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의정부를 지나 연천에 닿기 전까지 북쪽으로 쭉 달리면 주한미군이 주둔하던 도시가 나오고, 그 일대를 흐르던 강이 바로 이곳의 이름이 된 동두천이다. 군사시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 도시에는 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의외의 낯선 재미들도 함께 기다리고 있다.
6・25전쟁 발발 이후 폐허가 됐던 동두천의 보산동 일대는 전략적 요충지로 낙점돼 미군이 터를 잡고 주둔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외국인들을 위한 위락시설이 하나둘씩 자리하기 시작했고, 민간인들의 거주지는 남쪽으로 내려오는 변화를 겪었다. 한때 서구문화가 발빠르게 유입되던 이곳은 이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남아 있는 이국적인 장소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한데 섞여 모이고, 옛 추억을 회상하기 좋은 공간에는 지난 기억을 떠올리고자 하는 이들이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풍성한 숲과 산에는 가족과 연인들이 텐트를 치고 바비큐를 즐기며 하룻밤을 보내고, 여름이면 도시를 흔드는 록페스티벌의 음악 소리가, 눈 내리는 겨울에는 동계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동광극장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단관 극장이다. 오래된 간판은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모습이고 상영시간표에는 영화 정보가 손글씨로 쓰여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낡고 커다란 영사기가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지금은 디지털 장비로 교체됐지만 오랜 시간 수많은 영화를 틀었던 주역이다. 칠이 벗겨진 바닥과 궁서체로 적힌 관람자 준수 사항이 이곳의 오랜 세월을 실감케 한다. 고재서 대표는 여전히 스카치테이프를 뜯어 포스터를 붙이며 매점을 운영하고 영화표를 발권하는 오래된 방식을 고수한다. 독특하게 대기실에 놓인 10개가 넘는 어항이 눈길을 끄는데, 물고기가 물달팽이를 먹는 소리가 마치 팝콘을 씹을 때 나는 ‘와삭와삭’ 소리와 비슷하다. 최신 영화관 아쉽지 않은 커다란 상영관에는 테이블이 놓인 크고 푹신한 소파부터 조그만 의자까지 좌석의 종류가 각양각색. 자리는 손님의 취향에 따라 선착순으로 배정하며, 좌석 종류와 상관없이 가격은 동일하다.
동두천중앙역 3번 출구 인근 불현동 행정복지센터 뒤에 위치한 LP음악까페 여고시절. 빨간 공중전화 박스와 우체통, 노랑과 초록, 파랑 테이블이 놓인 테라스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턴테이블에 LP를 얹어 흘러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1층은 레스토랑, 2층과 3층은 LP바로 운영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셀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꽂힌 LP를 마주하게 되는데, 전부 사장님이 수집한 소장품이라고. 턴테이블이 놓인 카운터에는 낯선 영화 포스터들이 열을 맞춰 붙어 있고, 벽마다 LP가 트로피처럼 전시돼 있다. 요즘 애들은 알 수 없는 가수와 영화만 빼곡해 내가 모르던 시간으로 뚝 떨어진 것만 같다. 출출해지면 경양식 돈까스 같은 메뉴를 주문해 썰어 먹으며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큰시장’ 입구에 위치한 세아프라자 상가 지하로 내려가면 복고 분위기가 물씬한 롤킹롤러스케이트장으로 이어진다. 신발장에 빼곡하게 진열된 색색의 롤러화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즐거움이 시작된다. 취향에 따라 신발 끈 위에 리본 같은 액세서리를 더할 수도 있다. 헬멧과 팔꿈치, 손목, 무릎 보호대까지 전부 갖추면 트랙으로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연신 흘러나오고 스테이지를 비추는 화려한 미러볼은 정신없이 깜빡이며 돌아간다. 곳곳에 걸린 액자 속 비비드한 의상을 입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얼른 함께하자고 손짓하는 듯하다. 사장님 부부는 사라진 어린 시절의 놀거리를 다시 즐길 수 있도록 이곳을 열었다고. 어른들에게는 흘러간 추억을 되새기는 공간이,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가 되어준다.
경계를 넘나드는 여행
시공간을 넘나드는 듯한 여행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니지모리 스튜디오를 추천한다. 입구 계단으로 올라가서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본 듯한 붉은 기둥 문 ‘토리이’를 지나면 에도시대를 재현한 작은 일본이 펼쳐진다.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또각또각 게다 소리를 내며 건물 안팎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이 옷을 대여한 곳은 1층에 위치한 모리의상실로,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와 유카타는 물론, 갑옷인 요로이까지 빌려 입을 수 있다. 스튜디오는 의상실과 도자기점 같은 상점을 고루 갖춰 진짜 하나의 마을처럼 느껴진다. 그중 행운을 부르는 고양이 마네키네코가 눈길을 끄는 도자기점 ‘샨쿄다이’를 구경해보자. 방금 빚은 듯 말쑥한 고양이 장식품과 장인의 낙관이 찍힌 빛깔 고운 도자기가 저마다의 매력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산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이태원 거리를 연상시키는 동두천외국인관광특구로 이어지는데, 벽과 건물, 교각 위를 수놓은 그래피티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그래피티 아트들은 국내외 작가들이 완성한 결과물로,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마레스트는 낡은 상가에 산뜻한 파스텔컬러와 단순한 패턴을 더해 앙증맞은 분위기를, 프랑스 작가 호파레는 여러 인종의 얼굴을 그려 ‘누구나 같으며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벽화가 그려지기 전에는 불법 광고물로 가득했던 자리다. 각양각색의 벽화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케밥과 케사디아 같은 먹거리를 파는 월드푸드 스트리트로 이어진다. 가게 앞 야외 좌석에는 끼니를 챙기는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골목골목에는 미국에서 그대로 옮겨온 듯한 펍과 식당이 자리한다. 외관에는 성조기와 함께 ‘한국 사람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어 외국의 어느 한적한 한인타운을 걷는 듯한 착각이 든다.
