니 참고하길)을 보기 위해 매월 11일 이곳에 모인다. 수도원의 공보담당관이자 라디오방송국 관리자인 오스카 바르다지Oscar Bardaji 씨에게 외계인의 활동에 대해 물어보자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내 스페인어가 짧아서 제대로 못 알아들었지만, 이 말은 확실하게 들었다. “UFO를 관찰한 다음 날에는 맥주 캔이 엄청나게 굴러다니죠.”
카탈루냐는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à 덕분에 분자 요리의 성지가 됐다.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극찬을 받은 엘 불리El Bulli는 2011년에 문을 닫았지만, 그는 동생 알베르트Albert와 스페인광장Plaça
d’Espanya 근처에 티케츠Tickets라는 90석 규모의 타파스 바tapas bar를 열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티케츠를 예약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내가 예약한 오후 6시 30분은 스페인에서 점심시간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난 불평하지 않는다. 입속에서 폭발하는 ‘액체 올리브liquid olive’의 재미를 맛보고 나면, 초밥을 기발하게 흉내 낸 머랭 거품에 올린 훈제 가지 요리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디저트는? 마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천재 발명가이자 공장장인 윌리 웡카Willy Wonka가 만들 법한, 장미꽃이 중국산 열대 과일 리치lychee를 감싸고 있는 자태로 나온다. 레스토랑 바로 앞에서는 마을 최고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셋째 날
아침에 숙취 때문에 좀 고생했지만, 쿠킹클래스를 들으러 바르셀로나 최대 시장인 라 보케리아L a Boqueria로 서둘러 움직였다. 쿠킹클래스를 운영하는 비시엔 키친BCN Kitchen. 이곳에서 셰프 알바로 브룬Alvaro Brun 은 10명의 수강생과 1217년에 생긴 재래시장을 다니며 함께 장을 본다. 끝없이 이어진 통로에 치즈, 채소, 각종 육류를 파는 상점이 들어서 있다. 브룬 씨는 흙돼지 뒷다리로 만든 하몽 이베리코jamon iberico와 흰 돼지로 만든 하몽 세라노jamon serrano를 구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흙돼지로 만든 하몽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다리처럼 멋진 모양입니다.” 흰 돼지의 뒷다리는 보다 짜리몽땅하다고 한다. 우리는 브룬 씨를 따라 시장 3층에 있는 주방으로 가서 냉토마토 수프라 할 수 있는 가스파초gazpacho, 감자를 넣은 스페인식 오믈렛, 커스터드에 얇게 캐러멜을 덮은 크렘 브륄레crème brûlée를 스페인식으로 만든 크레마 카탈라냐crema catalana 등을 만들어보았다. 내가 만든 가스파초는 맛이 심심하다. 토마토를 50개 정도 썰어 넣었는데 양파를 깜박한 것이다. 그래도 디저트는 꿀맛이었다. 내가 토치 쓰는 걸 좋아해서 윗부분을 태워 먹었지만 말이다. 이게 다 술 때문이다.
나는 라발 지구의 카레르데 페르란디나Carrer de Ferlandina 55번지에 위치한 허름하고 멋진 라이브 바, 집시 루Gipsy Lou를 우연히 발견했다. 이곳에서는 듀오 싱어송라이터 데 라 카르멜라De La Carmela가 카탈라냐 룸바rumba(빠른 템포의 쿠바 민속음악)부터 집시와 플라멩코의 믹스곡, 그리고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시작했을 듯한 1950년대 카탈루냐의 거리 음악을 연주한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물결치는 검은 머리칼을 어깨에 늘어뜨린 가수, 케랄트 라호스Queralt Lahoz. 그녀는 “나다 두라 파라 시엠프레Nada dura para siempre(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를 부른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7시간 후면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아디오스Adios 베야bella(아름다운 그대여, 안녕히)”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 밤이 영원하길 꿈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