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남쪽으로 40km를 달려 수원으로 떠나자.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그대로 담긴 수원은 그 자체로 가장 다채로운 여행지가 되어줄 것이다.
수원은 언제나 물이라는 이름처럼 유연하게 흘러왔다. 물과 못을 의미하는 마한의 모수국은 신라로 접어들며 물골이라는 뜻의 매홀로 불렸고 마침내 지금의 수원으로 이어졌다. 이곳엔 수원의 상징과도 같은 수원화성이 있고, 수원에서만 나고 자라는 '수원청개구리'가 특유의 울음소리로 목청 좋게 울곤 한다. 운이 좋다면 현대화가 덜 이루어진 외곽에서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레트로한 감성이나 이국적인 향취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독특한 정서를 가졌다. 이곳에는 여전히 수많은 과거의 흔적이 화석처럼 남아 있고, 동시에 변화 과정을 겪어 도착한 오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금 화성열차를 타고 도시와 자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를 마주해보고자 한다.
지난날의 복원
들판 위에서 파도치는 모양새의 화성 행궁 성곽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창룡문에 이른다. 1795년(정조 19)에 건립된 창룡문은 장안문, 팔달문, 화서문과 함께 화성의 4대문에 속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동쪽을 지키는 오방신 청룡에 푸를 창이 더해졌다. 빼곡히 돌을 쌓아 올린 홍예문 위로는 단층 문루가 세워져 있는데 그 기운이 장엄하다. 6·25전쟁 당시 문루와 홍예가 허물어졌으나 1975년 복원한 결과 옛 모습과 기개를 되찾았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기계식 활인 노를 쏘기 위해 지은 동북노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병사들은 적의 움직임과 위치를 살폈다. 뒤이어 모습을 드러내는 건 무예를 수련하던 곳이라 연무대라고도 불렸던 동장대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수원화성의 북문 장안문과 동문 창룡문 사이에 위치한 화홍문은 수원팔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광교산에서 시작된 수원천이 화홍문을 지나 남과 북 사이를 내지르며 흘러간다. 화홍문은 성이 연결되는 부분에 설치된 수문으로서 성의 배수로 역할을 한다. 특이한 점은 7개의 수문 크기가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양쪽으로 위치한 작은 수문들과 중앙의 가장 큰 수문이 비의 양을 과학적으로 조절하는 데 적합하다. 무엇보다 경관이 뛰어나다. 다리 위 누각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아도 멋스럽다. 밤이 되면 불 밝힌 조명이 수문과 누각을 비추며 화홍문을 찬란하게 물들인다. 봄바람이 부는 5월이면 누각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물, 그것들이 흘러온 시간을 오롯이 느껴보자.
화홍문 동쪽 언덕에는 방화수류정이 자리한다. 수원화성 북동쪽에 위치한 이 누각은 네 개의 각루 중 동북각루에 붙은 이름이다. 방화수류정이 위치한 언덕 아래로는 동그란 도넛 모양의 연못 용연이 있다. 연못 가운데 동그란 섬 하나가 떠 있는, 용머리 바위 아래를 파서 만든 인공 연못이다. 1794년(정조 18)에 이곳은 군사지휘소로 기능했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활쏘기를 하기도 했다. 군사시설이었지만 당시에도 경관이 좋아 정자로도 쓰였다고. 그 경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해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가장 지금의 풍경
우울한 마음에 긴급 처방이 필요한 날에는 꽃처방으로 간다. ‘꽃으로 마음을 만지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인 이곳은 오늘의 수원을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곳 중 하나다. 장소가 가진 분위기만으로도 치유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채광 좋은 공간에서 꽃이 내뿜는 향기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온전히 받다 보면 자연스레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창밖의 고즈넉한 풍경 또한 안식이 되어준다. 재미있는 점은 꽃처방이라는 이름에 꼭 맞는 패키징이다. 꽃을 주문하고 조금 기다리면 요청한 꽃을 처방해 주는데, 포장지 안에는 약국에서 받은 듯한 꽃처방전도 함께다. 더 강력한 효과가 필요한 날에는 꽃꽂이 원데이 클래스로 마음을 달래보자. 손끝에 집중해 꽃을 매만지다 보면 복잡해진 마음이 정돈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름만으로는 어떤 공간인지 잘 가늠이 가지 않는 브로콜리숲이 다음 행선지다. 화성 행궁 근처 골목에 자리한 조그마한 책방으로 곳곳에 정성과 배려의 손길이 가득하다. 고양이들을 위한 밥그릇이 놓인 입구를 지나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면 골목 책방 브로콜리숲의 간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를 지나면 동화 속의 아기자기한 다락방 같은 책과 소품으로 채워진 내부가 드러난다. 