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는 세계를 연결하는 식재료다. 고대 무역상들은 씨앗, 과일, 뿌리, 나무껍질 등을 지구 반대편으로 옮기기 위해 끊임없이 긴 여정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향신료의 독특한 풍미를 음미하며 여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때로는 과거 여행을 했던 곳으로, 때로는 꿈꾸었던 장소로, 그리고 어떤 음식의 기원을 향하여. 바닐라, 파프리카, 올스파이스, 그린 카다멈, 시나몬, 산초, 사프란을 찾아 떠난 세계 여행이 시작된다.
1. 바닐라
상투메프린시페
내내 정성을 쏟아야 하는 바닐라 재배는 고된 노동이 수반되지만, 아프리카의 섬나라에 있는 바닐하 직원들은 기꺼이 즐기는 마음으로 귀한 작물을 수확한다.
글. 제즈 프레든버그JEZ FREDENBURGH, 레이철 레이들러RACHEL LAIDLER
멕시코 열대우림에서 유래되고 아즈텍족이 코코아에 맛을 가미하기 위해 재배했던 바닐라vanilla는 오늘날 음식에 향을 내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인 동시에 사프란 다음으로 가장 값비싼 향신료다. 노동 비용 또한 가장 많이 투입되는 작물이지만, 실패 가능성도 높다. 가봉 해역에 있는 작은 섬나라인 상투메프린시페São Tomé and Príncipe에서는 이 어려운 재배를 해내기 위해 유럽에서 건너온 두 사람이 지역 농부들과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위험 요소를 줄인 바닐라 재배법을 개발하고, 섬사람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소득을 창출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상투메는 바닐라가 가장 잘 자라는 적도에 위치할 뿐 아니라, 영양분이 풍부한 화산토로 이루어져 이곳에서 자란 바닐라 열매는 고소하면서 캐러멜 향이 감돌며,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 열매보다 조금 더 꽃 향이 나고 은은한 맛이 있기에 요리와 디저트에 모두 사용 가능하다. 이탤리언 사업가 프란체스코 마이Francesco Mai와 개발학을 전공하고 있는 프랑스인 학생 줄리엣 도하르Juliette Dohar가 설립한 바닐하Vanilha는 현지 농부 30명과 함께 작업한다. 대를 이어 축적해온 농부들의 바닐라 재배 지식에 재배법을 향상시키는 최첨단 관찰 장비를 도입해서 작황을 개선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2019년 설립 이후 회사 규모는 해마다 커졌고 이제는 전 세계로 바닐라 열매와 바닐라 에센스 그리고 바닐라 럼을 수출한다.
“바닐라는 대량생산을 할 수 없으며, 품질과 인내심이 중요한 작물입니다.” 프란체스코가 설명한다. “꽃 한 송이가 한 개의 열매를 만들어내죠. 사람이 손으로 직접 가루받이를 해야 하는데 이게 아주 전문적인 기술이에요. 꽃이 개화해서 가루받이를 할 수 있는 2시간을 놓치면 열매는 결국 버려지게 되거든요.”
난초과에 속하는 바닐라는 가루받이를 멕시코에서만 서식하는 작은 벌에 의존하기에 재배가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요즘에는 마다가스카르와 타히티처럼 벌 서식지를 벗어난 지역에서 바닐라가 주로 재배되므로, 농부들이 손으로 꽃 하나하나를 직접 가루받이한다. 이 작업을 돕기 위해 프란체스코와 줄리엣은 1년 중 단 3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섬을 종횡무진 누빈다. 가루받이한 꽃에서 열매가 자라기까지는 6개월이 걸리는데, 열매가 아직 초록색일 때 수확한다. “열매를 나무에서 딴 뒤에 후숙 되지 않도록 뜨거운 물에 넣어 ‘죽이는’ 과정을 거칩니다.” 줄리엣이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런 다음 물기를 빼고 면보에 감싼 다음 나무 상자에 담아 50°C에서 48시간 동안 숙성시켜요. 이때 맛과 향이 생기게 되죠.”
