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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HOES OF TIME
캐나다 뉴펀들랜드앤래브라도주 서쪽 해안 로드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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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호

ECHOES OF TIME
캐나다 뉴펀들랜드앤래브라도주 서쪽 해안을 따라가는 로드트립, 향모를 땋으며 시간의 메아리를 듣다.

DAY 1 호수에서 만난 사람들
디어 레이크 – 본 베이 - 우디포인트, 67.4km

“여기 삼나무와 향모가 있어요. 천연 담배도 조금 들어 있답니다. 이건 정원에서 직접 딴 라벤더와 세이지예요. 스머징은 연기를 자신에게 불러와서 영혼을 정화하는 의식이죠.”

지각 아래 맨틀이 올라와 형성된 테이블랜드.

제니 브레이크Jenny Brake 칼리푸 퍼스트네이션Qalipu First Nation 추장이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스머징을 준비하며 향모를 땋고 있다. 스머징은 여러 허브를 태워 나는 연기를 통해 정신과 몸을 정화하는 선주민의 의식이다. 이 의식은 연기로 눈을 정화해 좋은 것들을 보고, 귀를 정화해 진실을 듣고, 입을 정화해 좋은 말을 하며, 팔을 정화해 좋은 일을 하고, 다리를 정화해 좋은 길로 나아가며, 때로는 등을 정화해 조상들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허브는 각각 다른 방향과 연관되어 있죠. 향모는 어머니 지구의 머리카락으로 여겨지죠. 염수가 섞인 물에서 자라며, 밑부분이 아름다운 보랏빛을 띠어요. 보통 일곱 가닥으로 땋아서 동서남북 네 방향 외에도 위, 아래, 내면의 방향을 나타내요.” 제니 추장이 허브가 조금씩 타며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볼을 들고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왔다. 나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연기를 담은 손으로 눈과 귀, 그리고 팔과 다리를 느린 속도로 쓸어냈다. 사실 일행보다 하루 일찍 도착했던 나는 전날 정오 무렵, 숙
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디어 레이크Deer Lake로 짧은 산책을 나갔었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고요하지만 힘 있게 흐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시야가 닿는 곳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낯선 질감과 온도의 쨍한 바람이 폐에 가득 찰 때까지 내달렸다. 스머징 연기와 디어 레이크 수평선, 그리고 서울보다 약 11시간 늦은 시간 감각이 함께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디어 레이크의 서늘하고 묵직한 아침 공기가 적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데스티네이션 캐나다의 케이트와 카티야 그리고 나를 포함해 각각 한국, 중국, 일본, 독일, 호주, 멕시코에서 활동하고 있는 9명의 일행과 함께 5박 6일 동안의 로드트립을 앞두고 있다. “Whadda y’at?”(‘뭐 하니?’라는 의미의 뉴펀들랜드 방언) 벤의 운전석에서 조이가 장난기 가득하지만 다정해 보이는 눈빛으로 출발을 알렸다.

DAY 2 SECRETS OF THE ROCKS
그로스몬 국립공원 테이블랜드 트레일 – 디스커버리 센터

(왼쪽부터 시계 방향) 마르셀라가 식충식물인 벌레잡이통풀에서 곤충액을 뽑고 있다. 수령 100년 미만의 나무와 테이블랜드에서 자라는 수천년된 나무의 굵기와 나이테가 대조된다. 테이블랜드 트레일.

