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수도 방콕은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하지만 고급 레스토랑도 번창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콕에서 태국식 식사는 외식으로 왕실 요리를 먹는다는 뜻이었다. 제왕에 어울릴 법한 새하얀 식탁보 위에 기교 있게 깎아낸 채소와 세심하게 균형 잡힌 태국 중부의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을 차려낸다. 반면에 약간의 고추와 펑키한 발효 음식도 공존한다. 알-한R-Haan, 사네 잔Saneh Jaan처럼 충직하게 음식을 만들어 온 레스토랑에서는 여전히 고전적인 요리를 내놓지만, 지난 10년 동안 왕실의 주방을 훨씬 뛰어넘는 요리법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재구성한 새로운 셰프들이 등장했다.
미쉐린 별 2개를 받은 소른Sorn 레스토랑은 오랫동안 잊힌 요리법과 남부 지역의 토착 재료를 깊이 있게 다룬다. 이 아르데코 양식의 식당을 대표하는 메뉴인 게 알과 고추장을 곁들인 수라타니Surat Thani산 게 다리 요리만으로도 예약하려면 여러 달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충분할 수 있다. 한편 스리 뜨랏Sri Trat 레스토랑 겸 바는 태국 남동부의 해산물이 풍부한 뜨랏 지방의 요리를 재해석한다. 새우를 넣고 반죽해 된장처럼 걸쭉하게 만든 소스와 식초에 절인 바라쿠다barracuda를 곁들인 채소 샐러드가 대표적이다. 바라쿠다는 거대한 크기에 상어만큼이나 강력한 포식자로 알려진 물고기다. 또한 최근에 문을 연 노스North에서는 치앙라이 출신 셰프들이 태국 북부의 고대 란나 왕국에서 영감을 얻은 9개의 코스 메뉴를 선보인다. 전채로 한입 크기의 캥크라당kaeng kradang(젤리처럼 만든 돼지고기) 등이, 메인 요리로 논에서 사는 게를 발효시켜 마콰엔ma kwaen산 통후추를 뿌리는 등 태국 북부에서 나는 식재료를 쓴다.
일상적으로 먹는 주식에도 고급 식당의 바람이 불고 있다. 와나 육Wana Yook 레스토랑의 찰리 카데르Chalee Kader 셰프는 카오갱khao gaeng에 집중한다. 카오갱은 바로 먹을 수 있게 미리 조리된 일종의 3분 카레로, 도시 어디에서나 손쉽게 살 수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이 고전적인 주식 메뉴 카오갱이 와나육에서는 접시에 근사하게 담겨서 테이스팅 메뉴로 변신한다. 한편 포통Potong 레스토랑에서는 굴 오믈렛이나 오리구이 같은 차이나타운의 특선 요리를 고급스럽게 재해석한다. 피차야 우탄탐Pichaya Utharntharm 셰프가 쌓아 올린 태국-중국식 요리 유산에 풍미를 더해 만드는 게 특징이다.
다행히도 방콕에서 요리하는 셰프들 중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수입 농산물 대신 태국의 풍부한 식자원을 선택하며, 더불어 지속 가능한 요리와 음식을 위해 애쓰고 있다. 캔버스Canvas 레스토랑의 라일리 샌더스Riley Sanders 셰프는 흰개미버섯이나 헤어리 에그플랜트(톡 쏘는 맛이 나고 아삭아삭한 식감과 열대 꽃 풍미를 지닌 가지)처럼 야생에서 채집하거나 유기농으로 키운 재료를 찾아 시골을 샅샅이 뒤지고 이를 유럽식 요리에 접목한다. 한편, 동물의 식용 가능한 모든 부분을 활용하려는 철학으로 음식을 만드는 헌드레드 마하셋100Mahaseth 레스토랑의 주방에서는 태국에서 키운 동물의 고기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쓴다(메뉴를 보면 삼겹살 칩, 구운 골수 뼈, 건조 숙성 우설 등이 있다). 심지어 방콕에 있는 바에서도 현지에서 키운 식재료만 쓰는 철학이 이어진다. 예를 들어 아시아 투데이 바는 태국산 과일과 야생 꿀로 칵테일을 만든다. 그리고 세련된 쿠 바Ku Bar에서는 태국산 판단 나무, 국화, 영국에서는 돌사과로 불리는 인도 아유르베다식 바엘과일 등 현지 시장에서 파는 과일로 음료를 만드는 식이다.