숙성된 열매는 햇빛에 말린다. 그런데 이 시기는 상투메의 우기와 겹치기 때문에 까다로운 작업이 된다. 말린 열매를 다시 상자에 넣고 40°C에서 ‘땀 흘리듯’ 물기가 배어 나오게 한다. 마지막으로 어두운 방에서 건조한 열매는 향이 더 생기게끔 6개월에서 10개월 정도 보관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 어느 날 상자를 개봉할 때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죠. 바닐라 향이 폭발하기를요. 그 순간이 되어야만 비로소 바닐라가 잘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줄리엣)
vanilha.com
2. 파프리카
부다페스트
헝가리 음식과 파프리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부다페스트로 떠난 미식 여행을 통해 이를 확인해보자.
글. 캐롤라인 반팔비CAROLYN BANFALVI
헝가리의 유명 요리에서 강렬한 주황색과 독특하게 매콤한 맛을 내는 향신료인 파프리카paprika. 헝가리 음식과 파프리카만큼 한 가지 향신료와 이처럼 밀접하게 연관된 식문화도 드물다. 몇 가지 말린 고추를 갈아서 만든 파프리카는 에데스édes(달콤한)부터 시포스csipos(매운)까지 여러 단계의 매운맛으로 구분된다. 헝가리의 파프리카는 남쪽 지역의 세게드Szeged와 컬로처Kalocsa 마을을 중심으로 재배되며, 작은 식료품점부터 소규모 생산자들이 비닐봉지에 담아 킬로그램 단위로 판매하는 시장에 이르기까지 부다페스트 전역에서 구입할 수 있다. 최상품이 필요하다면 호디Hódi, 파프리카몰나르PaprikaMolnár 같은 믿을 만한 가족 생산자를 찾아보자.
16세기 무렵, 고추가 헝가리에 처음 소개된 이후로 파프리카는 헝가리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향신료로 자리매김했다. 파프리카의 향을 끌어올리려면 뜨거운 지방(헝가리에서는 주로 돼지비계를 사용한다)과 섞어야 하는데, 타거나 쓴맛이 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다른 재료와 섞기 전 잠시 가열해야 한다. 이는 구야시gulyás(굴라시), 푀르쾰트pörkölt(고기 스튜), 레초lecsó(채소 스튜), 파프리카시 치르케Paprikás csirke(파프리카 닭요리), 헐라슬리halászlé(생선 수프) 같은 수많은 헝가리 음식을 조리하는 첫 단계이며 맛의 깊이와 잊을 수 없는 매콤함을 더해준다.
푀르쾰트Pörkölt
흔히 구야시와 혼동되곤 하는 이 진한 고기 스튜는 파프리카를 듬뿍 넣어 짙은 주황색을 띤다. 고기 또는 버섯으로 만드는데, 달걀피로 빚은 만두나 보리 파스타, 감자를 더한다.
파프리카시 치르케Paprikás csirke
파프리카시 치르케는 고기육수에 닭고기와 양파, 파프리카를 넣어 만든 음식이다. 〈헝가리의 음식〉 저자인 조지 랭George Lang에 의하면, 파프리카시는 구야시, 푀르쾰트, 토카니tokány(피망 스튜)와 함께 헝가리를 대표하는 4대 요리이다. 푀르쾰트와 파프리카시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파프리카시는 먹기 전 사워크림을 넣고 저어준다는 점이다.
굴라시Goulash
가장 전형적인 헝가리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굴라시는 그만큼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굴라시를 스튜로 알고 있지만, 헝가리에서 굴라시는 분명 수프다. 정석대로 만드는 굴라시의 재료는 비교적 간단하다. 곱게 다진 부드러운 소고기와 넉넉한 양의 파프리카, 감자와 당근 몇 조각, 약간의 파스타, 양파를 넣어서 만든다. 길가의 작은 식당부터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까지 헝가리에 있는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화로에 무쇠 냄비인 보그라치bogrács를 올리고 뭉근하게 굴라시를 끓여 먹는 것은 헝가리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의 일상이며 이 상징적인 음식을 경험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호르토바지 펄러친터Hortobágyi palacsinta
펄러친터는 달콤한 소스를 뿌려 먹는 팬케이크다. 호르토바지 펄러친터는 고기로 만든 팬케이크로, 주로 닭고기나 송아지고기로 속을 채우고 파프리카크림소스를 뿌린다.
