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서 나고 자란 내 친구 마리야 파파크Marija Papak는 고향에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는 노점을 하나 차릴 참이다."
해안 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서 오직 제철에만 구할 수 있는 슈퍼 로컬 스낵을 판매할 생각이다. 이 얼마나 획기적인 계획인가. 나는 그녀와 함께 지역 농가들을 둘러보면서 쉽게 구하기 힘든, 이를테면 장인이 만든 치즈, 소시지, 달마티아 지역의 또 다른 달콤한 디저트 등을 찾아다니고 있다. 첫 방문지는 마르코 베데Marko Bede와 그의 부인 젤레Jele가 운영하는 농장이다. 부부의 농장은 두브로브니크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면 닿는 달마티안 해안Dalmatian Coast의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한 리사츠Lisac 마을 외곽에 있다. 우리가 농장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본격적으로 맛보기 전에 베데부부는 뉴욕에서 온 내가 염소의 젖을 짤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 했다. 용감하게 염소의 젖통을 반복해서 잡아당겨보았지만 허사였다. 단 한 방울의 젖도 얻지 못한 나는 농부로서 실격이다. 그러나 달마티안 음식 애호가이기도 한 나는 장소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to-table” “코부터 꼬리까지 snout-to-tail” “로커보어locavore” 같은 문구들과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의 식탁을 완전히 바꿔놓은 ‘뉴 푸드 운동’을 가리키는 다른 용어들이 남동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15년 동안 두브로브니크를 자주 여행했는데, 축 늘어진 칼리마리 튀김, 너무 오래 구운 피자, 식상한 파스타 요리 등 이곳의 레스토랑 음식들은 왜 항상 이 모양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브로브니크를 한번 휙 둘러보면, 가만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이 소도시가 여행자를 유혹하기 위해 꼭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쪽빛 아드리아해와 매혹적인 해변이 온화한 중세 도시 뒤로 마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반짝이는 하얀 석회암이 깔린 거리가 쭉 이어지는 이 도시를 높이 25m 성벽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의 주역들도 21세기 버전 그랜드 투어에 이 도시를 포함시키는 데 한몫했다. 귀족들이 유럽의 풍부한 고전 문화를 익히러 여정에 올랐듯이 말이다.
나는 두브로브니크가 최신 음식 문화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크로아티아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해 있던 공산주의 시기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게 아닌지 항상 궁금했다. 아니면 25년 전 발칸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전쟁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반가운 소식은 두브로브니크의 식사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티셔널 커피artisanal coffee 전문점(코기토Cogito), 전통 맥주 양조장(두브로브니크 비어 컴퍼니Dubrovnik Beer Company), 바 바이 아주르Bar by Azur를 비롯한 근사한 칵테일 바와 이동식 팝업 레스토랑(집시 테이블Gypsy Table)이 이 도시에서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음식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직접 발벗고 나서서 이곳 사람들의 식습관을 바꾸고 있다.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기다려 온 음식 혁명인가? 그렇게 두브로브니크와 크로아티아의 라브섬Rab Island에서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코토르Kotor까지 540km에 걸쳐 뻗어 있는 인근의 달마티안 해안은 이제 곧 유럽 최고의 미식 여행지가 되는 것인가? 마리야 파파크 본인도 핵심 주자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나는 곧 알게 됐다. 나는 2016년 12월, 이 도시에서 한 달 반 동안 열린 ‘윈터 페스티벌’ 기간에 마리야를 처음 만났다.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전용 도로가 된 올드타운의 번화가인 스트라둔Stradun대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는 동안, 훈제 소시지 냄새가 굴의 짠내와 뒤섞여 코를 자극했고 지붕에 고정된 스피커에서 크로아티아 전통 가락이 새 나왔다. 나는 거의 모든 길거리 음식 가판대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곳에서 판매하는 온갖 해산물과 고기 요리로 배를 채웠다.
