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AWAKENING YOUR SOUL
모험가를 매혹하는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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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3월호

폴리네시아의 신 마우이Maui가 마법 고리로 뉴질랜드를 태평양에서 건져낸 이후로 용감한 모험가들은 이 나라의 환상적인 화산과 피오르, 그리고 숲의 정령에 끊임없이 매혹되었다. 혼돈의 세계가 사그라들고 뉴질랜드의 야생이 자연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지금. 세계적인 도시와 마을들이 활기를 되찾고, 새롭게 경험하는 마오리족의 자긍심 가득한 유산은 이곳의 단단한 과거와 빛나는 미래를 탐닉하도록 이끈다. 그 중심에는 ‘우리 모두는 땅, 바다, 하늘의 수호자’라는 마오리족의 가치인 카이티아키탕아kaitiakitanga가 자리한다. 그러니 하이킹화를 단단히 동여매고 ‘길고 흰 구름의 땅’ 아오테아로아Aotearoa의 대자연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남섬의 로이스피크Roy’s Peak에서 와나카 호수 너머 전망을 감상하는 하이커들.

바이킹
로토루아에서 모드 전환하기

안장에 올라 화카레와레와 숲Whakarewarewa Forest의 탐험을 시작해본다. 뉴질랜드 최대의 간헐천과 빽빽하게 치솟은 삼나무들의 풍경 사이를 굽이굽이 미로처럼 통과하는 산악자전거 트레일이 펼쳐져 있다.

여행객들이 산악자전거로 로토루아 숲을 탐험한다.

탁 마투Tak Matu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부모님이 200만 년 된 찜기로 저녁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모님은 매일 아침 일터로 향하는 길에 로토루아 외곽에 있는 지열 온천을 가로지르면서 땅속 깊은 곳에서 분출되는 수증기 위쪽에 매달아놓은 나무 상자에 그날 저녁때 먹을 음식 재료를 넣어뒀다고 한다. 이후에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다 익은 음식을 꺼내어 가져갔다는 것이다.
“유황의 열기로 조리된 음식에서는 훈연의 풍미가 느껴졌어요.” 탁이 전망대에서 온천을 내려다보며 몇 마디 덧붙인다. 간헐천에서 짙게 올라온 하얀 수증기가 웬일인지 우리 앞에서 로토루아 마을 위로 훅하고 흩어진다. 그 순간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간헐천인 포후투Pohutu가 분출하고 마치 화산 주전자인 양 후끈한 증기가 하늘로 내뿜어진다. 바로 직전까지 회색 구름이 온통 시야를 가렸던 걸 생각하면 이런 광경을 마주한다는 건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변덕스러운 날씨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늘은 바람과 추적추적 내리는 비(탁은 이 비를 ‘천국에서 내리는 마나manna’라고 부른다) 덕분에 마을을 감싸는 썩은 달걀 냄새가 옅어졌으니까.
이 장면은 로토루아 끝자락의 화카레와레와 숲에서 내가 마주한 첫 절경이다. 수백만 명의 사이클리스트들이 매년 캘리포니아가 원산인 삼나무 아래에서 페달을 밟기 위해 이 숲을 찾아오지만 정작 이곳에 켜켜이 쌓여온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수십 년에 걸쳐 지역 부족이 반환을 주장한 끝에 2009년 마오리족에게 땅의 소유권이 되돌아갔고 숲의 이름도 바뀌었다. 이제 이위iwi(부족)와 정부 이해관계자들, 숲 전문가들이 공원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숲을 가로지르는 여러 갈래의 자전거와 하이킹 길은 아웃도어 애호가들이 직접 설계한 루트다.
“이 숲과 그 안쪽에 난 길 덕분에 저희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게 됐죠. 부족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문화를 공유하는 일이 지난 수년 동안은 불법이었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이제는 마오리족 고유의 것이 멋지게 여겨지고 있어요.” 테 아라와 와카Te Arawa Waka 부족 사람인 탁이 말한다.

로토루아의 테 화카레와레와 계곡의 간헐 온천.

