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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알프스에 이르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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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호

스위스 알프스에 꽃이 만발하고, 빙하가 빚은 호수는 윤슬로 반짝인다.
만년설이 쌓인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는 여름의 초록빛과 대비되어 더욱더 찬연하다.
융프라우 지역의 산과 호수, 마을을 누비며 대자연 속에서 쉼표를 찍는다.

로열 워크를 하이킹한 후 멘리헨 정상에서 마주한 풍광. 흐드러진 야생화 너머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장엄한 자태를 드러낸다.

 

564m LAKE BRIENZ


인터라켄 오스트 – 뵈니겐Bönigen – 링겐베르크Ringgenberg –니더리트Niederried – 이젤발트Iseltwald – 오버리트Oberried –기스바흐Giessbach – 브리엔츠


이젤발트를 떠나는 브리엔츠호 유람선.

호수 위에 둥둥
인터라켄의 회에마테Höhematte 공원에서 만년설에 감싸인 융프라우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마치 융프라우 지역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첫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다. 융프라우 지역의 관문 도시인 인터라켄은 ‘호수 사이’라는 뜻을 지닌다. 동쪽의 브리엔츠 호수와 서쪽의 툰 호수 가운데 자리한다.
날이 다소 흐리더라도 빙하가 녹아 형성된 브리엔츠 호수의 에메랄드 빛깔은 한결같이 영롱하다. 알프스산맥과 어우러지는 호수의 풍경을 찬찬히 찬미하기 위해 비엘에스 인터라켄 레이크 크루즈BLS Interlaken Lake Cruise가 운항하는 브리엔츠호 유람선에 탑승한다. 인터라켄 오스트 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해 브리엔츠로 향하는 이 유람선은 호수와 접한 여러 마을에 잠시 기착한다. 이때 선상에서 마을 풍경을 바라봐도 좋지만, 배에서 내려 마을을 둘러보고 다음 유람선에 탑승하는 선택지 역시 여행에 묘미를 더한다. 우리는 브리엔츠 마을에 하선하기까지 약 1시간 동안 온전히 호수를 유람한다. 때론 세찬 바람이 불어오기도 하지만, 이조차도 담담하게 느껴질 만큼 모든 것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러다 산 정상에서부터 계단식으로 웅장하게 흘러내리는 기스바흐 폭포와 1875년 지어져 스위스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우아한 건축물인 그랜드호텔 기스바흐가 계획을 변경해 잠시 이곳에 머물고 싶게 마음을 살랑인다.
브리엔츠에 도착해 호숫가를 따라 마을을 구경하다 보면, 곳곳에서 나무로 만든 설치미술을 발견하게 된다. “브리엔츠 마을은 목각으로 유명해요. 스위스에서 유일하게 목조 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죠.” 융프라우 철도의 가이드 에블린 켈렌버거Evelyn Kellenberger가 이야기한다. 스위스 목각 박물관Schweizer Holzbildhauerei Museum에서는 상설 전시를 통해 이 지역의 목공예뿐 아니라 저명한 작가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올해의 특별 전시는 알프스의 전통 가옥인 샬레를 주제로 다채로운 목조 샬레 미니어처를 선보인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이끌린 허글러 홀츠빌드하우에라이Huggler Holzbildhauerei 같은 상점에서 장인이 나무를 손수 깎아 빚은 소와 염소, 스위스 전통 의상 차림의 인물 조각상 등을 기념품으로 간직하는 것도 추억이 된다.
스위스 사람들은 여름이면 호수에 뛰어들어 물놀이를 즐긴다. 여름의 문턱 앞에 가랑비가 찾아왔지만, 호수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는 없다. 막 브리엔츠 호수에서 나온 듯 물기 가득한 수영복 차림의 현지인을 마주한다. 나는 대신 호수에 손을 빠뜨린다. 빙하처럼 차갑지만 해맑은 물결을 감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윤슬이 반짝이는 브리엔츠 호수로 첨벙 뛰어들며 찰바당대는 여름날의 행복.

