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수도는 서부 발칸의 유산과 자부심 넘치는 커피 문화 그리고
도시를 둘러싼 디나르알프스에서 온 농산물이 혼재되어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현지인들은 자그레브Zagreb를 가리켜 작은 도시로 둔갑한 큰 마을이라고 말한다. 여행자들은 크로아티아의 수도에 발을 디딘 순간 이곳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와 다채로운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자그레브 시민들은 날이 밝으면 대부분 인근 시골에서 올라온 다양한 청과물과 갓 구운 옥수수빵, 향긋한 꿀 등을 파는 단골 정육점과 상점이 있는 야외 시장으로 향한다. 디자이너, 사업가, 음악가, 예술가, 가톨릭 수녀 등 각양각색의 구성원들은 중앙 광장에서 서로를 스쳐 각자의 일터로 간다. 젊은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관계없이 어느 시간이든 라키야rakija(독주인 스넵스schnapps와 비슷)와 카바kava(매우 진한 커피) 한잔을 즐기고자 테라스로 모인다. 이른 저녁에는 이웃을 만나기 위해 도심 거리와 광장을 산책하는 가족들로 북적인다. 유럽 사람들의 삶의 진수가 바로 이곳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디나르알프스Dinaric Alps 사이에 끼어 있고 아드리아해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자그레브는 이 빼어난 지형에서 비롯된 특별함이 있다. 도시의 힘은 지중해의 분위기와 슬라브족 대륙의 기후가 만나서 생긴 유럽 감성의 집합체에서 온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의 반짝이는 해안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은 80만 명이 거주하는 이 도시를 그저 경유지로 지나치기 일쑤다.
그러나 크게 상관없다. 잠시 체류하는 여행자들은 이곳이 자국민을 챙기는 도시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될 것이다. 광장과 거리에는 카페가 즐비한데, 이는 퍼저Purger(자그레브 시민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별명)들이 오랜 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여유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박물관과 갤러리에는 현지인들의 취향에 걸맞은 세계적인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고, 도시의 무대에서는 안목 있는 관객을 위한 공연이 펼쳐진다. 관광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도시가 아니며, 그러한 점이 헤어나오기 힘든 매력을 만든다. 이곳을 여행하는 핵심은 현지 생활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사바강Sava River에서부터 북쪽으로 디나르알프스 기슭까지 이어진 자그레브의 구역들은 독립국가와 네오바로크 시대 양식부터 1950년대의 브루탈리즘과 그 이후 양식에 이르기까지의 다채로운 건축물을 자랑한다. 하지만 자그레브의 풍경을 지배하는 것은 봄이 되면 만개하고 연중 내내 축제의 장이 되는 수많은 공원과 정원 그리고 푸른 언덕이다. 편하고 자연스러운 매력의 자그레브는 여행자의 마음을 얻으려 지나치게 애쓰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오히려 마음을 내어준다.
