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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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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호

북한산과 북악산을 품고 계절마다 고유의 색채를 발산하는 성북동 길은 이곳만의 한적하고 고즈넉한 정취가 흐른다. 그 때문일까. 이곳엔 소설가 이태준이 13년간 살면서 집필 활동을 이어간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옥이 있고, 조선시대 국왕이 누에 사육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지와 각국의 대사관저가 늘어선 길이 공존한다. 여기에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도,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한국판 사무실도 자리한다. 이 거리에서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본다.

시간을 거닐다

문화유산의 형태는 다양하다. 고택이나 작품으로 존재하는가 하면, 걸으며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성균관대 정문을 통과해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대학교가, 우측 유림회관 뒤쪽 신삼문을 지나면 조선의 고등교육기관이자 최고학부인 성균관이 나온다.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으로 1398년에 세워졌다. 크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대성전’과 학문을 갈고닦는 ‘명륜당’으로 나뉘는데, 공자와 유교의 성현을 모신 대성전에서는 봄가을에 팔일무와 문묘제례악을 거행한다. 유생의 강당 겸 시험장인 명륜당은 성균관의 상징이다. 생김새가 익숙하다면 천원짜리 지폐에서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뜰에는 높이 26m, 둘레 12m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500년이 넘게 이 자리를 지켜왔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어 나무 아래서 거닐기 좋지만 자칫 열매를 밟으면 온종일 고약한 냄새를 달고 다녀야 하니 조심할 것.

서울을 에워싼 조선의 한양도성. 외부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고자 1396년에 약 19만7400명의 백성을 동원해 98일 만에 완성한 성곽이다. 길이 18.6km, 높이는 약 5~8m로, 성벽뿐 아니라 4대문도 포함한다. 근대화를 거치며 성벽은 여러 번 훼손되어 몇 차례 중건이 이뤄졌으나, 본래 모습을 온전히 되살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 옛날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상경한 선비들은 도성을보고 맞게 도착했음을 알았다고 한다. 도성을 한 바퀴 걸으며 급제를 기원했는데, 이것이 곧 놀이가 되었다. 정조 때의 학자 유득공은 <경도잡지>에서 이를 ‘순성놀이’라 일컬으며 ‘도성을 빙 돌아 안팎의 경치를 구경하는 놀이’라고 했다. 이 놀이에 동참하고 싶다면 지하철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가자. 도보 3분이면 혜화문 방향에서 낙산공원을 따라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한 시간가량의 낙산구간 산책을 시작할 수 있다.

서울 성북동 별서는 조선 고종의 아들 의친왕이 살던 별궁의 정원이다.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조선 후기의 전통 정원으로 담양의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과 함께 국내 3대 정원으로 손꼽힌다. 경승지로 이용되던 곳을 내관 황윤명이 별서로 만들었고, 갑신정변 때는 명성황후가 피난을 오기도 했다. 입구 암벽에 ‘쌍류동천’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뒤로 산등성이를 등지고 있다. 안쪽으로 인공조산인 용두가산을 조성해 바깥에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인 우리나라 정원의 모습으로 200~300년을 살아온 나무들이 장관을 이룬다. 3단 폭포를 품은 연못도 눈길을 끌고, 추사 김정희 등 명성 높은 문사들의 글씨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중 한 바위에 새겨진 한시를 옮겨본다.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에 비추고, 맑은 샘물은 돌 위에 흐르며, 푸른 산이 몇 겹 싸여 있네.’

 

고택 안으로

시대의 부조리에 저항하던 예술가들의 쉼터가 되어준 공간, 성북동 헤리티지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아도 좋을 법한 행선지는 그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고택이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한 구절을 가만히 읊조리며 심우장에 도착한다. 심우장은 저항문학의 선봉에서 청년운동에 힘을 실었던 그의 유택으로, 이곳의 이름은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심우’에서 비롯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지어졌으며 대청과 온돌방, 부엌으로 이뤄져 있다. 한옥에서는 남향을 선호하는 게 보통인데, 심우장은 조선총독부를 바라보는 것을 거부해 북쪽을 향해 있다. 함께 독립운동에 힘쓴 서예가 오세창이 현판을 썼고, 만해의 친필 원고와 논문집, 초상화와 옥중 공판 기록이 남아 있다. 1944년, 그는 이곳에서 눈을 감았다.

단편소설계의 한 획을 그은 소설가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머물며 집필 활동을 이어간 상허 이태준 가옥. 그가 몸담았던 문학단체 구인회에는 김기림, 정지용 등 한국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9인의 문인이 있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문학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태준의 작품 <달밤>, <돌다리>, <황진이>가 여기에서 태어났다. 1998년부터는 그의 외증손녀가 ‘수연산방’이라는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돌계단을 올라 대문을 지나면 초록이 가득한 정원 너머로 사랑채와 안채, 마루로 이뤄진 본채가 나타난다.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은 상허 이태준 선생이 지은 것으로, ‘여러 사람이 모여 산속의 집에서 책 읽고 공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이름처럼 여행자와 동네 사람들은 이곳에서 여름이면 단호박빙수를, 겨울이면 따뜻한 생강차를 즐기며 쉬어 가곤 한다.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1930년대에 지어진 최순우옛집은 그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말년을 지낸 곳이다. 2002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철거될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기금을 모았고, 현재는 시민유산 1호로 유지되고 있다. 안채는 기역 자 형태로 사랑방과 안방, 대청마루, 건넌방의 구조다. 사랑방에는 그의 유품과 가까운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마당에는 소나무와 산사나무, 목련과 수련이 분위기를 더한다. 그는 이곳을 가리켜 “정갈하고도 조용할뿐더러 황금률이 적용된 쾌적한 비례의 아름다움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최순우 선생이 현판에 적은 ‘두문즉시심산’이라는 말처럼, 이곳은 문을 닫으면 바로 깊은 산중이다.