그로스몬 국립공원Gros Morne National Park 안 그로스몬 인Gros Morne Inn에서 정갈하게 내온 영국식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일출이 장엄했고 날씨가 좋으리라 예상했지만, 금세 무거운 구름들이 들이닥치더니 굵은 빗줄기가 숙소 앞 도로 위에 내리꽂혔다. 비가 오는 풍경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벤에 올라탔다. 빼곡한 나무의 우듬지가 끝없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도로 왼편 오른편으로 조금씩 맨살이 드러나듯 홍갈색 돌무더기, 흙더미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차창을 때리는 빗방울 사이로 대지가 서서히 솟아오르며 몸집을 드러내는 곳은 트라우트강과 우디포인트 마을 사이에 위치한 거대한 그릇 모양의 테이블랜드Tablelands 였다.
5억 년 전, 판 활동에 의해 합쳐지던 고대의 두 대륙에 밀려 올라와 생성된 초대륙 판게아가 이후 약 1만여 년 동안 지속된 빙하기와 얼음 덩어리에 의해 침식되면서 지구의 내면, 맨틀이 드러났다. 마치 아무 생명이 자라지 못할 것 같은 황량한 붉은 흙과 돌의 계곡 사이를 온몸으로 비를 흠뻑 맞으며 걸었다. 물매를 맞으며 열심히 걷던 우리에게 테이블랜드 하이킹 투어 가이드 마르셀라가 말했다. “힘들겠지만, 낮은 구름과 안개에 싸인 테이블랜드를 하이킹하는 것도 정말 특별한 경험이에요! (웃음) 여러분이 밟고 있는 이 땅은 맨틀이에요. 지구의 껍질, 즉 지각의 평균 두께는 35km죠. 그 아래 있어야만 하는 맨틀이 여기 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맨틀에는 독성이 있어요. 페리도타이트라는 심성암 때문입니다. 철과 같은 금속 물질이 많은 지질의 특성 때문에 식물들은 키가 아주 작고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천천히 생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이곳으로 날아왔던 씨앗은 이 땅이 끔찍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거라고 마르셀라가 이어 말했다. 일어나 도망칠 수 없는 식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선책으로 내린 방법은 바로 뿌리를 내보내는 것이었다. 잔뿌리가 영양분이나 물이 있는 곳을 찾을 때까지 땅을 따라 자라나고, 자리를 찾으면 땅을 파고 들어가 다른 나무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그루의 나무가 연결되거나 곧은 뿌리로 연결된 큰 나무가 생기기도 한다니, 어쩌면 테이블랜드를 뒤덮고 있는 식물이 모두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척박한 이곳에는 식충식물이 있어요. 식물들이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죠. 식충식물인 피처 플랜트는 뉴펀들랜드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곳곳에 박혀 있는 회색 양모 이끼와 방광초 , 선듀 등 낯선 이름과 모양의 식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테이블랜드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9000년을 살아온 것이라고 했다. 마르셀라가 준비해 온 나무 줄기 조각을 받아 봤다. 굵기는 얇지만, 미세한 나이테가 빼곡하다. 나무는 이 땅의 비밀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아주 천천히 죽음을 흉내 내어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로스몬 국립공원 디스커버리 센터로 돌아와 비에 젖은 신발과 옷가지를 말렸다. 디스커버리 센터에서는 <미아우푸켁-더미들리버Miawpukek-The Middle River>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뉴펀들랜드 지역의 선주민 파우와우 축제부터 나무를 이용해 만든 배와 공예품, 그리고 그로스몬 일대의 식생을 활용해 만든 약초와 음식 문화에 대한 증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마르셀라가 내온 허브차를 홀짝이며 시간을 하얗게 잊은 채 그녀의 열정적인 이야기에 이끌려 전시장을 탐닉했다.

DAY 3 불모지에서 자라는 풀과 베리와 나무들
그로스몬 국립공원 – 포트오쇼 – 랑스오메도우 – 카페 님프, 433km

포트오쇼반도의 필립스 가든.

이른 아침 출발한 우리는 뉴펀들랜드섬 왼쪽으로 세인트로렌스만을 낀 해안도로를 따라 165km를 달려 벨 해협과 래브라도를 향해 길게 뻗은 그레이트노던반도 중간 부근에 위치한 포트오쇼Port au Choix로 향했다. 포트오쇼는 캐나다 국립 역사 유적지로, 1969년 고고학자들이 해양 고대인Marine Archaic의 매장 흔적을 발견한 곳이다. 벨 해협을 통해 흘러 들어온 해류에 빙하가 내려왔고, 빙하가 녹아 쌓여 영양분이 풍부한 바다가 형성됐다. 조개가 부수어지고 굳어져 만들어진 석회암 지대가 황량하고 광활한 해안 풍경을 그려내지만, 정작 이곳엔 6000년 전 인류 역사의 교차점이 있다. 유럽인들이 이곳에 오기 훨씬 전부터 해양 고대인과 도싯인, 그로스워터인, 이누이트 같은 선주민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혹독한 북극 겨울을 나기 위해 물개와 바다표범을 사냥했는데, 현대에 와서 그 유물들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면서 북극권 선주민의 생활 방식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방문자 센터에서 나와 필립스 가든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하얀 석회암 돌들이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늘어서 있고, 그 위를 온갖 식물들이 뒤덮고 있다. 바닷바람의 방향에 따라 한쪽으로 낮게 자라는 가문비나무와 노간주나무를 이곳에선 터커모어 트리라고 한다. 하얗고 앙상한 터커모어 군락과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빨간 베리들이 이끼와 풀들 사이로 수없이 흩뿌려져 있었다. 테이블랜드에서 봤던 식충식물과 피처 플랜트도 드문드문 보이더니, 하얀 이끼와 툰드라 풀들이 시선이 닿는 곳까지 펼쳐진다. 영양분이 풍부한 바다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는 포인트리치반도와 포트오쇼반도에서, 사랑스러운 잔뿌리로 연결된 독특한 풀과 열매와 나무들이 바람에 일렁이며 여름을 뽐내고 있는 듯했다. 가이드 케이트가 이동할 시간이라며 재촉할 때까지 오렌지색 베이크애플을 욕심껏 집어 먹느라 늑장을 부렸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베이크애플, 벌레잡이통풀, 가문비나무, 패트리지베리.
©NEWFOUNDLAND AND LABRADOR TOURISM (베이크애플, 벌레잡이통풀) / GORD FOLLETT, NEWFOUNDLAND AND LABRADOR TOURISM(패트리지베리)

필립스 가든에서 만난 식물들

터커모어Tuckamore 나무
뉴펀들랜드앤래브라도주 인근에서 자라는 노간주나무와 가문비나무를 일컫는 말로, 바닷바람에 밀려 한쪽 방향으로 자라는데다 키가 작아 독특한 수형을 지닌다. 해풍과 지질 성분 때문에 나뭇가지가 하얗고 얇다.