(왼쪽 위부터) 브리엔츠의 부르거 갤러리에서 우연히 만난 예술가 바크BAK(Beat A. Krapf)와 그의 반려견이 바흐알프 호수를 그린 작품을 배경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호수를 품으며 즐기는 패러글라이딩. 스위스 목각 박물관에 샬레 모양의 뻐꾸기시계가 전시되어 있다.

TRAVEL COOL
융프라우 여름 VIP 패스 소지자는 브리엔츠 호수 또는 툰호수의 유람선 2등석을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브리엔츠호 유람선이 정류하는 마을 중 하나인 이젤발트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로 유명하다. 융프라우 VIP 패스로 이젤발트와 인터라켄을 오가는 103번 버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올해부터 인터라켄과 브리엔츠 그리고 마이링겐Meiringen을 오가는 기차의 2등석 역시 무제한으로 탑승 가능하다.

 

1322m HARDER KULM


인터라켄 하더반 – 하더쿨름


파노라마 레스토랑 하더쿨름과 전망대 투 레이크스 브리지 너머로 펼쳐진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그리고 산 아래 인터라켄까지 아름답게 어우러진 한 폭의 풍경.

산정의 감수성
인터라켄의 하더반Harderbahn에서 푸니쿨라에 탑승해 융프라우 철도 안내원의 조언대로 맨 앞자리를 사수한다. 푸니쿨라가 가파른 철로를 오를수록 유리창 너머로 점차 인터라켄의 전경이 드넓게 확장된다. 이윽고 10분 만에 해발 1322m 하더쿨름에 닿는다. 이후 5분 정도 걸으면 붉은 지붕이 인상적인 성 같은 건축물이 나타나는데, 과거에는 호텔이었던 파노라마 레스토랑 하더쿨름이다. 여름에는 푸니쿨라와 레스토랑 모두 늦은 밤까지 운영되므로 석양을 바라보며 낭만적인 저녁식사를 즐기기 좋다. 융프라우 여름 VIP 패스가 있다면 라클렛과 뢰스티 등의 메뉴도 10% 할인해준다.
레스토랑 야외 테라스에는 다이빙대처럼 툭 튀어나와 조금 아찔해 보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전망대 투 레이크스 브리지Two Lakes Bridge가 자리한다. 브리엔츠 호수와 툰 호수, 그사이에 자리한 인터라켄뿐 아니라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이루는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명당이다!

 