촐렌트Cholent
오랜 시간 끓여낸 이 든든한 콩 스튜는 금요일에 해가 지기 전(안식일에 불을 피우는 것은 금기시되기 때문에) 오븐에 넣고 밤새 낮은 온도에서 익혀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촐렌트는 토요일에 먹는 전통 유대인 음식이다. 나라마다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헝가리에서는 당연히 파프리카가 들어간다. 삶은 달걀과 거위 다리살 같은 고기를 곁들여 먹는다.
헐라슬리Halászlé
헝가리 어부의 수프를 만드는 조리법은 다양하지만, 모든 수프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파프리카를 많이 넣어 짙은 벽돌색이라는 점이다.
레초Lecsó
피망, 양파, 토마토, 파프리카를 훈제 베이컨 비계로 요리한 국민 음식이다. 주로 토마토와 피망이 제철인 초가을에 많은 양을 만들고, 구운 고기에 곁들여 먹는다.
3. 올스파이스
땅의 온기를 나누는 달콤한 열매.
글. 시비 라무타르SHIVI RAMOUTAR
선반에 놓인 여러 달콤한 향신료 중에서 풍부한 맛과 후추 특유의 매콤함, 그리고 시원한 나무 향을 선사하는 올스파이스allspice는 분명 돋보인다. 음식에 넣으면 따뜻한 흙내음을 더하기에 달콤한 요리뿐 아니라 감칠맛이 필요한 요리에도 잘 어울린다. 자메이카가 원산인 올스파이스는 섬의 원주민이 바비큐를 굽는 용도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이들은 올스파이스 열매가 자라는 피멘토pimento 나무의 나뭇잎과 가지를 태워서 고기를 훈연했다. 올스파이스는 자메이카 저크Jamaican jerk 같은 요리의 핵심 재료다. 화덕에 구울 때 이 향신료만의 독특한 나무 향과 달콤하고 매콤한 맛이 빛을 발한다. 한편, 다른 카리브해 레시피에서는 풍미를 끌어올리고 따뜻한 매콤함을 더하는 보조 역할을 한다. 에스코비치escovitch 생선 요리에 살짝 떨어뜨리거나 달콤한 빵에 가볍게 뿌린다. 이 향신료는 카리브해를 건너 스웨덴식 미트볼과 스칸디나비아식 청어 절임부터 미국의 호박파이와 모로코의 타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음식에서도 발견된다. 처트니와 케첩 등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소스를 만들 때도 사용된다. 때때로 좋아하는 음식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고구마를 구울 때 그 위에 올스파이스를 조금 뿌리자. 단호박과 늙은호박에 육두구 대신 넣어도 잘 어울린다. 새로운 맛에 도전하고 싶다면 사과와 잘게 찢은 닭고기를 넣은 부드러운 콜슬로에 넣어보자.
나는 편의상 열매 대신 가루로 된 올스파이스를 주로 사용하는데, 바비큐 양념을 만들 때는 열매를 볶은 다음 다른 향신료와 갈아서 쓴다. 이 특별하고 복합적인 향을 가진 향신료가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한다.
4. 그린 카다멈
인도
달콤하고 다재다능한 이 향신료는 스웨덴식 시나몬 빵만큼이나 따뜻한 차 한잔이나 닭고기 요리에도 잘 어울린다.
글. 안줌 아난드ANJUM ANAND
나는 살면서 항상 향신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복합적이면서도 독립적인 향을 지닌 향신료가 나를 맞아 주었다. 성인이 되고 인도 음식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이 마법의 재료를 항상 곁에 두고 있다. 인도 요리는 여러 지역 음식의 혼합체이지만,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것은 향신료에 대한 사랑이다.
