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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우아함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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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호

ATHLETIC ELEGANCE  

동해 바다 위의 주상절리와 끝이 보이지 않는 황룡사지 평원에서,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국립무용단의 젊은 무용수 황태인은 힘과 기개 그리고 존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역동적인 우아함을 찾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경주를 여행했다.

 


STOP 1

바람과 파도의 흐름을 관찰하다, 양남 주상절리

해가 뜨기 전 사위가 온통 깜깜한 시각.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동해안의 땅 위에서 파도의 흐름에 따라 사라졌다가 다시 살짝 수면 위로 얼굴을 드러내는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를 만났다. 해안으로 밀려 온 파도는 가로로 길게 누운 부채꼴 주상절리에 크게 부딪히며 포말을 일으켰다. 주상절리의 굴곡마다 새하얀 포말이 들어차며, 파도가 들고 나는 모습은 마치 생크림이 가득 흩뿌려지고 있는 케이크와 같았다. 머랭이 가득 올려진 쿠키처럼 보이기도 했고 하얀 눈이 내려앉은 설원 속의 바위처럼 보이기도 했다. 삐죽삐죽 용의 비늘처럼 튀어나온 바위가 가득한 주상절리 군은 흰 비단을 뒤집어 쓴 용 같기도 했다.

오전 6시가 가까워오자 하늘은 어느새 연한 오렌지 빛에서 분홍빛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바다의 보석과 때맞춰 색을 달리하는 자연의 조명이 조화롭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동해안의 한 끄트머리에 서있음을, 살아있음에 감동했다. 황태인 무용가는 맨발로 천천히 해안에 다가갔다. 작고 동그란 돌들이 파도에 부딪히며 ‘돌돌돌’ 굴러가는 소리를 낼 때 그는 파도의 리듬과 선율에 맞춰 팔을 수평으로 천천히 펼치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무용을 시작하려는 듯 보였다. 흐름은 자연스러웠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동이 트는 시각 붉어지는 조명에 맞춰 서서히 움직임을 시작했다. “이제는 화려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것에 제 감정을 이입하게 되더라고요. 돌과 바람, 햇빛 같은 자연물들이 저에게 큰 영감을 줘요. 한국무용이 갖고 있는 정서가 자연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NAVIGATOR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405-3

 


SPOT 2

수묵에 사유를 담다, 솔거미술관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마치 수행과도 같다’ 수묵화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소산 박대성 화백의 말이다. 그는 인품이 곧 작품이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평생 외롭고도 어려운 수행의 길이 뒤따를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박대성 화백의 작품 기증으로 만들어진 솔거미술관에서 세로 4미터, 가로 8미터의 대작 ‘삼릉비경’을 만났다. 소나무와 밝게 뜬 달 사이로 석탑이 빛나고 있다. 늦은 밤 삼릉 숲의 어느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리드미컬한 곡선으로 이어진 동선을 따라 관람을 이어가다 보면 전시실 통창 앞에 이른다. 창 너머로 자연 연못 아평지阿平池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햇빛과 하늘 그리고 연못이 미술관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 이 역시 또 하나의 작품임을 깨닫게 한다. 산책로를 따라 밖으로 나가 연못가 주변을 살핀다. 미술관은 언덕에 기대어 반쯤 파묻혀 있다. 자연과 건축의 경계가 모호하다. 노출 콘크리트로 벽에 ‘나무쪽’을 켜켜이 채워 투박한 자연물의 본성을 고이 담았다. 거푸집에 표면의 질감이 더 드러나는 나무를 썼다가 때어내니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았다. 승효상 건축가의 철학이 건축물에 그대로 담겼다.

NAVIGATOR 경북 경주시 경감로 614

 


TAKE A DRIVE :

땅 위의 시간을 품다 괘릉 소나무길

원성왕릉이라고도 불리는 괘릉으로 향하는 길, 소나무 군락을 만났다. 솔내음을 맡으며 굽이친 길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부드러운 주행 성능을 뽐내는 G80 그레이스풀 그레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다. 추수가 채 끝나지 않은 황금 들녘의 한가로운 정경이 어우러져, 드라이브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NAVIGATOR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만 한다는 것, 더하는 힘과 빼는 힘이 정확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예와 무용은 닮았다.

그 결과 하나의 완결된 선을 내어놓는 것까지. 황태인 무용수가 흙을 주물러 공기를 빼는 작업을 반복한다. 흙을 밀어 다시 다져 올릴 때 조금씩 변하는 밀도와 감촉을 느껴본다.

