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차로 6시간, 다시 배로 70분, 그 동안 들어본 적 없었던 섬으로 은둔 캠핑을 떠났다. 그 섬 속에 잠겨 캠퍼와 함께 보낸 72시간의 기록.
7:00am
은둔 캠퍼가 되다
“어디요? 신안이요?” 들어본 적 없는 섬의 이름을 내뱉은 순간 엄지 씨는 제법 놀란 눈치였다. 캠퍼이자 유튜버로 활동하는 그녀에게 차박 캠핑을 제안했지만 그것이 서울에서 400km 이상 떨어진 신안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네, 우리는 가장 멀고, 핸드폰도 잘 안 터지는 섬으로 가보려고요.” 그 날부터 어느 섬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 머리를 맞대고 구상했다. 처음 가려던 날엔 비바람이 몰아쳐서 계획이 무산됐으나, 그에 굴하지 않고 이튿날 출발하는 일정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해가 떴고, 우리는 예정했던 대로 고요하고 비밀스런 섬으로 떠났다.
400회 이상 캠핑을 했지만 신안은 ‘처음’이라고 했다. 신안은 전라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다도해로 이뤄진 군으로 다도해 섬 대부분이 신안군에 포함돼 있다. 2읍邑 12면面에 830개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부속 섬들과 이름없는 섬들까지 합하면 1004개가 된다고 하여 천사섬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다. 조선 후기 유배지로 이름을 떨쳤고 그 때문에 희귀 성씨도 많다. 멀고 한 번 나오기가 쉽지 않은 섬들로 이뤄져 있다 보니 인구는 4만에서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다.
신안 암태도 남강 선착장, 엄지 씨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우리는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암태도에서 비금 가산 선착장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차를 함께 실을 수 있는 배를 타려면 중형차는 16000원의 선적료를 내야한다. 배에는 물건을 이고 진 현지 주민들과 여행객이 섞였고, 각종 트럭과 짐 차 등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비금도에 가까워지자 바다는 에메랄드 색으로 빛났다.
9:00am
해변과 바위산, 자연의 품에 깃들다
‘날아가는 새’라는 뜻의 비금飛禽도는 말 그대로 새가 날개를 펼친 형상이라고 한다. 뭍에서 꽤 떨어져있고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바위 위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줄사다리와 오묘한 느낌의 바위들을 보니 왜 홍도의 비경에 버금간다고 했는지를 알 듯했다. 이러한 비경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채 거의 방치돼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비금도는 바로 이웃한 도초도와는 1996년에 서남문대교로 이어져 사실상 한 섬이 됐다. 두 섬을 합한 면적은 울릉도 보다 조금 더 크다. 이어져 있는 두 섬은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먼저 비금도가 높이 255m의 선왕산을 비롯해 거대한 바위가 솟아오른 암봉이 많고 너른 백사장이 많은 것에 비해 도초도는 고란평야라 불리는 들판이 한가로운 전원 풍경을 만들어 내는 목가적인 섬이다. 백사장도 시목과 가는게 해변 두 곳이 전부다. 주민들이 밭 일을 하거나 바다에서 생업을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0:00am
명사십리 모래 위를 달리다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길이 4.5km에 이르는 명사십리 해변이다. 드넓은 염전 지대를 지나 4km 정도 가다가 명사십리 쪽으로 방향을 트니, 거대한 방풍림 뒤 명사십리가 펼쳐졌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십 리쯤 펼쳐져 있다 해서 명사십리明沙十里 해수욕장으로 불린다. 여기엔 사람의 손 때가 묻지 않은 채 다만 광활하고도 적막한 풍경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4.5km의 모래 사장을 아무리 달려도 차 바퀴가 빠지지 않는 이곳에서 드라이브를 했다. 모래가 아주 고운데 밟아도 발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수심이 얕은 데다 고운 모래가 아스팔트처럼 단단해 차를 타고 달려도 바퀴자국이 깊게 패이지 않는다.
