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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트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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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호

얼핏 반항적인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젊음의 활기가 가득한 겐트. 지금 이 도시는 브뤼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벨기에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운하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겐트의 3개 탑이 자리한 그라슬레이 부두와 성 미카엘 다리St. Michael’s Bridge 너머로 보이는 전망.

16세기에 겐트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다. 강과 운하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 도시는 당시 유럽에서 파리 다음으로 규모가 큰 도시였다. 벨기에를 통치하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해외 군사 활동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세금을 올렸지만, 이 도시는 세납을 거부했다. 지역 주민들은 이미 충분한 세금을 지불했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겐트에서 태어난 카를 5세가 자신의 고향 땅을 공격하지 않으리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군대를 이끌고 겐트로 진격해 화려한 장식품들을 강탈하고 지도자들의 목에 밧줄을 걸어 속옷 차림으로 행진시켰다.
오늘날 유네스코에 등재된 종탑과 십자군 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석조 요새인 그라벤스틴Gravensteen이 남아있는 이곳 역사 지구에서 도시의 빛나던 과거를 엿볼 수 있다. 화려했던 전성기는 지나갔지만, 겐트 사람들은 16세기에 부와 명성을 잃은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들의 반항적인 기질을 드러낸다.
이러한 정신은 살아남아 사회적 의식이 강하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가득한 도시의 정체성이 되었다.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단체인 뉴클레오Nucleo는 도시의 빈 공간을 작업실로 용도 변경하고 1년에 한 번씩 시민을 초대해 관람할 수 있게 한다. 올해는 5월 5일에 예술가들의 스튜디오가 대중에게 공개됐다. 더불어 지역 요리사들은 다양한 채소들을 탐구하며 겐트를 유럽의 채식 수도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힘쓴다. 이렇게 활기찬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도시가 플랑드르 지역에서 가장 큰 대학 도시이기 때문이다. 약 26만 7000명의 주민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학생이다. 덕분에 오버포트Overpoort 학생 지구에서는 스페셜티 로스트 커피 향이 계속해서 퍼지고, 해가 진 뒤엔 촛불을 밝힌 와인바부터 땀에 흠뻑 젖어 있는 창고까지 베를린 하면 떠오르는 테크노 음악이 울려댄다.
겐트가 유럽 청년 포럼European Youth Forum에 의해 2024년 유럽 청년 수도로 지정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4월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격년으로 열리는 겐트 국제 페스티벌Ghent International Festival에서 오페라와 롤러스케이트를 탄 무용수들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행사가 연중 내내 계속되며, 15세 정도로 어린 주민들도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지에 대해서는 예측 불가다.


세 개의 탑세 탑
겐트에서 가장 멋진 전망 중 하나를 보고 싶다면 성 미카엘 다리에 서서 역사 지구 쪽을 바라보자. 종탑과 성 니콜라스 교회, 성 바보 대성당의 탑 세 개가 여러분의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벨기에 예술가 미카엘 보레만스Michaël Borremans의 거리 조각품.
(왼쪽부터) 그라슬레이에서 즐기는 보트 투어.
독 노르트 개발 지구에 있는 할 16 내부의 독 양조회사.

