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건축과 예술이 매혹하는 ‘메트로폴 유로피안 드 릴’을 탐미하며 프랑스 북부의 미학을 탐구한다.
Lille
역사로 장식된 릴의 건축
“도시 릴은 섬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릴l'île’에서 유래했어요. 옛날에는 릴이 여러 지류로 갈라진 강에 둘러싸여 마치 섬처럼 보였다고 해요. 지금과 다른 모습이죠?” 릴관광청 공인 한국어 가이드인 전한별 씨가 11세기로 추정되는 지도를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과거 저지대였던 릴은 늪과 습지가 많아 기원후 1000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도시가 수립되었다. 지리적 특성상 다른 도시에 비해 뒤늦게 형성되었지만, 어떠한 여정이든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릴은 몸소 보여준다.
“릴 자체는 경기도 구리시와 비슷한 면적이에요. 그러나 광역 도시 체계로 본다면 프랑스에서 파리, 리옹, 마르세유 다음으로 큰 규모입니다. 94개의 소도시와 함께 ‘메트로폴 유로피안 드 릴Métropole Européenne de Lille’을 이루고 있죠. ‘유럽의’를 뜻하는 유로피안이 들어간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권역에 벨기에의 도시도 포함되기 때문이에요.”(전한별) 릴에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까지 기차로 약 30분 걸릴 정도로 가까운 데다 역사와 문화적으로도 밀접하다.
릴은 벨기에 북부를 중심으로 번영한 플랑드르 백국Comté de Flandre의 일원으로 11세기에 경제적으로 번창하기 시작한다. 당시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이후 역사의 단편은 올드 릴을 한 바퀴 돌아보며 찬찬히 수집할 수 있다. 다양한 건축물에 릴의 역사가 함축되어 있기에.
ⓘ 릴관광청 공인 한국어 가이드가 진행하는 도보 투어는 역사, 건축, 문화, 예술, 미식 등 원하는 주제에 따라 맞춤형으로 운영된다. 두 시간 소요되며, 2인 이상 예약 가능하다. booking.lilletourism.com
TIP. 릴에 관해 알아두기
● 중세 고딕 양식의 팔레 리우르Palais Rihour는 부르고뉴 공국 시절 지어졌다.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부르고뉴 지방과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릴을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해 세운 공작의 궁전이었다. 현재는 15세기에 축조된 건축물의 일부와 19세기에 복원하였으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외벽만 남은 부분이 공존한다. 1층은 릴관광 안내소이고, 2층에서는 부르고뉴 공국의 정치 회담이 열렸던 살 뒤 콩클라브Salle du Conclave와 부르고뉴 공작의 기도실 등을 관람할 수 있다.
● 근사한 분수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그랑 팔라스Grand Palace는 15세기에 처음 형성되었으며 다채로운 건축 양식이 다닥다닥 붙어 혼재한다. 묻혀 있던 15세기의 지층을 발굴해놓은 지점을 밟고 서서 잠시 그 시대로 역행한다.
● 스페인 제국이 릴을 점령하던 17세기에 조성되었으나 당시 이 지역에서 발전한 플랑드르 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된 구 상공회의소La Vieille Bourse를 바라본다. 종탑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 구조인 건축물은 정교한 조각으로 세밀하게 장식된 파사드로 인해 그랑 팔라스에서 가장 화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곳은 당시 발달한 상공업의 위상을 보여주는데, 아치형 입구를 지나 나타난 회랑에는 지금도 여러 상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나는 여러 중고 서적과 빈티지 포스터 등을 구경하는 현지인 무리에 뒤섞여 함께 풍경을 이룬다.
● 태양 문양의 부조가 돋보이는 건축물도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1667년 루이 14세가 릴을 프랑스령으로 되찾은 것을 기념하며 그를 상징하는 태양으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이 건축물이 세워진 1717년 유럽은 전반적으로 비대칭을 활용하는 웅장한 바로크 양식을 추구했으나 프랑스는 대칭과 균형을 강조한 고전 양식을 구축해 나갔다. 이곳 역시 프랑스 고전 양식으로 설계되어 단정하게 정제된, 안정적인 우아함이 느껴진다. 당시에는 기마병 주둔지였지만 현재는 테아트르 뒤 노드Théâtre du Nord라는 공연장으로 운영 중이다.
● 프랑스 역사에 혁명이 빠질 수 없다. 프랑스 혁명으로 공화제가 탄생한 후 위기감을 느낀 유럽의 여러 군주국이 연합해 혁명 세력을 굴복시키려 하자 전쟁이 터진다. 일명 프랑스 혁명 전쟁. 프랑스 북부의 릴 역시 격전지가 되었는데, 궁극적으로 프랑스가 승리하며 자유와 평등이 확산되었다. 릴 주민들은 포탄을 전리품처럼 모아 건물의 장식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억하는 릴만의 독자적인 건축 양식인 셈이다. 어느 순간 나는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듯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건물에 박힌 대포알을 찾아 나선다.