우리는 차를 잠시 세워놓고 해안과 방풍림을 걸었으며 멀리 드론도 띄워보았다. 간조 때라 해안의 폭은 100m는 되어 보였다. 엄지 씨는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안 위로 드론을 날렸다. 차 가까이에서, 그리고 해안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띄워서 비금도 명사십리 해변의 모습을 다양한 프레임 안에 담았다. 엄지 씨는 자연에 쉬이 감동했으며, 그때마다 감탄을 연발하곤 했다. 아직 아이 같은 감성과 여유를 갖고 있음이 분명했다. 우리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11:00am
내촌 돌담마을 앞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선왕산 아래 자리한 내촌 돌담마을이다. 내촌은 대략 400년 전 형성된 마을이라고 하는데 마을 뒤로 펼쳐진 산의 암봉과 마을 풍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전달한다. 내촌마을 산등성이에는 석성처럼 쌓아 마치 만리장성 같은 내월 우실이 있다. 우실은 바람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돌로 쌓은 방풍시설로, 마을의 울타리라는 뜻이다. 우실은 바다 쪽인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피해가 크자 마을사람들이 이를 막기 위해 쌓은 돌담인데 매서운 해풍을 막기 위해 산 정상 부근 골짜기에 석성처럼 쌓아, 멀리서 보면 마치 견고한 성곽처럼 보인다.
내촌마을을 둘러싼 돌담은 높이 1.5m 내외로 구불구불하게 3km 가량 이어진다. 이 마을담장의 돌은 둥글지 않고 길쭉하면서 날카로운 것이 특징인데 담장의 높이는 대체로 일정하다. 마을 뒤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납작한 돌과 각형의 막돌을 사용해 쌓았다. 폭은 40~60cm내외다. 이 마을의 담장은 2006년 국가등록문화재 제283호로 지정됐다. 엄지 씨는 내촌 돌담마을을 걸으며 영상 촬영에 몰두했다. “다육이가 돌담 위로 자라난 건 처음 봤어요. 제주도랑은 또 다른 느낌인데, 어떻게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죠?” 흡족해하는 그녀를 보며 우리도 조용히 따라 길을 걸었다.
1:00 pm
하늬바람이 넘는 곳
내촌 돌담 마을을 거쳐 비금도의 하누넘 해수욕장 이정표를 따라 좁은 산기슭을 오르자 하트 모양의 해안선이 드러났다. 하누넘 해변이다. 선왕산을 끼고 도는 드라이브 코스는 확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길이다. 섬주민의 말에 의하면, 하누넘은 북서쪽에서 하늬바람이 넘어오는 곳이란 뜻이라 한다. 하누와 네미의 합성어로 산 너머 그곳에 가면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해변의 모양은 물론이고, 물빛 또한 아름답다. 해안이 하트 모양을 빼 닮아 부부나 연인이 함께 찾으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산기슭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하누넘 해변 길을 따라 걸으니 비금도만의 전통 방풍시설인 우실(돌담)이 보였다. 우실은 선왕산 능선에서 끝나 있었다.
