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하루하고도 여섯 시간을 비행해야 닿는 갬비어 제도 바다에서 검은 보석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진 켁은 2004년부터 망가레바섬 동쪽에 있는 할아버지의 진주 양식장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후 그의 석호 양식장은 이후 세 배나 커졌다.
우리가 진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진주가 우리를 선택한다는 말이 있다. 진주는 우리를 꿈꾸게 하고, 진주를 찾아 떠나게도 한다. 바다가 선사하는 보석이라 불리는 타히티 흑진주는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타히티 흑진주 양식은 자연의 신비로움과 인간의 기술이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남태평양 갬비어 제도Gambier Islands의 석호에서 무한한 인내와 세심한 손길이 진주를 키워낸다. 전 세계 감정사들이 독특한 빛과 형태와 색을 지닌 갬비어 제도의 진주를 얻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예로부터 자연에서 자라는 조개껍데기를 모아 만든 모패mother-of-pearl 거래의 중심지였던 갬비어 제도는 조개 양식을 통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타히티섬 남쪽 1600km 떨어진 곳에 있는 갬비어 제도의 석호는 남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는 거대한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방대한 산호초 안에 퍼져 있는 5개의 화산섬은 환상적인 해상 풍경을 만들어낸다. 화산섬 5개로 이루어진 갬비어 제도의 중심이 되는 섬은 망가레바Mangareva라는 매혹적인 이름을 지닌 섬이다. 핀크타다 마르가리티페라Pinctada margaritifera라는 학명으로 알려진 흑진주 조개black-lip pearl oyster는 타히티섬이나 투아무토섬Tuamotu Islands보다 차가운 기후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닷물이 깨끗하고 수온이 낮으며 플랑크톤과 미네랄과 소금이 풍부한 갬비어 제도의 바닷속은 흑진주 조개 양식을 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이 가족이 소규모로 운영하는 진주 양식장 90곳에서 ‘진주층(nacre)’이라 불리는 쌍각류조개를 양식한다.
망가레바섬에서 남서쪽으로 1.5km 거리에 위치한 타라바이Taravai섬의 한 정원에 거대한 진주 유리 조각상이 놓여 있다. 타히티 흑진주는 바다가 선사하는 보석이라 할 만하다.
진주는 이제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우연이라고 한다 해도 그 확률이 예전에 비해 높아졌다. 18세기에 중국은 진주 양식법을 찾아냈고 20세기에 일본은 양식법을 발전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망가레바섬은 자신만의 진주조개 양식법을 개발한다. 물론 해상 환경이나 기술만으로 진주의 품질을 결정할 수는 없다. 2008년부터 진주 양식장을 운영해온 에릭 시코익스Eric Sichoix는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깨달았다. “진주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해야 하죠.”
에릭은 진주 황제로 불리며 타히티의 진주 박물관 뮤제 드 라 페를르Musée de la perle를 세운 그의 삼촌 로버트 완이 운영하는 양식장을 18년 동안 관리하며 진주 양식을 터득했다. 170명의 직원과 일하며 전체 생산량의 70%를 책임졌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작은 산호 모래섬인 타라우루로아Tarauru Roa에 에릭 자신의 진주 양식장을 차렸다. 이제 에릭의 양식장 규모는 약 30만m²(9만 평) 규모로 성장했다. 에릭은 직원 열다섯 명과 함께 산호 모래섬에서 살고 있다. 에릭의 진주는 색이 어둡고, 모양이 둥글며, 지름이 9~10mm 되는 크기다. 에릭의 진주를 사는 사람들은 충성도가 높다. 그의 전문성과 진주의 품질을 높이 평가한다. 에릭이 1년 동안 만드는 15만 개의 보석을 기꺼이 산다.
가장 인기가 높은 진주는 둥글고, 무지갯빛을 띠며, 크기가 적당하고 표면이 매끄럽다. 원형, 모양이 들쑥날쑥 일정하지 않은 바로크형, 타원형 등 진주의 모양은 다양하다.
사실 진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조개는 생애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수술 과정을 겪는다. 먼저 조개의 알을 석호에 방치해 유충이 부화하도록 한다. 부화한 조개 유충은 물속에 넣어둔 기다란 플라스틱 조각(컬렉터)에 달라붙는다. 1년 후, 새끼 조개들을 플라스틱에서 떼어낸다. 이후 크기별로 분류한 후 조개껍데기에 드릴로 구멍을 낸 뒤 철망에 넣어 바닷물 속에 넣어둔다. 조개는 철망 속에서 외부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그리고 계속 성장해나간다. 이렇게 수개월이 지나면 이제 조개 수술을 할 때다. 진주 수술은 두 개의 이물질을 삽입하기 위해 조개를 벌려 껍데기에 진주가 저장되는 주머니를 파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첫 번째 이물질은 진주 핵이다. 진주 핵이란 조개껍데기로 만든 구슬이며, 두 번째 이물질은 조개 외피 세포다. 조개 외피 세포는 조개가 진주 핵에 뿜어내는 진주층의 색에 영향을 준다. 어두운 색의 외피 세포를 삽입하면 어두운 색의 진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알맞은 색의 진주를 만들기 위해 외피 세포는 수술에 앞서 공여 진주조개에서 얻는다. 수술을 마친 조개는 다시 철망으로 들어가 석호 속으로 잠긴다. 또다시 14개월이 지나는 동안 진주는 이물질에 대해 반응을 보인다. 핵 주변에 아라고나이트를 분비해 진주층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때가 진주를 수확할 때다. 진주의 색과 품질이 탁월하면 또 다른 새로운 진주핵을 조개에 넣는다. 그러면 몇 달 뒤 다시 새로운 진주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을 2차 수술이라고 한다. 숙련된 사람이라면 하루에 최다 700개 조개에 진주 핵을 넣을 수 있고, 보통 100개의 양식 조개 중에서 50개 정도가 일정한 수준의 진주를 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전 세계 감정사들이 독특한 빛을 띠는 흑진주를 사기 위해 갬비어 제도로 몰려든다.