1967m SCHYNIGE PLATTE


인터라켄 오스트 - 빌더스빌Wilderswil – 브라이틀라우에넨Breitlauenen - 쉬니케플라테


알프스의 화원에서
알프스 지천에 다채로운 야생화가 만개하는 화사한 계절이다. 수많은 꽃을 그저 스쳐 지나치다가도 문득 이름과 삶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실마리를 찾아 빌더스빌에서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쉬니케플라테에 닿는다. 샛노란 꽃이 만발한 풍경 너머로 웅장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보인다. 야외 식물원인 알펜가르텐 쉬니케플라테Alpengarten Schynige Platte에는 꽃마다 푯말이 달려 있다. 김춘수의 시처럼, 그 이름을 불러줄 때 내 곁으로 와서 진정한 꽃이 되는 장소다.
“1927년 쉬니케플라테 알파인 가든 소사이어티가 창립되면서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자연 식물 군락의 종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는 원칙으로 종자를 키우고 묘목을 식재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조성된 식물원은 알펜가르텐 쉬니케플라테가 세계 최초예요. 토착 고산식물을 기반으로 이곳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정원을 가꾸는 거죠. 여러 연구도 진행 중인데, 베른대학교 식물생태학 교수인 마르쿠스 피셔Markus Fischer 박사님과 그의 팀이 전담하고 있어요.” 수석 정원사인 자스민 센Jasmin Senn이 이야기한다. 알프스의 여러 산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여기서 스위스에 자생하는 고산식물 대다수를 볼 수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정원의 길을 따라 80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한다. 지질에 따라 자라는 식물이 달라지는데, 쉬니케플라테는 대부분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구역은 화강암을 토대로 스위스의 다른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심었어요. 필요한 토양은 헬리콥터로 실어 옵니다.”(자스민)
꽃마다 사연도 다양하다. 티르소이데스초롱꽃Campanula thyrsoides은 꽃이 피는 데만 7년이 걸리는데, 딱 한 번 피고 죽는다고 한다. 우리는 매미 같은 꽃이라고 기억한다. “예부터 많은 고산식물은 정통 의학이나 민간요법에서 약으로 활용되었어요. 8월에 노란 꽃이 활짝 피는 겐티아나 루테아gentianalutea 역시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약초로 사용되었죠. 이건 뿌리로 담갔는데, 알코올이 좀 함유되었어요. 퐁뒤 같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한 잔 마시면 소화가 술술 되죠.” 자스민이 가이드 투어에 참가하는 여행자만 맛볼 수 있는 비기를 꺼내며 말한다. 황금빛 액체를 살짝 음미했을 뿐인데, 강렬하게 쓰디쓰다. 건강에 좋을 수밖에 없는 맛이다. 내 표정을 본 자스민이 달디달콤한 시럽 음료도 한 잔 건네준다. “여름에 스위스에서 많이 마시는 음료예요. 주로 엘더베리 꽃으로 만들죠. 이건 저희 엄마표 수제 시럽을 넣은 것인데, 내일 쉬니케플라테 알파인 가든 소사이어티 회원들의 모임이 열리거든요. 그때 모두와 함께 마실 거예요!”
여름에만 운영되는 알펜가르텐 쉬니케플라테는 올해 10월 20일까지 개장할 예정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활짝 열려 있다. 꽃을 탐구하고 난 후에는 자스민이 저녁 쯤에 마멋이 자주 나타난다고 알려준 정원 밖으로 짧은 탐험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

(위부터 시계 방향) 야생화 너머로 푯말이 설치된 식물원과 알프이젤텐까지 보이는 쉬니케플라테. 알프호른 연주를 마친 악사들이 여행자와 함께 사진 찍을 준비를 한다. 알펜가르텐 쉬니케플라테에서는 식물의 씨앗을 심고 기른 다음 산에 옮겨 심는다.

알프스의 산장에서
베르그호텔 쉬니케플라테Berghotel Schynige Platte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스위스 전통 의상 차림의 두 악사가 융프라우 봉우리를 배경으로 알프호른Alphorn을 연주한다. 알프호른은 긴 원뿔 모양의 목관악기로 알프스 목동들이 소를 부를 때 쓰였다고 한다. 길이에 따라 연주할 수 있는 음조가 달라지는데, 이곳의 알프호른은 거의 2m에 육박한다. 선율은 알프스 대자연과 어우러지며 평화롭다.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이 앞다투어 알프호른을 부는 척하며 사진을 찍는다.
이곳 레스토랑에서는 쉬니케플라테 인근의 알프이젤텐Alp Iselten에서 생산하는 마운틴 치즈(알프스에서 방목한 동물의 젖으로 만든 치즈)도 맛볼 수 있다. 7월 말부터 9월 초까지 100여 마리의 소가 알프이젤텐의 목초지에서 여름을 보낸다. 하루에 1600L의 우유를 짜고 오두막에서 마운틴 치즈를 만들어 숙성시킨다.
레스토랑의 위층이 바로 베르그호텔 쉬니케플라테다. 마치 알프스의 산장 같은 산악 호텔로 객실마다 다른 주제로 꾸며져 있다. 8번 객실은 말린 알프스 허브와 다양한 식물도감 등으로 약초꾼의 진한 향내가 묻어나고, 9번 객실은 마치 알프스 하이디가 머무는 방처럼 옷과 침구 등이 아기자기하다. 산 전망 객실은 인기가 더욱 높으므로 서둘러 예약해야 한다. 숙박에는 현지 재료로 요리한 4코스의 저녁식사가 포함되는데, 정성 가득한 가정식이어서 더욱 정답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스위스 알프스에 살아왔던 사람인 양 입맛에 딱 맞는다. 짙은 푸른빛의 툰 호수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이는 석양과 아이거와 묀히 그리고 융프라우 위로 총총히 박힌 무수한 별까지, 베르그호텔 쉬니케플라테에서 순수에 빠져든다.