3:00 pm
자발적 고립을 택하다
그녀는 ‘엄지 Thumb K’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6만 구독자를 가진 인기 채널로 그녀가 산과 강, 바다에서 즐기는 아웃도어 라이프가 일주일에 두 번 업로드 된다. 그녀는 우중 차박 캠핑을 하고 로드 바이크를 타고, 때로는 프리 다이빙을 하며 솔로 미니멀 캠핑을 즐긴다. “유튜브에는 주로 제가 좋아하는 아웃도어 활동들을 올리는데요, 일상에서부터 캠핑, 다이빙, 바이크 등 가리지 않아요. 제가 캠핑만 전문으로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크리에이터는 되지 못했을 거에요. 제가 다양하게 아웃도어를 즐기는 모습들을 독자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엄지 씨도 때로는 이유 있는 자발적 고립을 필요로 한다. 친구들과 하는 캠핑을 좋아하지만 꼭 그 후에는 혼자 야영을 다녀온다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다시 충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비교적 가까운 근교가 아니라 끝없이 멀고 먼 다도해까지 흔쾌히 온 것도 전혀 다른 세상에 혼자 놓여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호기심은 사람의 발길을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6:00pm
하늘 별 그리고 차박
우리는 하누넘 해안을 나와 서문대교를 건너 도초도 쪽으로 이동했다. 수풀이 많아 도초도라 불리게 된 이 섬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가는게해변’을 찾았다. 이 해변은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산기슭을 따라 올라가다가 다시 비포장도로를 따라 500m를 더 가야 한다. 잔잔한 해안이라 파도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다. 엄목마을의 시목 해변 야영장을 향해 다시 부지런히 움직였다. 모래사장 주변에 감나무가 많아서 시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남쪽을 제외한 3면을 야산과 들판이 막아주고 있어 아늑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해변의 길이는 약 2.5km로 바로 앞에는 농간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날씨가 흐리면 바위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야영장에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차박을 준비했다. 해가 아직 넘어가지 않은 여섯 시 무렵, 부지런히 차박 세팅을 하고 저녁을 준비해야 어둠 속에서 부산을 떨지 않을 수 있다. 엄지 씨는 프로 캠퍼답게 뚝딱뚝딱 세팅을 한다. SUV 차량의 뒷좌석은 어느새 평평해졌고 그 위로는 매트 두 장이 척 깔렸다. 공기를 주입해 만드는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하고 그 위로 식기와 저녁으로 먹을 거리를 준비했다. 짐은 많지 않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갖추고 있었다.
“짐을 챙기다 보면, 나에게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명확해져요. 너무 많은 것을 들고 다닐 필요는 없거든요. 어떻게 보면 짐을 챙기는 것부터 집에 가져가 깨끗이 씻고 정리해 넣는 것 까지가 캠핑이에요. 그 모든 과정이 제겐 큰 즐거움이 되고요.” 말을 이어가면서 그녀의 손은 쉴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작은 화로에 소시지를 구웠고, 그 옆의 큰 화로에는 장작을 쌓아 토치로 불을 지펴 본격적인 불멍을 준비했다. 모든 분위기는 캠핑을 위해 만들어졌고, 여유를 찾았을 때 즈음 엄지 씨는 우쿨렐레를 집어 들었다.
9:00pm
바람의 소리를 듣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불 앞에서 엄지 씨는 우쿨렐레 연주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밤하늘의 별을 구경했다. “별이 너무 잘 보여요. 저건 북극성이고, 그 옆에 빛나는 건 뭐죠?” 불이 잦아들 때 즈음 우리는 취침을 위한 세팅을 모두 마쳤다. “취침 전엔 야영장 일대가 안전한지를 먼저 체크하고, 그 다음 공기정화기를 틀어야 해요. 문은 2cm정도 살며시 열어 두고요. 차 안에서 문을 잠그면 되니까 어떻게 보면 백패킹 보다 안전한 셈이죠.” 오후 10시. 그렇게 엄지 씨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조용히 일어나 시목해변에서 카약을 빌려 타고 해안으로 나갔다. 물안개가 피어올라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지만 마치 하롱베이와 같은 섬들의 풍경을 보러 조금씩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이 섬에 들어온 지 24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섬 캠핑에 익숙해질 즈음, 또 다시 짐을 꾸렸다. 부지런히 선착장으로 가야했다. “여긴 꼭 다시 오고 싶어요” 아무래도 그녀가 신안에 단단히 반한 눈치다. 기대 없이 왔다가, 저리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이번 은둔 캠핑은 성공인 듯싶다. 흡족해하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지켜보며 나와 포토그래퍼는 다시 가산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다른 섬으로 가야할 차례다.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
08:00am
물이 찌는 마을
“물이 쪄불면 못 가지. 근데 물이 찌는 게 이 마을의 매력 아니여.” 노두길을 바라보며 기점 소악도 조범석 위원장이 말을 이었다. “5물, 6물은 되어야 찰랑찰랑 노두길 위로 물이 든다고. 물이 좀 들고 그래야 예쁜데, 그러게 왜 하필 ‘조금’ 때 왔어? 멀리서 구경 오는 사람들이야 물이 찌기 전에 얼른 걸어들 다니려고 그라제. 근디 이제 1물, 2물 정도로는 물이 안 넘어.”
