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COASTAL CALIFORNIA
캘리포니아의 마법 같은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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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호

모래와 파도 너머로 석양이 장밋빛으로 물든다. 유서 깊은 수영 클럽과 독특한 야생동물 서식지, 거센 파도와 장대한 드라이브 코스가 어우러진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는 물가에서 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여기, 샌프란시스코부터 로스앤젤레스까지 이어지는 해안에서 마주한 최고 순간들을 모아본다.

샌타바버라의 여러 해변 중 하나.


swimming 

시간과 파도

유서 깊은 돌핀 클럽의 회원들은 100년 넘게 샌프란시스코만의 물속에서 용맹을 떨쳐왔다. 지금은 수영 베테랑과 여행자들이 금문교가 보이는 바닷속으로 함께 뛰어들어 활력 넘치는 시간을 마음껏 누린다.

(위부터 시계 방향) 금문교가 샌프란시스코 스카이라인을 압도한다. 돌핀 클럽의 장기 회원 다이앤 월튼. 돌핀 클럽에 세워진 서핑보드.

다이앤 월튼Diane Walton은 약 20년 전 샌프란시스코만의 차디찬 물속에 처음 들어갔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 추워서 장기가 터지는 줄 알았어요!”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73세의 그녀가 부두에 앉아 캘리포니아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말한다. 모래에 널브러져 있던 바다사자 한 마리가 마치 그녀의 말에 대답하듯 큰 소리를 낸다.
발을 적시는 오늘의 물 온도는 12.7°C, 상쾌하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동북쪽 해안의 도심 해변에 있는 아콰틱 파크Aquatic Park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안경을 쓰고 유유자적하는 사람들을 봐서는 도무지 물 온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다이앤은 금문교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매주 네 차례 규칙적으로 수영을 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돌핀 클럽 회장으로서 나를 위해 부두 머리에 자리한 클럽의 중후한 마호가니 목재로 만든 보트하우스를 안내하고 있다. 1877년 설립된 돌핀 클럽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바다 수영 및 조정 단체다.
그 전신은 남성 전용의 사교 클럽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도시에 남아 있는 단 두 개의 수영 클럽 중 하나인 돌핀 클럽으로 진화했다. 약 2000명의 고정 회원 중 여성 회원은 40% 정도이며 18세부터 94세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과거엔 노동자 계층이 주를 이뤘으나, 오늘날은 샌프란시스코 전역에서 온 다양한 부류가 가입해 있다. 젊은 테크 전문가들과 나이 든 히피 어르신들이 바다를 공유하며 일주일에 세 번 외부인의 활동이 허용된 날 또한 북적거린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있으면 머릿속을 맴도는 사소한 생각들이 사라져요.” 검은색 비키니를 입은 젊은 여자가 잠수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이앤이 말한다. “기적 같아요.”
왜가리, 바다사자, 잔점박이물범, 상어 등과 함께 종종 수영을 즐긴다는 그녀는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말한다. “작은 동물만 있어요. 놀랍도록 다채로운 각기 다른 생명체가 바다에 모여요. 모두를 위한 곳이죠.”
만에서의 수영은 여전히 파격적인 활동으로 여겨지지만, 물에 의해 형성된 샌프란시스코에서라면 이해가 된다. 오늘날 해군 기지가 있었던 작은 섬에 자리한 트레저 아일랜드Treasure Island 같은 와이너리들이 높은 습도와 짙은 안개의 이점을 활용해 소량의 독특한 와인을 만들고, 시내 레스토랑에서는 바다에서 채집한 산물로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인다. 그중 돋보이는 치사이 스시 클럽Chīsai Sushi Club은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는 보라성게를 메뉴로 선보여 손님들은 식사를 하면서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일조한다.
돌핀 클럽의 많은 회원들은 수십 년 동안 만에서 수영을 해오고 있다. 다이앤에 의하면 어떤 회원은 무려 60년 동안 이곳에서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활발하고 소속감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많은 연구가 밝혔죠.” 20대 청년이 팔벌려뛰기를 하면서 입수를 준비 중이다.
주황색이 감도는 분홍색 트렁크 수영복을 입은 퀸 핏츠 제럴드Quinn Fitzgerald가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채로 우리를 향해 부두를 따라 걸어온다. 나는 온수풀보다 더 어려운 물살 속에서 수영한 적이 없기에 퀸이 나의 바다 수영 데뷔를 위한 수영 파트너로 오늘 함께해주기로 했다. 퀸은 그런 파트너를 “베이둘러Bay-doula”라고 부른다.

