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MANCHESTER REVOLUTION
맨체스터의 유쾌한 반란 - PART 3. 이토록 다양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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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호

고대 로마 시대에서 유래된 이름을 가진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인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현재는 그 산업 유산을 재해석한 공간에서 재미있는 일을 잔뜩 벌이고 있다. 산업혁명을 넘어 음악과 축구의 도시, 동시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난 맨체스터의 유쾌한 반란.


이토록 다양할지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맨체스터의 든든한 현재이자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기반이다.

쿠사마 야요이의 10m가 넘는 사이키델릭한 작품으로 초현실적 세계를 창조한 팩토리 인터내셔널Factory International (아비바 스튜디오Aviva Studios).

동상의 불균형
맨체스터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조너선 스코필드Jonathan Schofield가 진행하는 도보 투어 중 성베드로광장St Peter’s Square 에서 한 청동 조각상을 마주한다. 의자 위에 당당하게 선 여성이 한 손을 내밀며 연설하는 모습이 당시 현장처럼 생생하다. 동상의 주인공은 영국에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을 주도한 에멀린 팽크허스트. 그녀가 태어나고 활동한 맨체스터에 이러한 동상이 생긴 것이 당연한 듯 보이지만, 여기에도 사연이 담겨 있다. “이 도시의 대다수 동상이 남성이라는 점에서 성비의 불균형을 느낀 한 시의원이 여성의 동상을 세우자는 워맨체스터WoManchester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20명의 강인한 여성 후보 중 전 세계인의 투표를 통해 최종 인물로 에멀린이 선정되었죠.” 조너선이 설명한다. 여성(30세 이상)이 투표권을 행사한 영국 최초의 선거인 1918년 총선 100주년을 맞은 2018년, 그녀의 동상이 이곳에 세워졌다. 에멀린이 살던 맨체스터의 빅토리아풍 빌라는 현재 팽크허스트 센터로 여성 참정권 운동의 투쟁을 담은 박물관이자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방지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다. 마침 내가 맨체스터에 머물던 7월 2일은 1928년 영국 의회가 여성(21세 이상)에게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부여한 날이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동상.


이상한 나라의 쿠사마

도보 투어의 대미를 장식한 곳은 아비바 스튜디오라고도 불리는 팩토리 인터내셔널. 예술가가 이전에 시도한 적 없는 대규모로 야심 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새로운 문화 공간이다. 맨체스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ManchesterInternational Festival(이하 MIF) 개막과 함께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처음 선보인 전시는 일본 출신 예술가인 쿠사마 야요이의 〈You, Me andthe Balloons〉. 그녀의 거대한 설치미술은 그보다 더 광대한 공간에 안겨 있다. 쿠사마의 작품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여러 번 감상했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규모의 전시는 처음이다. 마음이 풍선처럼 팽창하며 웅장해진다. 기묘한 이야기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격년으로 열리는 MIF는 참신하고 진보적인 예술을 장려하는 장으로 저명하다.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의 향연은 이 도시를 더욱 생기발랄하게 만든다. 

MIF 프로그램 포스터.


순환 그리고 공생

또 다른 예술이 펼쳐지는 메이필드공원Mayfield Park으로 향한다. 이곳은 맨체스터에서 100년 만에 새로 생긴 공원이다. 공원을 지나는 메들록강River Medlock은 1845년 가장 끔찍한 강이라는 오명을 썼다. 산업혁명 이래로 화학적 오염으로 병들어 갔기 때문이다. 자연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18년에는 맑은 물에서 산다는 큰가시고기와 피라미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파키스탄 출신 예술가 리샴 사이드RishamSyed의 〈EachTiny Drop〉이 펼쳐진다. 남아시아 문화의 고대 관행으로 강에서 행하는 의식을 예술로 승화한 것이다. 소안강SoanRiver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자 초기 문명의 요람이었다고 한다. 그 소안강에서 온 물이 키네틱 아트에서 한 방울씩 떨어진다. 나는 작은 항아리 토기에 그 물을 담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러고 나서 토기에 담긴 물을 또 다른 키네틱 아트에 조심스럽게 뿌린다. 이 물은 예술가의 행위로 메이필드 공원의 메들록강으로 흘러가 바다로 향하며 자연을 순환한다. 소안강이 현재 처한 현실은 산업혁명 당시의 메들록강처럼 위태롭다고 한다. 인간과 자연은 연결되어 있고 공생이 필요하다. 공원에서 내내 들려오는 합창단의 노래가 이를 이야기하듯 신성하게 다가온다.