수천 년 전, 의학적 효능을 고려해 향신료가 인도 음식에 처음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향신료는 본연의 뛰어난 맛과 소량만으로도 음식의 재료를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귀하게 여겨진다. 향신료를 다루는 식문화는 많지만, 인도만큼 다채롭게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인도에서는 50가지가 넘는 향신료가 재배되지만 일상적인 요리에 사용되는 종류는 손에 꼽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신료인 그린 카다멈이 그중 하나다.
매일 아침 그린 카다멈을 우린 차를 음미하며 그 진한 향으로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린 카다멈은 허브 향과 꽃의 달콤함 그리고 유칼립투스 같은 청량함이 뒤섞인 맛을 지니고 있다. 나는 커리를 만들 때 이 열매를 한두 개씩 꼭 넣곤 한다. 붉은 고기와 토마토를 넣거나 크림소스를 활용하는 등의 다양한 요리에 잘 어울린다. 인도의 대표적 혼합 향신료인 가람 마살라garam masala의 주재료이기도 한 카다멈은 재료 속에 녹아들어 음식에 신비롭고 복합적인 맛을 더해준다. 쌀의 섬세한 맛도 이것과 잘 어우러진다. 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는 카다멈 열매를 으깨어 따뜻한 우유에 넣어 주곤 하셨다. 마음에 활기를 더하는 동시에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디저트에 사용했을 때 카다멈의 맛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쓴맛이 없는 복합적인 맛이라 인도의 바닐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도가 카다멈을 이렇게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유일한 나라는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도 빵을 만들 때 카다멈을 여러 방법으로 사용한다. 긴 여정을 통해 북유럽에 정착하게 된 카다멈은 수많은 스웨덴인이 고향의 향이라고 느끼는 향신료가 됐다. 이제 요리할 시간이 되었다. 달콤한 당근 키르와 마살라 차이를 포함한 3가지 레시피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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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살라 차이masala chai
인도에 온 영국인들은 주전자로 우린 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셨다. 인도 사람들은 이와 다르게 냄비에 찻잎과 생강, 카다멈, 시나몬, 정향을 넣고 끓여 먹었다. 이렇게 만든 마살라 차이는 나만의 만병통치약이다.
2 신디 카다멈 치킨sindhi cardamom chicken
이 요리에는 다른 향신료도 들어가지만 그린 카다멈이 주인공이다. 카다멈의 달콤함은 후추와 조화를 이룬다.
3 당근 키르carrot kheer
강판에 간 당근을 우유에 조리한 디저트. 기ghee 버터에 볶은 건포도와 캐슈너트에 설탕과 카다멈 가루를 넣고 버무려 밤새 식히면 달콤한 디저트가 완성된다.
5. 시나몬의 세계
흔히 디저트 재료로 알려진 시나몬은 모든 국경을 넘어 추앙받는 매콤하고 짭조름한 요리의 핵심 재료다. 여기 시나몬이 들어간 5가지 요리를 소개한다.
글. 사라 바렐SARAH BARRELL
칼디요Caldillo
스페인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무어인으로부터 받은 시나몬을 멕시코에 가져온 이후 여러 멕시코 음식을 화려하게 탄생시켰다. 몰레 포블라노mole poblano 소스와 바르바코아barbacoa(양고기 석쇠 구이)의 주요 향신료로 쓰이는가 하면, 오렌지에 시나몬과 설탕을 넣고 조리해 소고기 스튜인 칼디요에 고명으로 올리면 고기의 감칠맛, 그린 칠리의 매콤함과 어우러져 맛의 균형을 이룬다.
