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시아를 처음 마주한 여행자의 눈에는 이 섬이 엽서에 그려진 대로 야자수와 눈부신 백사장, 럭셔리한 리조트로 가득한 평화로운 풍경으로 비칠 것이다. 하지만 뜨겁게 끓으며 흐르는 천연 진흙탕부터 사연 깊은 범선의 여정 그리고 산악 트레일에 이르기까지, 세인트루시아는 이곳을 형성한 화산의 기운을 바탕으로 열정적인 드라마를 펼쳐내 보인다.”

수천 마리의 개구리가 이른 저녁 축축한 수풀 속에서 목에 달린 주머니를 풍선처럼 한껏 부풀린 채 ‘개로-립 개로립’ 소리를 내며 울고 있으면 마치 피리 연주자들이 단체로 연주하는 것만 같다.

정말이지 굉장한 소리다. 해가 넘어갈 무렵, 날씨는 더욱 요란해져서 양철 지붕 위로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졌다가 발코니 끝에 있는 원목 난간 너머로 안개가 되어 흩어진다. 이어서 밤하늘에 번개가 번쩍이고1 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 회색 담요를 두른 듯한 해안의 만과 산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 사위가 어두워지고 깊은 천둥소리가 낮고 길게 으르렁거린다.

나는 산등성이에 위치한 라데라 리조트Ladera Resort에 머물고 있다. 특히 내가 묵는 객실에는 창문이 없어 이 모든 현상이 더욱 환상적으로 다가온다. 중앙 벽 하나 없이 완벽한 ‘오픈 콘셉트’로 지어진 방은 아무런 방해 요소 없이 발코니로 이어지고 바깥의 자연까지 연결된다. 물론 쾌적한 편의시설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목수들이 손수 만든 맞춤 가구가 객실을 채우고 프라이빗 풀과 전용 집사를 호출하는 휴대폰도 마련돼있다. 네 모서리마다 기둥이 달린 침대에 모기장을 드리우고 그 안에 누워 밖의 풍경을 보던 나는 야생의 소리를 듣다가 서서히 잠에 빠져든다. 하지만 개구리들은 전쟁터의 나팔수처럼 쉼 없이 울어댄다. 극적인 첫날 밤, 지구가 요동치던 순간 화산 폭발로 태어난 세인트루시아섬에 내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몇 분 뒤면 우리는 그 탄생의 순간을 상상할 수 있는 지점에 도착한다.

“곧 있으면 이상한 냄새가 날 거예요.” 그다음 날 아침차, 창이 닫힌 좁은 택시를 운전하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 자비스 리온스Jarvis Leonce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다행히 그는 수프리에르Soufrière 화산 마을에서 나는 냄새를 말한 것이었다. 유황에서 마치 달걀 냄새가 나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공기 중에 있는 유황’이란 뜻의 이름이 붙여진 이 마을은 화산 중심부에 자리해 있다.

“용암이 지표면에서 불과 1.6km 아래로 흐르고 있어요.” 일종의 지열 테마파크라 할 수 있는 설퍼스프링스 세인트루시아Sulphur Springs St Lucia 입구에서 가이드 야르미 알렉산더Yarmi Alexander가 나를 맞이하며 이야기한다. “화산이 언제든 분출할 수 있죠.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인생을 ‘아슬아슬하게 산다’라고 말하곤 해요.” 모두 강심장인가 싶겠지만, 사실 위험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마지막 화산 분출은 1766년이었는데, 힘이 약한 편이었어요. 화산이 갑자기 분출하지는 않아요. 화산 활동을 감지하는 장비가 있고, 서식하는 동물이 떠나거나 식물이 죽는 등 자연이 신호를 보내오죠.” 야르미가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래도 화산을 존중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위험이 뒤따른다. 짧은 길을 따라 고사리밭과 작은 폭포들을 지나가니 생명과 정반대인 곳에 도착한다. 푸른 녹음이 뚝 끊기고 회색재로 뒤덮인 바위와 마녀의 솥처럼 부글부글 끓는 진흙 웅덩이가 나타난다. 뿌연 수증기가 피어나며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검은 새 세 마리가 흉조처럼 날아다닌다. 흡사 악마를 위한 무대를 꾸며 놓은 것만 같은 광경이다.