(위부터) 멘도치노 카운티에 있는 포인트 아레나 등대. 헌팅턴 비치의 파도를 타는 서퍼.

“삶을 전환하는 경험이 될 거예요.” 차가운 모래 위를 걷던 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약속한다. 나는 아직 확신이 안 든다. 웨트슈트도 안 입었는데, 퀸 말로는 웨트슈트가 수영을 온전히 즐기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한다. 물이 허리춤까지 오르자 폐에서 공기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내 표정을 봤는지 퀸이 주의를 돌리기 위해 도시의 수영 클럽 역사를 훑는다. 만에서의 수영은 골드러시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럽에서 출발한 선박이 도착하면 서민들은 경쟁하듯 물살을 가로질러 VIP 고객들을 해안까지 안내하고 사례금을 받았다. 내 뒤로 인근 하이드 스트리트 피어Hyde Street Pier에서 관광객들을 내리는 케이블카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인파가 파도처럼 순식간에 덮쳐온다. 어깨까지 입수하고 천천히 한 바퀴 돌고 나니 반짝이는 모랫바닥까지 보일 만큼 맑은 바닷물의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약간의 어지러움 뒤에 머리가 한순간 맑아지고, 짜릿한 희열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는 신이 나서 퀸에게 이야기한다.
그가 웃으면서 말한다. “다음에는 앨커트래즈섬Alcatraz Island에서 수영에 도전해보세요.” 그가 매년 새해 첫날에 인근 돌핀 클럽과 사우스 엔드 로잉 클럽South End Rowing Club에 소속된 99명의 노련한 수영 회원들이 악명 높은 교도소가 있던 섬에서 해안까지 2km 거리를 가볍게 헤엄치는 40년 된 전통에 관해서 설명한다.
“앨커트래즈는 아마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상징적인 바다 수영 명소일 거예요. 감옥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상상력을 자극하죠. 이곳에서의 탈옥은 오래전부터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거든요.” 그가 해안가로 천천히 헤엄치면서 말한다. 육지에 닿자 돌핀 클럽 사우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늑한 소나무 사우나실 안에 벤치가 나란히 놓여 있고,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앉아서 다양한 항해 루트를 그리고, 조석표에 대해서 의논한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피부 위로 수증기가 올라오고 일종의 동지애가 작은 방을 가득 채운다. 심지어 몇몇 고참 회원들은 캔맥주를 딴다.
오늘 아침, 우리는 모두 옷을 벗어 던지고, 직감을 무시한 채 샌프란시스코만으로 몸을 던져 활기를 가득 채웠다. 퀸은 말한다. “이곳의 물을 경험한 누구나 더 나은 사람으로 돌아간다.”


three of the best

캘리포니아 서핑 명소

캘리포니아에서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완만한 물결부터 고난도 파도까지 함께하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글. 조이 고토

캘리포니아 남부 헌팅턴 비치에 있는 인명구조 탑.

헌팅턴 비치HUNTINGTON BEACH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 사이에 있는 헌팅턴 비치가 서프 시티 유에스에이로 공식 지명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장 빼어난 해변 중 하나가 펼쳐진 이곳은 언제나 물 위에 있는 서퍼들과 이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캠핑카 야영장과 자유분방한 카페들이 있어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남부 경험을 선사한다. 14km 길이의 해변은 거의 완벽한 파도가 수시로 몰아치는 1950년대 원조 서핑 스폿 중 하나로, 그 명성에 매료된 초보자와 숙련된 서퍼들의 발길을 이끈다. 연중 내내 서핑하기 좋지만, 여름에는 매우 붐빈다. 고요하게 파도를 즐기고 싶다면 부두 북쪽으로 향할 것. 보드와 웨트슈트는 모래사장에 있는 상점 잭스Zack’s 등에서 빌릴 수 있다.