 

미술품 탐험

성북동, 그리고 미술관. 이 두 조합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첫 번째 장소는 바로 간송미술관이다. 간송 전형필이 세운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으로, 우리나라의 첫 근대 건축가 박길롱의 설계로 1938년에 지어졌다. <훈민정음>과 조선 최고 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과로도기>와 <마상청앵>, 추사 김정희의 <적설만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소장하고 있다. 지금은 수장고 신축 공사와 내부 복원 공사를 위해 휴관 중이다.

성신여대입구역 1번 출구에서 동선동주민센터 방향으로 걷는다. 서로 얼굴을 맞댄 채 볼을 비비는 캐릭터가 그려진 계단을 오르고 팻말이 가리키는 대로만 따라 걸으면 마침내 보라색 대문의 권진규 아틀리에에 도착한다. 권진규는 테라코타와 건칠로 제작한 두상과 흉상, 동물상 등의 작품으로 국내 근현대 조각사에 선명한 궤적을 남긴 조각가다. 이곳 권진규 아틀리에는 1959년 일본에서 돌아온 그가 작업을 위해 직접 설계해 마련한 공간이다. 벽은 시멘트 블록으로, 지붕은 시멘트 기와지붕으로 만들고, 커다란 작품을 작업할 생각으로 천장을 높게 지었다. 지하에는 흙을 보관할 장소를 마련하고, 작품을 올려둘 선반도 살뜰히 갖추었다. 그의 작품은 표면에 유약을 바르지 않은 것이 특징으로, 세상을 떠난 1973년까지 그는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남아 있는 작품들에서는 작가가 가진 특유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2008년에 개방한 후로 강연과 전시,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으며, 젊은 작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으로도 제공하고 있다.

정릉 입구에 자리한 흥천사에는 부처님의 가피를 빌려 온 세상을 흥하게 하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 태조 이성계의 비인 신덕왕후 강씨를 기리기 위해 1397년에 지어졌으며, 몇 차례 불에 타는 사고를 겪었으나 1865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조선의 마지막 왕비 순정효황후가 6・25전쟁 당시 이곳으로 피난을 왔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은 글씨를 남겼다. 이곳에서는 여러 문화재를 찾아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극락보전이다. 1853년 구봉 계장 스님이 지은 이 법당은 조선 말기 건축양식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문 위쪽 꽃무늬 조각과 기둥 위 용머리장식은 화려하고도 뛰어난 건축 기술을 자랑한다. 고통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명부전, 흥선대원군이 쓴 현판이 걸린 대방도 만날 수 있다. 오래된 보물 같은 장소에 새로운 시간이 덧입혀지면서 성북동은 매일매일 여행자에게 새로운 탐험 시간을 선사한다.

 

INSIDER

수연산방 정예선 대표의 마실 코스

단편소설계에 큰 업적을 남긴 상허 이태준. 소설가가 살던 고택은 그가 지은 당호인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의 찻집이 되었다. 긴 시간을 품은 찻집을 이끄는 것은 이태준 소설가의 외증손녀 조상명 대표와 딸 정예선 대표. 정 대표는 성북동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길상사

1987년까지 요정이던 대원각을 조계종에 시주하여 창건한 사찰. 사계절의 모습이 뚜렷하고 다양한 풍경을 품고 있어 항상 새롭게 느껴진다. 종교를 떠나 많은 이들이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자 찾는다. 곳곳이 포토존이며, 느리게 걷고 사색하기에 좋다.

프로젝트얼스

우리 쌀가루와 동물복지 유정란, 포도씨유를 재료로 쓰는 건강한 베이커리. 우유와 밀가루를 소화하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여기에선 맘껏 빵을 즐길 수 있다. 진한 맛의 비결은 호주 유학 당시 배운 레시피와 모든 빵을 직접 만드는 정성이다. 추천 메뉴는 얼그레이 시폰 케이크!

오트

성북동을 걷다 보면 빨간 간판의 작은 전시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선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작품과 관련된 출판도 함께 해 도록도 볼 수 있다. 관람은 예약제로 운영하니 미리 연락한 뒤 방문할 것. 작품을 통해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맞이한

채식을 기반으로 한 빵과 요리를 내는 비건 카페. 암병동에서 7년간 근무하며 식이요법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을 보고 그들을 위한 비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설탕과 오일은 배제하고 무농약 친환경 식재료로 요리한다. 자연식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좋은 답안이 될 듯.

글. 유수아SOO-A YOO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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