스며들다
19세기 네오클래식 양식의 자그레브 중앙역Glavni kolodvor에서부터 반옐라치치 광장Ban Jelačić Square까지 느긋하게 산책을 하며 도시에 스며들 준비를 해본다. 광장에 도착했다면 도니 그라드Donji Grad 또는 로어 타운Lower Town으로 불리는, 지역을 둘러싼 공원과 녹지 구역 ‘그린 호스슈Green Horseshoe’를 따라 걷자. 전차가 달리는 길 옆을 따라 걷다 보면 오리엔트 급행열차 승객을 수용하기 위해1 925년에 지어진 아르데코풍의 에스플라나드 자그레브 호텔Esplanade Zagreb Hotel을 지나게 된다. 호텔 옆에 들어선 자그레브식물원에서는 1만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라며 도심 속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산책의 마지막 구간은 즈리네바츠공원Zrinjevac Park을 가로지르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형형색색의 꽃밭에 둘러싸인 작은 무대에서 라이브 음악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visitzagreb.hr/theme/lenuci-horseshoe
성모 승천 성당Cathedral of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으로도 불리는 자그레브 대성당은 자그레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 스폿이다. 도시가 처음 세워졌던 11세기 주교 관할 지구인 캅톨Kaptol 위에 지어졌으며, 1880년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신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지난 1000년 동안 건설된 건축물 중 하나다. 높이 108m의 첨탑과 온몸에 전율을 흐르게 하는 6100여 개 파이프가 설치된 오르간, 그리고 시복된 알로지제 스테피나크 추기경Cardinal Alojzije Stepinac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visitzagreb.hr/zagreb/zagreb-cathedral
역사적으로 캅톨이 도시의 영적인 역할을 했다면, 자그레브의 언덕 위에 있는 어퍼 타운Upper Town의 그라덱Gradec은 무역을 담당했다. 여전히 사람이 직접 작동해서 골목을 밝히는 가스 가로등이 있는 그라덱의 자갈길을 걸으면 중세시대의 정신이 느껴지는 듯하다. 13세기 도시로 통하는 네 개의 관문 중 하나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스톤 게이트Stone Gate를 지나면 이윽고 크로아티아 국회의사당에 이른다. 여기서 조금 더 거닐다 보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성 마르코 성당St Mark’s Cathedral과 마주하게 된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재된 이 걸작은 정교한 조각상과 자그레브와 옛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휘장을 그려낸 알록달록한 타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visitzagreb.hr/zagreb/upper-town
짧게 줄여 트칼차Tkalča로 불리는 트칼치체바 거리Tkalčićeva Street는 한때 캅톨과 그라덱 사이에 흐르는 개울이었다. 오늘날, 이 물길은 보행자 전용 산책로이자 자그레브 사교의 중심가다. 길 옆에 줄지어 선 파스텔 색감의 이층 건물들은 분위기 있게 간단한 음식과 맥주를 즐기기 좋은 장소가 되고, 버스킹 연주자들과 저녁 산책을 나온 시민들, 쇼핑객과 시끌벅적한 모임의 배경이 된다. visitzagreb.hr/zagreb/tkalciceva-street
강 남쪽에 있는 현대미술관은 1만2000점 이상의 방대한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멀티미디어 설치미술과 상상력 그리고 사회적 비평의 집합소라 불린다. 17세기에 지어진 어퍼 타운의 옛 수도원에 자리한 자그레브시립박물관Zabreb City Museum은 선사시대 이후 도시의 역사를 탐색하는 한편, 인근에 있는 자그레브 실연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에는 실연을 겪은 이들이 기부한 가슴 아프고 달콤하고 재미난 사연을 담은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visitzagreb.hr/category/museum
이렇게 도보로 크로아티아 수도를 파악했다면, 맑은 날에 1035m 높이의 메드베드니차Medvednica 산(‘곰 산’을 뜻함)에 올라 슬로베니아, 헝가리, 아드리아해까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자그레브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탁 펼쳐진 시골이 지척에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접근성이 좋은 도시 북쪽에 있는 이 산 정상에는 하이커들을 위한 모든 난이도의 하이킹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pp-medvednica.hr
