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CHINAMPAS TO TABLE
치남파스에서 테이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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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3월호

멕시코시티 남부 소치밀코 수로 인근, 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를 타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선착장, 엠바르카데로embarcadero에는 우리를 안내하기 위한 뱃사공 벤야민과 욜칸 농장의 알레한드로가 나와 있다. 아직 해가 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새벽 5시의 일이다. 일교차가 큰 지역이라 숨을 내쉬면 입김이 나온다. 보트는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안개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트라히네라trajinera라 불리는 보트로는 욜칸 농장까지 20분을 더 가야 한다. 트라히네라는 차포포테라 불리는 오일고무로 방수 처리한 바닥이 평평한 나무 모터 보트다. 줌비요Jumbillo나 툴리요tulillo 같은 작은 카누로는 노를 저어가야 하기 때문에 2시간이 걸린다. 강가에 무성히 자라는 풀들의 내음이 전해졌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어느 것이 땅이고 어느 것이 물 위의 경작지 치남파스chinampas인지 도통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사이 아주 멀리 보일 듯 말듯 포포카페테틀 화산 아래로 동이 트고 있다. 하늘은 조금씩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새들의 지저귐만이 간간히 들려오는 조용한 아침의 땅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남쪽으로 28km 떨어져 있는 소치밀코 운하 지역은 그 면적이 122km²로 약 울릉도의 두 배정도 된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호구이기도 하다. 이 혼잡한 도시 남부에 자리 잡은 믿기지 않을 수상 정원으로 여전히 원시의 형태로 남아있다. 우리는 15세기 아즈텍인들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준 경작지, 치남파스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호수 위의 제국, 테노치티틀란의 시작

아즈텍인들은 1325년 현재의 멕시코시티 2,250m 고원지대 호반에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이라는 제국을 세운다. 이들이 정착한 테노치티틀란은 땅이 비옥하지 않아 농사를 짓기 힘들었다. 고원 그것도 호수 가운데 있는 섬이라니. 지형조건은 물론이고 건기와 우기가 교차하는 기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즈텍 사람들은 당시 주로 옥수수를 먹었어요. 가뭄이 들거나 냉해를 입으면 생산량이 많이 줄었고 결국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거에요.” 알레한드로가 말했다.

 

아즈텍인은 호수 주변의 얕은 물이나 습지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 치남파스Chinampas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먼저 통나무를 얕은 호수나 습지에 줄줄이 박은 후, 밧줄로 묶어서 직사각형 틀을 만들고 틀 안에는 갈대를 엮은 발을 깔았다. 그 위에 나뭇가지, 호수 퇴적물, 수초나 풀잎 같은 유기물, 흙을 차례차례 넣어 다지니 밭이 탄생했다. 수면보다는 1m 가량이 높았고 흙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자리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실제로 보면 육지와 다른 느낌이 크게 없다. 오랜 시간 호수 바닥까지 뿌리가 내려 치남파가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 곳에 옥수수와 콩, 호박, 용설란 등을 심었을 아즈텍인들을 상상했다. 당시 소치밀코 인근에 살던 아즈텍인들에게도 치남파스는 엄청난 수확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1m 깊이의 호수 바닥을 파냈는데 그 안엔 질소와 인, 칼륨 등 영양분이 많았어요. 별다른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될 만큼요.”

알레한드로는 미네랄과 각종 유기물이 풍부한 치남파스 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아즈텍인들은 과학적이었다. 운하가 지표의 미세한 기후를 조정해 기온차를 낮추고 서리 발생 가능성을 많이 줄여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치남파스에서 재배한 농작물들을 운하의 트라히네라에 실어 날랐고, 이렇게 무역량은 점차 늘어났다.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멕시코에 상륙한 1519년, 아즈텍은 이미 500~600만 인구가 사는 대제국이었다. 이렇게 번영을 누렸던 땅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쓰러졌다. 삶의 터전이었던 치남파스 역시 스페인 사람들의 대대적인 배수 공사로 인해 상당 부분 사라졌다.

치남파스의 가치를 알아보다

배가 욜칸 농장에 가까워질 즈음 알레한드로가 말했다. “10년 전만해도 소치밀코의 치남파스들은 엉망이 돼 있었어요. 흙은 흘러내려 온전한 치남파의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주변은 수풀로 뒤덮여있었어요.”

