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부터 센강까지 매년 세계의 여행자를 사로잡는 파리가 최근 유럽에서 가장 녹지가 많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곳곳에 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림픽 개최지로 주목을 받는 지금, 최상의 컨디션에 도달한 파리의 안팎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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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eet life
전기차 타고 도시 한 바퀴
파리는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를 축소하겠다는 목표하에 전기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행자들 또한 전기차를 빌려 도시의 명소를 여유롭게 둘러보기 좋다. 글. 조지아 스티븐스
낡은 엔진이 탑재된 빈티지 카는 그만큼 탈이 많다. 모퉁이를 돌면 투덜거리고 언덕을 오르면 낑낑대고 심지어 정차해 있을 때는 궁시렁거린다. 하지만 이 차는 여타 빈티지 카와 성질이 다르다. 1955년에 출고된 르노 4L의 외관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파리 9구의 연노란색 아파트 사이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내내 들리는 소리라고는 열린 선루프를 통해서 흘러 들어오는 라디오 소리뿐이다. 뒷좌석에 앉은 탓에 라디오 소리가 정확히 어디서 들려 오는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근처 아파트의 발코니인지 옆 차선에서 푸들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운전하는 이의 차량인지.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자 르노 4L이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엔진 소리가 마치 우주선이 점화하는 듯 우렁차다. 전기 가동 소리가 점점 더 높은 음을 내며 커진다. 그러더니 자갈길 위를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간다.
“놀라울 정도로 힘이 좋아요.” 남색 모자를 쓴 운전사 르노 가자Renaud Garza가 뒤로 고개를 까딱이며 말한다. “최대 시속 120km까지 달릴 수 있어요.”
파리의 거리에는 갈수록 전기차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타고 있는 르노 4L처럼 배터리로 움직이는 차들이 지난 10년 사이에 빠르게 늘어났고 여기에 전기 버스, 자전거, 심지어 외바퀴 자전거까지 합세했다.
이는 2050년에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2030년까지 전기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을 퇴출하려는 도시 계획 중 하나에 해당된다.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전기차 사용을 증가시키고자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으며, 비록 지나친 수요로 인해 조기 종영해야 했지만 월 100유로(한화로 약 15만원)로 전기차를 대여하는 제도도 시행했다.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개선도 이뤄지고 있는데, 파리 곳곳에 전기차 충전소가 규칙적인 간격으로 설치되었고 차량이 고속도로를 정차 없이 통과하며 요금을 지불하는 효율적인 방식을 도입 중이다.
과거에 르노는 현지 여행사 ‘4 루스 수 1 파라플루이’를 운영하면서 휘발유 차량인 시트론 2CV를 투어용으로 운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전 전기차인 르노 4L을 추가했고 현재 두 차종 모두 특별 제작한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해두세요. 곧 파리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진입하겠습니다.” 르노가 장난스럽게 외친다. 차가 에투알 개선문에 가까워질수록 사이렌 소리가 커지고 차량이 빼곡해진다. 샹젤리제 거리를 포함한 12개의 주요 도로가 하얀색 아치형 구조물이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8차선 회전 교차로에서 한꺼번에 마주치기 때문이다. 수많은 차가 계속해서 회전하고 또 회전한다. 마치 태양을 끝없이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궤도에 빨려 들어간 우리의 르노 4L이 자갈길 위로 요동치며 나아가다가 정복 차림의 프랑스 경찰과 아치의 정교한 조각 장식을 지나친다. “회전 교차로의 기원이 프랑스에 있어요.” 르노가 자랑스러운 어투로 이야기한다. 에투왈Etoile이라고 불리는 이 교차로는 수많은 교차로의 마망maman(프랑스어로 ‘어머니’)이라고 한다.
