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E-RUN TRIP(이런트립)’의
첫 번째 탐험가인
그린다이버 갈치 강사를 만나다.
그와 함께 뛰어든 물속에서
맞닥뜨린 제주 심해의 면면.
제주에서 프리다이빙 강사로
일하신다고요?
안녕하세요. 뎁스원에서 프리다이빙 강사로 활동하는 전장원이라고 합니다. 2004년부터 취미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2010년 여행을 왔던 제주에 정착한 뒤 더욱 다양한 수중 레포츠를 접하면서 2018년 무렵 프리다이빙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갈치라는 닉네임은 교육생 중 한 명이 했던 말에서 비롯됐어요. ‘강사님, 정말 잘 갈치시네요!’(웃음) 프리다이빙은 무호흡 다이빙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최대 100m 깊이까지 들어가는 해양 레포츠입니다. 강습은 보통 4단계로 나뉘는데 하루 코스의 맛보기 레벨인 1단계와 3일간의 입문 과정인 2단계를 거쳐 3단계에서는 정신적인 부분에 집중해요. 아무래도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수중에서는 가장 어렵거든요. 마지막으로 준마스터급에 해당하는 4단계는 최대 40m 깊이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가해지는 압력에 대응하는 이퀄라이징에 대해 가르칩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입안에 공기를 집어넣고 그 공기를 이관으로 밀어내는 법을 훈련시키죠.
특별히 서귀포에 자리를 잡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주도 바다는 북쪽과 남쪽으로 구분해요. 북쪽에는 협재·김녕·함덕·곽지 해변 등 에메랄드빛 바다가 많죠. 지형이 대부분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수심이 충분히 깊지 않아서 프리다이빙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수중 레포츠가 남쪽에서 활성화된 이유이기도 하죠. 남쪽 바다는 수심이 30m에서 최대 90m까지 깊어져요. 제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서귀포 내의 ‘위미리’라는 곳은 제주에서 남원, 효돈과 함께 가장 따뜻한 지역으로 손꼽혀요.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드무니까요. 그렇다 보니 접근성이나 활동성 등을 고려했을 때 자연스레 서귀포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프리다이빙 강사 업무 외에
‘플로빙코리아’라는 단체를
운영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프리다이빙 교육 중에 해양 환경 문제를 가르치긴 합니다만, 결국 이론에 그치거나 액티비티에 집중해 그 문제는 뒷전이 되어버리죠. 항상 마음이 쓰였던 부분인데 작년 1월 1일에 했던 신년 다이빙이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눈이 꽤 내렸던 기억이 나요. 동네인 위미리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는데 평소의 바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위에서 내려다보니 타이어, 낚시용품, 캔, 플라스틱 등이 지나치게 많더라고요. 그 탓에 해조류도 거의 서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간 쭉 봐온 바다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동네에서 함께 활동하는 프리다이버나 저에게 강습을 받았던 교육생들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그런데 자꾸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다 보니 아예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죠.
‘플로빙’이라는 단어가
아직은 생소한데요.
최근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이라는 활동이 성행했어요. 저희는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기 때문에 ‘플로빙’이라는 명칭을 붙였어요. 처음에는 단체명을 플로빙제주로 할까 고민하다가 이 활동이 우리나라 전역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플로빙코리아라고 정했습니다. 플로빙코리아는 주기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서 매주 모임을 갖고 있어요. 해양 쓰레기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해 활동 내용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 장소에 어떤 종류의 쓰레기가 있었으며 얼마나 수거되었는지, 유해 생물이 있었는지 등을 기록합니다. 요즘에는 제보가 들어오기도 해요. ‘여기 쓰레기가 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공지를 띄우고 그다음 주에 이동을 하는 편입니다.