치남파스를 황폐화 시키지 않으려면 이 땅에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원주민들은 대대로 이어온 땅을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았다. 개간하고 경작하는 에너지에 비해 경제적 이윤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통 체계를 마련하지 못해 그나마 경작한 농산물도 아주 저렴한 값에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소작농을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치남파스는 점차 사라졌다.

이 때 멕시코시티의 농부, 소비자, 학자 및 요리사를 연결하는 플랫폼 욜칸Yolcan이 등장했다. 욜칸의 창립자 루시오Lucio와 안토니오Antonio는 2011년 소치밀코의 치남파스에서 농사를 짓는 치남페로Chinampero, 노아 코푸이스Noah Coquis를 만났다. “루시오와 안토니오는 소규모 생산자들이야말로 이 땅의 농업 생태계를 지켜나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알레한드로가 말했다. 그렇게 이들은 멕시코시티의 소비자와 농부, 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처음엔 욜칸이 하는 일에 대해 치남페로 농부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요. 물론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는 농부도 있었지만 큰 관심은 끌지 못했죠. 대다수가 꽃이나 옥수수 등을 키워왔기 때문에 치남파스의 특징을 살려 특용작물 등을 새롭게 재배하려고 한 저희의 목적과는 딱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차츰 농부들에게 알려졌고, 그 뜻과 의미를 존중해주는 농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욜칸 농장은 5명의 농부들과 협업해 치남파스에서 농작물을 생산해 유통하고 있다. 이들은 양상추와 무지개 차드, 고수풀, 꽃, 보리, 시금치, 아마란스, 비트, 콜리플라워 등을 재배한다. 뿐만 아니라 꿀, 빵, 토르티아, 계란, 치즈 등 지역 주민이 생산한 유기농 식재료를 도시와 고급 레스토랑에 매주 공급한다.

“매주 정기적으로 욜칸의 과일과 채소를 받는 사람들을 저희는 욜카니스타스Yolcanistas라고 불러요. 이들은 신선한 제철 야채를 즐기면서 욜칸의 농민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죠.” 알레한드로는 말을 이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남파스 농민들에게 야채 재배는 충분한 수입원이 되지 못하고 있어요. 농민들이 단지 그들의 일터인 치남파스를 사랑해서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통해 경제적으로 이윤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됐으면 합니다” 소치밀코를 기반으로 한 이 플랫폼은 현재 우아스카Huasca, 텍스코코Texcoco 및 산 미구엘 시칼코San Miguel Xicalco로 확장해가고 있다.

 

미쉐린 셰프들의 눈에 띄다

현지 농부들과 협업해 생태를 살리고 질 좋은 유기농 식재료를 로컬에 공급하던 노력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셰프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매일 테이블에 오를 수 있는 신선한 유기농 식재료를 찾고 있었지만 막상 일반 시장에선 구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특히 이 보라하 꽃borraja 같은건 셰프들이 아주 탐을 내요. 플레이팅에 활용되는 식용 꽃인데 구하긴 어렵거든요. 재배하기도 전에 이미 문의가 들어올 정도에요.” 알레한드로가 말했다.

 

현재 레스토랑으로 공급되고 있는 작물은 보라하 꽃을 비롯해 스쿼시, 아마란스, 토마토, 칠리 페퍼, 상추, 고수, 시금치, 차드, 파슬리, 콜리 플라워, 샐러리, 박하, 로즈마리 등 다양하다. 각 레스토랑에서 필요로 하는 채소가 있을 때마다 욜칸에 문의하고, 욜칸은 새로운 채소가 재배되면 그 목록과 양, 가격정보 등을 레스토랑 담당자에게 보내 주문을 받는다.

멕시코시티 내 유명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인 콘트라마르Contramar, 막시모 비스트로Máximo Bistro, 푸욜Pujol, 킨토닐Quintonil, 로세타Rosetta등이 욜칸의 주 고객이다. “프로슬린, 실란트로(고수) 등 이들이 필요로 하는 작물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재배량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퀄리티는 일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좋습니다. 치남파스에서 자란 채소는 미네랄 함유량이 월등히 높아요. 소량이지만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된다는 장점도 있고요”

이들은 여전히 500년 전 조상들이 만들던 방식 그대로, 고유의 농법을 활용하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브라우니와 같이 생긴 모판이다. 작은 직사각형으로 흙 위에 선이 그어져 있고, 각 직사각형에는 씨앗이 하나 정도 들어갈 크기의 구멍이 나 있다.