물론 길거리 음식도 있다. 방콕 전체가 노점상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방콕 최초로 미쉐린 별을 받은 제이 파이Jay Fai 거리 가판대는 여전히 활기차게 운영 중이다. 새벽부터 저녁식사 시간까지 거리에는 향긋한 연기가 맴돌고, 몇 천 원도 안 되는 값에 다채로운 카레, 볶음 요리, 혀를 마비시키는 솜땀 파파야 샐러드 한 접시를 먹을 수 있다. 고급스러운 한 끼부터 부담 없는 길거리 음식까지, 방콕에서 먹는다는 게 이처럼 흥미로웠던 적은 없지 싶다.
#1
탈랏 노이와 차런크룽에서 보내는 하루
새롭게 떠오르는 강변 지역에서 현대와 전통이 조우한다.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포장도로가 점점 좁아지면서 현대적인 커피숍과 수십 년 된 길거리 음식점이 뒤섞인 골목들이 이어진다.
사니에스Sarnies는 19세기에 보트를 수리하는 작업장으로 쓰이던 곳을 개조해서 브런치를 내놓는데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메뉴는 에그베네딕트와 똠얌tom yum 베이스로 달걀 노른자, 녹인 버터, 레몬즙을 섞어 만든 홀란다이즈소스, 해시브라운과 태국 북부식으로 만든 사이우아 소시지를 기름에 지져 내놓는 등 다양하다. 사니에스에서 직접 로스팅한 커피는 방콕 최고의 커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계속해서 차런크룽 로드를 따라 센트럴: 디오리지널 스토어Central: The Original Store에 가본다. 이곳에는 전시가 열리는 디자인 라이브러리와 햇빛이 내리쬐는 시윌라이 카페Siwilai Café가 있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웨어하우스 서티Warehouse 30 복합단지에는 더 많은 갤러리가 있고, 토트백이나 수수 빗자루 등 현지 수공예품을 파는 우트 우트 스토어Woot Woot Store도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쌈로Samlor에 들르면 젊은 셰프 겸 후원자인 나폴 잔트라겟Napol Jantraget이 재해석한 길거리 음식의 고전을 맛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된장 그레이비소스를 곁들인 돼지목살 숯불구이 요리인데, 후식으로 피시소스-캐러멜 맛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니 위 공간을 조금 남겨두도록. 쌈로에서 잠깐 걸어가면 방콕의 오리지널 차이나타운 탈라드노이Talad Noi 중심부가 나온다. 기름때에 찌든 자동차 정비소와 만화경 같은 중국 사원이 줄지어 서 있다. 낙서로 뒤덮인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소흥타이 맨션So Heng Tai Mansion이 나온다. 방콕에 마지막으로 남은 안뜰이 딸린 저택 중 하나로, 지금은 작은 카페 겸 뜻밖에도 다이빙 학교로 쓰이고 있다. 바로 맞은편에 반 림 남Baan Rim Naam 레스토랑이 있는데, 테라스 자리에는 작은 쿠션이 곳곳에 편하게 놓여 있다. 강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빈랑 나뭇잎으로 감싼 전통식 미앙캄miang kham 전채요리를 먹기에 딱 좋은 자리다. 저녁식사는 네온 불빛 아래 사람들로 붐비는 참강Charmgang 레스토랑의 테이블에서 먹으면 어떨까. 태국 전역에서 종종 잊히곤 하는 카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가 나온다.
다양한 식재료와 방콕 현지인들의 활기찬 삶을 만나는 시장 3
오토코Or Tor Kor 시장
형광등 불빛 아래 파파야, 죽순, 모양은 사과처럼 생겼는데 맛은 수박과 배 사이의 환상적인 풍미를 지닌 로즈애플 등 품질 좋은 농산물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는, 도심 북쪽에 위치한 이 시장은 셰프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껍질 벗긴 두리안을 왁스 입힌 종이에 싸서 팔기도 한다. 두리안의 강렬한 냄새가 손에 배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낭롱Nang Loeng 시장
구시가지의 19세기 타운하우스 사이에 자리한 이 시장은 마치 100년 전 방콕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코코넛 가루로 만드는 코코넛 커스터드 찜이나 카놈 부앙(속을 달달하게 채우고 달걀노른자를 발라 구운 바삭한 팬케이크) 같은 그리운 옛 음식을 자유롭게 맛볼 수 있는 방목장이다. 대부분의 노점상이 정오가 되면 문을 닫으니 참고하자.