바로 그때 나는 마리야의 음식 가판대를 지나치게 됐다. 아주 약간의 변화를 준 전형적인 달마티안 스타일의 식사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해안 지방을 오르내리며 여러 마을을 샅샅이 뒤져 발견한 수제품들을 사용했다. 그녀가 판매하는 ‘바다 달걀sea egg’에 호기심을 보이자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진짜 음식을 사람들에게 맛보게 하고 싶어 했다. 한적한 마을들에서는 여전히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그들의 증조부모 세대의 요리를 소환해 소개하는 게 자신의 목표라고 말했다. 덧붙여 두브로브니크에 사는 많은 친구가 이 소도시 전역에 퍼져 있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페모Pemo와 콘줌Konzum만 주로 이용해왔다는 사실이 정말 싫었노라 고백했다. 그녀는 그들이 더 나은 식습관을 익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 극적인 제안을 해왔다. “여기 마을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저와 함께 가야 해요.” 그래서 6개월이 지난 지금 내가 여기에 와 있고, 이렇게 염소의 젖을 짜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이내 나는 내 임무에서 벗어났고, 우리는 모두 식도락을 즐기기 위해 (마치 중력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농장으로 향했다. 며칠 후, 우리는 또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그녀의 자동차를 타고 두브로브니크의 남동쪽 비옥한 코나블레 계곡Konavle Valley의 시골길을 구불구불 지나가고 있다. 우리가 그 꼬부랑 길을 누비고 다니는 동안, 마리야는 곧 문을 여는 길거리 노점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야생 아스파라거스는 사실 대략 10일 정도가 제철이에요. 그러니 저는 그것들을 10일 동안만 판매할 생각이에요. 그러고 나면 저는 그게 뭐가 됐든 그다음 제철 재료로 넘어갈 거예요.”
마리야와 내가 미하니치Mihanići 마을에 들어서자, 그녀는 이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농부의 집을 방문해 그가 만든 치즈와 소금에 절인 고기를 시식해볼 참이라고 말했다. 미호 쿠쿨리카Miho Kukuljica의 집에 도착한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그의 아내 케이트Kate는 어느새 집에서 만든 트라바리차travarica를 유리잔 가득 채우고 있었다. 허브를 가미한 포도 브랜디는 풍미가 제법 좋았다. 우리는 각자의 잔을 높이 들고 “지브옐리živjeli(생명을 위해)!”라고 건배한 뒤, 단숨에 들이켰다.
기다란 나무 식탁 위에는 부드럽고 풀잎 맛이 옅게 나는 하루 숙성시킨 치즈, 한 달 숙성시킨 치즈, 올리브오일로 재운 치즈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제품들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지방이 많은 흑돼지(파타네그라)로부터 얻은 판체타pancetta, 프로슈토prosciutto, 두툼한 소시지가 가득 담긴 접시들. 여러 조각의 폭신폭신한 시골 빵과 올리브오일 병들, 고추 피클도 있다. 샤도네이Chardonnay 와인 병과 시라즈Shiraz, 메를로Merlot, 그리고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블렌딩한 레드 와인이 호두와 체리 리큐어가 담긴 항아리들과 함께 갑자기 등장했다. 더 인상적인 것은 미호가 마법사라도 되는 양, 자신의 손을 식탁 위에서 휘적휘적 흔들며 “저는 이 식탁 위에서 모든 것을 만들었어요”라고 말한 순간이다. 그는 자랑 따위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최고의 미식가가 제공하는 진짜 한 끼 식사다. 그는 원래 자기 집에서 제품을 판매하지만 지금은 주차장을 작은 가게로 개조하는 중이라고 했다. “저는 제가 만드는 모든 것을 팔아요. 심지어 어떤 때에는 만들기도 전에 팔기도 하고요.” 프로슈토 한 조각이 내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동안 그가 내게 말했다. 프로슈토 특유의 짠맛은 그것을 완전히 삼킨 후에도 오랫동안 내 혀끝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그가 이렇게 성공만 해온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사업이 개선되고 있어요. 저는 이곳 사람들이 뭔가 깨닫기 시작했다고 느끼고 있어요. 코나블레Konavle 지역에 얼마 남지 않은 우리 같은 작은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들이 만드는 음식이 품질도 좋고 지역사회가 우리를 지원하기도 더 좋다는 점을 말이에요.” 그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생산량을 더 늘릴 생각도 있지만 쉽지는 않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관광업에 종사하고 싶어 하죠.”
