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북서부에서 여전히 미식계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북아메리카 연어를 찾아 떠나다.
밝은 오렌지색 데크 팬츠를 입은 생선 장수가 가게 앞 손님들에게 즉석에서 간단한 공연을 선보인다. 그는 손님들에게 “무슨 일이죠?” 질문하며 손을 엉덩이 뒤로 감춘다. 그러고는 “연어의 왕을 알현해보신 적이 있나요?”라는 물음과 동시에 손을 뻗어 연어를 눈앞에 던진다.
시애틀의 해안가가 내려다보이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 곳곳에는 육류, 해산물 등을 판매하는 좌판이 어수선하게 늘어서 있다. 그중 왕연어(태평양 북부산의 커다란 연어) 몇 마리가 얼음 위에 보물처럼 쌓인 채 멍하니 뒤를 응시하고 있다. 왕연어의 두툼한 옆면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연어는 참치, 새우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3 대 해산물로 손꼽힌다. 미국 미시간주 서남부에 자리한 캘러머주Kalamazoo에서 온 커플이 무게가 약 4.5kg인 연어를 가리키며 웃는다. 생선 장수는 연어의 지느러미를 흔드는 척하며 거래에 응하고, 카운터 뒤의 직원에게 연어를 통째로 던진다. 직원은 손에 든 필렛 나이프로 연어를 손질하기 시작한다.
매년 봄이 되면, 연어는 북태평양을 떠나 자신이 태어난 개울로 돌아간다. 그리고 알을 낳은 뒤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아이다호 등 연어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바다가 준 선물이나 다름없는 연어를 수천 년 동안 아껴왔다. 연어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인 나는 연구차 이 지역들을 방문해 생선 장수, 원주민 어부, 과학자, 낚시꾼, 요리사 등 연어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알래스카의 왕연어와 홍연어가 쿠퍼강Cooper River으로 돌아오는 5월 중순, 9kg이 넘는 무게의 왕연어는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0.5kg당 5만 원가량에 팔린다. 추가로, 세척과 손질을 거친 필렛 형태로 판매할 경우 가격은2 배 가까이 오른다. 하지만 손님들은 대개 높은 가격에 개의치 않는다. 시간이 지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각종 연어가 시장에 풀리면 가격이 내려가기도 하지만, 언제나 손님들의 눈길을 먼저 끄는 것은 이 지역의 야생 연어다. 여기에 생선 장수들의 현란한 쇼맨십이 더해지면 손님들은 홀린 듯 지갑을 열게 된다.
시애틀은 전 세계 연어 미식가와 낚시꾼이 알래스카의 미스터리한 어장으로 향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백 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이 지역에서 사랑을 받은 연어는 남쪽에서 처음 발견됐다. 나는 시애틀의 경관을 잠시 감상한 후, 과거 원주민 어부들과 무역상이 오갔을 길을 따라 컬럼비아강으로 이동했다.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컬럼비아강은 미국 원주민들 사이에서 빅리버Big River라고 불린다.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스노퀄미 고개Snoqualmie Pass를 지나 캐스케이드산맥Cascade Range 끝자락에 도착했다. 무성한 숲은 어느새 산쑥으로 뒤덮인 고원과 바위 협곡으로 변했다. 바람을 맞으며 야카마 인디언 보호구역Yakama Nation과 애덤스 산Mount Adams의 오름을 가로질러 세계에서 가장 큰 연어 어장인 컬럼비아강 협곡의 가장자리에서 그 웅장함을 만끽했다.