탁은 친형과 함께 숲 입구에서 자전거대여점 마운틴 바이크 로토루아를 운영하고 있다. 자전거를 빌리거나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누구든 화카레와레와 숲을 무료로 탐방할 수 있지만, 오늘 탁은 나를 위해 특별히 개인 투어를 해주기로 했다. 전기자전거에 안장을 얹고 전동 제어 장치를 조작하는 방법을 배운 다음 숲으로 향한다.
갈색 솔잎이 카펫처럼 깔린 평평한 땅이 점점 더 구릉진 경사로 바뀌더니 숲속 더 깊숙이, 더 높이 이어진다. 탁은 중간중간 잠시 멈춰 서서 마을을 공격한 괴물 같은 새 여인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귀족 연인에 대한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진흙 웅덩이와 모든 나무, 심지어 나무 울타리에도 와카파파whakapapa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와카파파를 알고 나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탁은 마오리 문화에 대한 안내문을 공원 곳곳에 설치해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공유할 계획이라고 알려준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탄 우리는 비에 젖은 흙냄새를 맡으며 삼나무와 소나무 숲 사이의 흙길을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지나간다. 그 옆으로 거대한 은고사리가 흔들린다. 최근에 개간한 소나무 농장 주변을 돌아 다시 들어간 숲에선 저 멀리 햇살에 반짝이는 로토이티 호수Lake Rotoiti가 보인다.
내리막을 달리면서 얻은 힘과 자전거의 전력 덕분에 나는 안장 위에서 그저 방향만 잡을 따름이다. 이런 장점 덕분에 최근 몇 년 새 전기자전거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탁이 일러준다. 물론 그는 힘든 도전을 가능케 하는 일반적인 자전거를 선호하지만 말이다. 숲 끝자락에 12개의 야외 자쿠지를 갖춘 스파 겸 카페인 시크릿 스폿에서 일정을 마무리할 때까지도 여전
히 비가 내렸다. 수영복을 챙기지 않았던 나는 아쉬운 대로 무거워진 다리를 야외 풀장에 담근다. 눈앞에 펼쳐진 녹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성당처럼 고요한 나무가 나를 에워싸고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 사이로 하늘에서는 마나가 떨어진다.


마운틴 바이크 로토루아에서 어린이용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와 전기자전거를 대여한다. 한나절 대여료는 49뉴질랜드 달러 (한화 3만8000원)부터. 요청 시 가이드와 함께 투어가 가능하다. 인근에 위치한 시크릿 스폿에서 성인 1인당 1시간에 39뉴질랜드 달러 (한화 약 3만원)부터 자쿠지를 이용할 수 있다. mtbrotorua.co.nz, secretspot.nz

헬리하이킹
알프스의 얼어붙은 심장부를 탐험하라

프란츠요제프 빙하Franz Josef Glacier는 서던알프스에 있는 3000여 개의 빙하 중 가장 접근성이 좋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숨어 있는 이 얼음 지대를 가이드와 함께 하이킹하다 보면 뉴질랜드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최고의 위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왼쪽부터) 헬리콥터가 프란츠요제프 빙하 착륙장에 접근하고 있다. 수석 가이드 필 크로스랜드가 빙하에 도착한 하이커들에게 안전 장비를 건네고 있다.

헬리콥터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공중으로 부양하자 윙윙대던 소리가 굉음으로 변한다. 창밖을 내다보니 헬리콥터의 그림자가 금세 밭과 강바닥과 우림지대 위를 날아가는 검정파리처럼 작아진다. 빽빽한 숲이 빙퇴석 평야로 이어지더니 이내 프란츠요제프 빙하가 나타난다. 위에서 본 빙하는 시간 속에 얼어버린 쓰나미 같다.
목적지에 착륙했다. 헬리콥터는 우리를 내려준 뒤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다시 날아오른다. 잠시 적막이 흐른다. 사방을 에워싼 설산이 비탈 아래로 이어진다. 그 계곡을 계속 따라가면 우리가 방금 출발해서 온 와이우Waiau 마을이 나온다. 산 너머로 태즈먼해Tasman Sea가 반짝인다. 맑은 날이지만 기온은 영하 6°C까지 내려간 상태고 빙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손가락을 얼어붙게 한다.
뉴질랜드 남섬의 서쪽 면을 따라 644km 길이로 이어진 서던알프스에는 산맥 사이 사이에 약 3000개의 빙하가 형성돼 있다. 전문 산악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은 빙하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반사회적 빙하와 달리, 서쪽 해안에서 불과 17.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발 299m의 프란츠요제프는 지구상에서 가장 접근성이 뛰어난 하이킹용 빙하로 알려져 있다. 빙하 위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2017년부터 초보 여행객들을 크레바스 사이로 안내한 산악 가이드 필 크로스랜드Phil Crossland이다. 그는 오늘이 팬데믹으로 뉴질랜드의 관광업이 멈춘 이후 프란츠요제프에 다시 돌아온 첫날이라고 말한다. 다행히도 필은 지난 몇 달간 남극 대륙에서 과학자들에게 현장 생존법을 가르치다 돌아왔다고 덧붙인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카라비너 등산용 고리를 고정한 다음, 좁은 도랑 사이를 걷고 얼음 계단을 올라 빙하 등반을 시작한다. 줄무늬가 생긴 얼음벽이 양옆에서 좁혀오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사라지고 탁 트인 시야로 아름다운 빙하가 펼쳐진다.

