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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새로운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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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양옆으로 찰랑이는 파도라니!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밀려든 바닷물과 맞닿은 해변이 마치 호숫가 같다.

태풍이 지나간 바닷가에 안개가 자욱하다. 시야 속 수평선과 섬의 경계선이 아련하다. 다져놓은 듯 평탄한 모랫길을 거닌다. 여기는 바다인가 호수인가. 낯설고도 호기심이 이는 광경이다. 쏠비치 호텔&리조트 진도의 해변과 소삼도 사이로3 m 남짓한 너비의 바닷길이 매일 약 4시간씩 열린다. 해변으로 내려왔던덱 deck 길을 다시 올라가니, 라벤더 묘목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산책로가 나타난다. 다도해를 내다려다보는 언덕배기 위로 쭉 뻗은 길을 걸으며 섬 하나를 지나면 또 다른 섬이 다가오는 수평선을 지켜본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펼쳐지는 진도 앞바다를 둘러본다. 반대편을 바라보니 유럽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리조트와 호텔이 바닷가 절벽과 구릉지 위에 기다랗게 누워 있다. 그 아래로 이어진 산책로도 아스라이 보인다.

 

현대 미술이 셀피 스폿이 되다

지난 7월에 문을 연 쏠비치 호텔&리조트 진도(이하 쏠비치)는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섬 풍경을 바꾸어놓았다. 리조트 한가운데로 이어진 내리막길을 따라 거닌다. 인도 끝자락에는 바다가 내다보이는 ㄷ자 모양의 야외 테라스가 있다. 테라스 안쪽에 설치한 조형물은 물구나무선 채로 걷는 남자를 표현했다. 위트 넘치는 아이디어에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게 된다. 거꾸로 앵글을 잡아보니 땅과 섬들이 흩어진 남도의 바다를 머리에 이고 하늘로 발걸음을 옮기는 듯한 모습이 찍혔다. 독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룹, 잉어스 이대Inges Idee가 제작한 옴므 프로방살Homme Provencale이다.

한스 헤머트Hans Hemmert, 악셀 리 에버Axel Lieber, 토마스 에이 슈미트Thomas A. Schmidt, 게오르그 지이Georg Zey 네 명의 아티스트가 1992년부터 손발을 맞췄다. 유럽에서 명성이 높다더니, 진도의 특징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옴므 프로방살을 구상한 계기를 질문한 메일에 답장이 왔다. “진도의 바다와 산을 보고 아름다운 휴양지라는 인상이 남아 이번 작품을 구상했어요. 9월에 진도를 트레킹할 거예요. 기대가 되네요.”

 

글·그림·노래 자랑이 금지된 섬

“진도에 가면 세 가지 자랑을 하지 마라”는 말이 있는데 , 첫째가 글씨, 둘째가 그림, 셋째가 노랫가락이라고 한다. 소치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운림산방은 첫째와 둘째에 속하는 곳이겠다. 이재용 감독의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 촬영지로도 알려진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許鍊·1808~1893)이 귀향해 황혼기의 작업을 이어간 곳이다. 소치의 대표작 ‘운림각도’(雲林閣圖·1866)를 살펴본다. 소소한 일상을 적은 그림 속 시제를 가만히 읽다 보면 그림 속 장면들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남종화는 먹으로 그린 그림과 연하게 채색하는 담채 기법이 특징이다.

특히 소치는 물기가 거의 없는 붓에 먹을살 짝 묻혀 마른 붓질을 하는 갈필 기법과 손가락 끝이나 손톱을 붓 대신에 사용하는 지두화 기법에 탁월했다. 이 모든 기법이 추사가 전수한 것이다. 소치는 이곳 운림산방에서 진도를 예술의 고장으로 만들었다. 제주 다음으로 먼 유배지였던 진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이들에게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시서화(詩書畵)는 유일한 낙이었다. 소치 이후에도 그의 후손과 제자들은 호남의 한국화를 발전시켰다.