“3만 년 전 화산이 폭발했을 때 봉우리가 무너지면서 이렇게 남은 거예요.” 야르미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한다. 진흙으로 가득한 온천의 온도는 100°C에 이르는데,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웅덩이에서 감자를 삶고 싶어 해 딱딱하게 굳은 진흙 위를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 가이드였던 가브리엘Gabriel이 온천에 빠져 2도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한 뒤로 바뀌었단다. “당시 여행객들에게 표면이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가이드들이 그 위에서 껑충껑충 뛰었대요.” 야르미가 고개를 저으며 사고가 일어난 지점을 가리킨다. “저희는 이곳을 ‘가브리엘의 구멍’이라고 불러요.” 불쌍한 가브리엘의 안타까운 순간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물론 주의 깊게 다루면 유황 온천은 놀라운 효과를 가져온다. 인근 진흙탕은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초콜릿 빛깔의 웅덩이 세 곳에서 진흙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나의 진흙 목욕 체험을 도와주러 택시 운전사 자비스가 온천으로 돌아왔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조리법을 따르듯, 온천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 남자다.

먼저 온몸을 적셔야 한다. 뜨거운 온천으로 들어가니 부드러운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느껴진다. 나는 뒤로 기대어 양팔을 뻗는다. 몸이 따뜻해진 다음 물에서 나와 양동이에 담긴 묽은 진흙을 온몸에 고루 바른다. 그러고는 진흙이 피부 위에서 굳을 때까지 몇 분 기다린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 진흙이 다 마르자 자비스가 케이크에 크림을 바르는 파티시에처럼 다른 양동이에 담긴 더 짙은 색깔의 진흙을 내 가슴과 다리며 온몸에 정성스럽게 바른다. 그런데 어째 내 등에 더 공을 들이는 것 같다. 무슨 글씨를 쓰는 게 아닐까 싶은데, 문득 자비스가 장난을 쳐 다른 여행객들이 덩달아 장난에 동참하는 게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작업을 마친 자비스가 휴대폰으로 내 등을 찍어서 보여주는데, 세상에나! 내 등에는 피통산이 멋지게 그려져 있고 어깨를 가로질러 ‘세인트루시아’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산을 올라

피통산은 세인트루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지형물이다. 그로스피통Gros Piton과 프티피통Petit Piton이라는 두 개의 용암 돔으로 이뤄진 피통산은 엽서부터 현지 맥주병까지 여기저기에 등장한다. 프티피통보다 55m 더 높은 그로스피통의 정상까지 오르려면 3.2km 길이의 하이킹 트레일을 걸어야 하는데, 꼭 한 번 시도해볼 만하다. 가이드 마르바 윌리엄스Marva Williams에 의하면 이 산에는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트레일 시작점에 있는 퐁장리브르Fond Gens Libre 마을은 자유인의 계곡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도망친 노예들이 세운 마을이에요.” 마르바의 설명을 들으며 양철 지붕을 얹은 알록달록한 집들을 지나간다. 문밖에 서 있던 노인이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그 옆으로 삶은 달걀과 수제 아이스크림을 판다는 손으로 쓴 광고판이 보인다. 대부분의 세인트루시아 주민들은 17~19세기에 프랑스와 영국 식민지 이주민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데리고 온 노예들의 후손이다. 당시 노예들은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거대한 무쇠 솥에 사탕수수를 끓였다. 지금도 섬 곳곳에 녹슨 솥이 남아 있는데, 그것들은 이제 꽃을 심는 화분이나 물고기를 키우는 작은 연못으로 사용된다. 과거 도망치다 잡힌 노예들은 뜨거운 당밀에 데이거나 수프리에르 광장의 단두대에서 참수됐다.