물이 들고 나는 마을 소악도로 향하기로 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고립이 되었다가 다시 자유로워지는 갯가의 마을에서 그렇게 흐름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마침 순례길이라는 이름으로, 12사도의 예배당을 따라 천천히 걸어볼 수 있으니 신안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만조가 언제여?”라고 묻는 것이 안부 인사다. “물이 쪄부렀네” 혹은 “물 썼네. 얼른 가자”라고 이야기한다. 물 ‘찌는’ 마을은 그렇게 평생을 ‘물이 쪘다, 썼다(물이 들었다가 빠짐을 뜻하는 사투리)’를 반복했다. 소악도 민박을 운영하는 장명순 씨는 목포에서 소기점으로 시집을 와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다. “목포에서 시집 왔지. 여기 살아서 힘들거나 한 건 없어. 깜빡 잊고 있다가 물 때를 놓쳐서 옆 마을 문상에 늦는다거나 약속을 못 지키거나 하는 일은 있지. 그럴 때 미안하지. 물 때 못 맞췄응게, 오다가다 만나면 볼 낯이 없잔여. 목포에 나가야 하는데 태풍이 올 때도 있고 말이여.”
이른 아침 압해도 송공항에서 첫 배에 올랐다. 배에 탄 사람은 나와 네 명의 순례객뿐. 전날 휘몰아친 세찬 비바람으로 하루 배편이 결항됐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다음날 날씨가 개었음에도 순례객은 몇 되지 않았다. 이른 아침 여객선 밖으로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닷바람이 불었고 다들 여객선 내에 머물렀다. 의자 없이 너른 마루로 된 장판 위에 띄엄띄엄 떨어져 앉아 다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잠시 눈을 붙였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닌 섬티아고, 소악도 여행을 계획했을 터였다. 23km, 네다섯 시간은 걸어야 하는 순례 여행이다 보니, 이들의 낯빛과 등산화를 매만지는 손길에서 어떤 비장함 또한 감돌았다.
9:30am
순례여행을 시작하다
당사, 매화도를 거쳐 소악도 선착장이 있는 진섬, 소기점도, 대기점도, 병풍도 순으로 배가 선다. 이름에도 재미있는 유래가 있는데 기점도는 섬의 모양이 기묘한 점 모양이라서 소악도는 섬 사이를 지나는 물소리가 크다 하여 소악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세 개의 섬에는 현재 60여가구가 산다. 병풍도부터 진섬까지는 국내 최장인 14㎞의 노두길로 연결이 되는데 밀물 때 수위가 3.8m를 넘기면 길이 없어지는 것은 예전과 같다.
12사도의 예배당은 지난해 신안군이 ‘가고 싶은 섬’조성 사업을 하며 주민 공모를 통해 만든 것으로 공공미술협동조합 소속 한국인 작가 6명과 프랑스 작가 3명이 작업에 참여했다.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를 잇는 23km구간에 각 1~2km간격으로 예배당이 만들어져 하루 순례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편히 둘러보며 걸을 수 있도록 했다.