 


SPOT 3

정제된 미감, 백암요

따뜻한 가을빛이 내리쬐는 들판을 따라가다 백암요 앞에 멈춰 섰다. 통일전 은행나무 길과 멀지 않은 한적한, 가을과 참 잘 어울리는 들녘에 있다. 경주에 몇 없는 장작가마 앞으로는 너른 마당이 보인다. 찻그릇, 다완을 주로 만들어 온 박승일씨와 도예를 전공하고 그림을 그려온 이정은 씨가 만나 이곳에 터를 닦은 지 13년이다. 부부 도예가인 박승일, 이정은 작가는 작업을 하다 말고 밖으로 나와 흙과 물감이 묻은 손을 닦는다. 전시공간에는 몽글몽글한 구름들이 그려진 구름문 개완이 보인다. 이정은 작가는 중국 제1의 요업지로 이름난 장시성의 경덕진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조선시대 이후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명맥이 끊어져 전수되지 못한 다양한 기법들을 배워보고 싶었어요” 도자기를 설명하는 두 도예가의 눈빛은 매섭고도 따뜻하다. 탄탄한 실력 위에 자신만의 것을 쌓아나가고자 하는 이의 강한 집념이 엿보였다. 황태인 무용수는 이정은 작가를 따라 초벌한 도자기 위에 선을 그려 넣어본다. 안료는 붉은 빛이 감도는 갈색으로, 100도 이상의 가마에서 구워진 다음에는 청아한 파란빛으로 빛난다. 파란 코발트 빛이 가장 높은 온도에서도 버티기 때문. 곧이어 박승일 작가를 따라 흙을 주물러 공기를 빼내어 본다. 굉장히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모든 일에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열정, 힘이 들어감을 다시 한번 느끼며 백암요에서의 시간을 따뜻한 차로 마무리한다.

NAVIGATOR 경북 경주시 남산예길 75

 


+LOCAL FLAVOR 다과와

황룡사지 인근, 기와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볕 좋은 2층 카페에 앉아 오후 나절 잠시 쉬어간다. 햇빛이 통창으로 들어오는 디저트 카페 ‘다과와’에 앉아 무용가와 이야기를 나눈다. “나이가 들수록 올곧은 마음이 곧 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지고 더 선한 것, 바른 것을 생각하게 되고요. 저에게는 마음의 고양, 정신적인 안정감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는 명상음악을 듣고 요가를 병행한다. 선한 마음과 따뜻한 말투, 행동은 꾸미려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가만히 배어 나왔다. 따뜻한 질감의 나무 의자에 앉아 고소한 쿠키 냄새를 맡으며 쑥 라테에 휘낭시에, 리코타 치즈 케이크를 곁들여 마셨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경주의 한가로운 풍경을 한껏 즐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NAVIGATOR 경북 경주시 임해로 96번길 5, 2층 / dagwa__wa

 


통일전 은행나무길 드라이브

들녘 위에서, 이름 모를 거대한 구릉이 도시를 너울대는 모습을 보고서도 경주에 매혹되지 않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SPOT 4

호방한 기개, 처용무

교촌마을 ‘석등 있는 집’ 안마당으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대청마루까지 고이 들어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처용무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이자 신라처용무보존회 회장인 김용목 선생은 마루에 앉아 황태인 무용가에게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처용무를 배운 적 있나요?” 그는 조용히 답했다. “네. 잘은 못하지만요.” 곧장 둘은 면사를 손에 끼고 나란히 서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 합을 맞춘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하나가 돼 무용에 몰입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동작이 쉬울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정신까지 완벽히 배우기란 정말 쉽지 않아요. 평생을 한 분야에서만 꾸준히 쌓아나가야 하는 작업이죠.” 김용목 선생은 처용무를 “남성적이고 호방한 기개를 표현한, 선이 굵은 춤”이라고 말한다. 원래 신라시대의 처용무는 악귀를 쫓고 상서로운 기운을 들이는 의식에서 시작됐다. 동해 용왕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으로부터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김용목 선생은 곧 팥죽과 같은 갈색에 눈썹과 콧수염이 짙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처용의 탈을 쓰고 그 위에 검은 사모를 썼다. 그가 한 동작을 취할 때마다 과시하지 않는 힘과 기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태인 무용가가 말했다. “화려한 동작보다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 실로 더 어려워요. 전 그저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죠.”

NAVIGATOR 경북 경주시 교촌안길 15-3

 


선을 그리다, 월정교

월정교의 돌다리에서 그는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맨발로 돌 위에 서는 것이 좋다’며 즉흥무를 이었다.