놓칠 수 없는 것

역사적인 부둣가: 만약 오래전 겐트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본 적 있다면, 아마도 사진 속 배경은 그라슬레이Graslei와 코렌레이Korenlei일 가능성이 높다. 한때 도시 무역의 핵심이었던 이 부두들은 여전히 활기가 넘치는 장소로, 카페테라스와 보트 투어를 위한 정박지가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보트를 타고 역사 지구는 물론, 과거 노동자 계층의 주거지였지만 현재는 요리의 중심지가 된 패터스홀Patershol, 한때 왕족이 거주하던 주택 지구인 프린센호프Prinsenhof로 갈 수 있다.
어린 양에 대한 경배: 반에이크Van Eyck 형제가 그린 이 제단화는 역사상 가장 많이 도난당한 예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나폴레옹에게 강탈당하기도 했으며, 수년에 걸쳐 위조되었고, 파손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 작품은 플랑드르 회화가 중세의 미술 기법이 아닌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성 바보 대성당St. Bavo’s Cathedral에서 이 작품의 장르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볼 수 있는데, VR 투어를 통해 보다 생생하게 작품의 역사 속으로 이끈다. sintbaafskathedraal.be
거리예술: 1990년대에 거리예술가들이 역사 지구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 후 벽화들이 덩굴식물처럼 서서히 퍼져나갔고, 그 결과 지금의 그라피티 앨리Graffiti Alley라고 불리는 길이 탄생했다. 무료로 ‘Sorry, Not Sorry’ 앱 지도를 다운로드 받아 몇몇 유명 작품을 찾아갈 수 있다. 벨기에 예술가들의 작품으로는 로아ROA가 템펠호프Tempelhof에 그린 토끼 벽화와 예술가 키츠네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나폴레옹 데스탄베르그 거리Napoleon Destanbergstraat에 그린 여우 벽화가 있다.
독 노르트: 도시 북쪽에 있는 오래된 공장 단지가 겐트의 새로운 레저 및 사무 공간인 독 노르트Dok Noord로 탈바꿈했다. 이곳의 주요 명소는 벽돌 창고로 이용되던 건물에 들어선 식품관인 할 16Hal 16이다. 문어 라구를 곁들인 마팔딘 파스타mafaldine pasta나 바비큐 요리 등의 이탈리아 특선 요리를 맛본 뒤엔 독 양조 회사Dok Brewing Company에서 갈증을 해소해보자. 이곳엔 30가지의 생맥주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현장에서 양조되는 페일에일인 와르 이즈 로카Waar is Loca가 가장 인기 있다. dokbrewingcompany.be

(왼쪽부터) 역사 지구의 성 바보 대성당에 있는 ‘어린 양에 대한 경배’ 제단화. 더 코블러의 긴자 칵테일.

바이크 겐트: 크리스토프 드 스메트Cristophe De Smet는 자전거 투어를 통해 도시의 역사 지구를 벗어나 그의 고향으로 안내한다. 여성들을 위한 종교 단체였던 베긴회beguinage와 벨기에 최초의 노동자 주택단지이자 지금은 현대적인 설치미술품이 전시되고 여름이면 팝업 수영장으로도 활용되는 지브라 스트리트Zebra Street 등 관심사에 맞게 개인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bikeghent.be
산업박물관: 벨기에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산업혁명이 진행된 나라다. 옛 면화 공장 내부에 자리한 이 박물관에서는 겐트가 섬유 중심부로 발돋움한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박물관 소장품 중 하이라이트는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만든 벨기에 최초의 방직 기계 스피닝 뮬이다. 당시엔 기계 수출이 금지되었기에 리벤 바우엔스Lieven Bauwens는 기계를 만들 때 필요한 부품을 영국에서 밀수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industriemuseum.be


현지인처럼 즐기기

포르투스 간다(겐트의 항구): 겐트는 ‘합류’라는 뜻의 켈트어인 간다ganda에서 유래했다. 그 이름처럼 이 도시는 리스Lys 강과 셸트Scheldt 강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됐다. 이 운하들을 따라 고요한 분위기의 선착장으로 가보자. 따뜻한 계절이라면 성 바보 수도원St. Bavo’s Abbey 쪽으로 돌아가보는 것도 좋다. 오랜 세월에 걸쳐 사라진 교회의 윤곽을 서어나무 덤불이 뒤덮고 있다.
더 베이커리: 페이스트리 셰프 주스트 아리즈가 2011년에 겐트의 쇼핑 지구인 소고Sogo에 초콜릿 가게를 열자 레스토랑 가이드북인 〈고에미요Gault & Millau〉는 곧바로 이 가게를 벨기에 최고의 초콜릿 가게로 선정했다. 초콜릿 가게에 이어 그가 2023년에 문을 연 빵집 더 베이커리는 호기심 많은 지역 주민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침마다 길게 늘어선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찍 와서 가장 바삭바삭한 크루아상을 한번 골라보자. thebakery-joostarijs.be
채식하는 목요일: 2009년에 겐트는 세계 최초로 매주 고기 없는 날을 도입했다. 그 이후로 타이베이와 로스앤젤레스도 이 제도를 따라서 시행하고 있다. 그라벤스틴성 맞은편에 위치한 스칸디나비아풍의 채식 런치 바인 분Boon에서 식사를 즐겨보자. 계절 수프, 샐러드, 키슈 파이는 요일에 상관없이 이곳을 다시 찾게 만든다. boon.gent