크랜베리Cranberry
크랜베리는 습지대와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는 식물로, 가을에는 밝은 빨간색 열매를 맺는다. 이 열매는 서리가 내린 뒤 수확할 때 더욱 단맛이 올라오며, 다양한 요리에 사용된다.

크로우베리Crowberry
바위와 이끼로 덮인 고지대에서 자라는 검은색 열매로, 모양이 매트처럼 땅에 낮게 깔린다. 풍미가 진하지 않지만, 조리하거나 얼린 뒤 사용하면 맛이 개선되며, 와인이나 푸딩에 넣기도 한다.

베이크애플Bakeapple
클라우드베리라고도 불리는 이 오렌지색 베리는 낮게 자라는 식물에서 열리며, 주로 잼과 소스에 사용된다.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수확할 수 있으며, 이 지역에서 매우 귀한 산물로 여긴다.

패트리지베리Partridgeberry
뉴펀들랜드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상록 덩굴 식물로, 가을에 짙은 붉은색 열매를 맺는다. 이 베리는 독특한 향과 맛으로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열매다.

벌레잡이통풀Pitcher Plant
뉴펀들랜드앤래브라도주의 상징이기도 한 이 식물은 습지대에서 벌레를 잡아 영양분을 흡수하며 자란다. 빨갛고 주름진 통 모양의 잎이 특징이며, 이곳에서는 토양의 영양분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포트오쇼에서 카페 님프까지 약 400km를 달렸다.

포트오쇼 인근 카페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북쪽으로 229km를 달려 랑스오메도우L’Anse aux Meadows에 도착했다. 1960년대에 1000년 전 바이킹들이 북미 대륙에 처음 도착한 흔적이 발굴되었고, 197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바이킹이 이곳에 정착해 생활했을 법한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한 바이킹 야영지로 들어갔다. 대장장이와 항해하는 사람 등 고대 스칸디나비아인이 눈앞에서 나타났다. 바이킹의 영웅담과 비극적인 이야기로 엮어낸 사가Sagas를 들려주는 사람, 대장장이의 하루를 설명해주는 사람 등 짜임새 있고 꼼꼼한 표현에 매료되어서 시간을 훌쩍 보내고 나오니 사위가 붉게 내려앉고 있었다.
랑스오메도우에서 남쪽으로 차를 달려 15분 거리의 카페 님프Café Nymphe에 도착했다. 카페에는 바이킹의 후예인 듯한 할아버지가 사가를 들려주고 있었고, 저녁 식사를 즐기며 사가를 듣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식사를 마친 후 카페 님프와 다크 티클 컴퍼니Dark Tickle Company를 아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스티브 크누센Steve Knudsen을 만났다. 그가 야생 베리 수확 네트워크를 이용해 만든 깨끗하고 품질 좋은 잼과 소스류 등을 소개했다. 그날 오전 필립스 가든에서 눈으로 직접 본 열매들이 잼, 소스, 차, 커피, 식초, 음료, 초콜릿 등으로 변신해 1층 상점에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스티브는 자신이 노르웨이 출신이라고 밝히며 어부이자 어업 상인이었던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 가족은 노르웨이에서 왔어요. 아마도 1차 세계대전 즈음이었을 거예요. 그들은 선장 이었고 전 세계를 항해했죠. 오스왈드, 그 지역에서 출항해 북시드니 같은 곳으로 가서 보급품을 받고는 세계 곳곳을 항해하며 물자를 실어 나르곤 했어요.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해협을 통한 항해가 너무 위험해졌고, 결국 캐나다로 오게 되었죠.” 처음 도착한 캐나다에서 그의 가족은 노바스코샤 북쪽에 위치한 케이프브레튼섬에 정착했다. 이후 기후와 환경이 변하면서 대부분의 스칸디나비아계 이민자들이 그렇듯 더 북
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 집중하는 그의 눈빛과 단어 사이사이 흐르던 침묵이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미크마크 선주민 제니와 마르셀라, 해양고대인, 이누이트, 바이킹, 그리고 근현대에 이주 해 온 유럽인의 모습들과 스티브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는 아시아, 유럽, 중앙아메리카, 호주에서 온 우리 일행이 시공간이 교차하는 미지의 장소를 여행하고 있는 듯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 금속을 잘 다뤘던 스칸디나비안인을 재현하고 있다. 바이킹의 문자인 룬문자를 새겨 만든 목형. 랑스오메도우에 재현된 바이킹 야영지.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11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글. 박선영SUN-YOUNG PARK
사진. 벤 존슨BEN JOHNSON, 캐나다관광청DESTINATION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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