망가레바섬의 진주 양식장에는 정확하고 신속한 기술로 잘 알려진 중국의 진주 기술자들이 상주하며 일한다. 중국 광둥성에서 온 펭펜Feng Fen은 중국을 떠나 폴리네시아 석호에서 진주 양식 작업을 한 지 벌써 16년이 지났다. 갬비어 제도에 온 건 약 1년 전으로 동향의 진주 양식 기술자 친구 일곱 명과 함께 살고 있다. 서른다섯 살의 펭펜은 아이들에게 편안한 삶을 마련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모았을 것이다. 실력이 탁월하다면 중국에서보다 4배 이상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2010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진양식장들은 좀 더 안정적으로 기술자를 구하기 위해 포에 리키테아Poé Rikitea 진주양식업 협동조합을 만든다. “포에 리키테아는 양식 진주의 품질과 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포에 리키테아 총괄, 도미니크 듀보Dominique Devaux)
포에 리키테아를 통해 1년 내내 중국인 진주 기술자들이 갬비어 제도로 유입되면서, 덕분에 30개의 소규모 양식장도 필요한 시기에 합리적인 예산으로 이들과 일할 수 있다. 포에 리키테아 회원들은 생산한 양식 진주를 공동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수도로 알려진 타히티섬의 파페에테Papeete에서는 1년에 3회 대규모 양식 진주 경매가 열린다. 여기에서 포에 리키테아 회원들은 공동으로 경매에 참여한다. 생산한 양식 진주의 무게를 재고, 엑스레이 촬영으로 진주층의 두께가 0.8mm 이상인지 확인하고, 크기에 따라 분류해 개수가 아닌 로트(일정량의 단위)로 경매에 부친다. 지난 경매에서는 포에 리키테아 양식 진주 560로트가 판매됐다.
한 다이버가 바닷속에서 양식하는 진주조개를 살펴보기 위해 잠수하고 있다.
다다Dada라고도 하는 유진켁Eugène Keck은 2004년부터 망가레바섬 동쪽에 위치한 할아버지의 진주 양식장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다다의 석호 양식장은 이후 규모가 세 배로 커졌다. 다다는 지난 경매에서 5400개의 진주를 판매했다. 레미Rémi는 여동생 투타나Tutana, 아내 루이스Louise 등과 함께 열대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섬 아카마루Akamaru에서 진주 양식장을 운영한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어도, 장대비가 쏟아져도 레미 가족은 변함없이 일한다. 작은 바지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 진주 조개를 담은 철망을 건져 올려 깨끗하게 씻어낸 뒤 다시 석호 속으로 돌려보낸다.
루이스와 투타나는 양식장의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 다소 품질이 떨어지는 진주로 액세서리를 만든다. 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작은 오두막에서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을 만들어 현지 여성이나 이 섬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판매한다. 최근 갬비어 제도에서는 이렇듯 조개를 이용한 공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망가레바섬 주민들은 양식업 외의 부업을 통해 혹시 양식 진주 가격이 하락한다 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천주교 사제들이 운영하는 리키테아 교육 센터 (Education Center for Development in Rikitea)는 지난 30년 동안 조개공예 수업을 하고 있다. “갬비어 제도에는 진주 양식에서 남겨지는 조개껍데기 등 활용할 수 있는 재료가 많습니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모두 활용하는 거죠.” (진주공예 담당, 헤이파라Heifara)
갬비어 제도에서는 진주조개를 이용한 공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가족이 운영하는 양식장에서는 수확한 진주로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을 만들어 현지 여성이나 이 섬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이 센터에서는 폴리네시아 전역에서 모인 학생 30명이 2년 동안 교육을 받는다. 표면이 약하고 컬러가 다양하게 변하는 조개껍데기를 다루기 위해 필요한 공예 도구 쓰는 법도 배운다. 센터 학생들은 2015년 7월 타히티에서 열린 비치발리볼 월드 챔피언십의 트로피를 만들었다. 리키테아에 있는 생 미셸스 처치Saint Michel’s Church 대규모 복원사업에도 참여했다. 갬비어 제도의 조개껍데기는 센터로 보내지거나 보트에 실려 타히티로도 보내진다. 타히티의 한 기업은 조개껍데기를 대량으로 사들인다. 작업장에서 조개껍데기는 셔츠 단추나 작은 공예품으로 재탄생한다.
일반적으로 ‘흑진주’로 분류되긴 하지만 사실 진주의 색과 형태는 더욱 더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진주는 특별하다. 각각의 진주는 다른 진주와 비교할 수 없이 제각기 아름답다.
술리안 파베네크Suliane Favennec는 태평양과 프랑스를 오가며 저널리스트로 활동 하고 있다.
쥘리앵 기라르도Julien Girardot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를 기반으로 인간, 공동체, 전통, 해양 환경 등을 담는 포토저널리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