한 무리의 하이커들이 탐험에 나선다.

수천 개 얼음 조각이 발밑에 밟힌다. 필과 같은 산악 가이드들이 이미 아침에 곡괭이로 얼음을 깎으면서 나아간 흔적이다. “지난 며칠 동안 비가 많이 내려서 기존 트레일이 유실됐어요. 그래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했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파란 얼음 터널에서 잠시 쉬는 동안 필이 설명한다.
강수량이 많은 편에 속하는 프란츠요제프에는 매년 5m 가량 비가 내린다. 자주 내리는 눈이 가파르고 좁은 계곡에 떨어지면서 빙하는 매일 4m씩 위로 움직인다. 그래서 표면이 항상 변한다. “마치 컨베이어벨트가 언덕 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과 같아요. 물론 이곳에는 더 크고 빠른 빙하들이 있지만 온대강우림에서 멈추는 일은 드물죠.” 필이 잠시 말을 끊는 듯하더니 이어서 말한다. “솔직히 빙하는 더 이상 강우림에 있지 않아요.”
그는 산 아래를 선명하게 가로지르는 선을 향해 계곡 아래를 가리킨다. “예전에는 빙하가 저기에서 끝났어요.” 산 아래 빙하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새로이 식물이 자라고 있다. 빙하는 환경적 요인에 따라 자연적으로 커지다 작아지기를 반복하지만, 항공 측량 기술을 사용한 빙하학자들은 프란츠요제프 빙하가 극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12년 이전에는 마을에서 곧바로 하이킹을 시작해서 얼음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해야만 빙하를 안전하게 하이킹할 수 있다.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뉴질랜드의 빙하는 계속 줄어들 것이며,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서던알프스에 있는 얼음의 80%가 녹아 사라질 것이다. 마음이 무겁지만, 막상 이곳에 서니 눈앞의 아름다운 장관에 홀리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지금의 경험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두 시간 동안 얼음 지대를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멀리서 헬리콥터가 오는 모습을 보면서 필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건 헬리콥터를 놓치는 것이라고 농담조로 말한다. 대신, 빙하에서 캠핑을 하며 떠오르는 태양 빛에 산이 옅은 분홍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
“여기서 일하다 보면 빙하에 대한 매력이 줄어들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물어봐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빙하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행운아라고 여겨요.” 필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하이킹
산의 목소리를 발견하다

에그몬트국립공원Egmont National Park 중심에 우뚝 선 화산, 타라나키산Mount Taranaki은 2017년에 법적으로 ‘인간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제 트레킹을 통해서 이 신성한 산은 하이커들에게도 안식처가 될 것이다.

마오리족 문화에서 얼굴 문신은 그 사람의 계보와 유산을 나타내는 신성한 표식이다.

