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다르게 보기를 통해 단양의 지리와 지형을 색다르게 해석해보았다. 이곳은 지구인가 아니면 외계 행성인가."
여행은 여행자가 어떤 것을 발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되기도 한다. 같은 곳을 다녀와 전혀 다른 감상을 전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처럼 말이다. 첫 단양 여행은, 유적지와 시멘트 공장 두 단어로 기억된다. 그런데 어떻게 이번 로드트립의 목적지로 단양을 정했는가 하면, 조성준 작가가 보내온 한 장의 드론 사진 때문이었다. 사진 속 빛의 궤적을 그리던 밤의 보발재는 마치 미래 도시 같아 보였다. 드론 사진가들이 한 번쯤 촬영하고 싶어 하는 보발재, 유명하지만 언제 봐도 이색적인 도담삼봉이나 고수동굴, 현재적인 전망대와 인스타그래머의 핫스폿인 카페산과 이끼터널이 있는 단양으로 191km 로드트립을 떠나기로 했다.
SPOT 1. 산속에 뱀이 들어앉았다, 보발재
보발재는 기다란 뱀이 지나간 것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고갯길이다. 보발재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고수대교를 건너야 한다. 단양읍을 가로지르는 남한강에 위치한 고수대교는, 단양군청이 있는 시내와 고수동굴이 위치한 고수리를 연결한다. 그 다리를 건너 남한강 줄기를 따라 10km 정도 달리다 보면, 보발재에 도착한다. 일곱 번의 커브 길이 점차 짧아지는 보발재 메인 구간에 들어서면 브레이크를 더욱 자주 밟게 된다. 도로변에는 단풍나무와 키 큰 낙엽송이 빼곡하다. 도로 옆으로 펼쳐진 소백산 자락이 눈에 들어온다면, 잠시 멈춰도 좋다. 이곳 전망대에서 소백산의 완만한 산등성이를 보고 있으니, 저절로 숨이 고르게 쉬어진다. 이토록 휘어진 길 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떠올린 단어는 ‘수평’이었다.
위치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구인사로 3번)
SPOT 2. 미래 세계의 타워, 만천하 스카이워크
단양 지역에서는 남한강을 단양강이라 한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단양강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천 바위와 만 구렁에 한강이 돌고, 긴 강이 옷깃처럼 싸고 일만 산을 돌았다.” 그 물길 바깥쪽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에는 선반을 매달아놓은 듯 ‘단양강잔도’를 만들었다. 이 1200m의 잔도는 제법 스릴 넘치는 산책길이다. 그리고 단양강잔도 바로 옆으로는 만천하 스카이워크가 ‘우뚝’ 솟아 있다. 매표소에서 전망대 표를 산 뒤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승합차 정도의 차량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진짜 대형 버스가 온다. 만석이 된 버스는 전망대 앞에 사람들을 내려준다.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나선형의 길을 따라 오르면, 채 5분이 걸리지 않아 전망대 꼭대기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세 갈래로 길이 나 있다.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만들어진 스카이워크를 심장 쫄깃하게 걷다 보면, 90m 수직낙하의 절경이 펼쳐진다. 굽이치는 남한강이 단양을 휘감아 흐르고 사방에 산 너머 산이 이어진다.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미친듯이 두근대던 심장이 ‘평정’을 되찾는 듯싶다.
위치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94
문의 043-421-0015
운영시간 매일 09:00~17:00 (월요일 휴무)
가격 전망대 3000원, 집와이어 3만 원, 알파인코스터 1만 5000원
SPOT 3. 새로운 행성으로 가는 정거장, 구인사
보발재의 고갯길을 넘어 소백산 수리봉 아래 연꽃 모양의 ‘연화지’에 위치한 구인사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소백산의 유연한 능선이 거대한 사찰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 절은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50여 동의 건물이 계곡 하나를 모두 차지하고 있을 만큼 절 규모가 압도적이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절이라고 한다. 그중 5층짜리 인광당은 붉은 나무 난간이 건물을 빙 둘러싸고 있어, 마치 중국 무협영화에 나올 법한 이국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다. 천태종은 염불 중심의 의례 종교를 탈피, 생활 속에서 자비를 실현하고자 하는 실천 불교를 지향한다. 이에 승려들이 낮에는 작업복을 입고 일하며, 자급자족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러고 보니 구인사를 찾기 전에 전화로 말씀을 나눈 현득스님도, 구인사를 방문한 날에는 밭에 나가 일하고 계셨다. 구인사라는 이름에는 모든 이를 스스로 어질게 하여 스스로 구원을 받게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템플스테이에서 생애 한 번쯤 진정한 ‘자아’와 만나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위치 충북 단양군 영춘면 구인사길 73
템플스테이 문의 043-420-7397, guinsa.templestay.com
SPOT 4. 외계 생명체가 등장할 것 같다, 고수동굴
고수대교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면, 다이아몬드 무늬가 패턴처럼 보인다. 다이아몬드에 빛을 비췄을 때 보이는 아름다운 난반사에서 영감을 받은 제네시스 고유의 패턴, 지-매트릭스와 오버랩되어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다. 다리 건너에는 고수동굴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4억 5000만 년 동안 자신만의 느리고 고집스러운 속도로 만들어진 석회암 자연 동굴이다. 동굴은 소백산 줄기 고수봉 자락, 해발 16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전체 길이 5.4km 중 일반인에게 개방된 길이는 1.7km라고 알려져 있다. 동굴을 탐험하다 보면, 눈앞에 펼쳐진 종유석과 석순이 이뤄낸 풍경이 순간 몹시 낯설어, SF 영화 속 행성을 떠올리게 된다.