“호수 아래의 흙을 퍼 올린 다음 기존 흙과 잘 버무려 푹신푹신한 모판을 만들어요. 하루 정도 그대로 놔두었다가 바둑판 모양의 선을 만들고 네모난 구멍에 씨앗을 하나씩 넣습니다”

새싹이 자라나면 이 네모난 작은 판을 각각 분리시킨 다음 좋은 모종을 골라 아주심기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앞 그루 작물을 수확하기 전 다음 작물을 준비해 한 해 동안 경작을 여러 번 할 수 있다. 유기비료가 많아 땅심이 유지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욜칸은 푸욜 등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랭크된 명성있는 멕시코시티 내 레스토랑을 초대해서 1년에 한번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하고, 펀딩을 받은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일종의 펀딩 데이인 셈이다. 이들은 치남파스를 복원, 좋은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함께 힘을 쏟는다.

“요즘 소비자들은 단지 파인다이닝에서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공정한 방식으로 식탁에 오른 농작물인지 등을 궁금해 해요. 특히 그 산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죠. 파인다이닝 경험이 컬리너리 투어로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알레한드로가 말했다.

욜칸과 멕시코시티의 파인다이닝들은 서로 협업 관계에 있는 셈이다. 그들은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에서 오는 여행객들에게 컬리너리 투어를 제공한다. “여행자들은 치남파스를 보면서 즐거워하죠. 이곳이 멕시코시티인 것을 놀라워합니다.” 멕시코 문화와 가스트로노믹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국 땅을 존중하고 보살피는 일, 바르게 생산된 야채가 식탁에 올라 풍미 있는 한 끼를 만들어 내는 일의 중요성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여전히 어려운 것은 가격 컨트롤이에요. 적정한 가격을 받고 농산물을 팔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용 작물 위주로 재배를 하기 때문에 저희 농장 쪽에서 레스토랑에 가격을 제안하는 편이에요. 무조건 싸게 팔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소치밀코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사실상 개인이 땅을 소유하기는 어렵다. 건물을 짓는 것 역시 불법이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온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원주민은 있다. 물론 모두가 농업을 할 목적으로 땅을 얻으려 하지는 않는다. “단지 소유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정말 치남파스와 소치밀코의 생태계를 사랑하고, 이를 정성껏 보살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여기엔 많은 가능성이 있어요.” 알레한드로는 젊은 귀농 인구가 치남파스로 들어와 치남파스를 가꾸고, 농부로서 삶을 개척해 나가길 바란다.

콘데사의 작은 토르티야

우리는 이제 콘데사 지구에 위치한 토르티야 숍 몰리노 엘 푸욜Molino el Pujol로 향한다. 토르티야를 만들어 내는 바와 여섯 개쯤 되는 테이블을 가진 미니 토르틸레리아tortillería다. 벽에는 일다 파라폭스Hilda Palafox의 옥수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멕시코 미쉐린 2스타 엔리케 올베라Enrique Olvera 쉐프는 사라져가는 전통 방식의 토르티야를 되살려내기 위해 이 작은 숍을 낼 결심을 했다. “우리 삶에서 옥수수는 정말 중요하지만 정작 질 좋은 옥수수로 만든 전통 방식의 토르티야는 사라지고 있어요.” 그는 멕시코 식문화의 중추가 되는 토르티야에서 전통을 되살리고자 했다.

몰리노 엘 푸욜은 2018년 4월 문을 열었다. 와하카에서 재배된 멕시코산 크리올 옥수수를 주재료로 하여 토르티야를 직접 만들어 판다. 주로 아마리요 사포테코Amarillo Zapoteco라 불리는 옥수수를 사용하는데 믹스텍, 사포텍, 치난텍 부족의 농업형태에 따라 가장 순수하게 생산된 옥수수만을 선별한다. 외래종 유전자변형 옥수수를 막기 위해서다. 물론 옥수수의 색깔이나 종류는 그 때 그 때 바뀐다. 보통 일반적인 토르틸레리아에선 kg당 15페소 정도에 판매된다면 이곳에서는 21페소 정도에 팔린다. 가격은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질 좋은 옥수수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대다수 멕시코인들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출처가 불분명한 옥수수 분말로 만든 토르티야를 일상적으로 먹고 있어요” 가장 대중적인 옥수수 분말 브랜드인 마세카maseca와 같은 것이다. 엔리케 올베라는 멕시코인들이 익숙해져 가는 이러한 식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자신의 미쉐린 레스토랑인 푸욜pujol엔 몰리노 엘 푸욜에서 만든 마사(옥수수분말)을 공급한다. 그는 앞으로 뉴욕과 LA의 레스토랑에도 자체적으로 생산한 토르티야와 마사를 공급할 계획이다.