하지만 1700년대 말, 프랑스혁명 정신이 노예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 플로르 부아 길야드Flore Bois Gaillard라는 용맹한 여인의 지도 아래 노예들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 저항했다. 이들은 브리간드Brigrand라고 불렸다. 노예들은 자신의 주인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자신에게 가했던 잔혹한 행위를 그대로 되갚아줬다. 당시 플로르는 노예로 일했던 농장에 불을 지르고 자신을 수년간 학대한 주인을 죽였다. 그렇게 힘을 얻은 브리간드는 영국인을 세인트루시아에서 몰아내고 자유를 누렸지만 1년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야말로 혼란이 최고조에 이른 격동의 시기였다.

그로스피통은 브리간드의 영역이었다. 완만하게 시작하는 트레일은 산을 따라 느리게 휘감고 오른다. 길 옆에 망고나무와 연필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야생 곰비wild gombie로 불리는 구리 색깔의 나무는 얇게 벗겨지는 껍질을 차로 끓여 마시면 배탈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얼마 후 강 위쪽의 높은 지점에 도착해 잠시 멈춰 선다. 해안까지 가는 길이 내내 꼬불꼬불 이어져서 일명 드렁큰 베이Drunken Bay(‘술 취한 만’이란 뜻)라고 불린다. 작은 만에 밀려와 부딪히는 파도가 하얗고 투명하다. “노예들은 이곳에서 감시를 하다가 선박이 접근하면 북을 두드리거나 소라고둥을 불어서 신호를 보냈어요.” 마르바가 알려준다.

적이 나타나면 노예들은 산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하지만 마르바만큼 트레일을 빠르게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나무뿌리와 바위 옆을 매우 빠른 속도로 기어오르듯 이동한다. 우아한 움직임은 아니지만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제가 최고 기록을 세웠어요. 올라갈 때 38분, 내려올 때 20분.” 마르바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오늘은 나와 함께 가야 하니 세시간 조금 넘게 걸릴 것이다. 길의 경사가 점차 급해지면서 숨이 가쁘기 시작하고 땀에 젖은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는다. 몇 달 전 허리케인 엘사로 쓰러진 나무를 기어오르다 이끼 덮인 바위를 밟고는 그만 옆으로 미끄러진다. 순간 심장이 멎는다. 바람이 불고 주변 나무들의 가지가 흔들린다.

한 시간 뒤 길 위에서 다른 하이커를 만났다. 미국에서 신혼여행을 온 부부인데 트레일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이마엔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붙은 모습이다. 어쩐지 언쟁이 오가던 중이었는데 우리가 방해한 듯한 분위기다. “10명 중 3명은 중간에 포기해요.” 그들과 멀어지자 마르바가 이야기해준다. “보통은 ‘휴가 중인데 이건 너무 힘들잖아!’라고 투정하죠. 하지만 제가 있는 한 포기는 없어요. 우리는 798m 정상까지 올라갈 겁니다!”

마르바는 결국 자신의 말을 지켰다. 30분 후 트레일의 좁은 길목을 통과하니 노란 야생 꽃이 피고 도마뱀들이 바위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숲속의 빈터가 나타났다. 가슴털이 붉은색인 재색멋쟁이새 한 마리가 우리 앞에서 대범하게 울더니 내가 내민 비스킷을 훅 채간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이 산을 정복한 걸 축하해요.” 마르바가 배낭 안에서 피통 맥주 두 병을 꺼내며 말한다. 산 아래로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수놓인 짙은 초록색 언덕이 파도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바다가 안개 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폭풍우를 견디고 고난을 극복하다

다음 날 섬 북쪽으로 차를 몰고 가던 중 바다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 두 사람을 만났다. 오비OB와 크리슈나Krishna는 로드니 베이Rodney Bay에 있는 전통 범선인 굿 엑스펙테이션스Good Expectations의 선원이다. 한눈에도 잘 관리된 듯이 보이는 이 아름다운 보트는 파란색과 노란색 몸체에 니스 칠한 광택 나는 돛대가 세워져 있다. 오비가 키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선착장을 조심스럽게 빠져나간다. 그는 소형 보트를 타고 지나가는 한 남자에게 “리스펙트, 리스펙트!”라고 외치면서 인사한다. 그러더니 아이스박스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네며 웃는다. “저희는 손님 대접을 확실히 합니다!”