 

3454m JUNGFRAUJOCH


그린델발트 터미널 – 아이거글레처 – 아이스메어 - 융프라우요흐


융프라우요흐의 고원 지대에 스위스 국기가 펄럭인다.

한여름 만년설 눈썰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 여기서 다시 스위스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발 3571m 스핑스 전망대에 다다른다. 알프스에서 가장 긴 알레치 빙하가 펼쳐지고, 고산지대의 바위틈에 둥지를 트는 노랑부리까마귀Alpine Chough가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묀히요흐산장으로 가는 트레일 근처에서 썰매와 스키를 타는 사람들도 점점이 보인다. 한여름에 만년설에서 겨울 스포츠를 만끽하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다음 목적지는 바로 저기다! 어느새 우리는 스노 펀 파크에서 스노튜브에 몸을 싣고 썰매장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대자연의 품 안에서 즐기는 스노튜빙은 인공 썰매장의 경험과 감히 비할 수 없다. 시간상 딱 한 번만 급히 탄 것이 아쉬울 따름. 다음에는 여유롭게 방문해 집라인을 타고 250m 거리를 날으며 공중에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알레치 빙하를 감상할 계획을 세운다.

(위부터 시계 방향) 알프스에서 가장 큰 알레치 빙하는 마치 강처럼 흐르는 듯하다. 융프라우 지역을 오밀조밀 표현한 알파인 센세이션 입구의 대형 스노볼. 스노 펀 파크에서 한 여행자가 스노튜브를 신나게 즐긴다.

빙하와 위스키
우리는 지금 빙하 안이다. 빙하를 깎아 만든 얼음궁전의 통로를 지나며 다양한 얼음 조각을 구경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더욱 특별한 비밀 공간이 숨어 있으니!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나타나는 계단을 오르자 쌓여 있는 오크통과 작은 컬링 경기장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얼음으로 만든 바가 자리하고, 그 위로 위스키가 진열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스위스 위스키인 아이스라벨을 시음한다. 2024년 에디션은 980병 한정 수량으로 출시되었다고 한다. 아이스라벨은 인터라켄에 위치한 루겐브로이Rugenbräu 양조장에서 증류한 싱글 몰트 위스키로 2024년 에디션은 유서 깊은 암석 저장고에서 4년, 융프라우요흐의 빙하에서 -4°C의 온도로 8년 동안 숙성되었다. 미국산 참나무로 만든 올로로소 셰리oloroso sherry(스페인의 산화 숙성된 주정강화 와인) 캐스크에서 숙성해 진하고 독특한 맛과 향이 가미된다. 빙하 속이지만 테이스팅은 온더록스가 아닌 니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모금 축이니 특유의 드라이하고 스파이시한 정취가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준다. 곱씹어 음미하니 말린 무화과 향이 나고 구운 아몬드와 호두 풍미가 더해지면서 다크 초콜릿 같은 쌉싸름한 맛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에 스위스 초콜릿을 곁들이니 위스키의 풍미가 한층 강하게 표출된다.
융프라우요흐에 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위스키 숙성고가 있다니! 심지어 빙하에 둘러싸여 스위스 위스키를 시음할 수 있다니! 융프라우요흐의 아이스바에서 우리의 여정은 이 위스키처럼 짙게 깊어진다.