멘도치노MENDOCINO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바람 부는 이 해안은 인파를 피해 한적하게 파도를 타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장소다. 비치 보이스의 노래를 틀고 하이웨이 원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젖은 웨트슈트들이 난간에 걸려 있는 작은 해안 마을들을 지난다. 반짝이는 돌이 넘쳐나는 신비로운 글라스 비치Glass Beach로 유명한 해안 도시 포트 브래그Fort Bragg. 숙련된 서퍼들은 어려운 수중 암초가 많은 포인트 아레나Point Arena에 도전하고, 초보자들은 캐스퍼 스테이트 비치Caspar State Beach에서 발을 담근다. 로스트 서프 셱Lost Surf Shack에서 장비를 빌릴 수 있다.

팜스프링스PALM SPRINGS
샌디에이고 북쪽에 있는 팜스프링스는 태평양에서 차로 2시간 내륙으로 들어와야 있지만, 이 사막 지대에서도 서핑이 가능하다.  할리우드 스타와 미드 센추리 모던 건축물로 잘 알려진 도시에 팜스프링스 서프 클럽이 최근에 생기면서 화제가 됐다. 거친 샌재신토산맥에 조성된 워터파크에는 인공 파도 풀장이 있다. 여기서 신참들은 약한 파도의 ‘와이키키Waikiki’를 시도해볼 수 있지만, ‘에이 프레임A’Frame’의 파도는 전문 서퍼들도 긴장할 만큼 강력하다. 서핑 중간중간에 풀장 옆 카바나에서 신선한 포케 한 그릇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자. palmspringssurfclub.com



road tripping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에서 6일

세계에서 손꼽히는 해안 도로 중 하나인 이 짜릿한 길 위에 태평양의 절경과 느긋한 서핑 마을, 삼나무 숲 그리고 옛 낭만이 있다.
글. 조이 고토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는 빅서의 깎아지른 절벽과 빅스비 다리를 연결한다.

이런 곳이야말로 전망 좋은 도로를 따라 달려야 한다. 1번 국도 구간 중 아드레날린을 치솟게하는 1000km 커브 길을 달리는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Pacific Coast Highway는 한쪽에는 사암 절벽을, 다른 쪽에는 거센 태평양 파도를 그리고 머리 위로는 무한한 하늘을 두고 바닷가 마을들을 연결한다. 야자수가 즐비한 해변과 개성 넘치는 명소들, 아이코닉한 건축물이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산타모니카 사이 구간이 이 도로의 하이라이트다.

첫째 날. 몬터레이MONTEREY
금문교를 뒤로하고 페스카데로Pescadero까지 8km를 남겨둔 지점에 있는 피전 포인트 등대를 향해 97km를 이동한다. 해안에 있는 가장 높은 등대는 낮잠 자는 물개를 관찰하기 좋은 전망대가 된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창고들을 개성 있는 상점으로 개조한 옛 정어리 통조림 산업 중심지인 캐너리 로Cannery Row와 알록달록한 고기잡이배로 유명한 다음 목적지인 몬터레이가 나온다.
놓치지 말 것: 근처 오버진 레스토랑에서 몬터레이 시립수산시장에서 사들여 만든 전복 요리를 반드시 맛보자.
auberginecarmel.com

둘째 날. 카멜바이더시CARMEL-BY-THE-SEA
몬터레이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이 해안 마을은 유난히 별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시장으로 역임한 적이 있고, 상세 주소지가 없으며, 하이힐을 신으려면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문을 연 레스토랑을 찾는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다채로운 해산물로 유럽에서 영감을 받은 요리를 선보이는 셰 누아르Chez Noir에 갈 예정이라면 예약은 필수다. 오너 셰프들이 레스토랑 위층에 거주해 마치 친구네 집에서 저녁을 먹는 느낌이 들기도. 친구가 미쉐린 별을 받은 셰프라면 말이다. cheznoircarmel.com
놓치지 말 것: 또 다른 인기 레스토랑인 스테이셔너리에서는 랍스터 샌드위치부터 소시지 반미 샌드위치까지 다양한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thestationaery.com