다시 두브로브니크로 돌아왔다. 그러곤 라파드Lapad 지역에 위치한 판타룰Pantarul에 잠시 들러 점심을 먹었다. 음식 평론가 아나-마리야 부지츠Ana-Marija Bujic가 문을 연 판타룰은 전통적인 달마티안식 식사를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스타일로 해석해 내놓는다. 한창 제철인 잠두(파바빈fava beans)와 문어 리조토, 그리고 인근의 섬 비스Vis에서 주로 구할 수 있는 야생 허브 납작빵을 맛보는 동안 아나-마리야가 내 식탁에 잠시 들렀다.
“처음에는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주요 푸드 마켓과 지역 생산자들에게 구할 수 있는 이 지역 제철 재료만 사용할 생각이었어요.”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그게 여기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녀는 식탁에 오르는 음식 재료의 80% 정도를 소농에게서 구매했다고 한다. 2014년 판타룰이 문을 열었을 때, 그 도시로서는 그곳의 방식이 가히 혁명적이었다. “대개 한 레스토랑이 뭔가를 하면 다른 레스토랑들도 따라 하기 마련이죠.” 그녀의 말이 옳았다. 이후 이 레스토랑에 자극을 받은 글로리예트Glorijet, 암포라Amfora, 그리고 이웃 도시 주파Župa에 있는 로칼Lokal 등 몇몇 새 레스토랑이 판타룰의 선례를 따랐다.
두브로브니크에서 해안을 따라 80km 정도 올라가, 소박한 폘예사츠반도Pelješac Peninsula에서 달마티안 음식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듯한 곳을 발견했다. 지역 슬로푸드 콘비비움의 정회원으로 활동하는 모라나 라구즈Morana Raguz는 펠예사츠의 음식 공동체를 한데 묶는 접착제 구실을 한다. 그녀는 부모와 함께 트르판Trpanj이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음식이 주가 되는 여관 빌라 바티칸Villa Vatikan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나를 곳으로 데려가기로 약속했다. 소도시 오레비츠Orebić에 있는 크로칸티노Croccantino에서, 우리는 마리야 안투노비치Marija Antunović가 산에서 찾은 라임과 민트 같은 현지 재료를 넣은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날 늦게 우리는 크리츠 와이너리Križ Winery에서 감칠맛나는 과일 향의 유기농 레드 와인을 마셨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 식당 문을 열었을 때, 유기농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 생각했어요.” 와이너리 주인 데니스 보고에비치 마루시치Denis Bogoević Marušic는 말한다. “한두 세대 전에는 유기농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이곳 와이너리 대부분이 살충제를 사용해요. 저희 조부모님 세대는 유기농 와인을 제조했고, 그게 우리가 원래 와인을 제조하던 방식이에요.”
그의 아내 마리예타 칼리치Marijeta Čalić는 최근에 현지의 플라바츠 말리Plavac Mali 포도로 걸쭉하게 만든 당밀 같은 감미료 ‘바레니크Varenik’를 되살리는 일에 뛰어들었다. 슬로푸드 운동에 힘입어, 그녀 외에도 세 명의 다른 와인 제조업자도 이제 그것을 만든다. “이 지역 특산물은 음식에 단맛을 더하기 위해 사용됐어요. 두어 세대 전에 사라졌지만, 우리는 바레니크를 되살려 지금은 두브로브니크의 요리사 세 명이 음식에 사용하고 있어요.”
관광객들은 두브로브니크의 요식업계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덕을 톡톡히 보겠지만, 최대 수혜자는 당연히 달마티안들일 것이다. 잘 먹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들은 또한 잊힌 유산을 되새기고 있다.
“바로 그거예요. 우리는 항상 슬로푸드였어요. 슬로푸드라는 말이 존재하기 전부터 그랬어요. 머지않아 더 많은 사람이 이것이 진짜 달마티안식 식습관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