TRAVEL COOL
2024년 융프라우 여름 VIP 패스에 새로운 혜택이 추가되었다. 패스에 포함된 6프랑 바우처로 스노 펀 파크의 눈썰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 눈썰매의 정상가가 성인 기준 20프랑이므로 큰 이득이다. 또는 여름 VIP 패스로 스노펀 파크의 썰매와 튜브, 스키 그리고 집라인을 40% 할인받을 수 있다. 스노 펀 파크는 5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운영한다.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2168m FIRST


그린델발트 곤돌라 승강장 – 보어트 - 슈렉펠트 - 피르스트


클리프 워크뿐 아니라 절벽 꼭대기에 자리한 전망대 피르스트 뷰에서 아이거 북벽을 포함한 알프스의 풍경이 펼쳐진다.

짜릿한 하산
피르스트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 메뉴를 살펴보다 융프라우 철도의 가이드 에블린에게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말한다. “저는 피르스트 레스토랑에 오면 항상 이글리Egli를 시켜요. 툰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 만든 요리죠. 예전에 툰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걸 여러 번 봤어요.”
나 역시 믿고 먹는 현지인 음식을 선택한다. 등장한 요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피시앤칩스. 민물농어류의 일종인 퍼치perch 필레를 맥주 넣은 반죽을 입혀 튀겼는데, 레몬즙을 뿌리고 레물라드remoulade(마요네즈에 머스터드와 잘게 다진 허브 등을 넣어 만든 프랑스식 소스)에 찍어 먹는다.
에너지를 든든하게 충전하고 레스토랑 테라스와 연결된 클리프 워크로 향한다. 절벽 옆에 설치된 다리를 걸으며 누군가는 다리를 후들거린다. 풍광 역시 발걸음을 자꾸 멈추게 한다. 흐린 날씨였지만 아이거 북벽의 장엄함은 가려지지 않는다. 바흐레거 폭포Bachläger Waterfall도 우렁차게 흐르며 시선을 붙잡는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다음과 같이 하산하는 내내 액티비티를 즐기는 것이었다. 피르스트부터 슈렉펠트까지 가볍게 하이킹을 한 다음, 피르스트 글라이더와 플라이어를 즐긴다. 그러고 나서 슈렉펠트에서 출발하는 마운틴 카트를 타고 보어트에 도착한 다음 다시 트로티 바이크로 갈아타고 그린델발트로 간다. 융프라우 여름 VIP 패스로 피르스트 글라이더와 플라이어, 마운틴 카트와 트로티 바이크 요금이 30% 할인되므로 합리적이기까지 한 여정이다. 그러나 여행에는 늘 변수가 있기 마련. 성수기에는 액티비티를 즐기려는 부지런한 여행자가 많아서 이미 이른 시간에 액티비티 티켓이 매진된다. 에블린은 오전 8시 30분에 미리 줄을 서서 티켓을 사는 것이 좋다고 알려준다. 오후 2시에 할 수 있는 액티비티는 트로티 바이크뿐.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서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갑작스럽게 나빠진 날씨 때문에 바흐알프 호수로 향하는 하이킹도 하지 못 했기 때문에 일단 조금 기다려보기로 한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보어트 승강장 근처 언덕에서 우리는 트로티 바이크의 경로를 살펴보다 경이로운 풍광을 마주하고는 바로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트로티 바이크는 서서 타는 두발자전거인데 생각보다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브레이크를 3분의 1 정도 잡고 내려오는데도 스릴이 넘칠 기세. 무엇보다 눈앞에서 시시각각 빠르게 흐르는 베터호른Wetterhorn과 슈렉호른Schreckhorn, 아이거의 풍광이 이루 형언할 수 없다. 그래서 멈추고도 싶지만 시원한 바람과 신나는 기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라고 등을 떠민다.