정면으로 난 공간에는 독립출판 서적들이, 오른쪽 공간에는 엽서와 포스터 등 색색의 소품이 진열돼 있다. 또 펠트 원데이 클래스나 책 한 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북클럽 등 행사도 진행된다. 동네 고양이들이 자주 마실을 나오니 겸사겸사 님도 보고 뽕도 딴다면 어느 날보다 좋은 하루가 될 듯싶다.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는 서른책방은 또 어떻고. 이곳은 2018년에 서른이 된 친구들이 힘을 모아 문을 연 단란한 카페 겸 서점으로 종종 사사롭지만 즐거운 일들을 벌인다. 여행자들은 여기서 퀼트 소품을 만들거나 다른 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사각사각 소리 내며 필사를 즐기기도 한다. 조금 출출하다 싶으면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심슨 도넛이나 크로플에 무심한 얼굴의 책방 캐릭터 '삼식이'를 라테아트로 그려주는 커피를 주문해보자. 어쩌면 여행지에서 나만의 아지트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풍부한 내일의 맛
기본기가 탄탄한 피자를 맛보고 싶다면 바로 여기, 존앤진피자다. 검은 벽돌 건물 1층에는 피자를 먹는 입이 그려진 네온사인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안으로 들어서면 깔끔하고 힙한 분위기의 매장에 농구 유니폼과 캐릭터 소품 등이 손님을 반긴다. 피자 메뉴는 시그너처인 존앤진피자부터 클래식한 치즈피자, 페퍼로니피자, 하와이안피자 등이 준비돼 있다. 취향에 맞춰 토핑을 추가해 주문하면 된다. 적당히 도톰한 도우 위에 풍미 깊은 치즈를 듬뿍 올려 준다. 소스도 다양해서 갈릭디핑소스, 타바스코 핫소스, 리고 엑스트라 핫소스에 파르메산치즈, 마늘 플레이크, 페페론치노, 허브까지 준비돼 있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물면 순식간에 입안에서 미국이 펼쳐진다.
영동시장 2층에는 브라질 사람이 만드는 진짜 브라질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빠스뗄브라질이 있다. 이곳에서라면 조금은 생소한 브라질 음식도 익숙하게 즐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빠스뗄은 브라질의 대표 국민 간식으로 얇은 밀가루 반죽에 소를 넣고 바삭하게 튀긴 음식이다. 닭고기, 새우, 페퍼로니 등 마음에 드는 속 재료를 고를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브라질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닭고기로 만든 크로켓인 코시냐, 콩과 고기를 함께 끓인 브라질 대표 음식 페이조아다, 카레처럼 밥과 같이 먹는 스트로고노프 등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마존 밀림에서 나는 열매인 과라나 맛 탄산음료와 카샤사(사탕수수로 만든 술), 라임을 넣은 브라질 칵테일 카이피리냐도 한잔 곁들여보자. 어느새 이곳이 브라질이 되어 있을 테니.
떠들썩한 분위기에 흥겨운 레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엉클스보라카이는 휴가 차 방문한 동남아 여행지에서 우연히 들른 펍 같다. 식당 안 여기저기에 망고가 걸려 있고 죠비스 바나나칩이 진열돼 있다. 보라카이의 꽃과 좋은 꿈을 꾸게 해주는 드림캐처가 곳곳을 장식한다. 고민 없이 주문한 쉬림프링타워는 보라카이에서 맛본 그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파인애플 기둥에 쌓아 올린 쉬림프링을 하나씩 빼서 타르타르소스를 듬뿍 찍어 먹자. 바삭한 튀김과 탱글탱글한 새우, 부드러운 소스가 입안에서 뒤섞이며 조화를 이룬다. 시그너처는 단연 망고로 만든 메뉴다. 노랗게 익은 생망고를 한 입 가득 넣고 망고맥주와 망고셰이크를 한 잔씩 들이켜보자. 먼 훗날의 여행이 바로 지금으로 다가올 것이다. 필리핀 페소로도 결제할 수 있다.
INSIDER
더 큰 즐거움
수원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찬찬히 살펴보자. 화성에서의 관광을 보다 폭넓게 즐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수원화성 만들기
입체 퍼즐로 미니어처 수원화성을 만들며 조선시대 건축양식에 대해 배워보자. 이외에도 팔달문, 서북공심돈, 화홍문, 봉돈 등 일별로 만들어볼 수 있는 퍼즐이 다양하다. 다섯 가지 교구를 모두 완성할 경우 교구를 부착하는 ‘수원화성 지도판’을 증정한다.
화성어차
수원화성의 주된 관광 포인트를 순환하는 관광열차, ‘화성어차’는 순종이 타던 자동차와 조선시대 국왕의 가마를 모티브로 제작했다. 화성 행궁, 전통시장, 화서문, 팔달산 등을 돌아볼 수 있는 코스다.
국궁 체험
220여 년 전 정조대왕 친위부대인 장용영 군사들이 무예를 연마하고 훈련하던 수원화성 연무대(동장대)에서 국궁 활쏘기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다. 조선시대 왕만이 사용할 수 있던 곰 과녁을 겨냥해 화살을 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플라잉수원
여행의 마무리로 열기구를 타고 로맨틱한 추억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계류식 헬륨기구에 몸을 싣고 150m 상공까지 오르면 익숙했던 수원 대신 색다른 풍경의 여행지가 얼굴을 내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