순례길을 수놓은 예배당을 순서대로 돌아보기 위해 대기점도 선착장에 내리는 것이 좋다. 출발지에서는 대략 70분이 걸린다. 배에서 내리면 길게 뻗어있는 방파제 위로 파란 타원형의 지붕이 빛나는 베드로의 집이 서 있다. 이 프로젝트의 총감독 김윤환 작가가 만든 순례길 1번 베드로의 집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는 푸른 지붕에 흰 회벽으로 거칠게 마감한 예배당이다. 그는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장으로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추진단장을 지냈고 문래창작촌 만들기, DMZ프로젝트 등에 참여한 바 있다.
어부였던 베드로에 어울리는 집으로, 예배당 앞에는 순례길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종이 있다. 대기점도에 내린 순례객들은 종을 울리고, 예배당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를 올린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이 섬에 내려왔으리라.
10:00am
자전거를 타다
대기점도 선착장 한 켠에는 전기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만원을 내면 첫배가 내릴 때부터 마지막 배가 떠나는 시간까지 온종일 분홍색 전기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다. 대기점도에서 자전거를 빌렸더라도 마지막, 배를 타고 나가기 전 소악도에서 자전거를 반납할 수 있으니 걷기가 힘들다면 전기 자전거를 타고 섬을 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자전거를 타고 순례길 23km 구간을 달리면 대략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물론 12사도 예배당을 얼마나 천천히 둘러보느냐에 따라 그 시간은 달라질 테지만.
여러 예배당 중에 유독 마음이 가는 곳은 할아버지의 순애보가 담긴 4번 ‘요한의 집’이다. 세로로 길게 창을 낸 흰색 회벽의 작은 예배당이다. 이 예배당을 기획한 박영균 작가는 마을 뒤로 무덤이 하나 있는 것을 보고, 아내의 넋을 기리는 오지남 할아버지를 위한 예배당을 만들기로 한다. 물론 밭 한가운데에 놓인 자리 역시 할아버지가 기증한 땅이다. 창은 바다가 아닌 뒤쪽 무덤이 보이는 방향으로 나있다. 할아버지는 매일 이곳에 와서 조용히 기도를 올린다.
노두길을 가만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5번 필립의 집은 뱃머리 모양의 좁고 긴 지붕이 인상적인 예배당이다. 대기점도 남단, 소기점도로 이어지는 노두길 초입에 있는데 육중한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가면 타일로 만들어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햇빛에 비쳐 밝게 빛난다. 필립의 집과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을 모두 작가 장 미셸 후비오가 완성했는데 고향 프랑스의 남부지방 순례길에서 본 예배당의 느낌을 살렸다. 내부에는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는 나무판이 놓여 있다.
2:00pm
노두길을 건너다
우리는 물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는 노두길을 건넜다. 조범석 위원장은 아직 ‘조금’ 때라 만조인 오후 9시에도 노두길로 물이 넘지는 않을 거라 말한다. 그의 말에 안심하며, 좀 더 여유롭게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원래 노두길은 썰물 때 건너 다니기 위해 바윗돌로 징검다리를 놓은 길이지만 지금은 차 한대 정도가 오갈 수 있는 길이 됐다. 밀물 때 물에 잠기고, 그 위로 파래나 김이 붙기 때문에 발목 높이라고 쉽게 보고 건너 가다가는 미끄러지기 일쑤다. 노두길 앞에는 물이 들면 얕아 보이더라도 위험하니 절대 건너가지 말고, 2-3시간을 기다리라는 안내 문구가 쓰여있다.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정수 씨는 운조리 낚시를 보여주겠다고 우리를 소기점도와 대기점도를 잇는 노두길로 데려갔다. 운조리는 이 지역 사람들이 망둥어를 부르는 말이다. 갯벌에는 이미 짱둥어, 참게 등이 작은 구멍을 들락날락하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온 갯벌이 게와 짱둥어로 덮인 느낌이었다. 9월, 금어기가 끝난 시기부터는 망둥어나 짱뚱어 낚시도 가능한데, 이정수 씨는 작은 운조리를 낚아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는 다시 그대로 놓아주었다.