 

마을 전체가 소리꾼이요 흥부자

진도 서쪽 해안가의 소포만 어구에 위치한 소포리를 찾아 나섰다. 진도 들노래, 육자배기, 흥타령, 둥덩애타령의 근원지로 알려진 소포리에는 동네에 소리꾼이 지천으로 있다는 마을이다. ‘하얀 포구’라는 뜻을 가진 소포는 고려 시대부터 염전을 주업으로 삼았고, 진도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목포를 오가던 여객선이 정박하는 진도의 유일한 나루터였다. 1970년대 소포만 간척 이후 읍내로 가던 뱃길이 사라지고 진도대교가 놓이면서 배를 타고 염전 일을 하러 오던 일꾼들이 술 한잔하던 소포리 포구 주막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소리꾼들이 수시로 찾아와 판을 벌이거나 소리를 들려주던 마을의 흥만큼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창고 벽면에 강강술래를 하거나 밭을 매는 아낙들을 그려 넣은 소포리 전통민속체험관과 전수관이 눈에 띈다. 그 옆 담쟁이가 자라는 낮은 돌담에 ‘소포어머니노래방’이라는 세로 현판이 붙어 있다. 올해 87세인 한남례 할머니는 수천 구절에 달하는 노래들을 외우고 부르는 명창이다. 소포어머니노래방에서는 1975년부터 마을 아낙들에게 진도아리랑, 흥타령, 육자배기를 가르치고 있다. 한남례 할머니에게 노래 한 소절 불러달라고 부탁하자, 할머니들이 바가지를 두드리며 여자들이 밭을 매거나 직물을 짜면서 불렀다는 둥당애 타령을 부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호방하고 흥겨운 진도아리랑 가락이 이어진다. 세상만사 희로애락이 할머니들의 노래 가락에 담겼다.

 

진도에서는 사시사철 전복을 먹는다

진도 앞바다에 있는 양식장에서는 사시사철 전복을 출하한다. 김문환 진도전복협회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진도를 이루는 256개의 섬과 빠른 물살로 인해 바닥에 퇴적물이 쌓이지 않는단다. 진도 전복은 섬과 섬 사이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울돌목이라는 엄청나게 쎈 물살 속에서 자란다. 물살이 세면 수온이 낮은데 그 덕분에 전복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쫄깃하며 비린맛이 없다. 특히 서해에서 흘러온 뻘물에는 전복에 좋다는 플랑크톤이 많다.

진도에는 전복의 먹이인 미역 또한 풍부하다. 영양섭취를 고려해 적절한 개체 수에 한해 전복을 양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도 전복은 풍미가 깊다. 특히 알이 차 있는 6, 7, 8월에 가장 맛있다. 진도 사람들은 전복을 삼겹살과 함께 구워 ‘이합’으로 먹는다. 진도 읍내에 작은 수산시장이 3곳 있는데 1층 수산시장에서 전복을 사서 불판을 내주는2 층 식당으로 간다. 같이 구워 먹을 삼겹살은 식당에 전화해서 미리 주문하거나 근처 마트에서 구입해 가면 된다. 3인 기준으로 전복을 1kg 정도 준비하면 삽겹살과 구워 먹기 좋다. 전복 끝쪽 거무스름한 가장자리에 이빨이 있는데 집게로 손쉽게 뽑을 수 있다.

 

천년의 술 홍주와 일몰의 싱크로를 상상하며

붉은 빛깔만큼이나 화끈한 홍주는 진도를 대표하는 술이다. 반세기 동안 홍주를 담근 김양덕 할머니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됐다. 32세부터 홍주를 만들어 돈을 벌었다. 올해 89세를 맞이한 그는 여전히 홍주를 전통 방식으로 만든다. 진도읍 쌍정리에 있는 그의 가내 양조장을 찾았다. 그가 19세 나이로 시집오던 해부터 있던 것이다. 진도 홍주는 고려 시대부터 12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민속주다. 홍주의 붉은 빛깔을 내는 성분은 항균이나 항염증에 도움을 준다. 지초는 씻어서 말려두면 까만색으로 변하지만 민간에서는 오래 묵힐수록 약초가 된다고 여겼다.

할머니의 홍주는 일본에서 온 여행자들이나 명절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갔다고 한다. 하루에 한 번 바다가 갈라지고 천년 된 술과 아리랑 소리와 조선 후기의 미술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섬이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있다. 밤이 깊어갈수록 어둠은 짙어지고 별이 빛나듯, 어제의 노래와 글과 그림이 오늘날 여행자를 사로잡는 진도는 분명 특별한 섬이니까.

글. HYE-KYUNG YOON
사진. HYO-SU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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