Esthétique
intemporelle
독창적인 건축과 예술은 시대를 초월해 그 아름다움을 전한다.
노트르담 드 라 트레이 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DE-LA-TREILLE 철제 선이 격자무늬로 둘러싼 파사드를 멀리서 바라봤을 때는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 줄 알았으나 가까이서 마주한 후 의도된 건축 요소였음을 깨닫는다. 그 모습이 마치 포도 덩굴 같아 이를 뜻하는 프랑스어 ‘라 트레이’가 대성당 이름에 붙었다. 덕분에 유럽의 수많은 성당 중 하나로 기억되지 않고 강렬하게 각인된다. 이 독특한 설계는 1999년에 건축가 피에르 루이 카를리에Pierre-Louis Carlier와 피터 라이스Peter Rice가 담당했다. 건축가는 반투명성을 살리고 싶어 포르투갈의 얇은 대리석 110개를 겹겹이 쌓았다. 여기로 햇빛이 투과하면 내부에서 시시각각 색다른 빛깔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노을이 물들 때의 색조는 황홀한 예술 그 자체. 이는 신고딕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중세 시대 성당 건축을 대표하는 고딕 양식은 빛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햇빛이 가득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크게 내 유일신을 상징하는 태양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특징을 건축가가 기지를 발휘해 창의적으로 되살린 것이다. 프랑스 북부의 전통 건축 자재인 에누청석pierre d’Ernée과 투르네청석pierre de tournai의 어스름한 청색도 내부의 성스러운 분위기를 배가한다. 자금난 등의 이유로 1854년에 착공하여 1999년에 완공된 기나긴 역사로 인해 시대별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점도 흥미롭다.
cathedralelille.fr
팔레 데 보자르PALAIS DES BEAUX-ARTS
19세기에 지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 안에는 다양한 사조를 아우르는 방대한 컬렉션이 펼쳐진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이 지역을 유럽의 예술 중심지로 이끈 플랑드르 미술을 감상하는 데 할애하는 것도 방법. 플랑드르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서의 강림The Descent from the Cross’은 벨기에 앤트워프 대성당에 걸린 작품이 가장 유명하나 이곳에 소장된 1617년경 그림에서도 깊은 심연을 느낄 수 있다. 올해는 인상주의 탄생 150주년이므로 소장품인 모네의 1904년 작 ‘런던 국회의사당’도 눈여겨볼 것. 부연 하늘 속의 맑은 빛과 물에 반영된 그 빛깔이 작품의 경계를 넘어 감상하는 우리에게까지 흘러넘치는 듯 몽환적이다.
pba.lille.fr
Bon appétit
릴에서 “맛있게 드세요!”
메에르트MÉERT
도톰한 두께에 홈이 깊이 파인 벨기에 와플과 달리, 브리오슈 페이스트리로 만드는 메에르트의 와플은 얇은 질감에 촘촘한 격자무늬를 지닌다. 1849년 와플에 마다가스카르 바닐라빈을 넣은 레시피를 최초로 개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와 벨기에의 레오폴드 1세가 즐겨 찾았고, 릴이 고향인 샤를 드골 장군 역시 이 와플을 좋아해 대통령이 되자 엘리제궁에 납품되었을 정도다. 타원형의 수제 와플을 베어 물자 버터와 카소나드cassonade(비정제 설탕으로 갈색을 띠며 프랑스 전통 디저트에 자주 사용된다) 그리고 바닐라의 풍미가 부드럽고 달콤하게 퍼진다. 고풍스러운 티룸에서 차와 함께 음미해도 좋다. 지하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어 각종 도구 등을 통해 이곳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으며, 예약을 통해 셰프가 와플 굽는 시연을 진행하거나 프라이빗한 식사도 가능하다.
meert.fr
레 비에르 드 셀레스탱LES BIÈRES DE CÉLESTIN
프랑스 하면 와인을 떠올리지만, 남부에 비해 북부는 맥주 소비가 우세하다. 포도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인 데다 벨기에 문화의 영향도 있다. 맥주는 전통 양조 방식에 따라 독일의 라거와 벨기에의 에일로 나뉘는데, 벨기에와 인접한 릴도 에일 문화권에 속한다. 이곳은 셀레스탱 가족이 9대째 이어오는 소규모 양조장으로 첨가물 없이 오직 천연 원료만을 사용한다. 페일에일의 일종인 ‘라 디스LA DIX’는 프랑스의 미식 안내서인 <고에미요Gault & Millau>가 오드프랑스 최고의 블론드 에일로 선정했다. 라 디스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맥주를 즐겨 마시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맛에 반해 한 병을 거뜬히 비운다. 이 외에도 트리플 에일, 스타우트, IPA 등 다양한 에일뿐 아니라 라거도 한 종류 생산한다. 매주 토요일에 양조장 투어를 운영하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부티크에서 맥주도 구입할 수 있다.