예술 애호가들의 도시
토요일 아침이 되면 자그레브 전체가 일찍 일어나서 한껏 치장하고 보고 보이기 위해 시내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이 주말의 활보를 퍼저들은 스피카špica라고 한다. 가장 멋진 옷을 꺼내 입고 일리카 거리Ilica Street를 뽐내며 걷다가 도시에서 가장 맛있는 카바(커피)를 마시러 엘리스 카페Eli’s Caffe로 가자. 카페 운영자이자 로스터인 니크 오로시Nik Orosi가 커피 한잔을 예술로 승화시켰으니까. eliscaffe.com
그런 다음엔 그리치 터널Grič Tunnel을 통과해 예술적 감수성을 충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안전장치의 일환으로 건설된 지하 터널로 지금은 미술 전시장 역할을 한다. 아트 공원 입구1(여러 출입구가 있음)로 나오면 어퍼 타운과 로어 타운을 연결하는 자그레브 케이블카Zagreb Funicular와 매일 정오에 대포를 발사하는 로트르슈타크 탑Lotrščak Tower인 자그레브의 유명 랜드마크 두 개를 마주하게 된다. visitzagreb.hr/zagreb/gric-tunnel
뿐만 아니라 자그레브는 공연 애호가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덕분에 도시의 여러 공연장들은 매일 밤 관객들로 가득 찬다. 그중 19세기에 지어진 네오바로크 양식의 크로아티아 국립극장Croatian National Theatre은 연극, 발레, 오페라 등을 선보인다. hnk.hr, gavella.hr, komedija.hr
멋쟁이들
자그레브 사람들은 멋쟁이들이다. 그런 멋쟁이들의 아지트 같은 크로아타Croata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점이다. 이곳에는 크로아티아에서 수 세기 전에 발명된 화려한 무늬의 넥타이 같은 매우 현지인스러운 장신구를 구매할 수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스카프도 구경할 수 있다. croata.com
그런 다음 그라덱 지구의 스톤 게이트와 성 마르코 성당 사이에 위치한 부티크 도라Dora에 들러보자. 이곳 주인 도라 루비치Dora Rubić는 코트와 원피스 위주의 맞춤 여성복을 제작하는데, 그녀가 캐시미어와 알파카 울 같은 천연 소재만을 사용해서 제작하는 옷은 연간 200벌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dora-zagreb.com
현지인처럼 쇼핑하고 싶다면 자그레브의 야외 시장으로 가야 한다. 반옐라치치 광장 뒤에 있는 계단을 올라 돌락시장Dolac Market으로 가면 방대한 현지 지식으로 무장한 상인들이 온갖 과일과 채소, 치즈, 견과류, 꿀, 주류 등을 빨간 파라솔 아래에서 판매한다. 브리티시 광장British Square을 향해 일리카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일요일 아침마다 골동품 판매상들이 장신구부터 유고슬라비아 시절의 기념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판다. visitzagreb.hr/zagreb/dolac-market, zagrebinfo.org/what-to-do
자그레브의 풍미
돌락시장에 들어서면 오래된 브런치 레스토랑인 브룸 44가 미식가를 맞이한다. 이곳에서는 세련됨과 정통적인 접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점은 현지 도예가가 만든 그릇에 담아낸 비건 요리가 환상적으로 맛있다는 것이다. Dolac 8, 10000.
라리&페나티Lari & Penati는 인근의 돌락시장에서 사온 재료로 크로아티아-미국 퓨전 음식을 자유롭게 만들어낸다. 여기에 훌륭한 와인 리스트는 덤이다. 양념한 농어 샐러드와 바비큐 돼지갈비 요리를 포함한 메뉴는 실패할 수가 없다. Petrinjska ul. 42A, 10000
파인다이닝의 진수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두브라브킨 퍼트Dubravkin Put가 제격이다. 중앙 광장에서 조금 걸어가다 보면 투스카낙 숲공원Tuškanac Forest Park 내의 휴양지 같은 레스토랑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지 와인과 함께 크로아티아 식재료로 만든 소박하지만 고급스러운 음식을 선보인다. 식물로 꾸민 테라스 안팎에 마련된 새하얀 테이블보가 덮인 자리에서 참치 타르타르 같은 해산물 특선 요리나 저온으로 오랜 시간 조리한 송아지 볼살 요리 등을 즐길 수 있다. dubravkin-put.com
나이트 라이프
크로아티아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보른스테인Bornstein은 일종의 순례지와도 같다. 1900년에 문을 연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숍으로 성당에서 북쪽으로 몇 분 거리에 위치한다. 크로아티아의 여러 테루아의 특징을 지닌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등 다양한 와인을 비롯해 치즈와 와인 페어링 그리고 와인 테이스팅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bornstein.hr