간다 룸스 앤 스위츠.

머물기 좋은 곳

간다 룸스 앤 스위츠: 역사 지구에 있는 18세기 타운하우스에 자리 잡은 이 조식이 제공되는 숙소보다 가성비가 더 좋은 숙소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8개 객실에는 과거의 흔적인 벽난로와 나무 기둥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주인장은 장인들과 협업하여 맞춤형 침대와 벨기에 예술품을 곳곳에 비치했다. gandaroomsandsuites.be
필로우스 그랜드 호텔 레이로프: 과거 남작의 저택이었던 이 4성급 호텔에서는 대리석으로 마감된 신고전주의풍 로비 계단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별도 건물에 자리한 157개의 객실은 좀 더 단순하게 꾸몄지만, 과거 마구간이었던 곳에 도서관, 작은 스파 등의 공용 공간이 있다. 그라슬레이 부둣가 근처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도 매력적이다. pillowshotels.com
호텔 베르헤겐: 역사 지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나타나는 이 도시 궁전에는 프레스코화, 조경이 뛰어난 정원, 아치형 천장을 갖춘 목욕탕 등 모든 것이 눈에 띄는 요소로 꾸며져 있다. 두 명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엄선한 앤티크 가구와 21세기의 현대적 감각을 결합해 객실 4개로 구성된 게스트 하우스를 재탄생시켰다. 스위트 데 앤 40Suite des Annees40 객실에서 여유를 즐겨보자. 약 21평 규모의 이 객실은 ‘스위트’라는 용어로는 그 가치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theverhaegen.com


TRAVEL WISE

항공편
인천공항에서 브뤼셀공항까지 KLM네덜란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루프트한자, 터키항공, 핀에어, LOT폴란드항공 등이 경유 1회 항공편을 운행한다. 각 항공사마다 경유지가 다르며, 목적지까지 최소 16시간 45분 소요된다. 브뤼셀공항에서 겐트까지는 기차로 이동하며, 약 1시간 15분 걸린다.
현지 교통편
겐트는 도심지에 자동차가 없어서 대체로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다. 또한 자전거 친화적인 곳이라 많은 호텔에서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겐트 시티카드는 관광 명소 무료 또는 할인 입장, 보트 투어 1회, 1일 자전거 대여, 시내 중심가 트램과 버스 무제한 이용 등 혜택을 제공한다. 48시간(약 6만2000원) 또는 72시간(약 7만원) 동안 이용할 수 있는 겐트 시티카드는 온라인으로 구매 가능하다. visit.gent.be
택시는 기본 요금이 약 1만4000원으로, 1km당 약 4000원이 부과된다.
방문 최적기
벨기에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연중 온화한 기온을 유지한다. 가장 좋은 시기에 이 도시의 운하를 경험하고 싶다면 4~9월 사이에 방문하자. 또한 여름인 7월에는 도시 전역에서 음악, 춤, 연극 공연으로 1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겐트 페스티벌을 비롯해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크리스마스쯤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그라벤스틴성 근처에서 시장 가판대에 놓인 크리스마스 장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정보
visit.gent.be
ghenteyc.eu


 

글. 안젤라 로카텔리ANGELA LOCATELLI
사진. 케빈 파잉네르트KEVIN FAINGNA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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