나무로 그늘진 거리를 우회하여 양복 입은 직장인들이 황금색 파라솔 아래 점심식사를 하는 카페들을 지나 하늘을 꿰뚫을 듯 우뚝 선 다음 지형물을 향해 센강을 건넌다. “에펠탑은 1889년 만국박람회의 주요 관문으로 설계됐어요.” 길게 뻗은 네 개의 다리 중 하나에 접근하자 르노가 설명한다. “당시 파리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해요. 깨끗한 자갈길로 도시 정비를 막 마치는 참이었는데 뜬금없는 탑이 생겨난 거예요. 그들의 눈에는 추하고 산업적인 고철로 보였죠. 하지만 라디오 송신탑으로 쓸모가 있었기 때문에 철거하지 않았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정교한 철제 작업물과 엘리베이터의 작동 방식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톱니를 구경한다. 올림픽경기의 개막식을 앞두고 정원은 임시로 폐쇄되어 있다. 선수들이 센강을 따라 10km 정도 배를 타고 와서 이곳에 내릴 예정이라고. 파리가 1924년에 올림픽을 개최한 지 벌써 100년이 지났다. 이번 올림픽 개최를 맞이하여 에펠탑은 구스타브에펠이 설계 시점에 계획했던 색에 가까운 황금빛으로 다시금 칠해지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이번 올림픽 개최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습니다.” 르노가 에펠탑을 한 바퀴 더 돌면서 덧붙인다.
여행 방법 : 4 루스 수 1 파라플루이는 최대 3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 1시간 30분짜리 차량 투어를 한화로 약 28만원부터 제공한다. 르 그랑 마자린에서는 1박에 한화로 약 103만원부터 묵을 수 있다.
4roues-sous-1parapluie.com, legrandmazar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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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ch life
도심 속 플라주
해마다 7월 초부터 9월 초까지 파리의 플라주plage(해변)마다 선베드, 야자수, 아이스크림 카트가 들어서며 완벽한 휴양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글. 니콜라 윌리엄스
파르비 드로텔 드 빌PARVIS DE L’HÔTEL DE VILLE, 4구
호텔 드 빌 앞에 자리한 이 광장은 파리의 해변에서 열리는 여름 콘서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도로 건너편 아르콜 다리Pont d’Arcole와 퐁네프 다리Pont Neuf 사이의 부두에는 해먹이 놓여 있고, 강 건너편에는 중세 시대에 궁정으로 쓰였다가 형무소로 탈바꿈한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의 뾰족한 지붕이 존재감을 과시한다. 현지인들은 강 바로 옆에 위치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광장에서 소규모 암벽 클라이밍이나 축구 또는 거대한 체스판이나 도미노로 게임을 즐기곤 한다. 늦은 밤에도 문을 여는 실리셋 바는 언제나 흥겨운 분위기를 띠고 있다.
scilicet.fr
지하철역: 호텔 드 빌Hôtel de Ville, 샤탈레Châtalet
루이 필리프 다리PONT LOUIS PHILIPPE, 4구
조지 퐁피두 도로Voie Georges-Pompidou의 제방과 인접해 있는 이 플라주의 자갈 경기장에서 인근 페탕크Pétanque 클럽의 베테랑 선수들이 공을 굴린다. 참고로 이 클럽은 호텔 드 빌을 기점으로 다리를 하나 건너 강변 오른쪽에 위치한다. 경기에 참여해보고 싶다면 먼저 경기장을 예약한 뒤 19세기에 지어진 석조 다리 아래에 숨어 있는 부베트buvette(스낵 바)인 셰대니얼Chex Daniel에서 공을 빌리면 된다. 저렴한 주류와 맛깔 나는 샤퀴트리 플래터 그리고 햇살 가득한 테라스가 간간히 휴식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결제는 오로지 현금으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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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퐁 마리Pont Marie, 호텔 드 빌Hôtel de Ville
오르세 부두QUAI D’ORSAY, 7구
센강 왼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 플라주는 알마 다리Pont d’Alma와 콩코드 다리Pont de la Concorde 사이로 길게 뻗어 있다. 여행자들에게는 에펠탑과 오르세 미술관, 시계탑, 그랑 팔레Grand Palais의 눈부신 유리 지붕이 한눈에 담기는 명소로 잘 알
려져 있다. 독특하게도 태극권과 살사 등의 무료 수업을 종종 진행하며 한여름에는 부두에서 콘서트를 개최한다. 앵발리드 다리Pont des Invalides 옆에 정박한 배 안에 들어선 미술관인 플럭추아트가 추구하는 혁신적인 도시 예술도 놓치지 말자.