하리라Harira
새콤하고 향긋한 모로코식 수프에는 토마토, 생강 그리고 신선한 허브가 가득 들어간다. 압력솥이나 큰 솥에 끓인 병아리콩과 렌즈콩은 시나몬(가루 또는 스틱)을 더해 조리하면 맛의 깊이와 따뜻함이 생긴다. 밥과 작게 썬 닭고기나 양고기 또는 소고기를 곁들여 라마단 기간에 첫 끼니로 먹으면서 필요한 칼로리를 보충한다.
파스티치오Pastitsio
라사냐를 든든한 음식으로 생각했다면, 아직 파스티치오를 먹어보지 못한 것이다. 넙적한 파스타를 겹겹이 포개어 구운 이 그리스 음식은 치즈 풍미 가득한 베샤멜소스와 레드와인과 정향을 넣고 진하게 끓여 시나몬으로 맛을 낸 라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개성 강한 요리다. 조금 더 인상적인 파스티치오를 원한다면 시나몬 스틱을 바로 갈아서 넣거나, 미트소스를 조리할 때 스틱을 통째로 넣고 뭉근하게 끓인 다음 오븐에 넣기 전 꺼내자.
키치디Khichidi
남아시아 고향의 음식인 키치디를 만들려면 먼저 시나몬 스틱 1개를 강황, 커민 씨, 생강과 함께 기버터나 기름에 볶은 다음 렌즈콩, 쌀과 섞어 압력솥에 넣어 익힌다. 시나몬 향이 요리에 올리는 신선한 민트와 요거트, 라임즙과 대조되면서 인도식 스튜인 달dal과 라이스푸딩 사이 어딘가에 있는 키치디를 완성한다.
카이팔로Kai palo
돼지고기 삼겹살과 삶은 달걀을 올린 시나몬 향이 나는 이 달콤하고 짭조름한 국물 요리는 태국의 학교 급식과 가정식 그리고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기 음식이다. 육수 주머니에 시나몬 스틱과 스타아니스, 정향, 고수 씨, 산초를 넣는다. 뭉근히 익힌 돼지고기와 함께 육수에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국물이 완성된다.
6. 사프란
샐리 프란시스는 잊힌 영국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노퍽주에서 이 귀한 향신료를 재배하고 있다.
글. 파리다 제이나로바FARIDA ZEYNALOVA
샐리 프란시스Sally Francis는 1997년 대학생이던 당시, 부모님에게 생일 선물로 사프란 구근을 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노퍽주Norfolk 북쪽 해안에 있는 번햄 마켓Burnham Market 인근의 가족 소유 땅에 구근을 심었고 그해 1작은술 정도의 사프란을 수확하게 된다. 이후 더 많은 구근을 구매하게 되고 해를 거듭할수록 샐리는 더 많은 양의 사프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수확한 사프란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양을 현지 공예 페어에서 판매했다. 놀랍게도 그녀가 파는 사프란은 큰 인기를 얻었다. 2009년에 노퍽 사프란Norfolk Saffron이라는 사업체를 설립할 만큼 넉넉한 수확량을 확보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의외의 장소에서 매우 진한 1등급 사프란을 재배하는 중이다. “식물학자인 저에게 식물은 열정이에요.” 1934년부터 가족이 소유해온 농장에서 샐리가 말한다. “처음에는 사프란에 대한 기대가 적었어요. 중세시대에 영국에서 재배됐다는 글을 읽었지만 지금은 영국이 재배에 적합한 기후가 전혀 아니거든요.”
약 400년 전, 영국은 사프란 재배의 중심지였다. 샐리가 이 분야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다가 그녀의 밭인 번햄 오버리 스테이트Burnham Overy Staithe에서 바로 보이는 항구를 통해 한때 이 지역에서 재배한 사프란이 유럽 북해 연안 국가들로 운송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가 우연히 잊힌 산업을 되살린 것이었다. 사프란은 크레타섬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섬의 온화한 겨울과 건조한 여름은 사프란을 키우기 가장 적합한 조건이다. 오늘날 사프란은 이란, 인도, 스페인, 그리스 등지에서 주로 생산되며 이란은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그럼, 노퍽주에 있는 작은 농장에서 어떻게 거친 기후를 극복하고 최상급 사프란을 생산할 수 있었을까?
