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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상을 탐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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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EXPLORE THE UNKNOWN WORLD

온전히 나로 사는 순간, 우리는 정말 설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까. 다재다능한 GV80과 함께 서울을 출발해 강원도 양양 그리고 고성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코노소어적 삶을 살고 있는 한동훈밴드의 프로듀서 한동훈과 YB밴드의 드러머 김진원을 만나 그 해답을 찾았다. 이 글은 도시를 벗어나 점점 더 깊은 자연으로, 강원도 북쪽의 끝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 이들이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어느 겨울날에 대한 기록이다.

 

 

STOP 1

감각하는 시간 화진포 성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그 경계로 발걸음을 옮기는 가슴 설레는 길. 우리는 고성의 해파랑길을 따라 최북단으로 향하다가 해안 절벽 위 송림 속에 자리한 화진포 성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김일성 별장으로도 알려진 곳으로, 화진포는 6`25전쟁 이전엔 북한 땅이었다.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이 하계 휴양을 했던 곳이라 ‘김일성 별장’으로도 불린다. 80여 년의 세월을 품은 이끼 가득한 화강암 석벽 사이로 비릿한 바다 내음이 잠시 스친다. 2층에 오르면 1.7km에 이르는 화진포 백사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햇살을 고이 받아 빛나는 물빛 아래로 작은 돌이 가만히 비칠 만큼 물이 맑아 마음까지 환해진다. 해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건너편 화진포 호수의 갈대숲과 호수를 떠다니는 오리들에게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간다. 철조망이 둘러진 해안과 군부대 사이로 호수의 물결이 아름답게 빛난다. 전방에서 느낄 법한 이질적인 감각을 바다의 고요함이 상쇄하고 있었다.

NAVIGATOR 강원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길 280

 

TAKE A DRIVE 금강 소나무길

고운 모래를 살포시 밟으며 화진포해변을 나와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싼 금강 소나무길로 접어든다. 수령이 100년 이상 된 금강소나무가 우거진 길에서는 주행의 즐거움도 배가된다. 차창 밖으로 고즈넉한 화진포 호수가 수평으로 펼쳐진다.

NAVIGATOR 강원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길 280

 

LOCAL FLAVOR

스퀘어루트

가진해변과 맞닿은 스퀘어루트는 루프톱 오션뷰를 자랑하는 카페 겸 스테이 공간이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주인장은 어울림과 취향 너머의 가치를 추구해 이 공간을 완성했다. 2~3층의 스테이 객실에서는 스파 욕조에서 바다 풍광을 즐기며 여유롭게 피로를 풀 수 있다. 철조망을 따라 아래로 걸어 내려가 한적한 가진해안을 즐기는 것도 이곳을 경험하는 좋은 방법. 햇빛이 내리쬐면 투명한 바닷속 작고 예쁜 돌들이 굴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따뜻한 드립커피 한잔을 들고 루프톱에 올라가 ‘물멍’을 하는 시간도 마냥 행복하다.

NAVIGATOR 강원 고성군 죽왕면 가향길 2-7 squareroot_cafe

 

국내 최초의 서핑 매거진 WSB MAGAZINE 1, 2호를 발행한 한동훈은 국내외 서퍼 및 셰이퍼 인터뷰와 서핑 스팟에 대한 정보를 고루 실었다.

 

STOP 2

자로 잰듯한 감각 글라스하우스

해안도로를 따라 고성 천진해변으로 방향을 돌린다. 해변 방파제 너머로 은색 컨테이너 건물이 보인다. 천진의 서프 포인트에 자리 잡은 글라스하우스다. 상호는 파이프 모양의 큰 파도 속을 뚫고 나올 때 보이는 물결 속을 뜻하는 ‘Glass House’라는 서핑 용어에서 따왔다. 글라스하우스와 함께 ‘서프엣모스피어Surf. atmosphere’라는 의류 브랜드 쇼룸을 운영하는 최진수 대표도 서핑하기 좋은 파도가 오면 바쁜 일도 제쳐놓고 바다로 달려 나간다. 서프 미디어 플랫폼 'WSB FARM'을 운영하는 한동훈과도 친분이 두텁다. 그 역시 이곳에서 플랫폼과 관련된 기획 회의를 하고 글을 쓴다. 때때로 양양, 고성의 서프 관련 종사자, 인터뷰이들과 미팅이 필요할 때 이곳에서 만난다. “고성과 양양에서 서퍼들과 커뮤니티를 이루고 친분을 다지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매달 팝업스토어, 디제잉, 브랜드 행사 등이 열리는 이곳은 여행자와 로컬이 교류하는 고성의 새로운 문화 그 꼭지점에 있다.