fluctuart.fr
지하철역: 앵발리드Invalides(올림픽 기간 동안 폐쇄될 예정), 알마-마르소Alma-Marceau
바상 드 라 빌레트BASSIN DE LA VILLETTE, 19구
생마르탱 운하Canal Saint-Martin와 우르크 운하Canal de l’Ourcq 사이의 플라주는 수영을 즐기는 현지인들로 항상 붐빈다. 루아르 부두Quai de la Loire의 수상 플랫폼으로 연결된 세 개의 수영장이 모두 무료로 개방되어 있기 때문. 부두 옆에 간이 탈의실과 샤워 시설, 사물함을 갖추어 편리하다. 주변의 운하 유역에서 전통 보트, 카약, 페달 보트와 줄무늬 파라솔 등을 대여해준다.
지하철역: 조레스Jaurès, 로미에르Laumière, 리케Riqu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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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rky stays
센강 위에 뜬 호텔
파리 중앙 오스테를리츠역Gare d’Austerlitz 아래에 자리 잡은 오프 파리 센Off Paris Seine은 도심에서 수상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수면 위로 부유하는 58개의 객실은 대부분 센강을 향하고 있으며, 따뜻한 원목에 금색과 주황색으로 포인트를 준 인테리어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히 선셋Sunset 스위트룸은 네 개의 기둥이 달린 침대부터 욕조까지 밝은 감귤색을 띤다. 해가 지면 풀장 옆의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고추 크림을 곁들인 문어 요리를 맛보자. 강이 워낙 가까워 작은 물고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 정도다. 조식을 포함한 부두 전망 더블룸이 한화로 약 35만원부터.
offparisseine.com
글. 조지아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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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ities
바게트를 곁들인 보트
바상 드 라 빌레트의 물가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파리 동역에서 동북쪽으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옛 공업 항구이자 파리에서 가장 큰 인공 호수로 가면 노란 부표 위에 가마우지가 서 있고 커다란 나무 그늘마다 애완견들이 앉아 있다. 현지인들은 물가에 걸터앉아 발을 흔들거리면서 바삭한 바게트를 먹거나 피크닉을 즐기곤 한다.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만끽하고 싶다면 전동 보트를 타고 강으로 나가보자. 마린 도두스 남쪽에 있는 정박지에서 출발해 북쪽을 향해 이동하는 루트를 추천한다. 배에 오른 순간부터 찰싹거리는 물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 수변에 있는 회전목마의 작은 음악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어줄 것이다. 철제로 만든 영화관과 길거리 예술가를 위한 야외 갤러리인 우르크 운하가 들어선 라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에 다다르면 전동 보트의 짧은 여정이 마무리된다. 다섯 명이 탑승할 수 있는 전동보트 대여 비용은 3시간에 약 17만원부터다. 운전 시 별도의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다.
boating-paris-marindeaudouce.com
글. 조지아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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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s
비키니가 탄생한 몰리토르
초여름의 문턱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선베드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손님들과 느긋하게 수영을 즐기는 손님들 위로 햇살이 내리쬔다. 16구에 있는 몰리토르 호텔 수영장에서는 도시의 번잡한 분위기를 조금도 느낄 수 없다. 밝은 노란색의 높은 벽이 거리의 소음을 차단해준다. 1929년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약 100년 전 이곳은 파리지앵들이 휴양 삼아 야자수 틈에서 샤블리 와인을 마시던 도심 속 오아시스이자 사교장이었다.
저명한 작가들의 전시회부터 미인 대회까지 다채로운 행사가 이곳을 휩쓸었다. 한때는 담배 가게와 미용실도 호텔 안에 있었다. 하지만 지독한 유명세를 치르게 된 결정적 계기는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아르Louis Réard가 1946년 최초의 비키니를 선보였던 패션쇼라 할 수 있다. 그의 디자인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던 나머지 어느 모델도 비키니를 착용하려 하지 않아 결국 스트립 댄서가 이 파격적인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 옆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수영장 바닥이 물에 함유된 염소로 인해 부식되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수영장은 더 이상 호화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1989년에 문을 닫았다. 물을 빼낸 수영장은 그라피티 화가들의 거친 도화지가 되었다. 그렇게 몰리토르는 옛 명성을 뒤로한 채 수년간 폐허로 방치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몰리토르는 2014년 재기를 꿈꿨고 복원을 거쳐 재개관했다. 방치됐던 수영장에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을 초대해 마무리 작업을 의뢰했고, 로비에는 그라피티로 뒤덮인 롤스로이스를 한 대 전시했다.