카운터에 줄을 서서 주문을 한다. 검은 레터 보드에는 타코, 타말, 엘로테, 프리홀레스 데 오야 등의 메뉴가 쓰여 있다. 옥수수를 넣어 만든 음료인 아구아 데 마이즈agua de maiz, 아톨레atole등도 함께 곁들이면 좋다. 이곳에서도 직접 만든 토르티야를 kg단위로 구입할 수 있다. 토르티야를 사면 직원은 말린 옥수수 껍질로 만든 토토목스틀레Totomoxtle라는 종이에 곱게 토르티야를 포장해준다. 얼핏 보기엔 일반 종이나 신문지 같지만 질감이 훨씬 보드랍다.

멕시코인들의 주식이라 할 수 있는 토르티야에는 깊은 역사가 있다. 멕시코 정부는 1990년 후반, 토르티야에 대한 장기 보조금을 없애면서 가격 통제 능력을 상실했다. 공장식으로 생산된 영양분이 부족하지만 가격은 저렴한 옥수수 분말 믹스인 마세카에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질 좋은 옥수수로 전통 생산 방식에 따라 토르티야를 만들던 많은 곳은 사라졌다. 더 많은 공정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들은 공장식으로 빠르게 교체됐다. 거대한 금속 냄비에 알칼리성 용액을 넣고 옥수수를 최대 10시간 동안 끓여내는 닉스타말nixtamal 과정도 사라졌다. 이는 옥수수의 영양분을 그대로 유지시켜 줄 뿐만 아니라 반죽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공정이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점차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멕시코시티 남부의 산 미구엘 차풀테펙San Miguel Chapultepec의 엘 갈리토El Gallito 공장 에서는 아침 5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닉스타말을 한다. 엘 갈리토의 반죽으로 만든 토르티야는 그 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타코를 만들기에 충분한 탄성이 있어 인기가 있다. 멕시코시티 남부의 타쿠바야Tacubaya 지역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11개의 공장이 있었으나 이제 라 모레니타La Morenita등 두 곳만이 남아있다. 전통 방식의 마사와 옥수수 분말 믹스인 마세카의 차이를 발견하고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는 한 멕시코인들의 자존심, 진정한 토르티야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선인장을 찾아서, 틀라카야판 

이른 아침, 긴 소매와 두꺼운 장갑으로 무장한 농부들이 가시배 선인장Opuntia을 잘라내고 있다. 단면이 넓은 선인장 줄기를 잡고 줄기가 끝나는 지점을 칼로 잘라낸다. 잘라낸 패드는 사람이 가시에 찔리지 않게 만들어진 단단한 포대자루에 담는다.

멕시코시티에서 남쪽으로 80km, 차량으로 1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틀라카야판Tlayacapan. 나우아틀리어로 ‘지구의 끝’ 또는 ‘경계’라는 뜻을 갖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선인장, 스페인어로 노팔nopal이 많이 자라는 곳으로 유명하다. 틀라카야판 피라미드 바로 아래에 위치한 틀랄네판틀라Tlalnepantla으로 갔다.

산 함량이 낮은 이른 아침이 선인장을 재배하기 좋은 시간이다. 이른 아침엔 더욱 달콤한 선인장 패드를 수확할 수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낮에는 인부들도 잠시 일을 멈춘다. 선인장은 1년에 여섯 번 정도 재배가 가능한데 선인장 1개당 매년 20개에서 40개까지 패드를 생산한다. 크기는 보통 10cm 미만, 20cm미만 두 가지로 구분해 수확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패드가 더욱 부드럽고 식감이 좋아 인기 있다. 이렇게 모은 패드는 공장으로 가져가 깨끗하게 씻은 다음 야채 필러와 칼을 이용해 가시를 긁어낸다. 흠이 있거나 변색된 부분 역시 벗기거나 잘라낸다. 샐러드로 만들거나 볶음 야채로 사용할 경우에도 껍질을 벗긴다.