컬럼비아강의 왕연어는 스프링 치누크Spring Chinook 혹은 스프링거Springer라 불리기도 한다. 가을철 산란을 위해 봄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몸 안에 저장된 지방을 원동력 삼아 수백 마일 넘게 헤엄쳐 상류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미국 원주민 부족 사회는 연어의 회귀 경로를 따라 터를 잡았다. 이 중 일부 부족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동쪽으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보네빌 댐Bonneville Dam의 어도에서는 산란을 위해 헤엄치는 연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여행자들은 보네빌 댐의 자료실에서 일하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전망 지역으로 이동한다. 댐의 전력발전시설 역시 세계에서 알아주는 수준이지만, 여행자들은 연어에 온 신경을 쏟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수십 마리의 두툼한 연어가 물거품을 내며 헤엄치는 광경이 마치 은하수를 연상시킨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얼굴을 유리창에 바싹 붙인다.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트럭에 몇 마리 정도 담아가고 싶구먼.” 하고 중얼거린다. 물살에 이끌린 연어들은 자연스럽게 댐의 바닥에 있는 여수로(물을 유하시키는 수로)에 진입한다.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듯이 흘러가는 콘크리트 수로를 따라 연어는 앞뒤로 헤엄쳐 올라가며 맞은편 저수지의 정상까지 오른다. 연어의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미세한 깜박임조차 없다. 호기심 많은 고릴라나 여타 동물과 달리 그저 페이스를 유지하며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미국 북서부를 흐르는 스네이크강Snake River의 홍연어는 아이다호주 중심부에 자리한 소투스산맥Sawtooth Mountains의 아고산대 호수 상류까지 약 1450km 이상을 헤엄쳐 간다. 이는 미국 본토 내에서 가장 긴 연어 이동 거리로, 가히 영웅적인 여정이다.
오리건주 캐스케이드 록스Cascade Locks에 자리한 레스토랑 브리검 피시 마켓Brigham Fish Market에서 은색과 붉은색으로 빛나는 유리 케이스 안의 연어를 보다가 그 신비로움에 매료됐다.
유머틸러 인디언 보호구역연맹부족Confederated Tribes of Umatilla Indian Reservation에 속한 브리검 가문이 운영하고 있는 이 식당은 컬럼비아 협곡에서 최초로 미국 원주민이 소유한 생선 가게로 잘 알려져 있다. (참고로 유머틸러 부족은 대대손손 생선을 잡아온, 연어에 일가견이 있는 부족이다.)
식당 주인인 킴 브리검 캠벨Kim Brigham Cambell에게 연어를 어디서 잡았는지 묻자, 그녀는 고갯짓으로 뒷문을 가리킨다. 동생 테리 브리검Terrie Brigham은 대부분의 연어를 가게 인근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직접 낚았다고 말했다. 전체 어획량의 약 15%를 자그마치 뜰채로 잡았다고.
1804년부터 1806년까지 미국 전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명령으로 미국과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탐험을 했던 루이스Lewis와 클라크Clark는 셀릴로 폭포를 ‘서부의 위대한 시장’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 폭포는 ‘바위 위로 떨어지는 물소리’라는 의미의 웜Wyam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57년 3월 10일, 달레스 댐Dalles Dam이 수문을 닫자 다시는 폭포의 물소리를 들을 수 없게됐다. 예로부터 강 인근에 사는 원주민들은 매해 봄, 셀릴로 폭포에서 뜰채로 연어를 낚곤 했다. 다만 낚시를 하기 전에 연어를 위한 의식을 먼저 치렀다. 부족마다 연어 의식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큰 틀과 그 의미는 동일하다.
그리고 그해에 잡은 첫 연어는 또 다른 의식을 거친다. 잡은 연어의 뼈를 세척해 강 하류로 떠내려 보내는 것. 이를 통해 강물로 돌아간 연어가 인간들로부터 존중받았음을 동료에게 알릴 수 있게 된다. 부족민들은 이 과정을 거친 연어들이 상류로 올라와 인간에게 영양을 공급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첫 연어 의식은 북 치기, 춤추기, 단식, 잔치 등을 하며 며칠간 지속된다. 의식이 끝나면 연어 낚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의식이 열리는 동안 연어 낚시를 중단해 더 많은 연어가 상류로 넘어올 수 있게 했다. 이를 ‘영적인 어족자원 관리’라고 불렀다.
오늘날 열리는 첫 연어 의식은 일반인에게도 개방된다. 의식이 끝나고 나면 함께 연어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컬럼비아강과 지류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의 뜰채 낚시를 한다. 낚시 어장은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의 거주 지역과 동일하다. 비록 강은 더는 어장이라 칭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연어 문화의 중심지다.
컬럼비아강 협곡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연어를 맛봤다. 컬럼비아강을 가로지르는 신들의 다리Bridge of the Gods에 들러 훈제 왕연어를 파는 유머틸러 부족민의 푸드 트럭을 방문했다. 다리 아래로 그늘진 자리에 앉아 연어의 풍부한 맛을 음미하며 부족의 한 노인이 내게 한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부유하지 않지만, 우리에겐 연어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