마운틴 카트를 타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 무리를 마주친다.

“작은 마을을 정처 없이 누비며 융프라우와 실버호른을
벗 삼은 양 떼를 우연히 만나고 샬레 사이에서 고요히 석양을
마주하는 순간, 알프스 여름의 낭만이 우리를 안온하게 감싸준다.”

벵엔에서 융프라우와 실버호른에 쌓인 만년설과 빙하의 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274m WENGEN


그린델발트 역 – 라우터브루넨 - 벵엔알프 – 벵엔


벵엔의 뷰포인트에서 융프라우와 실버호른뿐 아니라 슈타우바흐 폭포가 쏟아지는 라우터브루넨 밸리까지 한눈에 담는다.

은뿔 비경
“벵엔에서 바라보는 융프라우와 실버호른Silberhorn이 정말 아름다워요. 실버호른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은뿔이죠.” 벵엔관광청의 리조트 디렉터인 롤프 베그뮐러Rolf Wegmüller가 우리말로 정확히 ‘은뿔’이라고 발음한다. 은빛이 어려 있는 실버호른은 융프라우 북서쪽에 작은 뿔처럼 신비롭게 솟아 있다. 소설 <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은 스위스 알프스를 여행하며 실버호른에서 영감받아 판타지 세계의 산인 실버타인Silvertine(요정어로는 Celebdil)을 창조했다고 전해진다.
벵엔에는 세 군데의 교회가 있고 각각 로마 가톨릭과 스위스 개신교 그리고 영국 개신교를 따른다. 이 중 스위스 개신교 교회 앞은 뷰포인트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융프라우와 실버호른, 벵엔 마을뿐 아니라 라우터브루넨 밸리Lauterbrunnen Valley까지 펼쳐진다. 괴테의 시 ‘물위 영혼의 노래Song of the Spirits over the Waters’에 영감을 준 슈타우바흐 폭포Staubbachfall도 잘 보인다. 이미 한 명의 현지인과 두 명의 여행자가 그 풍광을 마주하고 있다. 벤치에 앉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오늘은 이브닝 런 벵엔이 개최되어 거리에 운동복 차림 사람들이 많다. 시간차를 두고 어린이 1.25km 코스와 성인 7.7km 코스로 나뉘어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에 동참한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경기를 마친 아이들은 목에 메달을 걸고 삼삼오오 모여 귀여움을 발산한다. 이브닝 런벵엔은 8월에도 다시 한번 열린다고 한다.
또한 8월에는 클래식 콘서트인 멘델스존 뮤직 위크가 개최된다. 맨델스존이 1842년 8월 21일 융프라우의 풍경을 그린 것을 기념해 매년 그 주에 일정 기간 열린다고. 그가 그림을 그린 지점에는 멘델스존 기념비Mendelssohn Gedenkstätte가 세워져 있다. 그가 이곳을 하이킹하며 남긴 일기를 바탕으로 조성한 멘델스존 트레일도 존재한다. 여름에만 개방하는 코스로 멘델스존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대자연의 선율을 느낄 수 있다.
벵엔은 농가용 등을 제외하고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 곳이라 교통 공해나 소음이 없다. 작은 마을을 정처 없이 누비며 융프라우와 실버호른을 벗 삼은 양 떼를 우연히 만나고 샬레 사이에서 고요히 석양을 마주하는 순간, 알프스 여름의 낭만이 우리를 안온하게 감싸준다.

TRAVEL COOL
융프라우 여름 VIP 패스가 있다면 벵엔 야외 수영장입장이 무료이며, 미니 골프장도 50% 할인된다. 레스토랑 실버호른스투베Restaurant Silberhorn-Stube의 아라카르트 메뉴도 10% 할인받을 수 있다.