 


+LOCAL FLAVOR 요석궁

요석궁은 경주 최씨 가문의 가정식을 낸다. 종가에서 대대로 만들어 먹던 집장, ‘사인지’라는 물김치, 북어보푸라기, 밥식해, 밀쌈 등 대대로 전해내려 오는 최부잣집 가정식은 그 자체로 진귀하다. 이 중에서도 꼭 맛볼 것은 육장이다. 직접 담은 태양초 고추장에 최고급 한우를 갈아 넣은 쇠고기 고추장 볶음이 바로 육장. 직접 재배한 국산 콩을 메주로 띄운 후 메주가루에 다시마, 부추, 무 등을 넣고 약한 불로 10시간 이상 손수 저어 정성스레 졸여 낸 집장, 최상품의 멸치를 손질해 담근 멸장, 육포, 가자미식해까지 최씨 가문의 가정식은 모두 풍미 깊은 맛을 낸다.

NAVIGATOR 경북 경주시 교촌안길 19-4

 


SPOT 5

지평선을 넘어선 어떤 거대함, 황룡사지

8만여 평에 이르는 땅 위에 존재했던 시간과 어떤 화려함을, 웅장함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황량한 땅 한 가운데에서 목탑의 중심 기둥을 세웠던 삼초석과 주춧돌만으로 당시 거대했을 그 크기를 감히 어림잡아 본다. 돌과 터는 그 곳에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그저 견딜 뿐이다. 진흥왕 14년(553년)에 짓기 시작해 선덕여왕 13년(645년)에 완성한 황룡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상징과도 같았다. 백제인 아비지가 건조한 9층 목탑과 그 높이만 4미터에 달했던 장육존상이 이곳에 있었다. 고려 고종 25년인 1238년 몽고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어 버렸지만 한 때 동양에서 가장 큰 사찰이 있었던 곳이다. 드넓은 벌판에서 무용가는 무엇을 상상했을까? 무엇이든 큰 것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황량한 빈 터는 땅 밑에 잠든 용과 같이 단지 세월을 쉬어가고 있을 뿐이다. 너무 많은 것들을 알수록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엄청난 비밀과 이야기들을 품고서 그저 말없이 조용히 서 있다.

NAVIGATOR 경주시 임해로 64-19

 


라한 셀렉트 경주

리뉴얼한 라한셀렉트 경주 1층의 실외 공간. 노란 조명 아래 G80 그레이스풀 그레이의 유려한 곡선, 전면부 두줄 쿼드 램프가 저녁 무렵 더욱 빛을 발한다. 

 


TAKE A DRIVE :

나의 취향을 드러내다 라한셀렉트 경주

보문호반을 돌면 호숫가 속 아늑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올해 4월 리뉴얼해 재개장한 라한셀렉트, 구 현대호텔이다.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보문호의 아침과 일몰 무렵의 신비로움까지 객실의 통창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이 호텔의 매력. 하루로는 도저히 아쉬워 떠나기가 힘들다. 호텔 뒤편으로는 보문호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벚꽃나무아래 조명이 환히 켜진 호숫자를 거닐며 청량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본다. 좋은 것만 골라 소개한 그로서리 편집숍인 경주상점, 큐레이션 서점인 경주산책 등 여행객의 취향을 반영한 개성 있는 공간과 마켓 컨셉으로 만들어진 셀렉트 다이닝, Market 338까지 매력적인 장소들이 함께 있어 라한 셀렉트를 벗어나지 않고도 충분히 꽉 찬 하루의 휴식이 된다.

NAVIGATOR 경주시 보문로 338

 


“자연 앞에서는 제 스스로가 순수해짐을 느껴요. 무용수로서 새로운 영향을 받는 순간은 늘 자연에서였던 것 같아요.”

무용가 황태인

 

 


SPOT 6

살아있는 절정, 경주 바람의 언덕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토함산 산자락, 해발 562m의 조항산 정상까지 부지런히 오른다. 언덕 그 끝에 다다르면 초록의 능선과 저 멀리 지평선만이 보이는 탁 트인 공간이 나온다. 황태인 무용수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조용히 앞으로 걸어나간다. “매번 공연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광활한 자연의 모습을 마주하니, 왜 진작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음을 새롭게 먹는 데에는 여행만한 것이 없네요” 시선을 돌리니 세차게 회전하는 풍력 발전기 7기가 보인다. 오후 6시, 일몰 시각이 가까워오자 들판 위로 그림자가 깔리고, 하늘은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하며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우뚝 솟은 풍력 발전기와 우아하게 굽은 산 능선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치 우주에 있는 듯, 잠시 시공간의 감각을 잃고 만다. 경주에서 자연의 이름을 닮은 곳들을 여행하며 더욱 넓어지고, 더욱 짙어졌기를 마음 속으로 조용히 바라며 차에 오른다. 

NAVIGATOR 경북 경주시 양북면 불국로 1056-185

 

글. 강혜원 HYE-WON KANG
사진. 김현민 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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