고급 칵테일 바 카브카즈Kavkaz는 자그레브의 특정 세대를 위한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을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한 바는 한때 인텔리를 위한 카페로 통했다. 쇠퇴기를 걷다 2018년에 개조되면서 다시 한번 자그레브에서 가장 분위기 좋은 장소가 됐다. 휴고 스프리츠Hugo spritz(스파클링 와인, 엘더플라워 시럽, 라임, 민트를 섞은 칵테일)를 주문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자. kavkaz.hr
그리치 터널 옆에 위치한 메스니츠카 문화센터Kulturni Centar Mesnička에서는 재즈, 힙합, 블루스, 펑크 등 여러 장르의 다양한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특히 공연장 내부의 바는 여러 종류의 라키야를 구비하고 있으니 다음 날 아침 중요한 약속은 잡지 않는 편이 좋겠다. Mesnička ul. 12, 10000
하루의 끝
호텔 프레지던트 판토브차크Hotel President Pantovcak는 10개의 객실이 각기 다르게 현대와 고전 미술품으로 꾸며진 4성급 부티크 호텔이다. 고풍스러운 라운지와 정원 테라스만으로도 가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브리티시 광장에서 도보 5분 거리, 중앙 광장에서도 15분 거리에 위치해 도보 여행자에게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president-zagreb.com
에스플라나드는 단순한 호텔이 아니라 자그레브 역사의 일부이자 랜드마크로서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에스플라나드 자그레브 호텔Esplanade Zagreb Hotel은 1920년대 오리엔트 급행 열차의 승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한 200개 객실을 갖춘 5성급 아르데코풍 호텔로 유행과 여행 트렌드가 바뀌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도시의 명소로 건재하고 있다. esplanade.hr
호텔 리퍼블리카Hotel Republika는 도심의 투스카낙 숲 가장자리에 자리한 객실 7개를 갖춘 스테이다. 도시와 시골을 모두 여행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크로아티아 사냥협회가 이 아파트형 호텔을 소유한 터라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주 맛있는 사슴고기와 멧돼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hotelrepublika.hr
TRAVEL WISE
항공편
인천공항에서 자그레브까지는 경유해서 가야한다. 아시아나항공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크로아티아 항공편을 이용하면 18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에어프랑스 이용시(KLM네덜란드항공 등 공동 운항) 암스테르담과 파리를 경유해 21시간 40분 소요된다. flyasiana.com, airfrance.co.kr
현지 교통편
공항에서 도심까지 이동할 때는 볼트와 우버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bolt.eu, uber.com
규모가 작고 길이 복잡하지 않은 자그레브는 도보 또는 자전거로 다니기 좋다. 크로아티아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 외국인 여행자들은 자전거 대여와 가이드가 동행하는 투어를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블루 바이크 자그레브에서 운영하는 2시간 30분짜리 자그레브 하이라이트 투어가 1인당 약 5만2000원부터다. zagrebbybike.com
도시를 더 오래 구경하고 싶다면 전차가 제격이다. 편도 이용 요금이 약 700원 정도로 저렴하다.
방문 최적기
자그레브는 기후가 온화해 연중 내내 여행하기 좋다. 4~6월, 9~11월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날씨지만(평균 20°C), 12월부터 1월까지 도시에서 열리는 강림절 축제도 매우 볼만하다. 현지인들이 해변으로 향하는 여름에는 도시가 텅 비어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지만, 몇몇 상점은 휴업으로 문을 닫을 수 있다. adventzagreb.hr, infozagreb.hr/events
더 많은 정보
자그레브관광청 infozagreb.hr
자그레브 방문 visitzagreb.hr
여행 방법
영국항공 홀리데이스BRITISH AIRWAYS HOLIDAYS에서 2박 여정의 항공편과 캐노피 바이 힐튼 자그레브 시티센터의 객실이 포함된 상품을 1인당 약 24만원부터 제공한다. b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