클롱 토에이 Khlong Toei 시장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다양한 생선과 고기를 파는 노점이 즐비한 이 시장은 방콕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다. 엄청난 인파와 씨름하는 한편, 방콕에 있는 주방들이 이곳에서 농산물을 조달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시장에서 뭔가 간단히 빠르게 먹어야 한다면 후각에 의존해 국수를 파는 가판대와 그 주변에 있는 볶음 요리와 튀김 가판대를 찾도록.
#2
타티엔과 쿠디친에서 보내는 하루
방콕 최고의 명소가 있는 역사지구는 눈과 배를 다 같이 만족시킨다. 짜오프라야강Chao Phraya River과 왓 포Wat Pho 사원 단지 사이에 끼어 있는 타티엔Tha Thien 시장의 파스텔 색상 건물에서 예술가, 요리사, 칵테일 전문가 등이 새로운 삶을 일군다.
사람들로 붐비기 전에 그랜드 팰리스Grand Palace 왕궁과 인접한 왓 포 사원으로 가자. 왕궁의 반짝이는 지붕과 황금 첨탑은 모두 1782년에 지어졌는데,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교의 상징으로 알려진 에메랄드 부처를 모신 곳이다. 왓 포 사원의 하이라이트는 도금을 한 46m 길이의 와불상이다. 사원 모퉁이에 있는 엘레핀 커피Elefin Coffee에 들러 치앙라이산 원두를 내린 코코넛 워터 콜드브루 커피로 더위를 식혀도 좋다. 배가 고프면 새우와 튀긴 마늘을 얹은 카오똠khao tom 라이스 수프로 늦은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
또 다른 역사적 하이라이트인 왓 아룬Wat Arun사원을 보려면 강을 오가는 페리선을 타야 한다. 사원에서 남쪽 방향에는 역사적인 포르투갈 지역 쿠디친Kudi Chin이 나오는데, 그 중심부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산타크루즈 교회가 있다. 반 사쿨 통Baan Sakul Thong 레스토랑에서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아 맵지 않게 요리하는 카놈진khanom jeen(카레를 곁들인 발효 쌀국수) 같은 메뉴로 점심을 먹은 다음 반 쿠디친 박물관Baan Kudichin Museum으로 가서 방콕의 역사를 살펴보자. 간식을 먹고 싶다면 전통 조리법으로 카놈 파랑 쿠디친khanom Farang kudi chin을 만드는 타누 싱하Thanu Singha 베이커리에 가면 된다. ‘외국인 케이크’라는 뜻의 태국-포르투갈식 머핀으로, 건포도와 말려서 달콤한 맛이 나는 조롱박 과육을 위에 올려 간식으로 제격이다. 저녁에는 강을 건너 타티엔으로 돌아와 누사라Nusara 레스토랑에 가자. 티티드 타사나카존Thitid Tassanakajohn 셰프가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태국식 요리법에 고급스러운 감각을 입혀 12개의 코스가 나오는 테이스팅 메뉴를 선보인다. 식당이 크지 않아 예약을 서둘러야 하는데, 혹시 자리가 없다면 아래층에 있는 타사나카존의 내추럴 와인 바메이 라이May Rai가 훌륭한 대안이 되어줄 것이다. 새우를 얹은 팟타이와 와규를 곁들인 카레수프 국수 카오소이khao soi를 맛본 다음 한잔하러 롱로스Rongros로 간다. 이 작은 바 겸 레스토랑에서 쌀로 빚은 라오 카오lao khao 위스키 칵테일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자. 강 건너편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왓 아룬 사원을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옥상 테라스가 있다. 여전히 배가 고프다면 매콤한 수프와 새우오믈렛, 볶음밥 등 다양한 메뉴 중에서 골라먹으면 된다.
칵테일 바 3
방콕의 밤을 기품 있고 위트 있게 보내고 싶다면.
