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E INTO THE INSPIRATION
우리는 어디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물건, 일상적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새로운 여행을 하는 것과 다름 없다. 가구 디자이너 강영민은 역동적인 강렬함을 그대로 품은 G70 블레이징 레드 컬러와 함께 서울 성수, 마포, 영등포의 곳곳을 누비며 창작의 영감이 넘실거리는 바다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STOP 1
규정짓지 않는 모호함 문화비축기지
쉼 없이 달려 마포구 성산동의 문화비축기지에 차를 세웠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인적이 드문 문화비축기지는 고요함이 새하얀 눈처럼 고즈넉이 내려앉았다. 매봉산 아래 자리한 이곳은 41년간 산업화 시대의 유산인 마포 석유비축기지였지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됐다. 10년 넘게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다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2017년 9월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문화비축기지에는 T1부터 T6까지 총 6개의 탱크가 있는데, 공연장, 복합문화공간, 이야기관, 커뮤니티센터로 활용되는 공간과 석유비축 당시의 탱크 원형을 온전히 간직한 공간으로 나뉜다. 외관만 봐서는 어떤 공간인지 알 수 없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누군가 질문을 던졌지만 들어가보기 전에는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 T1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매봉산 암반이 보이는 유리온실인 파빌리온과 그 옆에 있는 문화 통로에서는 전시, 공연, 다양한 체험 활동이 이뤄진다. 어쩌면 이곳의 매력은 이벤트의 종류가 아닌, 규정짓지 않는 모호함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T1을 나와 T4의 둘레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T6의 옥상마루에 올라 파란 하늘 아래 서서 차가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NAVIGATOR 서울시 마포구 증산로 87
TAKE A DRIVE :
CROSS THE BRIDGE
창작의 영감을 수집하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오래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노력, 그 안에서 창작자는 인내하며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갈 뿐이다. G70와 함께하는 여정을 통해 한계를 두지 않고 영감의 바다에 과감히 뛰어드는 용기,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NAVIGATOR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서강대교
STOP 2
아름다움을 수집하다 모노하 성수
이곳은 채워진 물건보다 여백이 먼저 마음에 스며드는 공간이다. 입구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카페가, 오른쪽에는 갤러리가 보인다.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의류와 소품, 공예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비움으로 채우다’라는 모노하만의 철학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달항아리와 다기 세트, 차통, 빈티지 가구 등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아름다움이라는 기준 아래 한 공간에 모여 있다.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공간과 사물 그리고 사람이 만나 형성되는 관계성에 대해 곱씹어볼 수 있다. ‘간결하고 충만한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모노하 성수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쇼룸에 전시된 주전자의 표면을 가만히 쓸어본다. 창작자의 수많은 고뇌와 열정으로 빚어냈을 물건이다. 질감 하나 허투루 표현하지 않는 예술품이 주는 따뜻한 온기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NAVIGATOR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20길 16
STOP 3
영감을 축적하는 곳 뿐또블루
성수동의 뿐또블루 갤러리는 우주인들이 지구를 부르는 이름인 ‘파란 점’에서 착안한 것. 칼 세이건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파란 지구를 만든다고 한 것처럼, 뿐또블루의 텅 빈 공간에서 각자의 개성을 자유롭게 펼치고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 뿐또블루 갤러리에서는 지난해 서울의 미세먼지 데이터를 음악으로 변환해 대기오염 상태를 청각적으로 표현한 전시 , 한국·네덜란드 작가가 협업한 아트 포스터 전시 등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우리가 찾아간 날에는 박선민, 지희킴, 차승언 작가가 디지털 시대의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열리고 있었다. 시간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각자의 시선으로 시간을 다채롭게 재해석한 세 작가의 작품은 강영민 작가에게도 보이지 않는 울림을 전했으리라. 그는 지금 대답하기보다는 미래에 탄생할 작품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의 시간은 보이지 않게 지나가고 있기에.
NAVIGATOR 서울시 성동구 성수이로22길 61
TAKE A DRIVE
활기찬 생명력을 느끼다
성수동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생각지 못한 선물을 맞닥뜨리고는 한다.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다채로운 벽화가 그것. 단조롭게 느껴졌던 무채색 건물이 아티스트의 손길을 따라 성수동 거리에 새로운 생명력을 덧입힌다. 갤러리, 카페, 공업사 입구, 오래된 골목길에 스트리트 아티스트의 손에서 탄생한 벽화가 바삐 움직이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늦춘다.