celestinlille.fr
에스타미네 오 비유 드 라 비에이유ESTAMINET AU VIEUX DE LA VIEILLE
에스타미네는 프랑스 북부, 특히 플랑드르 지역의 전통 음식점을 일컫는다. 정통 음식을 모두 맛보고 싶다면, 아시에트 레지오날Assiette Régionale(지역 요리)을 주문하면 된다. 커다란 접시에 포트제플리시Potjevleesch(닭고기, 돼지고기, 송아지고기, 토끼고기로 만든 편육 형태의 전채 요리), 카르보나드 플랑드르Carbonade Flamande(맥주로 졸인 소고기 스튜), 크로켓 오 마루알Croquette au maroilles(플랑드르 지역 고유의 마루알 치즈를 넣은 크로켓), 웰시 오 마루알Welsh au maroilles(맥주에 적신 빵 위에 햄과 머스터드, 마루알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운 요리)이 모둠처럼 함께 나온다. 여기에 현지 맥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estaminetlille.fr
Croix
모더니즘 저택의 정수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릴에서 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도시 크루아에서 어렴풋이 꿈꾸던 집을 구체화한 이상향을 발견했다. 20세기 초에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모더니즘 건축을 이끈 로베르 말레 스테방Robert Mallet-Stevens이 설계한 저택, 빌라 카브루아Villa Cavrois다. 이 집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을 뿐 아니라 미술 잡지를 발행하고 아트 디렉터로서 영화 의상과 세트를 총괄하는 등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한 그의 다재다능한 면모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걸작이다. 그래서 건축물과 정원뿐 아니라 가구와 장식 등 세부적인 인테리어까지 모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섬유 사업가인 폴 카브루아는 자신의 공장에서 멀지 않은 데다 환경이 쾌적한 교외에 저택을 짓고자 1929년 로베르에게 건축을 의뢰했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 여정이 로베르에게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상앗빛 벽돌을 쌓아 만든 것은 그들이 방문했던 네덜란드 북부의 힐베르숨Hilversum 시청사와 유사하다. “곧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저택의 외관에서 유일하게 원통형인 요소가 눈에 띌 거예요. 관제탑과 비슷하죠? 제1차 세계대전에서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로베르의 경험이 반영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정원의 ‘물의 거울The water mirror’도 마치 비행기가 착륙하는 활주로처럼 뻗어 있습니다.” 빌라 카브루아의 가이드가 설명한다. 1930년대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집에서도 일상적으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기능성을 추구했는데,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이곳의 수영장이다.
이윽고 저택으로 들어가 관람 동선을 따라 주방 안에서 가이드의 해설이 이어진다. “통창으로 정원이 보이는 부엌의 채광이 참 좋죠? 가사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해요. 어른들과 아이들의 식당이 나뉘어 있고, 아이들이 정원에서 맘껏 뛰놀다가 식사하러 들어올 수 있도록 따로 작은 문이 나 있었어요.” 빌라 카브루아는 반듯한 선으로 단장했지만, 거주하는 이들의 일상을 모두 고려하여 세심하게 설계된 면면은 지극히 따스하다.
대저택에는 당시 고급 주택에서도 보기 드문 편의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벽면에 마치 배의 동그란 현창처럼 생긴 것은 오디오 스피커로 거실뿐 아니라 여러 방에 설치되었다. 옥상에는 테라스에서 만찬을 즐길 수 있도록 음식을 운반하는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다. 세 개의 수전에서는 각각 온수와 냉수 그리고 음용과 요리를 위한 연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지하에는 세탁실뿐 아니라 건조기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고.
내게는 흠잡을 것 없이 완벽해 보이는 집이지만, 이곳에 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폴 카브루아의 자식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저택을 팔았다. 이후 방치되며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프랑스 정부에서 역사 기념물로 지정하면서 원래 모습으로 복원에 나섰다. 경매에 넘어갔던 가구와 장식품 등을 사들이고, 다시 구할 수 없는 것은 새로 제작한 후 최대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다. 1932년 건축 직후 찍어둔 사진을 참고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방은 의도적으로 폐허였던 모습을 남겨 두었는데, 복원에 들인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빌라 카브루아는 거의 100년 전에 설계되었지만, 감각적인 풍경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고 되레 생동한다. 인간의 창의성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불후의 명작이 아닐까. 대저택이라 난방비가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한 가족의 추억이 배어 있는 포근한 집이자 건축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누군가에게는 살고 싶은 집으로 간직 된다.
ⓘ 빌라 카브루아의 입장권은 11유로(약 1만6000원)이며 가이드 투어는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영어로 진행된다. 유효한 릴 시티 패스가 있다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villa-cavrois.fr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11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