NAVIGATOR 강원 고성군 토성면 천진해변길 43

 

STOP 3

존재를 묻다 바우지움 조각미술관

거대한 산과 그 산을 이루는 계곡과 돌이 주는 특유의 아늑함과 평온함이 있다. 산과 물과 돌이 만나 어긋나지 않고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룰 때, 이를 달리 보면 어떤 ‘미의 정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문명의 틀을 벗고 싶어 미지의 세계로 내달렸지만, 세차게 부는 해풍 앞에서는 속수무책. 문득 도시적 미감과 잘 조율된 최선의 감각을 살피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인간은 문명과 사회 속의 존재이기에 도시의 생활만으로, 혹은 자연의 품만으로는 대치되는 쌍방의 욕구를 채울 수 없다. 도시에 있을 때는 시골이 고프고, 시골에 있을 때는 도시가 고픈 것처럼. 이런저런 존재론적 고민을 거듭하는 찰나 인제와 속초를 잇는 56번 지방도와 멀지 않은 고성 토성면 동네 한가운데 밭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각가 김명숙 씨가 10년에 걸쳐 완성한 바우지움 조각미술관은 강원도 사투리로 바위를 뜻하는 ‘바우’와 미술관을 뜻하는 뮤지엄을 결합해 지은 이름이다. 김명숙 관장은 주변의 돌을 이용해 담을 쌓고 그 담들이 겹치는 곳에 각각의 건물을 짓고 물의 정원, 돌의 정원, 풀의 정원을 만들었다. 건축과 설계는 건축가 김인철이 맡았다. 건물의 안과 밖의 소통과 경계 허물기를 강조하는 그의 건축 철학이 잘 녹아들었다. 돌이 지반 위를 덮고 있다는 뜻의 원암리(元巖里)라는 원 지명에 잘 어울리는, 돌과 바람 그리고 사람이 머물다 가는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삶의 방향과 나의 존재를 가만히 되물었다.

NAVIGATOR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온천3길 37

 

STOP 4

목재 보드에 담긴 철학, 웨이브 우드

좋은 서프보드를 고르는 건 어렵지 않다. 옷을 고르듯 자기의 키와 몸무게, 어깨 너비에 딱 맞는 것을 찾으면 된다. 서핑을 시작할 때는 서프보드를 대여하지만, 즐기는 단계에 접어들면 길이와 두께, 상판의 감각까지 서프보드의 모든 것이 중요해진다. 보드를 차츰 알아가다 보면, 그 보드가 마치 사람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서핑이 자연에서 시작됐듯 그 시작이 나무 보드였고 자연이 파도라는 선물을 주었던 것처럼 올바른 ‘자연주의’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동근 대표도 파도와 나무가 만나는 소중한 결합에 대해 일찍이 깨달았다. 나무 본연의 특성을 해하지 않은 ‘우드 서프보드’를 만들고 싶었던 이동근은 한때 주말마다 동해안으로 내달리던 서퍼였다. “할아버지가 목수였어요. 저는 산업공학을 전공했지만 틈틈이 목공을 배웠고요. 평소 좋아하던 나무로 보드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물에 잘 뜨는 성질을 지녔고 자연친화적이기도 하고요.” 틈틈이 해외 자료도 찾아보고 제주도에 비슷한 작업을 하는 분을 찾아가 보드 제작을 배웠다. 작업 중인 보드를 쓰다듬어보니 그 질감과 무게, 향기가 확실히 스티로폼, 합성수지로 이뤄진 서프보드와는 다르다.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나만을 위해 커스텀된 서프보드’로 느껴졌다. “목수가 나무를 왜곡하지 않듯, 서퍼들도 바람도 파도에 순응하죠.” 바람과 파도를 닮은 그에게서 어떤 여유로움과 비장함을 읽었다. 물 안의 서퍼는 물 밖에서도 멋있어야 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NAVIGATOR 강원 양양군 현남면 동해대로 694/ wavewood_kr

 

+

LOCAL FLAVOR

서프클리프

온 힘을 다해 패들링을 한 서퍼에게는 열량을 회복시켜줄 기름진 무언가가 필요하다. 물에 젖은슈트 때문에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하기 곤란할 때도 있다. 이럴 때에는 인구해변의 서프클리프로 부지런히 뛰어가 피자 한 판을 주문한다. 살치차 피자와 마르게리타 피자를 주문하고 불고기와 치즈를 잔뜩 올린 감자칩까지 시켜본다. 시원한 맥주 한잔도 빠지면 섭섭하다. 주인 김성호 대표 역시 서퍼이다 보니 매장 안에 다양한 색상의 롱 보드와 쇼트 보드, 스케이트보드가 가득하다. 서프보드와 웨트슈트 대여도 가능하다.