텍스
한계를 뛰어넘는 진을 선보이는 틴스오브타이Teens of Thai 바 팀이 문을 연 곳이다. 차이나타운 끝자락에 위치한 이 아늑한 바(위)에는 집에서 만든 슈럽(음용식초)을 칵테일의 주재료로 사용하는데, 슈럽은 스파클링 와인으로 알려진 리슬링과 스타우트 맥주로 제조한다고 한다. 후추를 넣은 베르무트처럼 색다른 재료를 첨가해서 평범하지 않은 풍미를 자랑한다
오피엄 바
각종 보석처럼 반짝이는 뉴욕식 화려함에 스타일리시한 차이나타운의 분위기가 어우러진 오피엄 바는 차이나타운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100년 된 상점가에 있는 옛 아편굴에 자리를 잡고 다양한 음료를 내놓는다. 전 세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마시는 음료부터 세 명이 나눠 먹어도 넉넉한 양이 담긴 허브를 넣은 병 칵테일까지 메뉴판이 17쪽이나 될 정도로 종류가 많다. opiumbarbangkok.com
뱀부 바
만다린 오리엔탈 방콕 호텔에 있는 이 70년 된 재즈바는 수많은 상을 받은 바 있고 이유 또한 타당하다. 믹 재거나 오드리헵번 같은 유명 고객들의 세피아 톤 사진을 배경으로 바텐더가 빼어난 상상력이 뒷받침된 기술과 재료를 가지고 보틀 셰이커를 열심히 흔들며 탁월한 칵테일을 만든다. 그중에서도 코코넛 지방을 말끔히 씻어내주는 데킬라와 카피르 라임 등 똠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대표적인 칵테일은 꼭 맛봐야 한다.
mandarinoriental.com
#3
길거리 음식 집중 탐험
최근 미쉐린이 그 진가를 인정했음에도 방콕의 길거리 음식 가판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규제가 더 강화되면서 모든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국수 가판대와 조우하던 영예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수쿰빗 소이 38야시장과 온눗 야시장 같은 전설적인 곳이 무미건조한 쇼핑몰과 휘황찬란한 아파트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충직하게 옛날식 길거리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짜오프라야강의 톤부리Thonburi 쪽에 있는 기찻길을 따라 펼쳐져 있는 탈라드 플루Talad Phlu 시장은 예전에는 빈랑 나무 열매를 주로 거래하는 곳이었다가 지금은 현지인들이 길거리 음식을 먹으러 오는 곳이 되었다. 수니 레드 포크 라이스Sunee Red Pork Rice에서 바싹 구운 돼지고기와 밥, 붉은색 그레이비소스를 시켜보자. 여기서 밥을 먹고 길 아래에 있는 노점에서 형광색 코코넛 과자를 디저트로 마무리하면 딱이다.
보통 직장인들은 승전 기념비 주변 거리에 몰려 있는 노점의 주방에서 만드는 저렴한 메뉴로 점심을 먹는다. 보트 누들 앨리Boat Noodle Alley 국수 가게에 가면 진한 간장 국물에 고기를 얹은 국수를 먹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대여섯 곳의 가판대와 식당은 700원 정도의 아주 저렴한 메뉴를 조그마한 그릇에 담아 판다. 모두 맛보고 싶어서 하나 하나 다 주문하고 싶어질 정도다.
어두워지면 차이나타운에서 800m 길이로 길게 뻗은 야오와랏 로드Yaowarat Road가 네온 불빛의 뷔페로 변한다. 보통 대기 줄이 길수록 맛도 좋긴 한데, 길 중간쯤에 있는 더 이상 상영하지 않는 성인 전용 영화관 앞에 있는 가판도 들러볼 만하다. 사람들이 여기서 후추 맛이 나는 과이주브guayjub를 많이들 먹는데, 돌돌 말린 넓적한 면에 돼지내장을 넣고 끓인 롤 누들 수프다.
TRAVEL WISE
가는 법
티웨이항공과 타이항공 등 다수의 항공사가 인천공항에서 방콕까지 직항편을 운행한다. 비행시간은 평균 6시간 정도 소요된다.
머물 곳
차런크룽 로드에 있는 카펠라 방콕 호텔의 조식 포함 더블베드 룸이 약 70만원부터.
capellahotels.com
더 많은 정보
태국관광청 visitthailan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