셋째 날. 빅서BIG SUR
카멜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오크나무에 둘러싸인 해안 절벽으로 순식간에 풍경이 바뀐다. 빅서 지방의 관문인 카멜 하일랜즈Carmel Highlands로 진입한다. 세계에서 자연경관이 가장 빼어난 도로 중 하나로 산시메온에서 끝나는 1번 국도의 145km 구간은 하나는 위로, 다른 하나는 아래로 향한 두 개의 거대한 암벽 사이를 통과한다. 심장 약한 사람에게는 주의가 필요하지만, 태평양의 절경이 이를 충분히 보상한다. 가는 길에 해수면에서 80m 올라와 있는 빅스비 다리Bixby Bridge를 건너게 된다. 갓길 정차 공간에 멈춰 서 사진을 찍고, 삼나무 숲을 보러 줄리아 파이퍼 번즈 주립공원Julia Pfeiffer Burns State Park으로 가자.
놓치지 말 것: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즐겨 찾았던 건축물로도 유명한 레스토랑 네펜테에서 보이는 바다 전망. nepenthe.com

넷째 날. 산시메온SAN SIMEON
포도밭으로 이뤄진 구릉진 언덕이 창문 밖으로 펼쳐진다. 여행 일정에 녹음이 우거진 와이너리 방문을 포함해 와인 시음을 해보자. 테이스팅룸이 옛 학교 안에 있는 베일리아나 와이너리를 추천한다. baileyana.com
이 지역의 하이라이트는 출판계 거물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저택으로, 스페인의 성당을 본떠 설계한 맥시멀리스트의 진수를 보여주는 저택이다. 저택 투어를 예약해 신고전주의 양식의 조각상과 중세 시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연회장 등이 있는 호화로운 내부를 구경하자. hearstcastle.org
놓치지 말 것: 망원경을 통해서 산시메온의 피에드라스 블랑카스 코끼리물범 서식지의 거주민들 구경하기. elephantseal.org

다섯째 날. 샌타바버라SANTA BARBARA
산시메온와 샌타바버라를 연결하는 해안을 따라 야자수가 도열한 해변 마을과 캠핑카가 군데군데 있다. 12월부터 4월까지 혹등고래 관찰 명소가 되는 피스모 비치Pismo Beach에 들르자. 샌타바버라에 도착하면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하얀 고급 저택이 줄지어 선 해안가 산책로가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이 지역이 ‘미국의 리비에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정갈한 주택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펑크 존 지구의 옛 어업 작업장이 갤러리와 소규모 양조장 그리고 서핑 전문점으로 탈바꿈했고, 근처에는 도심 와이너리 트레일이 있다. funkzone.net
놓치지 말 것: 캘리포니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두인 스티언즈 워프에서 점술가 마담 로진카를 만나보자.
stearnswharf.org

여섯째 날. 산타모니카SANTA MONICA
유원지의 매력이 가득한 해안가의 산타모니카에서 여행을 마무리하자. 산타모니카 피어Santa Monica Pier에 있는 퍼시픽 파크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근처 오리지널 머슬 비치Original Muscle Beach에서 운동하는 보디빌더들을 구경하자. 대공황 시대에 레슬링 선수들과 아크로바틱, 스턴트 공연자들이 연습하던 장소로 출발했다고 한다. pacpark.com
놓치지 말 것: 1940년부터 성업하고 있는 아르데코풍 건축물 안에 자리한 에어로 극장에서 영화 보기.
americancinematheque.com



music

캘리포니아 펑크의 탄생지

버클리의 갤러리, 부티크 의류 매장 그리고 신성한 대학교 캠퍼스 틈에서 음악 혁명의 불꽃이 피어오른다.
글. 리처드 프랭크스 사진. 알레니아 헤일

(왼쪽부터) 아메바 뮤직 레코드 전문점. 924 길먼 스트리트 음악 공연장.