소요산과 왕방산 사이에 자리한 산속비버스 바베큐. 차를 타고 나무 사이로 난 길을 열심히 달리다 보면 자연 한가운데에 위치한 오두막이 나타나는데, 매장 안으로 들어서면 어느 미국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텍사스풍 식당의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통나무로 지은 산장은 자연에 이질감 없이 녹아 있고, 내부에는 오토바이와 와펜 같은 소품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이곳에서 주로 주문하는 것은 바비큐로 통감자와 옥수수, 토마토 같은 가니시가 함께 나오는데 먹기 전 눈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즐겁다. 미리 예약을 해야만 도착 시간에 맞춰 바비큐를 맛볼 수 있으니 도착 1시간 전에는 미리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
캠핑 에브리웨어!
간판 속 성조기를 두른 독수리 그림이 이곳이 양키시장임을 알려준다. 줄지어 있는 상회 앞에는 국방색 제품이 그득한데, 삽과 도끼에 쥐덫까지 얼핏 보아도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캠핑을 할 때 유용하게 쓰일 물건이 한가득이다. 간이침대와 이불은 물론 제리캔 기름통과 미군용 난로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말가죽으로 만든 장갑부터 군복, 내의, 계절별 모자까지 구비되어 있다. 동행한 포토그래퍼가 캠핑 마니아라고 이야기하더니 이곳에서는 튼튼한 제품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며 열심히 물건을 고른다. 마침 사장님이 실제 총알 탄피로 만든 병따개를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탄피 반출이 불법이지만 미국 제품이라 판매할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햄과 소시지에 온갖 시즈닝은 물론 당을 충전하기 좋은 초콜릿과 식사를 풍성하게 해줄 술이며 음료까지 가득하다. 매월 둘째・넷째 월요일은 시장 전체가 휴무이니 방문 전에 날짜를 확인할 것.
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언덕을 지나니 노랗게 물든 동두천자연휴양림이 환한 빛으로 방문객을 반긴다. 이 산림욕장은 휴양과 놀이는 물론 다양한 형태의 숙박까지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돼 있다. 먼저 잔디광장 옆 방문자센터에 들러 그림 지도를 챙기자. 안내지를 보고 걸으며 구석구석을 즐기기 위해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숲속의 집을 만나게 되는데, 복층으로 이뤄진 곳에 다락방과 그물다리가 설치되어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숙소다. 언덕 아래로는 아이들을 위한 유아숲체험원이 자리하고, 더 밑으로 가면 숲속에서 야영할 수 있는 캠핑장이 나타난다.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바비큐는 다리 건너에 마련된 바비큐장에서 즐길 수 있다.
가을이면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소요산. 계곡과 절경으로 유명한 소요산은 경기도에서 단풍 명소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다. 약 350m의 건강오행로를 지나 쭉 걷다 보면 자재암으로 들어가는 매표소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자재암을 지나 하백운대와 의상대, 공주봉을 거치는 코스가 가장 대표적인 산행 코스다. 해발 587m에 이르는 의상대에서 마차산을 바라보면 하봉암동과 건너편의 파주 감악산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율곡과 성혼, 양사헌 같은 학자와 문인, 시인들이 이 산을 사랑하며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매월당 김시습은 소요산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 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INSIDER
자연휴양림 주무관의 추천 코스
2020년 7월 개장한 동두천자연휴양림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며 프라이빗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림욕장이다. 동두천시 산림휴양팀에서 휴양림 운영을 담당하는 윤현웅 주무관이 쉼이 필요한 여행자에게 자신 있게 추천하는 장소로 안내한다.
잔디광장
입구를 지나면 발견할 수 있는 숨은 녹색 지대. 천방지축 유년기 아이들이 숨가쁘게 뛰놀 수 있을 만큼 넓고, 쉬엄쉬엄 거닐면 없는 영감마저 시나브로 떠오를 만큼 조용하다. 이맘때가 되면 차가운 산 공기가 잔디를 갈색으로 변하게 만들어 한결 차분해지는 곳으로 눈 쌓인 설경은 더욱 아름답다. 숲속 영화관과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무대로도 변신하는 곳.
숲체험길
나무 계단을 통해 숲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곧게 뻗은 나무 사이로 마련된 2개의 숲길 산책에 나서보자. A코스는 총 510m로 10~15분 정도 소요되고, B코스는 약 640m로 12~18분 정도 걸린다. 길지 않은 코스이니 느릿느릿 여유롭게 즐겨보자.
계곡물놀이터
운치 있게 흐르는 계곡물 따라 깨끗하게 정돈된 물가. 여름에는 아이들의 즐거운 고성이 울려 퍼지고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사방으로 물이 튀며 즐거움과 활기로 가득 찬다. 가을과 겨울의 적막함 역시 이곳이 품은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