 

2230m MÄNNLICHEN


벵엔 곤돌라 승강장 – 멘리헨


자연의 숭고한 왕관에 벵엔과 멘리헨을 오가는 케이블카는 왕관을 쓰고 있다. 왕관 안에는 사람들이 서 있다. 75인승의 넓은 케이블카 안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왕관 모양의 야외 발코니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로열 라이드Royal Ride는 여름철에만 예약이 가능하고 추가 금액은 단 5프랑이다. 선두에서 947m의 고도차를 오르내리며 바람을 느끼고 융프라우와 실버호른을 감상하는 로열 라이드는 정말 왕이 된 듯한 경험이다.
벵엔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멘리헨 승강장에 도착하고 곧이어 가벼운 하이킹에 나선다. 47번 코스인 로열 워크는 편도 1km로 15분 정도 걸리는 짧은 트레일이다. 쉬운 코스지만 풍광은 가히 장엄하다. 로열 워크를 오르다가 잠시 뒤를 돌아보자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가 나란히 그리고 온전한 삼각형을 그려낸다. 물론 내려오는 내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해발 2342m 정상에는 왕관 형상의 360° 전망대가 자리한다. 이렇게 우리는 또 한 번 왕관에 안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그리고 연결된 산봉우리 역시 존엄한 자연의 왕관을 이룬다.

멘리헨의 로열 워크에는 아이거 북벽 등정 루트와 등반자를 표시한 안내판이 있으며 실재하는 아이거 북벽을 투사한다.

 

TRAVEL WISE
가는 방법
스위스항공이 인천-취리히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취리히공항에서 인터라켄 오스트까지 직행 열차가 있으며 약 2시간 소요된다.
알찬 혜택
융프라우 여름 VIP 패스로 아이거글레처-융프라우요흐 1회 무료 왕복을 포함해 융프라우철도가 운행하는 기차와 케이블카 등 7종의 산악 운송 수단에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이외 컵라면뿐 아니라 레스토랑, 쇼핑, 액티비티 등도 무료 또는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융프라우 지역의 산을 두 곳 이상 방문한다면 구간권보다는 VIP 패스가 유리하다. 동신항운 웹사이트에서 할인쿠폰을 신청하면 정상가 대비 저렴한 가격에 융프라우 VIP 패스를 살 수 있다. 가격은 성인 1인 기준 1일권 190프랑부터 6일권 315프랑. 
스위스 패스가 있다면 추가 할인도 받을 수 있다. 또한 동신항운에서 발행하는 융프라우 철도 가이드북은 기차 시간표뿐 아니라 산과 마을 등의 다양한 여행 정보가 총망라되어 여정에 큰 도움이 된다. 택배로 신청하거나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jungfrau.co.kr
기념품
융프라우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기념품을 찾는다면, 아이거스피츨리Eigerspitzli는 필수! 유럽 최고도에 위치한 아이거글레처 공방에서 만드는 수제 초콜릿인데, 눈 쌓인 아이거 북벽의 형상이다. 융프라우요흐 빙하에서 발효하는 발사믹 식초도 독특하다. 살구 맛과 자두 맛 등이 있고, 테이스팅 가능하므로 시식 후에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톱 오브 뷰티는 알프스 빙하수와 이곳에 자생하는 에델바이스에서 추출한 천연 유래 성분을 함유한 화장품으로 세럼과 크림 등으로 구성된다. 라프레리와 동일한 기술로 생산되는데 가격은 훨씬 합리적이다. 모두 톱 오브 유럽 숍Top of Europe Shop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융프라우 VIP 패스 소지자에게는 15% 할인이 적용된다. 톱 오브 유럽 숍은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클라이네샤이덱, 융프라우요흐, 피르스트에 위치한다.
더 많은 정보
파노라마 레스토랑 하더쿨름 restaurantharderkulm.ch
베르그호텔 쉬니케플라테 hotelschynigeplatte.ch
벵엔관광청 wengen.swiss/en

 

 

글. 김민주MIN-JOO KIM
사진. 오충석O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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