선인장은 멕시코 사람들이 흔히 즐겨먹는 식재료로, 단백질, 섬유질, 칼슘,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하다. 멕시코를 원산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이 선인장을 유럽으로 가져가 이후 북아프리카 전역에 퍼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멕시코 전역과 미국 일부 지역, 지중해 등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스페인어로 노팔nopal은 선인장 자체를, 노팔레스noplaes는 선인장 줄기를 뜻한다. 선인장 줄기를 잘라 먹기 좋게 만든 것은 노팔리토nopalitos라고 부른다. 주로 가시를 제거한 넓은 선인장 단면을 길고 얇게 잘라내 다른 채소와 함께 볶아 먹거나 볶은 노팔을 토르티야에 싸서 먹는다. 엔살라다 데 노팔리토스ensalada de nopales는 토마토와 양파, 고수와 오레가노를 곁들인 간단한 선인장 샐러드로 할라피뇨나 새우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감자, 볶은 콩과 얇고 길게 썬 선인장 줄기를 넣으면 타코 데 노팔리토스tacos de nopalitos가 된다. 깍둑썰기한 선인장 조각을 소금물이 든 냄비에 부어 20분 동안 익힌 다음 찬물로 헹궈 샐러드나 수프에 넣어 먹기도 한다. 아침식사로 달걀 프라이나 오믈렛에 추가해 먹는 경우도 있다. 신선한 노팔은 최대 2주정도 보관할 수 있으며 슈퍼마켓에서는 노팔리토 통조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후안과 루이스는 노팔 필드에서 나와 작은 선인장 열매를 갈아 만든 노팔주스를 한잔 건넨다. 마치 아주 신선한 배즙을 들이키는 것 같다. 가장 뜨거운 땅에서 물기를 머금고 자란 열매가 이토록 달다니. 멕시코에서의 한낮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평생 이렇게 선인장을 재배하자면 힘들만도 한데 두 형제의 눈엔 웃음기가 가득하다. 저녁엔 노점에 들러 노팔리토스를 듬뿍 넣은 타코를 먹어야겠다. 수프에도 샐러드에도 타코와 퀘사디아, 몰카헤테 등 멕시코 음식이라면 모든 곳에 이 노팔리토스가 있으니, 정말 멕시코사람들과 선인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이 분명하다.  

메르카도 하메이카

멕시코시티 센트로 인근에는 메르세데스, 산 후안, 코요아칸, 센트럴 아바스토 등의 시장이 있지만 남동쪽으로 5km거리, 메르카도 하메이카Mercado de Jamaica의 규모와 구성을 따라올 곳은 없다. 과거에 이 지역은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동쪽 끝이었다. 당시 큰 시장이 형성되어있던 틀라텔로코tlateloco로 가기 위해 수천 개의 카누와 바지선이 머물던 지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은 홍수를 피한다는 명분으로 도시 운하의 물을 모두 빼버렸고, 현재는 호수가 아닌 땅이 됐다. 

메르카도 하메이카는 이제 장식용 꽃과 관상용 화분, 채소, 과일 등을 파는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했다. 약 5,000여종의 꽃과 식물이 있는데 상당 부분은 푸에블라, 베라크루즈, 미초아칸, 치아파스 등 멕시코 각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다. 치아파스의 농부들은 시장 상인들에게 자신이 키운 옥수수와 양상추, 콜리플라워, 식용 꽃, 고수풀 등을 팔기도 한다. 현재 1,200여개의 상점이 있다. 이곳에서 오렌지를 파는 세르히오Sergio를 만났다. 세르히오는 스페인어로 나랑하naranja라 불리는 오렌지를 탑처럼 쌓아놓고 판다. “베라크루즈산 나랑하는 맛있기로 유명해요. 하지만 유카탄이든 와하카든 멕시코산 오렌지는 다 맛있어요. 1월에서 4월까지를 보통 제철로 봐요.” 운이 좋게도 나는 노점에서 갓 짜낸 제철 오렌지로 만든 주스를 마신다. 작은 컵 한잔에 15페소, 1달러도 채 안 되는 가격이다. 평생 이렇게 고당도의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다는 건 멕시코 사람들에게 엄청난 행운이다.