124개의 객실은 고급 선박을 테마로 꾸몄다. 또한 수영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동그란 창문을 설치해 수영장에서 낮잠을 자거나 크로크무슈를 먹는 투숙객들의 한가로운 모습을 영화처럼 감상하게끔 유도했다. 재개관을 한 수영장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 등장하며 할리우드에 데뷔를 하기도 했다. 몰리토르가 비키니와 파리지앵들을 모두 되찾은 셈이다. 조식을 포함한 더블룸이 약 50만원부터 객실만 사용하는 데이 패스는 2인당 약 44만원부터 구매할 수 있다.
molitorparis.com
글. 조지아 스티븐스
신나는 물놀이!
브라 마리Bras Marie, 시몬느-드-보부아르 인도교, 그레넬 항구 등 다가오는 9월까지 센강 인근에 야외 수영장이 여럿 개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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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mming
파리식 야외 수영장 3곳
조세핀 베이커
전설적인 재즈 엔터테이너의 이름을 딴 이 수영장에 가면 강 속이 아닌 아닌 강 위에서 수영을 해볼 수 있다. 센강에 정박한 바지선 안에 만들어진 이 수영장은 바스티유 감옥에서 멀지 않은 13구에 위치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유리 지붕이 접혀 있어 데크에서 일광욕을 하기 좋다. 중앙 풀장 옆에 어린이를 위한 유아풀이 있고 일광욕실, 사우나, 헬스장, 탈의실 등이 세심하게 마련되어 있다.
piscine-baker.fr
로제 르 갈 수영장
시내 동쪽 12구에 자리한 50m 길이의 로제 르 갈 수영장은 스포츠 센터의 일부로 운영하는 중이다. 접이식 지붕 덕분에 햇살 좋은 여름에는 순식간에 야외 수영장으로 변모한다. 일광욕을 위해 준비된 잔디 또한 매우 부드럽다고. 이 수영장의 이름은 프랑스 레지스탕스 요원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한 달에 한 번 나체주의자를 위한 개방 시간이 별도로 지정되어 있다.
piscine.roger.le.gall
뷔 토 카이 수영장
1924년 13구 남쪽에 문을 연 뷔 토 카이 수영장은 파리에서 몇 안 되는 보존 수영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중앙 실내 풀장에는 지금도 아르데코풍 아치형 천장이 있고 야외 수영장도 두 곳이나 자리한다. 자연 유황 온천 덕분에 연중 내내 수온이 28°C로 따뜻하게 유지된다.
paris.fr
글. 조지아 스티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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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벨에포크 시대를 향유하다
파리지앵들은 벨에포크시대에 대한 강렬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 도보 투어를 통해 19세기 말의 지형물을 살펴보면서 벨에포크 시대의 견문을 넓혀본다.
글. 아멜리아 두간
파리는 자신들이 건축한 신화 속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도시이다.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도시의 매력은 곳곳에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옛 시대의 흔적을 지녔다. 하지만 지나친 낭만주의는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1980년대에 파리를 찾았던 일본인 여행자들은 파리 증후군을 앓기도 했는데, 이는 도시에 관한 과도한 환상이 현실과 부딪히며 야기되는 정신적 혼란을 의미한다.
하지만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벨에포크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고자 한다.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꽤나 평화롭고 자유분방하고 긍정적이며 기술적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거뒀던 바로 그 시대를 말이다. 당대에 인상파가 탄생했고, 영화가 발명됐으며, 물랭루주 같은 퇴폐적인 극장에서 캉캉춤이 인기를 끌었다. 정말 낭만적인 시대였을까? 아니면 그저 낭만적으로 연출된 시대였던 걸까? 과연 나는 현시점에서 무엇을 포착해낼 수 있을까?