오비의 사연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구직 활동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주스세일Jus’ Sail이라 불리는 작은 선박 회사의 공동 소유주인 제임스 크로켓James Crockett으로부터 항해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 순간, 바람이 오비의 돛을 가득 채웠다. “처음으로 제가 전념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이 범선을 만든 사람들은 해변에서 작업하면서 수평선을 기준 삼아 선이 똑바른지 확인했죠.” 머리 위로 돛 아래 활대가 지나가고 도르래가 감긴다. 돛이 펴질 때까지 밧줄을 당기던 크리슈나가 이야기한다. “범선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어요.”

“제임스는 항상 열정적인 직원을 채용해요.” 데크에 다시 앉은 크리슈나가 한마디 덧붙인다. 주스세일에서 운영하는 지역의 저소득층 청년 대상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크리슈나는 대서양도 횡단한 경험이 있다. “처음 며칠 동안 뱃멀미가 심했는데 이겨냈어요.” 오비와 마찬가지로 크리슈나는 자신이 항해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해본다고 말한다. “제임스가 아니었으면 저는 과연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광활한 바다로 나와 해안을 따라 항해하면서 역사를 되짚어본다. 영국의 로드니 제독이 세운 18세기 요새가 자리한 피전섬Pigeon Island이 보인다. 이 섬에는 1550년대 이곳에 살면서 지나가는 보물선을 약탈했던 페그-레그 르 클레르크Peg-Leg le Clerc라는 악명 높은 해적의 이름을 딴 매점도 있다. 지역의 낚시꾼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요리해 주는 해변 레스토랑인 더 네이키드 피셔맨The Naked Fisherman도 보인다. 크리슈나가 “낚시꾼들이 낚싯바늘이 옷에 걸리지 않게 알몸으로 낚시를 했대요”라고 설명한다. “이 소문이 퍼지자 벌거벗은 남자들이 물고기 파는 모습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새벽 5시부터 몰려왔죠. 그래서 한동안 저 레스토랑은 장사가 엄청나게 잘됐어요. 하지만 벌거벗은 낚시꾼들은 이제 수영복을 입어야 한답니다.” 오비가 웃으면서 덧붙여 이야기한다.

바람이 거세지자 범선이 힘차게 앞으로 나간다. “무겁지만 빠른 배예요.” 오비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라서 그런지 눈빛을 빛내며 말한다. “예전에는 이런 배가 밀수에 사용됐대요. 럼이나 소, 무엇이든 다루었죠.” 큰 열대새의 일종인 갈색 부비새가 수면 가까이 낮게 날다가 갑자기 물속으로 거칠게 부리를 꽂는다. “한번은 보트 경주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갑자기 태풍이 불었어요. 탄소섬유에 이것저것 화려하게 제작한 42피트 카타마란 보트가 있었는데 태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더군요. 돛은 찢어지고 엔진엔 물이 찼어요. 하지만 이 배는 태풍을 그대로 가로질러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통과했죠. 제 능력을 증명해낸 셈이에요.”