칠랑코 스타일의 타케리아

멕시코시티에서도 가장 힙하기로 소문난 로마 지구의 타케리아로 향한다. 알바로 오브레곤 길에있는 타케리아 오리노코. 흰색 타일의 깔끔한 외관과 붉은 색으로 크게 쓴 오리노코ORINOCO 글자가 눈에 띈다. 멕시코시티를 포함한 북부지역 스타일의 타코를 만들어내는 곳으로 멕시코 동북부 몬테레이 출신의 주인장이 2017년 물을 열었다. 양념한 돼지고기를 꼬챙이에 겹겹이 꽂아 가스 불에 천천히 돌려서 구워가며, 익은 부분을 칼로 썰어내는 파스토르pastor가 인기 메뉴.

이 지역에서는 구운 파인애플을 꼭 올려 먹는다. 멕시코의 타 지역 사람들을 이를 칠랑고chilango스타일이라고 부르는데 멕시코시티 사람들에겐 이 파인애플 한 조각이 꼭 필요하다. 녹색 고추 소스인 살사 베르데, 양파와 고수, 토마토를 잘게 썰어 만든 살사 메히카나도 없어선 안되지만 그 위의 화룡점정, 구운 파인애플 한 조각이 꼭 필요하다.

태평하고 너그러운 멕시코 사람들도 타코에 한해서 만큼은 까다롭다. 점심에 문을 여는 이 가게가 현지인들로 북적북적 하다는 건 이 일대에 이미 맛있기로 입소문이 났다는 증거다. 타코를 만드는 바 좌석에 앉으면 직접 파스토르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주문도 할 수 있어 빠르게 원하는 타코를 손에 넣을 수 있다. 테이블과 함께 다닥다닥 놓인 빨간 의자는 이미 만석이다. 고개를 돌려 테이블 석이 앉은 사람과 눈을 마주쳤을 때 그는 내 눈을 피하지 않고 손을 번쩍 들며 ‘무이 부에노muy Bueno!’를 외친다.

오리노코는 늦게 저녁식사를 하는 멕시코시티 사람들을 위해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한다. 타코 3개에 90페소로 일반 노점에 비해서는 꽤 비싼 편이다. 메뉴는 많지 않다. 3가지의 고기 타입이 있다. 알 파스토르 al pastor, 비스텍 bistec 그리고 치차론 chicharron 이다.

알 파스토르는 돼지고기로 만든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먹는 타코다. 일종의 멕시칸 스타일의 샤와르마인데, 레바논에서 이민 온 사람들에 의해 전해졌다. 터키식 케밥을 만드는 과정을 상상하면 쉽다. 돼지고기를 절이는데 과히요 칠레guajillo chiles 아초테achiote와 마늘, 커민, 정향, 오레가노, 고수풀, 후추 등이 들어간다. 그다음 꼬챙이에 꽂아 돌돌 돌려가며 굽는다. 바하 칼레포니아Baja California지역에서는 이를 타코 데 아도바다taco de adobada라 부른다.

그외 비스텍은 소고기를 썰어 토르티야 위에 올린 일종의 소고기 타코이며 치차론은 돼지고기 껍질 튀김으로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이 타코가게엔 유독 치차론 타코를 먹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은데, 다른 곳과 비교가 안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고기를 고른 다음으로 옥수수 또는 밀가루 토르티야 중에서 선택을 하고 그외 치즈 등 추가할 부분을 주문한다.  

투박한 은색 양철 쟁반에 무심한 듯 툭툭 올려지는 타코가 맛있는 건 무엇보다 신선한 고기로 잘 조합된 양념에 갓 구워졌기 때문이다. 야채와 소스 그리고 토르티야의 식감도 물론 중요하다. 함께 곁들여지는 라임을 짜 올리고 그 위에 양파와 고수풀을 적당히 뿌린 다음, 살사 베르데를 살짝 둘러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얇은 돼지고기에서 불 맛을 느끼려는 찰나 매운 고추와 양파, 고수 향이 훅 들어온다. 씹을수록 고소하게 잘 어우러지는 조합이다. 그렇게 한 개, 두 개, 세 개. 그 맛에 반해 다시 한번 와야 하나 고민하며 입구 쪽을 내다 본 순간 이미 밖엔 줄이 너무나 길어졌다. 기다림을 감수하고라도 여러 번 먹고 싶은 맛이다.

 

글. 강혜원 HYE-WON KANG
사진. 빅토르 우고 모랄레스 VICTOR HUGO MOR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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