메이필드 공원에 설치된 키네틱 아트에서 파키스탄 소안강의 물을 받는 사람들.


누구나 존엄하다
나는 MIF에서 LGBTQIA+에 관한 한 공연을 감상한다. 단 한 장 남은 티켓을 어렵게 구했다. 〈The Fagots and their Friends Between Revolutions〉은 1977년 발표된 동명의 판타지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이다.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 가상의 도시 람로드Ramrod에서 벌어지는 혁명을 다룬다. 성소수자의 시선으로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쓰는 내용인데, 허구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현실적이다. 공연장 양쪽 벽에 대사와 노랫말이 자막으로 동시에 뜨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 역시 이해하기 훨씬 수월했다. 공연 중간 관객에게도 노래 하나를 알려주는데,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서 다들 열심히 참여한다. 모든 청중이 하나로 화합된 목소리가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어떤 한 구절을 무심코 흥얼거린다. 공연은 순차적으로 가부장적 문명을 탄생시킨 파괴적 혁명, 가부장제를 완화하는 진정의 혁명 그리고 다가오는 미지의 혁명으로 이어졌다. 때로는 격정적이고 도발적이지만, 여기서 이 공연을 급진적이고 불손하다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르다’와 ‘다양하다’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시선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공연을 통해 억압은 예술을 낳고 증오는 되레 사랑을 고무한다는 것을 느낀다. 

LGBTQIA+의 혁명을 이야기하는 뮤지컬의 한 장면.


화장실도 중요합니다!
규모를 확장한 맨체스터박물관은 2023년 2월 재개관하였다. 박물관 디렉터 에스메 와드Esme Ward가 자연사와 이집트 컬렉션 그리고 새롭게 개관한 남아시아 및 중국 문화 갤러리 등에 이어 마지막으로 안내한 장소는 뜻밖에 화장실이었다. “박물관을 소개하면서 웬 화장실 얘기냐 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중요합니다!” 장애를 가진 이들도 혼자 힘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구조의 화장실을 구현했다고 한다. 살짝 엿본 이곳의 화장실은 여러 시설을 갖춘 작은 병동 같다. 맨체스터박물관의 또 다른 화장실은 성의 구분이 없어 남녀공용과는 그 개념이 전혀 다르다. 요즘 영국에서는 성중립 화장실이 늘어나고 있다.

맨체스터박물관에 새로 개관한 남아시아 갤러리.


°
맨체스터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홀로 정처없이 맨체스터를 누빈다. 지도 앱도 보지 않고 골목을 샅샅이 살핀 이유는 예술가 라이언 갠더Ryan Gander의 ‘The Find’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그가 특별히 창작한 수십만 개의 동전을 도시 곳곳에 숨겨 두었다. 여정을 함께한 프랑스인 플로랑Florent이 며칠 전 가장 먼저 동전을 발견했는데, 하나를 더 찾자 내게 양보해주었다. 그래서 오늘은 스스로 예술적 탐험에 나서기로 한다. 곧 한국 분식 팝업스토어가 열리는 피카딜리 가든스 근처에서 각각 앞뒤로 ‘LISTEN/SPEAK’, ‘ACTION/PAUSE’가 새겨진 동전은 여럿 발견했는데, 나머지 하나는 오리무중이다. 마침내 내가 맨체스터중앙도서관 부근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동전은 앞뒤로 ‘SOLO’와 ‘TOGETHER’가 적혀 있다. 문득 깨달은 것은 맨체스터에서 나 역시 외국인 그러니까 이방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방금 내가 수집한 라이언의 예술적인 동전처럼 ‘함께’를 이루며 존중받는 다양한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HIP & NEW
탄생과 변형을 거듭하다
다르게 변모하거나 새롭게 생기는 맨체스터의 장소가 궁금하다면.

