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키만큼 자란 양치식물과 가늠할 수 없는 높이의 나무로 둘러싸인 숲속을 걷다 보면 쥐라기 시대를 탐험하는 시간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어떤 기척에 흠칫 놀라 발길을 멈춘 순간, 한가로이 풀을 뜯던 야생 엘크가 귀를 쫑긋 세우고 낯선 이방인을 바라본다.”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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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국립 및 주립 공원이 모여 이루어진 레드우드 국립공원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서부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그 이름처럼,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인 레드우드가 드넓은 숲을 이루는 곳이다.
레드우드는 1억 2500만 년 전인 백악기부터 온대 습윤 지역에서 번성했지만, 현재는 북아메리카 서쪽 해안 부근에만 서식한다. 충분히 자라는 데 400년 이상 걸리고, 2000년 넘게 장수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의 높이는 100m가 넘는다. 어떤 나무가 가장 높이 솟아 있는지는 국립공원 레인저도 알기 어렵다고 한다. 나무는 계속 성장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립공원 내에는 ‘World’s Tallest Trees’라는 안내판이 여러 나무에 걸려 있다. 나무가 이렇게 드높이 자랄 수 있는 것은 한여름에 뜨겁게 달궈진 캘리포니아 내륙의 공기가 북서부의 차가운 태평양 바다와 만나 두꺼운 안개층을 형성하면서 숲을 뒤덮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1년 내내 시원한 온도가 유지되고, 연간 2500mm 이상의 비가 내린다.
게다가 타닌이 풍부한 나무껍질은 각종 병해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고, 25cm에 달하는 껍질 두께는 산불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생존력이 강하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벌목으로 인해 원래 숲의 5%만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국립공원 내 다양한 트레일과 캠핑 사이트에서 대자연의 숨결을 느껴본다. 여정을 마치고 거대한 나무 사이를 빠져나오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극히 작아 보인다.
※ 오충석은 여행을 할 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 찰나를 포착하는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동시에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서도 촬영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모험심 강한 사진가이다. 평소 하이킹을 즐기며 홀로 산 정상에 올라 일출을 감상하는 등 자연 속에서의 여정을 소중히 여긴다. 최근 피엘라벤 클래식 스웨덴에 참가해 왕의 길이라 불리는 쿵스레덴의 일부 구간인 110km를 트레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