고상한 대학교 캠퍼스로 유명한 버클리가 펑크록 음악 혁명이 일어난 도시로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만 건너편에 있는 이 해안 도시는 사실 반항적 이미지를 구축한 지 오래됐는데,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텔레그래프 애비뉴Telegraph Avenue가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 거리는 히피와 자유 언론 활동가 그리고 반전시위대가 결집한 자유분방한 장소였다. 바로 이곳 갤러리와 부티크 그리고 극장이 있는 거리에서 펑크 정신이 부상했다.
오늘날 7km 길이의 거리는 펑크 음악의 동맥처럼 흐르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keley에서부터 남쪽에 있는 오클랜드Oakland까지 라스푸틴Rasputin 같은 정통 음반 가게가 중고 물품점과 버거집, 베이 에어리어Bay Area 최대 규모의 LP 전문점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반체제운동을 본질로 하는 펑크 음악은 인종차별, 분리정책, 성 정체성 같은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1964년 급진적 자유 언론 운동의 선두에 있던 UC버클리대학교 학생들은 캠퍼스 내에서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대학교 관리자들의 결정에 항의했다.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반체제 시위로 기록되며 버클리를 펑크 문화 혁명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펑크 문화의 선구자 이기 팝Iggy Pop과 라몬스Ramones는 샌프란시스코 나이트클럽인 마부하이 가든스Mabuhay Gardens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베이 에어리어의 펑크 음악 팬들은 가까운 곳에 공연 관람 기회가 적은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펑크메탈 음악 장르가 버클리에 위치한 루티스 인Ruthie’s Inn에서 드디어 자리 잡게 됐고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한 메탈리카Metallica와 슬레이어Slayer 같은 베이 에어리어 밴드들은 헤비메탈의 전설로 성장했다.
루티스 인이 1980년대 말에 문을 닫으면서 웨스트 버클리West Berkeley 지역의 버려진 창고 건물 안에 새로운 부류의 공연장이 생기게 됐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수제 맥주양조장과 베이커리 그리고 고급 편집 매장들이 모여 있다. 1986년에 개관한 924 길먼 스트리트는 모든 연령대의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음주와 인종차별이 금지된 비영리 지역 문화센터로 문을 열었고 이 정신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왼쪽부터) 텔레그래프 애비뉴에 있는 랑이즈 펍. 라스푸틴을 나오는 쇼핑객.

조금은 우중충하고 그라피티로 뒤덮인 924 길먼 스트리트는 여전히 신예 밴드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낡은 소파와 실내 농구 골대가 바 양쪽에 있고, 출입문에서 입장객을 관리하거나 바닥 청소를 하는 등 자원봉사를 하는 이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동종 공연장 중에서는 캘리포니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사업주가 없는 공연장에서 밴드들이 수익을 공평하게 나눠 갖고, 어린 동생들이 형제자매가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그런 공연장 말이다.
버클리에서 공연했던 밴드 그린 데이Green Day는 이곳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 당시 ‘스위트 칠드런Sweet Children’이라는 밴드명으로 활동했던 그들이 그린 그라피티가 무대 위의 천장에 아직 남아 있다. 공연장의 명성 또한 아직 살아 있다. 전세계의 신예 밴드들이 여전히 이곳에서의 공연을 요청하는 데, 샌프란시스코를 마다하고 오기도 한다.
924 길먼 스트리트 밖으로 나가면 버클리의 펑크 음악 신이 매우 활발한 것을 볼 수 있다. 전 연령 입장 가능한 비영리 시설인 UC 시어터는 1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요 공연장으로 1917년에 설립된 버클리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그린 데이와 푸시 라이엇Pussy Riot 그리고 디센던츠Descendents가 최근 몇 년 동안 이곳에서 공연하면서 고상한 무대를 광란의 록 콘서트장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에게 음악 홍보와 음향 엔지니어링을 가르치는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덕분에 버클리의 펑크 정신의 미래가 밝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8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글. 리처드 프랭크스RICHARD FRANKS, 조이 고토ZOEY GOTO, 파리다 제이나로바FARIDA ZEYNALOVA
사진. 게티, AWL 이미지스, 알레이나 헤일, 야사라 구나와르데나, 알레니아 헤일, 알라미, 조이 고토, 제니퍼 총,야사라 구나와르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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