스페인 출신 투어 가이드인 안나 지메나Ana Gimena로부터 첫 답을 들을 수 있었다.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으나 오늘날에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프티팔레Petit Palais의 고풍스러운 계단에서 만난 안나는 벨에포크 시대 그 자체였다. 그녀는 상체를 감싸는 레이스 블라우스와 풍성한 스커트를 입고 타조 털이 길게 달린 모자를 착용해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만약 제가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만국박람회를 보러 갈 거예요”. 그녀가 박물관에 입장하기 전 화려한 장갑을 벗어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한다.
안나가 투어 중 퍼포먼스의 일종으로 연기하는 벨에포크 시대의 캐릭터는 만국박람회에 열광한다. 만국박람회는 아르누보 시대의 황금기에 개최되어 한 시대를 휘어잡은 행사였다. 건축가 샤를 지로Charles Girault의 주도하에 프티팔레와 그랑팔레Grand Palais 그리고 알렉상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re III 역시 이 무렵 지어졌다. 센강 왼쪽에 위치한 웅장한 오르세 미술관과 오스만 거리Boulevard Haussmann도 마찬가지다.
“당대 사람들은 전기와 엔진에 놀라고, 움직이는 영상물에 열광했어요. 비행기와 지하철을 보고는 거의 까무러쳤죠!” 그녀가 숨도 쉬지 않고 이어서 설명한다. “프랑스 인구가 3900만 명에 불과했던 때에 50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파리로 몰려들었어요. 올림픽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죠.”
|동시대에 파리에 업적을 남긴 프랑스인으로는 엔지니어 구스타브 에펠과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과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 등이 있다. 유서 깊은 묘지마다 이들의 무덤이 깃들어 있다.
“벨에포크 시대는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영위하게 된 시기이기도 해요.” 우리는 배우이자 고급 창녀였던 사라 베르나르가 실크를 걸친 채 쿠션 위에 무표정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장면을 담은 거대한 유화 앞에 선다. “벨에포크 시대 최고의 유명 인사였어요. 남자들은 그녀를 갈망했고 여자들은 그녀의 스타일을 따라 했죠.” 하지만 베르나르의 유명세는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지배계급은 여전히 기독교 교리만을 찬미했고 하위계층은 매춘을 일삼았다. “벨에포크 시대는 양날의 검을 쥐고 있었죠. 이 시대에 잘못된 면이 있었다는 것도 인정해야만 해요.” 안나가 허리에 걸어둔 회중시계를 확인하더니 다시 장갑을 끼며 말한다.
파리에서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모퉁이마다 애정과 경의를 갖고 역사의 일부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가득하다. 우리는 9구에 있는 부이옹 샤티에Bouillon Chartier에 들러 점심을 해결한다. 1896년 노동자를 위한 비스트로로 지어진 이 화려한 레스토랑에서는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이 여전히 손님 테이블에서 음식값을 계산한다. 이곳 외에도 벨에포크식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으로 르 트랑 블루Le Train Bleu와 보팡제Bofinger 등이 손꼽힌다.
저녁에는 요즘 파리의 젊은이들이 선호한다는 피갈Pigalle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 자리한 4성급 호텔 로슈아르Hôtel Rochechouart는 2020년에 개조를 거쳐 벨에포크 시대의 음악을 되살려냈다. 덧붙여, 밤새도록 음악에 몸을 내맡기고 싶다면 르 미카도 댄싱Le Mikado Dancing 바에서 푸아그라와 압생트를 맛본 뒤 지하로 향하자.
호텔로 돌아와 발코니에 서서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서 반짝이는 사크레쾨르 성당의 불빛을 감상한다. 길 아래 클리시 대로Boulevard de Clichy의 성인용품점에서 깜빡이는 네온사인이 모순적으로 느껴지지만 말이다.
다음 날 아침, 페미니스트 인 더 시티라는 워킹 투어 회사의 설립자인 줄리 마랑제Julie Marangé와 함께 벨에포크 시대의 문화유산이 가장 잘 함축된 곳이라 일컬어지는 물랭루주로 이동한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시대를 ‘프랑스 매춘의 황금기’라고 표현해요. 하지만 당대의 여성을 설명하면서 ‘황금’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지금까지 누가 역사를 써왔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줄리가 말한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7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