다이캐스트Diecast
금속 공장 겸 창고를 개조한 대형 복합문화공간으로 댄스 스튜디오뿐 아니라 의상 제작실, 레코드 스토어 등이 들어선다. 가장 먼저 문을 연 레노 엑스 마키나Leno Ex Machina는 기계가 창조하는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은 다이닝 공간. 피자 엑스 마키나는 유럽에서 가장 큰 피자 굽는 기계로 뉴욕식 바삭바삭한 도우와 나폴리식 폭신폭신한 크러스트를 동시에 구현한다. 럼 엑스 마키나에서는 기계가 제조한 수십 가지 조합의 다이키리를 음미할 수 있다. 맨체스터에서 가장 큰 비어 가든도 이곳에 문을 열 예정이다. 맨체스터 피카딜리역 인근에 위치.

이스케이프 투 프라이트 아일랜드Escape to Freight Island
과거 기차역이었던 곳으로 현재는 다양한 레스토랑과 바,엔터테인먼트 등이 자리한다. 그중 스모킹 콜Smoking Coal은 각종 고기를 특수 훈연기에서 18시간 동안 요리한 여러 음식을 선보인다. 구운 옥수수 요리에는 고추장 드레싱이 함께 나온다. 신나는 라이브 공연도 펼쳐져 음악과 음식을 함께 즐기기 좋다. 메이필드공원 인근에 위치.

맨체스터미술관Manchester Art Gallery
맨체스터와 관련된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전시를 꾸준히 전개한다. 패션 갤러리를 추가로 개관해 17세기 이후 의상을 다루는 동시에 매년 새로운 컬렉션을 꾸린다. 최근에는 여성과 LGBTQIA+, 흑인과 아시아 예술가의 작품 수집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무료입장.

영국왕립원예협회 정원 브리지워터RHS Garden Bridgewater
중국계 커뮤니티와 협업해 중국풍 정원을 추가로 조성 중이다. 맨체스터는 런던에 이어 중국계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인 데다 영국왕립원예협회는 과거에 종자를 수집하고 연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여정을 떠난 적도 있으니 그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코-옵 라이브Co-op Live
2024년 개장 예정인 코-옵 라이브는 영국 최대 규모의 실내 공연장이 될 전망이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 해리 스타일스 등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의 맨체스터 시티 FC 역시 투자에 동참해 이곳의 주차장을 함께 사용할 예정이라고. 현지에서 조달한 지속 가능한 자재로 건축 중이며, 지붕의 태양전지판과 빗물을 활용하는 화장실 등 탄소중립에 중점을 두고 운영할 계획이다. 다수의 레스토랑과 바, 라운지 등도 입점할 예정.

과학산업박물관Science and Industry Museum
세계 최초의 여객용 철도와 그 역사가 남아 있는 박물관. 방직물 공업 기기, 최초의 현대식 컴퓨터, 롤스로이스 등 맨체스터에서 발명된 유산으로 가득하다. 새로운 특별전시실 개관을 앞두고 있다. 무료입장. 

기차역을 개조한 이스케이프 투 프라이트 아일랜드.

 


LOCAL FLAVOR
맨체스터 음미하기
영국 음식이 별로라는 편견은 이제 그만.

과거 인도 뭄바이에서 유행한 이란식 카페처럼 꾸민 디슘.


그레이트 노스 파이 컴퍼니Great North Pie Co
잉글랜드 북부 사람들에게 미트파이는 솔푸드나 다름없다. 집에서 요리해 온 가족이 함께 즐겨 먹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음식이라고. 이곳의 시그너처는 맨체스터 유니온 라거와 14시간 동안 푹 삶은 소고기를 넣은 파이. 메뉴는 주기적으로 변경되지만, 어떤 것을 골라도 전통 스카치 파이의 클래식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짭조름한 그레이비소스가 일품이며 각종 사이드메뉴와의 조합 역시 훌륭하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파이도 존재한다. 복합주거단지인 캄퍼스Kampus에 위치.