데이비드 로저David Roger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얼어붙었다. ‘더 퍼퍼The Puffer(숨을 크게 내쉬는 모습)’라는 아주 적절
한 이름을 가진 가파른 트레일 위에 도착했을 때였다. 숨을 돌린 데이비드가 타라나키산의 동쪽 면에 위협적으로 서 있는 절벽을 가리킨다. “언젠가 저곳에 제 유골을 뿌릴 거예요.”
빼어난 아고산대 침엽수림 혹은 지평선을 향해 뻗어나간 논밭의 경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데이비드는 다른 뜻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저를 구성하는 세 개 부족의 땅이 만나는 경계선이거든요. 제가 죽어서도 모두 지켜보고 싶어요.” 그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한다. 하이킹을 시작할 때부터 따라온 구름이 갑자기 주위를 에워싸더니 절벽이 사라지고 시야가 가려진다. 다시 트레일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서 황금색 잔디와 키 작은 나무 사이의 붉은색 능선을 따라 걷는다. 무려 50년의 현장 경험으로 다져진 선임 레인저 데이비드는 이 트레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이킹 도중에 그는 식물의 이름과 의학적 효능에 관해서 일일이 설명한다. 2518m 높이의 휴화산은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날씨가 수시로 변한다. 남섬 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그몬트국립공원 정중앙에 고고하게 서 있는 타라나키산은 영적으로, 또한 법적으로도 하나의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이 국립공원은 1900년부터 공식적으로 보존되어 왔지만, 뉴질랜드 정부는 그보다 한 단계 나아가 2017년 12월, 인근 8개 마오리 부족과 협정을 맺으면서 타라나키산을 ‘사람’으로 지정했다. 우연히도 내가 방문한 날은 부족 원로들과 보존단체 관리들이 모여서 산을 대변해 주요 결정 사항을 논의하는 날이었다.
“마오리족은 모든 것에 생각과 감정을 가진 마나manna가 깃들어 있다고 믿어요. 산도 그렇죠. 저희는 산을 사람으로서 우러러봅니다.” 데이비드가 설명한다. 하이킹 후에 만난 나가루아히네Nagaruahine 부족 원로인 필 누쿠Phil Nuku는 자기 부족은 이 산을 와나우whanau(가족)로 여긴다고 말한다. 우리가 걷는 트레일 뒤에 아이들에게 축복을 비는 의식을 행하는 신성한 우물이 숨어 있다고도 덧붙인다. “종교를 믿지 않아도 이곳에 오는 여행자들은 내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돼요. 그게 바로 영적인 순간이죠.”
타라나키 알파인 클럽Taranaki Alpine Club이 소유한 타후랑기 로지Tahurangi Lodge에 도착했을 때 나와 데이비드 발밑에 처음으로 눈이 밟혔다. 로지 문이 잠겨 있어 우리는 밖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지나가는 하이커들과 인사하며 트레일 정보와 케이크를 나눈다. 아직 한겨울이지만 산에 오르고자 뉴질랜드 전역에서 찾아온 열혈 하이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옷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새로 조성된 트레일을 걷기 시작한다. 나무 계단을 따라 언덕 아래로 내려가자 힘겹게 등반하면서 뭉쳐진 다리에 무리가 덜 가는 듯하다. 트레일은 거칠게 깎인 안산암과 오래된 이끼로 덮인 도랑을 따라 이어진다. 종종 자갈길이 눅눅한 과자 같은 질감으로 변할 때가 있다.

에그몬트국립공원의 타라나키산 아래에서 해 질 녘 하이킹하기.

트레일 개발 담당자인 데이비드는 새로 정비된 구역을 유심히 살피면서 만족스럽다는 듯 작은 소리를 낸다. 이번 재정비는 인근의 유명한 통가리로 크로싱에 버금가는 39km 길이의 타라나키 크로싱 코스를 개발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그가 설명한다. 2023년 5월에 완공 예정인 코스는 아직 미완 상태다. 우리는 몇 년 전 눈사태로 구간 일부가 유실되어 바위와 돌무더기만 남아 있는 지점에 도착한다. 케이블 교량이 곧 세워질 예정이지만 지금으로선 잔해를 밟고 내려가서 반대쪽으로 올라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바위를 오르던 중 드디어 바람에 의해 구름 사이에 구멍이 생겨 타라나키 산의 설봉이 오후 햇살에 반짝인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며 길을 안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동굴 탐험
와이토모에서 블랙워터 래프팅

마오리족의 전설과 반딧불로 가득한 와이토모 동굴Waitomo Caves에서는 지하 집라인을 타고 물길 아래로 하강한 뒤, 석회석 터널을 통과해 스릴 넘치는 래프팅을 하는 모험의 세계가 펼쳐진다.