NAVIGATOR 강원 양양군 현남면 인구길 28-21

 

STOP 5

파도를 읽는 남자 북분리해변

 “예보 봤어? 다음주 거의 10.5m던데. 와, 이렇게 높은 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둘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밴드의 프로듀서이자 서프 미디어 플랫폼 'WSB FARM'의 대표 한동훈은 서핑을 시작한 지 20년째다. 그런 그에게도 파도는 늘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다. YB밴드의 드러머이면서 한동훈밴드의 드러머인 김진원 역시 남애3리 해변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해가 붉게 떠오르면서 수평선을 가만히 물들였다. 해변에는 두 남자뿐이었다. 이 둘은 얼핏 멍하니 파도에 시선을 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흐름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방금 파도 봤죠. 어느 정도는 깨끗한 너울이 일정하게, 지속력 있게 앞으로 밀어줘야 그 흐름을 탈 수 있어요.” 한동훈은 해안의 왼쪽, 오른쪽, 정면을 반복해서 응시하다가 저 멀리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우리는 그 순간 깨끗하게 해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또렷한 파도를 보았다. 포말이 일며 부서지기 직전의 파도는 그 힘을 마지막으로 지켜내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이 파도의 응집된 힘을 딛고 올라서면 서퍼는 파도를 탈 수 있다.

파도는 결국 다시 바람의 방향과 물살의 힘에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달리하며 소리 없이 깨졌다. 서퍼의 눈으로 바다를 응시하고부터는 꽤 좋은 파도의 물결을 비교적 일정한 간격으로 볼 수 있었다. 무엇이 좋은 파도이고 그렇지 않은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의 흐름을 읽고, 그 물결과 물빛, 바람의 촉감을 이해하는 자에게 바다는 파도를 내어주고 있었다.

 

겨울 서핑을 즐기는 김진원. 

 

TAKE A DRIVE

거진11리 해변

거진항 등대 북쪽 끝, 백사장이 없고 바위섬으로만 이뤄진 거진해변에 차를 세웠다. 유유히 낚시하는 사람들을 지나 방파제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이 여행에서 스스로에게 답을 찾았느냐고 가만히 묻는다. 

 

STOP 6

자유로 얻은 감각 갯마을해변 

갯마을해변 위로 노을이 내렸다. 한동훈은 “제가 언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스키나 자전거는 지나간 길이 흔적으로 남는데 서핑은 파도가 지나가면 그 뿐이라고요. 해변에 앉아 흔적도 없이 새로이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조금 허무하기도 해요. 그때 문득 음악을 만들고 싶어졌어요.” 한동훈은 김진원을 설득해 한동훈밴드를 꾸려보기로 했다. 베이시스트 강석호, 기타 박일, 보컬 난아진, 건반 이의지 등 평소 알고 지내던 서퍼들이 곧장 의기투합했다. 김진원은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점점 진심이 느껴지더라고요”라며 웃는다. 이들은 일몰 서핑 후 노을이 지는 바다에서 ‘선셋 코스트Sunset Coast’라는 음악을 만들고 양양 인구해변에서 버스킹 장면을 연출해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일찍 일어나 바다에 나가는 걸 좋아해요. 꼭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새벽에 좋은 파도가 있기도 하고요.” 드러머 김진원은 주로 새벽녘에 혼자 일어나 갯마을해변이나 물치해변, 남애3리해변 등지에서 서핑을 즐기곤 한다. 요즘은 고성과 양양 일대에서 겨울 파도를 타는 게 그의 유일한 낙이다. 김진원은 속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동해 바다가 그 누구보다 친숙하다. 요즘은 YB밴드 스케줄이 없는 대부분 시간을 고성 천진에서 보낸다. 오늘도 그는 그저 멀리서 조용히 파도를 응시할 뿐이다. 김진원은 서울에 있을 때는 보컬의 목소리를 들으며 드럼을 연주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자동차가 앞바퀴만으로 전진할 수 없듯, 밴드는 어느 한 사람으로만 이뤄질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고. 그는 오랜 밴드 활동으로 경계에서의 균형감을 체득한 게 아닐까.

NAVIGATOR 강원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

 

돝섬에서 부서진 파도가 해변까지 그 흐름을 밀어 올리며 해안으로 다양한 너울을 만든다. 성급하게 물에 뛰어든다고 해서 서퍼는 파도에 오를 수는 없다. 어떤 욕망과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도 있다. 바닷가에서는 자연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함을, 무엇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인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함을 깨닫는다. GV80과 여정을 마무리하며 도시와 바다 어디에서든 빛을 발하는 존재감과 깊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과 집념, 럭셔리함까지 그 아이덴티티를 하나씩 경험할 수 있었다. 

 

“강하게 응축된 자연의 에너지를 딛고 두 발로 일어서는 것. 일상을 흔드는 힘은 거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또한 서퍼의 힘은 물 밖으로도 이어져야 하죠. 이를테면 바다를 아끼는 마음을 나누고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으로요.” -한동훈 밴드 프로듀서 한동훈 

 

글. 강혜원 HYE-WON KANG
사진. 김현민 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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