3:00pm
마태오의 집
소악도로 향하는 노두길을 건너가다 보면 중간에 황금빛 돔 지붕 모양의 8번 마태오의 집이 보인다. 이 모양은 이 섬의 특산물이기도 한 양파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여니 세찬 바다 바람이 예배당 안으로 들어온다. 다시 15분 정도 가니 소악도의 경로당이 보이고 문준경 전도사를 기리는 소악교회가 있다. 신기하게도 이 섬의 90%이상은 개신교 신자다. “증도면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가 있었어요. 그 분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12사도의 예배당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요” 소악교회에 다니는 장명순 씨의 말이다.
길은 아주 한적하고 조용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각 구간이 1km 남짓이라고 하지만 여름날 산기슭을 오르고 노두길을 건너 다시 논두렁 위, 숲길을 걷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바닷바람에 땀을 식혀가며 겨우 걸을 수 있었지만, 하루에 모든 예배당을 돌아보는 것이 무리였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한여름의 섬티아고에서 이윽고 11번 ‘시몬의 집’을 만났다. 건물 뒤로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이 아름답다. 일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로도 알려져 있다.
열린 문으로 바람과 파도소리가 드나든다. 이곳에서 순례길 여행을 하고 있는 수녀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기도를 올리는 사이 우리는 숲길을 따라가 12번 ‘가롯 유다’의 예배당에 들어섰다. 12사도의 집 가운데 가장 마지막인 가롯 유다의 집은 섬 속에서도 딴섬이라 불리는 곳에 있었다. 고딕양식으로, 붉은 벽돌을 사용해 만들어졌다. 유다의 집이 있는 언덕은 밀물이면 길이 막혀 건너갈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물이 들면 건너가지 말라는 안내 문구가 앞에 붙어있다.
6:00pm
순례길 여정의 끝
우리는 가롯 유다의 집까지 본 뒤 소악도 민박 장명순 씨의 댁에서 저녁을 먹었다. 밴댕이회와 함께 김국, 김초국, 김전 등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음식들로 한 상이 차려졌다. “목포에서는 김으로 이렇게 까진 안 해먹어. 김국은 여기에서만 먹는 건데, 몸이 아프거나 할 때 먹으면 기운이 생긴다니까” 마치 파래, 매생이와 같은 김국은 김을 양념해 뜨겁게 끓여먹는 국인데 구수하고도 시원한 맛이 났다.
오늘은 물이 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까만 밤길을 해치고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소기점도까지 걸어오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순례길의 밤은 조용히 저물고 있었다. 다시 첫 배가 오기까지 아직 8시간이 남았다. 물이 넘을 듯 말 듯 찰랑거리는 노두길은 그 자체로 진기한 풍경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길을 덮을 듯 말 듯 차 올랐다가 다시 흔적도 없이 물이 빠지는 이 노두길에서 시간의 흐름과 기다림에 대해 생각했다.
Travel Wise
소악도 순례길, 섬티아고를 따라서
대기점도 선착장에서부터 시작하는 1번 베드로의 예배당부터 소기점도, 대기점도에 걸쳐 지어진 12사도의 예배당을 차례로 감상하자. 소기점도에는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이 있다.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과 7번 토마스의 집 사이다. 게스트하우스는 남녀 각 8인실의 도미토리(1인당 1박 2만원)가 있고 아래층에는 식당이 있다(8000원).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
물 때, 배 시간 확인은 필수
압해도 송공항에서 배를 타고 대기점도로 들어가면 선착장의 베드로의 집부터 곧바로 순례를 시작할 수 있다. 송공항에선 오전 6시50분·9시40분, 낮 12시50분, 오후 3시30분 등 하루 네 차례 배가 뜬다. 대기점도까지 70분 소요된다. 노두길이 잠기면 섬을 오갈 수 없다. 기점 소악도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www.기점소악도.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