참여 인원은 15~25명 사이인데 반드시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므로 앞서 설명한 레벨 중 2단계에 해당하는 실력은 필수입니다. 애초에 플로빙의 모토가 ‘원 다이브, 원 웨이스트’예요. 물속에서 레저를 즐길 때 쓰레기를 하나라도 가지고 나오자! 작은 실천의 힘을 믿거든요. 플로빙은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어려운 활동이 아니라 일종의 환경 레포츠입니다. 특히 제주는 물이 들어왔다 빠지는 조간대에 주로 쓰레기가 밀려 들어가는 탓에 프리다이버가 얕은 수심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플로빙을 하기 좋아요. 플로빙을 하다 보면 상상도 못 했던 다양한 쓰레기를 만나게 됩니다. 때때로 냉장고, 책상, 변기 같은 생활 쓰레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제주 바다에는 아주 큰 배들이 조업을 자주 나가니까 종종 부득이한 이유로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 거죠. 가장 끄집어내기 힘들었던 쓰레기는 10명이 힘을 합해야 할 정도로 엉켜 있던 그물이에요. 무게는 300kg 정도, 크기는 30m쯤 됐던 것 같아요. 이걸 칼로 일일이 잘라내고 건져 올리니 하루가 다 갔더라고요.
보이지 않는 물속을 정화하는 활동이라
주목을 받지는 못해도
남다른 보람이 있을 듯합니다.
플로빙을 하면서 처음 보람을 느낀 부분은 쓰레기 투기에 대한 인식 변화예요. 예를 들어 흡연자는 담배를 피운 뒤 바닥에 던지고 짓밟아 불씨를 끄는 경우가 많죠. 물론 그 담배를 다시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분들이 다수지만 사실 아닌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데 플로빙을 경험한 분들은 이 주제에 민감해져 본인의 쓰레기를 절대 함부로 버리지 않아요. 저희 활동에 주목하셨던 분들도 꽤 있었어요. 바닷속에서 엄청나게 긴 물체를 끌고 나올 때면 ‘저게 무슨 놀이인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희를 관찰하곤 해요. 자세히 보면 저희가 쓰레기를 수거해 나오는 중이라는 걸 알게 되죠. 이런 호기심이 쌓여서 일부러 프리다이빙을 배우고 플로빙을 하러 오는 분들도 계세요. 프리다이빙 강사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는데 가끔 육지 강사들이 ‘요즘 플로빙을 하려고 프리다이빙을 배우는 교육생이 많아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물론 남다른 고충도 있으시겠죠?
플로빙은 허가받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제주 바다는 해녀분들의 영향력이 큰 편이에요. 아무래도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한 분 한 분 허락을 구해야 하고, 그 후에는 어촌계와 각 지자체에 연락을 해야 하거든요. 저희 동네 해녀분들은 친밀한 관계 덕택에 옷을 갈아입는 탈의장을 빌려주시기도 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쉽지 않죠. 건져 올린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긴 과정을 수반합니다. 여름에는 쓰레기에서 악취도 나니까 빠르게 처리하는 게 중요해요. 일단 지자체에 신고를 하고 담당 부서에서 수거를 하는 식입니다. 간단한 쓰레기는 금방 수거가 가능한데 커다란 쓰레기는 며칠 동안 말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요. 지자체에서 가져간 쓰레기는 매각이나 소각을 하지만, 일부는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탈바꿈하기도 해요. 혹은 여행자를 대상으로 전시를 진행하기도 하고요. 제주 바다에서 어떤 쓰레기가 나왔는지 보여줌으로써 여행자들이 여러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거죠.