디슘 맨체스터Dishoom Manchester
영국에서 10년 넘게 감각적인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는 디슘. 맨체스터 지점 역시 인도 뭄바이에서 1960년대 유행한 이란식 카페에서 영감을 받은 인테리어가 고풍스럽다. 치킨 마살라와 치킨 티카 등의 풍미가 풍부해 현지인들이 왜 이곳에 열광하는지 수긍하게 된다. 때론 긴 줄을 서야 할 수도 있으므로 예약하는 편이 좋다.

에든버러 캐슬 펍 앤 다이닝The Edinburgh Castle Pub & Dining
영국식 가스트로펍으로 스카치에그 같은 영국 전통 요리부터 훌륭한 지역 맥주에 이르기까지, 현지인처럼 만찬을 즐길 수 있다. 모든 재료는 영국산 농산물로 만들며 가능한 한 맨체스터 현지에서 공급받으려고 노력한다. 한때는 산업단지의 교외로, 현재는 새롭게 떠오르는 지역인 안코츠Ancoats에 위치.

다이캐스트의 럼 엑스 마키나에서 수십 가지 조합의 슬러시 다이키리를 맛볼 수 있다.

 


TRAVEL WISE

가는 방법
아시아나항공 등이 인천국제공항과 런던히드로공항을 오가는 직항 노선을 운행한다. 런던 유스턴역과 맨체스터 피카딜리역을 오가는 기차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현지 교통
맨체스터는 도시 전역을 연결하는 트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역에 있는 기기에서 1회권과 1일권 등을 구입하거나 승차역과
하차역에서 애플페이 등으로 비접촉 결제 역시 가능하다.
방문 최적기
날씨가 비교적 화창한 7월이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기다. 그렇지만 하루에 사계절이 존재한다는 변화무쌍한 영국의 날씨가 나타날 수도 있으니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하고 짐을 챙기는 것이 좋다.
머물 곳
알란 호텔은 면직물 창고를 독특하게 개조한 137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조식은 호텔 레스토랑 셰프가 요리해주는 아라카르트와 직접 착즙한 주스, 따뜻한 차나 커피로 이루어져 있다. 네 가지 메뉴를 선택해 단 25파운드(약 4만2000원)에 제공하는 합리적인 점심 및 저녁 식사는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으므로 가볍게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방문해보자.
thealanhotel.com
도보 투어
맨체스터의 저널리스트 조너선 스코필드가 진행하는 도보 투어. 현재는 호텔인 프리 트레이드 홀Free Trade Hall은 과거 찰스 디킨스가 연극을 선보이고 윈스턴 처칠이 연설한 곳이자 종종 콘서트가 열린 장소였다. 여기서 펑크 록 밴드의 시초인 섹스 피스톨스도 공연했는데 그 영향을 받은 맨체스터 출신의 더 스미스The Smiths 등이 이끈 매드체스터Madchester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 밖에 그의 박식한 지식 덕분에 이 도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맨체스터를 더욱 탐구하고 싶다면 그가 발간한 다수의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jonathanschofieldtours.com
택시 투어
다수의 수상 경력에 빛나는 맨체스터 유일의 그린 배지 가이드 존 컨스터다인의 영국 신사 같은 블랙캡을 타고 떠나는 여행. 도시 전역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것은 물론 역사, 문화, 음악, 스포츠, 애프터눈 티 등 집중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할 수 있다. 원하는 대로 여행을 설계하고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옥스노블 맨체스터, 라이징 선, 화이트 라이언 같은 전통 펍도 안내해주는데 삶의 전부를 펍을 찾아 다니는 데 쏟아부었다는 그의 추천이라면 믿고 갈 만하다. 전통 피시앤칩스를 먹을 수 있는 피시 헛The Fish Hut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택시가 친환경 전기차라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준다. 와이파이는 물론 전자기기 충전도 가능하다.
manchestertaxitours.co.uk

전기차를 운전하며 맨체스터 구석구석 안내하는 택시 투어 가이드 존.


더 많은 정보
영국관광청 visitbritain.com
맨체스터관광청 visitmanchester.co






 

 

 

 

글. 김민주
사진. 김현민, 영국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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