오비가 멀리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들을 바라본다. 그 순간 이 배는 오비에게 보다 나은 삶을 선사한 것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상징과 같은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늦은 아침, 그로스아일릿의 북적거리는 중앙 도로 옆에 있는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스테이시 마틴Stacey Martin과 점심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요리를 할 거예요. 저는 그냥 옆에서 구경할게요!” 내가 도착하자 스테이시가 나에게 앞치마와 요리사 모자를 쥐여주며 말했다. 그러고는 먼저 대파를 썰게 한다. 나는 밀가루와 크게 다진 대구살을 핫소스와 함께 볼에 넣고 섞으면서 스테이시가 반죽을 둥글게 뭉치는 모습을 지켜본다. 나도 그녀를 따라 반죽을 둥글게 뭉쳐서 튀김기 안에 넣었다. 몇 분 후 바싹하게 튀긴 카리브해 별미 생선튀김인 아크라accra 십여 개를 건져냈다. “꽤 괜찮은데요. 아주 잘 만들었어요.” 스테이시가 칭찬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크기가 조금 커요.” 내가 너무 우쭐하지 않게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테이시는 이 섬을 강타한 그 어떤 자연의 힘에 뒤지지 않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레오퍼드 무늬 신발을 신은 회오리 바람과도 같다. 물론 그녀 역시 코로나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일하던 바에서 해고됐지만, 스테이시는 셰프가 되고자 했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마침내 행운으로 바꿨다. 이제 그녀가 만든 소꼬리찜과 초록 무화과 샐러드를 사기 위해 손님들이 몇 킬로미터를 운전해서 쿨 러닝스 키친Cool Runnings Kitchen 푸드트럭까지 찾아온다. 스테이시는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염소고기 커리를 한 솥 만들고, 점심 장사를 끝낸 뒤에는 저녁마다 캡 메종 리조트&스파Cap Maison Resort & Spa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얼마 전에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쿠킹 클래스도 시작했다. “제가 에너지가 좀 많은 편이에요.” 그녀가 말한다. 

이곳에서 스테이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차들이 푸드 트럭을 지나가면서 경적을 울리며 인사한다. 사장만큼이나 인상적인 푸드트럭은 야자나무와 스테이시가 태어난 자메이카 국기의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다. “이 사람이 오늘 아크라를 만들었어요. 크기가 컸어요!” 스테이시가 벽에 기대어 담배를 물고 선 남자에게 큰 목소리로 알린다. 그러자 남자는 “한 번 해보면 절대 잊지 않죠”라고 크게 웃으며 응대한다. 

식사 후에 스테이시가 나를 데리고 동네 구경에 나섰다. 세차장과 제이크의 바버숍Jake’s Barber Shop을 지나 밖에 ‘신용카드 불가! 제 친구들은 돈을 냅니다!’라고 쓰인 음료수 트럭으로 갔다. 사장 스티브Steve가 카운터 너머로 맥주를 건넨다. “식사를 한 뒤에는 차가운 맥주를 마셔야죠.” 스테이시가 눈을 찡긋하며 말한다. 이내 우리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세차장에서 울리는 청소기 소리를 들으며 지나가는 차를 구경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죠!” 아직 벽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우리를 보며 외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스테이시와 오비 그리고 숲에 있는 휘파람 소리를 내는 개구리는 고난이 있다는 것도,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TRAVEL WISE 

항공편 & 현지 교통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2회 경유해야 한다. 아메리칸항공 이용 시 댈러스와 샬럿을 경유해 세인트루시아의 헤와노라국제공항(수도 카스트리스에서 남쪽 63km)에 도착하며, 약 32시간 소요된다. american-airlines.co.kr

세인트루시아에서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용이하다.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 렌터카 회사를 통해 임시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으니 참고하자. 혹은 호텔에서 택시를 예약하거나, 마을에 있는 택시 승강장에서 타도 된다. 마을 간 이동을 할 때에는 저렴한 개인 미니버스를 이용해도 좋다.

 

방문 최적기

성수기인 11월부터 3월 말까지 비가 적고 화창하며 평균기온은 28~30°C를 유지한다. 10월에는 강수량이 많고 태풍 가능성도 크다. 4~6월은 25~30°C로 날씨가 따뜻하며 물가가 더 저렴해서 여행하기 좋은 시기다.

 

잠잘 곳

라데라 리조트. 스위트룸 1박 약 87만원부터. ladera.com
캡 메종 리조트&스파. 1박 2식 포함 약 61만원부터. capmaison.com

 

현지 둘러보기

엘리건트 리조트에서 라데라 리조트의 럭셔리 스위트룸에서 3박, 캡 메종 리조트&스파의 오션뷰 객실 4박, 설퍼스프링스 체험, 석양 크루즈, 그로스피통 하이킹, 항공편과 교통편을 포함한 피크 투 비치 패키지를 1인당 약 938만원부터 제공한다. 캡 메종 또는 스테이시 마틴의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서 ‘현지인처럼 먹기’ 체험을 신청할 수 있다. elegantresorts.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