‘플로빙’이 제주 여행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제주는 현재 탄소 제로 여행을 활성화하는 중입니다. 예를 들어 공항에서 ‘푸른컵’을 빌려주는데, 이걸 들고 제주를 여행하며 일회용 컵 대신 사용하는 거죠. 제주에는 카페가 약 2000개나 있고 매년 여행자가 버리는 컵이 6300만 개에 달한다고 해요. 푸른컵을 사용하면 이 수치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어요. 심지어 푸른컵은 7일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제주 전역에서 대여와 반납이 가능합니다. 푸른컵과 같은 맥락으로 제주의 두 단체에서는 여행 플랫폼인 마이리얼트립과 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이브제주바다’는 플로빙과 더불어 학교에서 제로 웨이스트나 분리수거와 관련한 교육을 하고, ‘디프다’는 ‘봉그깅’이라는 활동을 주기적으로 진행합니다. 봉그깅은 제주어로 ‘줍다’라는 뜻의 봉그기와 조깅의 합성어로 해변과 항구에 있는 쓰레기를 줍는 캠페인이에요. 이렇듯 환경을 돌보는 활동들이 여행 플랫폼과 연결되는 걸 보면 플로빙도 충분히 여행의 한 장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제주관광공사에서 개최한
‘이런트립’이라는 행사에도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런트립’의 취지와 저희 ‘플로빙코리아’의 목적성이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작년 파일럿 행사에 먼저 참여했는데, 당시에는 프리다이빙을 하는 분들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올해에는 대부분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는 분들이 지원을 하셨더라고요. 거의 몸치에 가까웠던 분들이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다시 참여한 걸 보고는 정말 놀랐죠. 그래서 한 참가자에게 질문을 했더니 이런 대답을 하시더군요. “저는 제주 바닷속이 이렇게 더럽혀져 있는 줄 몰랐어요. 제가 환호했던 것은 겉으로 보이는 제주의 예쁜 면이었더라고요. 시선이 쓰레기로 가는 순간 다른 장면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쓰레기에 가려진 갯바위, 해변, 해수면 등. 그래서 플로빙에 관심이 생겼고 굳이 프리다이빙까지 배우게 되었어요.(웃음)” 플로빙은 은근 중독성이 있어요. 쓰레기를 하나 주우면 두 개를 줍고 싶고, 세 개를 줍고 싶죠. 자꾸 눈에 보여요. 그런 점에서 ‘이런트립’은 플로빙의 의미적, 장소적, 참여적 범위를 더욱 확장하는 행사라고 봅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제주 내에서는 해녀분들이나 어촌계와 바다를 지혜롭게 공유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트립’을 준비하면서 사전 조사 차 배 밑으로 들어갔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프로펠러에 밧줄과 어망이 엉켜 있는 배가 몇 척 있더라고요. 이렇게 되면 프로펠러가 손상되기도 쉽고 속도가 붙지 않아서 휘발유를 다량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걱정이 되어 어촌계에 여쭤보니 연 1회 스쿠버다이버를 불러서 제거를 하신대요. 그래서 제가 그 작업을 대신 해드리고 어촌계와 보다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제주 밖에서는 세계의 국가들과 플로빙 릴레이를 이어가고 싶어요. 해외에서는 해양 정화 활동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부속 섬 중 하나인 ‘미야코지마’는 작은 케언즈라 불릴 정도로 물이 맑아 산호와 동굴이 가득해요. 그런데 이런 바다도 한편에는 타지에서 밀려온 선양 쓰레기가 해면을 뒤덮고 있죠. 그들은 비치코밍을 통해 플라스틱이나 유리 조각을 예술품으로 승화하곤 합니다. 거리상으로도 가깝고 섬이라는 동일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릴레이의 첫발로 적합한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INSIDER
풍덩!
프리다이버의 탐험지갈치 강사가 추천하는
난도별 제주 프리다이빙 스폿들.
얕은 수심
제주 서쪽 끝에 위치한 판포포구는 모래 바닥과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곳이다. 물때를 잘 맞춘다면 프리다이빙을 즐길 만한 충분한 깊이로 차오른다. 현지인이 직접 쌓아올린 월령포구에서도 차분한 프리다이빙이 가능하다. 인근에 자리한 방파제와 갯바위 등이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깊은 수심
수중 레포츠의 메카로 불리는 섭섬, 문섬, 범섬에서는 여타 지역에 서식하지 않는 연산호나 해송을 볼 수 있다. 무인도인 형제섬은 신비로운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다. 바다에 잠겨 있던 새끼섬과 암초들이 썰물 때에만 모습을 드러내며, 수중에는 자리돔이나 줄도화돔 떼가 한꺼번에 유영하는 장면이 감탄을 자아낸다. 제주 서쪽 끝에 위치한 판포포구는 모래 바닥과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곳이다. 물때를 잘 맞춘다면 프리다이빙을 즐길 만한 충분한 깊이로 차오른다. 현지인이 직접 쌓아올린 월령포구에서도 차분한 프리다이빙이 가능하다. 인근에 자리한 방파제와 갯바위 등이 운치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 전장원은 뎁스원(수심1M)에서 프리다이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해양 정화 활동에 앞장서는 플로빙코리아를 운영 중이다. 제주에는 여행자로 발을 내디뎠으나 지금은 토박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제주의 바닷속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