“주어진 조건을 가지고 크레타섬의 기후를 최대한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방법이에요.” 샐리는 기밀 사항이라며 더 이상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노퍽주가 영국에서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인 것은 중요한 요소라고 알려준다.
보라색 사프란 꽃은 식물 교과서의 내용을 완전히 무시한다. 봄과 여름이 아닌 가을과 겨울에 꽃이 개화하고, 겨울이 아닌 여름에 휴면한다. 10월과 11월 사이에 4주에서 6주 정도 이어지는 수확철이 되면, 샐리는 아침 7시부터 부지런히 꽃을 딴다. “아침 수확이 가장 좋아요. 품질에 영향을 미치죠.” 개화 직전의 가장 큰 꽃봉오리를 채취한 다음 어머니 질Jill, 친구 메리Mary와 함께 몇 시간 동안 암술머리를 일일이 손으로 딴다. 그리고 특수 주문 제작한 건조기에 넣는다. 그 결과는 선명한 색과 강렬한 향을 가진 최고 등급의 사프란 실이다. “맛과 색 그리고 향을 모두 내는 유일한 향신료라고 생각해요. 1g을 만들기 위해 쏟는 정성과 노동이 엄청나기에 매우 귀하죠.”
노퍽주의 사프란은 영국의 기후 덕분에 다른 종류보다 단맛이 조금 더 강하다고 알려준다. “많은 레시피는 질 낮은 사프란을 사용하는 걸 염두에 둔 거예요. 대개는 빵 한 덩이를 만드는 데 사프란 1g을 넣으라고 하죠. 하지만 저희 사프란을 그만큼 넣는다면 맛이 너무 강해서 못 먹을 거예요!” 사프란은 파엘라paella와 리소토부터 아이스크림과 수프까지 전 세계 다양한 음식에 사용된다. 그중 샐리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18세기 요리책에서 발견한 사프란 브리오슈다. 그녀는 수확하고 남은 사프란 가닥 조각으로 이 빵을 만든다. 면적이 8093m² 불과한 농장은 방문객에게 개방되지 않기에 샐리는 사프란 밀가루와 리큐어를 포함한 다양한 사프란 상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한다. 상품을 더 많이 개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녀는 잊혔던 영국 향신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norfolksaffron.co.ku
7. 산초
쓰촨성
수많은 사천 요리 중에서 산초의 시큼한 매운맛이 가장 잘 표현된 음식은 마파두부 아닐까.
글. 칭흐 황CHING-HE HUANG
마파두부는 산초의 존재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산초가 없이는 미각을 얼얼하게 마비시키는 동시에 감귤류의 새콤함을 은은하게 느끼도록 하는 효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산초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팬에 기름 없이 볶아서 향과 기름이 나오게 한다. 그다음 절구에 빻거나 커피 그라인더로 곱게 갈아보자. 이 레시피에서는 강낭콩을 짭조름한 두반장과 흑미식초, 간장에 볶아서 감칠맛을 극대화했다. 강낭콩은 아삭한 식감과 향신료와 어울리는 달콤함을 더한다. 마파두부는 요리의 국물까지 빨아들이는 재스민 라이스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매운맛에 강하다면 두 번째 과정을 건너뛰고 고추와 통후추를 바로 넣어도 좋다. 아니면 요리에 고명으로 조금만 올려도 은근한 매운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매운 강낭콩 마파두부(2인분 / 18분 소요)
재료
전분 1큰술, 산초 1작은술, 유채기름 1큰술, 다진 마늘 2쪽, 다진 생강 2.5cm, 다진 빨간 고추 1개, 강낭콩 200g(1cm 길이로 썬 거), 단단한 두부 200g(1.5cm 크기로 깍둑썰기), 두반장 1큰술, 청주 1큰술, 채소 끓인 맛국물 200ml, 간장 1큰술, 흑미식초 1작은술, 다진 쪽파 약간, 재스민 라이스
만드는 법
1 전분은 물 2큰술을 넣고 갠다.