와이푸 동굴은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또 다른 인기 있는 반딧불 체험장이다.

순식간에 땅이 나를 삼켜버린다. 발이 바위 이곳저곳에 부딪히다 어느 순간 암벽이 사라지고 나는 뻥 뚫린 동굴 속에 들어와 있다. 자연광이 전혀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몸을 천천히 내려 두 발로 땅을 더듬는다. 조심스러운 하강은 곧바로 깜깜한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집라인으로 이어져, 정신이 번쩍 드는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동료 탐험가들이 착용한 헤드램프의 불빛이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며 밝아진다. 잠수복을 입고 헬멧과 안전벨트를 착용한 채로 바위에 앉아 차를 마시는 이들은 마치 소풍 나온 네이비실 특수부대원 같다. 오클랜드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북섬의 와이카토 지방에서 흔히 보는 연한 석회암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동굴 체험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와이카토의 동굴은 3000만 년 전 해양 동물의 화석이 퇴적암으로 굳어지면서 물속에 형성된 것이다. 지구 표면의 지각판이 움직이고 화산이 폭발하면서 해수면 밖으로 나온 석회암은 산성비를 맞으면서 침식되고 도랑과 동굴 그리고 절벽이 됐다. 그렇게 해서 생긴 1000여 개의 동굴 중에서 300여 개만이 지도에 표시됐고 나머지는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 지역의 마오리족은 동굴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지하 세계로 가는 문이라고 믿었기에 경계했어요.” 가이드 로건 돌Logan Doull이 설명한다. “빛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 혼령을 건드리기보다는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요.”
마오리 족장 타네 티노라우Tane Tinorau는 1887년 아마 줄기로 만든 배를 타고 촛불에 의지해 동굴에 들어간 최초의 탐험가다. 그로부터 수많은 탐사를 통해서 동굴 벽화나 뉴질랜드 고유종으로 멸종된 에뮤와 유사한 모아moa의 유골을 포함해 여러 과학적·문화적 발견이 이뤄졌다.

와이토모 동굴로 이어진 나선형 계단.

“동굴 벽화와 유골이 발견되고 나서야 뉴질랜드에 사람이 도착한 이후 벌어진 야생동물 멸종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됐습니다.” (로건) 차를 다 마시고 나는 바위에서 내려와 지하 강 위에 떠있는 고무 튜브에 오른다. 어둠 속으로 떠내려가는 사이, 빛이 차단된 채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깨어난다. 처음에는 축축한 흙냄새와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더니, 점차 시야가 적응되면서 새로운 세계가 머리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수백 개의 점멸하는 작은 빛. 이내 동굴을 흐린 초록색으로 밝힌다. 이 작은 별들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몸에서 빛을 내뿜는 토종 반딧불이다. 자세히 살피니 먹이를 잡기 위해 거미줄처럼 쳐놓은 끈적이는 가느다란 줄들이 보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반짝이는 빛을 감상하며 튜브를 탄다. 래프팅의 끝, 모든 게 갑자기 끝난 것 같아 어안이 벙벙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점점 좁아지는 동굴 사이를 걷다가 바위 속 틈새에 멈춘다. “겨우 기어갈 만큼의 폭입니다.” 우리의 가이드가 웃으면서 말한다.
손의 감각이 사라질 만큼 차가운 물속을 네발로 기어간다. 드디어 동굴이 다시 열리고 위에 있는 폭포의 작은 구멍을 통해서 내리쬐는 햇살이 내부를 밝힌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기어오르자 누군가 내 손목을 잡고 지하 세계에서 끌어올려 준다. 햇살 아래 앉아 뜨거운 토마토수프를 먹으며 문득 천국은 이것의 절반만큼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디스커버리 와이토모에서 운영하는 5시간짜리 블랙 아비스Black Abyss 동굴 체험은 1년 내내 즐길 수 있다. 반딧불은 여름(12~3월)에 가장 많다. 12세부터 참여 가능하며, 체험 비용은 1인당 265뉴질랜드 달러(한화 약 21만원)부터다.

waitomo.com

글. 저스틴 메네구치JUSTIN MENEGUZZI
사진. 게티, 조엘 맥도웰, AWL 이미지스, 알라미, 저스틴 메네구치, 닉 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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