위치 충북 단양군 단양읍 고수동굴길 8
문의 043-422-3072
운영시간 (하절기) 매일 09:00~17:30, (동절기) 매일 09:00~17:00
SPOT 5. 기묘한 고원, 카페산
꼬불꼬불 경사가 심한 두산길을 달렸다. 그렇게 10여 분을 올라 정상 부근 카페산에 도착했다. 해발 600m 높이, 땅을 다지고, 인조 잔디를 깔고, 반듯한 건물을 세워 이곳을 만들었다. 평일 늦은 오후 시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인조잔디를 깔아둔 카페 앞의 널따란 마당은, 바람이 좋은 날이면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한 활공장으로 사용된다.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패러글라이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이날은 오후부터 바람이 심해진 까닭에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은 볼 수 없었지만, 카페산을 전망대 삼아 단양 전경을 내려다보며 한 템포 쉬어가고자 하는 이들로 북적였다.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카페 내부에 들어서니, 바깥 풍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사방으로 나 있다. 이곳에서 카페산을 만든 장선영 씨를 만났다. (참고로, 카페산은 주식회사로 운영된다.) 단양에서 나고 자라 올해 52세인 그가 말한다. “단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고립되고 단절되어 있어요. 그 산 중턱에 이렇게 카페를 만들게 될줄은 몰랐죠.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래서 제게 의미가 커요.”
위치 충북 단양군 가곡면 사평리 246-33
문의 1644-4674
영업시간 09:30~19:30 (일요일 18:30 마감)
SPOT 6. 물 위의 산, 도담삼봉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섬, 도담삼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숙소인 제천 리솜 포레스트에서 단양 도담삼봉까지는 약 40km의 거리. 낮게 깔린 안개를 뚫고 제네시스 G90는 묵직하게 나아갔다. 한시간 남짓 달려 일출이 시작되기 전, 도담삼봉에 도착했다. 그사이 하늘은 짙은 남색에서 청보라빛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도담삼봉은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원추형 봉우리다. 단양의 지형이 대부분 석회암인 데 반해 이 세 개의 봉우리는 석회암이 아니어서 침식되지 않고 지금의 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5시가 넘어갈 무렵 일출이 시작되었다. 사방이 금빛으로 물들어갔다. 물 위의 세 개 봉우리가 가진 독특한 정서는 많은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들이 이곳에 대해 노래하게 만들었다. 헤아려보니 도담삼봉에 대한 한시가 131수, 작품을 지은 이들은 이황, 정약용, 김정희 등 이름을 들으면 바로 알만한 조선시대 유명 문인들이었다.
위치 충북 단양군 매포읍 삼봉로 6
문의 043-422-3037
SPOT 7. 달의 계곡처럼 고요한, 리솜포레스트 제천
개인적으로 호텔을 좋아한다. 체크인은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상징과도 같아 꼭 어디론가 떠나지 않더라도 호텔에 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낯선 곳에서 보내는 하룻밤이 주는 설렘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여행의 시간 동안 가장 현실감을 주는 공간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2박 3일간의 로드트립 동안 제천의 리솜포레스트에 머물렀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주론산 기슭에 위치한 리조트는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요새처럼 보인다. 돌 기둥, 나무 벽, 강철로 만든 지붕의 2층짜리 프라이빗 빌라가 서로 거리를 두고 자리 잡았다. 자연을 훼손하는 일을 최대한 피하고자, 리조트를 건설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산을 깎아 평지 위에 리조트를 짓는 방식이 아니라, 언덕 위에 오솔길을 만들어 본래의 자연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리조트 안에는 아스팔트 길이 없다. 복층 구조의 빌라 내부로 들어서니, 거실의 커다란 창을 통해 초록색 숲길이 펼쳐졌다. 여행에서도 분명 쉼은 필요했다.
위치 충북 제천시 백운면 금봉로 365
문의 043-649-6000, www.resomfore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