2 중약불로 예열한 팬에 산초를 기름 없이 볶는다. 타지 않게 팬을 흔들면서 새콤한 향이 올라올 때까지 30초간 볶은 뒤 절구에 넣고 곱게 빻는다.
3 웍을 강불에 올려 연기가 날 때까지 예열한 다음 유채기름을 넣는다. 기름이 고루 퍼지도록 웍을 크게 한 번 돌린 후 다진 마늘과 생강, 고추를 넣고 몇 초간 볶는다. 여기에 강낭콩을 넣고 볶다가 두부를 넣고 고루 섞는다.
4 3의 재료를 웍 한쪽으로 밀어놓고 빈 곳에 두반장과 청주를 넣고 잠시 끓인다.
5 여기에 맛국물을 붓고 끓으면 불을 줄이고 1분간 더 끓인다.
6 간장과 흑미식초를 넣고 1의 전분물을 붓고 1분간 더 끓여 걸쭉하게 만든다.
7 재스민 라이스 위에 6을 끼얹고 다진 쪽파를 고명으로 올린다. 2의 산초가루를 약간 뿌리면 완성.
최고의 향신료 시장
알록달록하면서 정신없고 항상 활기가 넘치는 향신료 시장은 도시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 될 때가 많다.
글. 엘라 부샨ELLA BUCHAN
1 두바이 스파이스 수크Dubai Spice Souk -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올드 두바이로 불리는 데이라Deira의 시장 안에 있는 두바이 스파이스 수크를 걷다 보면 기다란 바구니 안에 쌓여 있는 연노란색부터 진홍색까지 형형색색의 가루와 꽃잎을 발견하게 된다. 두바이 크리크Dubai Creek를 사이에 두고 시내의 눈부신 초고층 건물과 떨어진 향신료 시장은 왕국을 대표하는 마천루 숲 못지않게 화려하다. 질문을 하거나 가격 흥정하는 데 주저하지 말자.
2 메르카도 베니토 후아레즈Mercado Benito Juárez - 멕시코 와하카
지붕으로 덮인 시장에는 향신료를 비롯한 다양한 품목의 아이템이 즐비하다. 상인들은 타말레tamale와 직물, 메즈칼mezcal, 몰레mole 등 다양한 물건과 음식을 판매한다. 눈과 코를 즐겁게 하는 구경거리가 많은데, 안초ancho부터 지역 특산물인 파시야 데 와하카pasilla de Oaxaca까지 다양한 종류의 말린 고추가 방문객들을 사로잡는다.
3 라바 케디마Rahba Kedima - 모로코 마라케시
성벽에 둘러싸인 메디나의 수크는 숨 막히게 황홀하다. 그중 스파이스 스퀘어Spice Square로 불리는 향신료 시장은 가장 강렬한 매력을 발산한다. 상점마다 스타아니스와 시나몬 등 수많은 향신료를 손님들에게 보여주고, 광장 중앙에서는 아르간 오일과 식물성 화장품이 여행자의 발길을 이끈다.
4 므스르 챠르슈Mısır Çarşısı - 튀르키예 이스탄불
이집션 바자르Egyptian Bazzar는 튀르키예에서 시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치형 천장이 눈길을 사로잡는 므스르 차르슈에서는 상점마다 산처럼 쌓아 올린 향신료들이 경쟁적으로 관심을 이끈다. 주렁주렁 매달린 말린 고추와 수북이 쌓인 가람 마살라 사이로 말린 과일과 터키시 딜라이트인 당과가 보인다.
5 카리 바올리Khari Baoli - 인도 델리
올드 델리에 있는 이 드넓은 향신료 시장은 미로같이 펼쳐진 골목이 감각을 압도한다. 시장의 공기는 수북이 쌓인 카다멈, 시나몬, 강황 가루에서 나는 향으로 가득하다. 혼란스럽고, 빠르게 움직이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