STOP 4
익숙함 속의 새로움 쎈느
무대를 뜻하는 복합 공간 쎈느는 1층은 카페, 2층은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를 함께 선보이는 편집 공간이다. 노출 콘크리트로 이뤄진 무채색 공간에 컬러풀한 유리창의 시트 디자인이 대비를 이룬다. 커피 향을 음미하며 2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심플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디터람스 의자,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감각적인 패턴을 보여주는 캐나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제니아테일러의 그릇을 비롯해 젊고 자유로운 감성을 표현하는 패션 브랜드 태우의 자켓 등 다양한 아이템을 만날 수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감을 얻는 과정은 결코 짧지도 어렵지도 않다. 익숙하게 느껴졌던 일상 속 오브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창작의 영감을 얻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책장을 들추고 공간에 말없이 자리한 오브제를 바라보며 물건을 탐구한다. 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강영민 작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가만히 서서 물건의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NAVIGATOR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5길 20
STOP 5
무궁무진한 가능성 오우드
금속, 전기, 공업사가 위치한 거리에 시원한 개방감을 자랑하는 회색 건물의 오우드는 패션, 음식 등 복합문화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이공오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주위 건물과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의 공간은 대리석과 스테인리스를 활용한 심플한 인테리어에 밝은 색감의 원목 가구를 더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커피와 샌드위치, 내추럴 와인 등을 판매하는데, 오우드란 이름엔 별다른 뜻은 없다. “콘셉트도 규정되어 있지 않아요. 다만 이곳에서 각자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강영민 작가에게는 오늘 디저트를 즐기며 창작의 시간을 보냈던 작업 공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아 머릿속으로 구상 중이던 디자인 스케치를 완성했다. “서울에는 1층 건물, 그것도 천장의 햇빛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가 어렵잖아요. 그런 만큼 공간의 특별성이 존재하는 곳이에요.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작업하고 싶을 때 또 찾을 것 같아요.” 영감을 얻는 공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언제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다.
NAVIGATOR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길 101-1
“영감의 장소는 한정 지을 수 없어요. 마주하는 모든 장소가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오거든요.”
가구 디자이너 강영민
STOP 6
일상의 재발견 프로보크 서울
익숙한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누구나 어디서든 여행자가 될 수 있다. 대선제분 영등포 공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 영등포에 건설된 밀가루공장으로 80여 년간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에 몇 안 남은 산업 유산이다. 이번 제네시스 로드트립에 참여한 가구 디자이너 강영민은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의자를 디자인한다. 버스 손잡이, 계단 핸드레일 등 쇠파이프에 플라스틱을 코팅하는 공장과 함께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남은 폐플라스틱을 녹여 틀에 굳힌 후 마치 물감을 짜놓은 듯한 컬러풀한 의자로 재탄생시킨다. 밀가루공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앞두고 있는 프로보크 서울과 쓰임새를 다한 폐플라스틱이 그의 손길로 우리가 앉는 의자로 바뀌는 과정은 어떤 면에서 닮아 있다. 광장에 서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과거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제분공장이었던 이곳은 건물마다 일하던 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축적되었을 것이다. 강영민 작가와 공간을 둘러보던 중 그도 같은 것을 느꼈던 걸까. 벽 한쪽에 ‘담배를 피우지 마시오’라고 적힌 나무 팻말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그는 보자마자 사진을 찍더니 “글씨를 정말 잘 쓰지 않았어요? 어떻게 이렇게 글씨를 쓸 수가 있죠?”라고 말했다. 누가 썼을지 모르는 붓글씨는 우리의 시선을 붙잡을 만큼 단정하고도 빼어난 솜씨를 자랑했다. 공장 직원들에게 행동 수칙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을 이 팻말은 지금 공간의 역사를 담은 기록의 부산물로 남아 있다. 그의 말이 아니었다면 무심히 넘겼을지 모를 나무 팻말을 바라보며 투박한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글씨를 써나갔을 과거의 누군가를 상상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곳은 지금 패션쇼, 론칭쇼, 영화 촬영 등 목적에 맞게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수십 년 뒤 프로보크 서울은 어떻게 변모해 있을까. 변화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광장을 나선다.
NAVIGATOR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87 프로보크 서울
변화하는 모든 것은 삶에 새로운 활기가 되어준다. 그런 유기적인 시간이 켜켜이 쌓여 삶이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게끔 한다. 여행의 끝, 눈이 내렸다. 커다란 광장을 하얀 눈이 뒤덮었고, 소복이 쌓인 눈 위에서도 부드러운 G70의 움직임이 근사한 궤적을 남겼다. 이 모든 순간들이 모여 강영민 디자이너에게 영감이 되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