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PERU IN THREE PLATES
세 접시의 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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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호

페루의 셰프들이 토착 재료에 대한 실험을 지속하는 와중에 수도 리마에서 시작된 파인다이닝 열풍은 이 나라의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왼쪽부터) 크호예의 인테리어. 리마에 있는 크호예 레스토랑의 카카오 디저트 세 가지

페루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세계적인 미식 여행지로 부상한 뿌리에는 역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1980~1990년대에 내전이 온 나라를 휩쓸면서 페루의 많은 시골 사람이 안데스 산지와 아마존에 있던 고향을 등지고 리마로 도망치듯 올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리마의 인구 지형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피난민이 들여온 새로운 요리와 식재료가 결국 이 도시의 재능 있는 셰프들 손에 들어오게 된다. 이내 셰프들은 페루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가 아니라, 페루가 가진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페루의 파인다이닝이 파리의 르 코르동 블루 출신 셰프 가스통 아쿠리오Gastón Acurio가 1994년에 리마에 문을 연 레스토랑 아스트리드 이 가스통Astrid y Gastón에서 점점 더많은 현지 재료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탄생했다고 믿고 있다. 몇몇 레스토랑이 그 뒤를 따르며 처음에는 작은 흐름에 불과했지만, 마침내 페루는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현대 미식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미식의 측면에서 페루는 두 가지 강점이 있다. 첫 번째는 이 나라의 방대한 생물다양성이다. 두 해류와 해안 사막, 안데스 계곡, 아마존 숲에서 다양한 식재료가 나온다. 다음으로 페루의 역사인데, 5000년의 문명과 농업 발전은 오늘날 수많은 과일과 채소뿐 아니라 수천 종류의 뿌리채소와 곡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아프리카, 일본, 중국, 스페인, 이탈리아, 최근에는 베네수엘라 등 해외에서 유입된 새로운 기법과 재료가 페루 요리에 더해져 미식 신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오늘날, 페루의 파인다이닝 현장은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리마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 목록에 파리나 도쿄만큼 자주 이름을 올리는데, 지난해 1위를 차지한 센트랄Central 등이 그 예이다. 수도에서 시작된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지역으로도 퍼져나가 오랫동안 잊혔던 재료와 이를 생산하는 공동체(그중 상당 부분이 원주민)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페루의 파인다이닝은 이제 확실히 자리를 잡은 듯 보인다. 혁신적인 셰프들이 세계 다른 지역의 레스토랑과 차별화를 이루며 자유를 누리고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왼쪽부터)  나베간테에서 즐길 수 있는 피스코 칵테일, 브럼블 데 페페Brumble de Pepe. 리마의 한 광장.

라파스 알 올리보LAPAS AL OLIVO
나베간테, 푼타에르모사
페루 해안에서는 라파스lapas, 즉 구멍삿갓조개를 여러 방법으로 요리한 음식을 찾아볼 수 있다. 빵가루를 입혀 튀기거나 얇게 썰어 차가운 샐러드에 넣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재료는 파인다이닝 메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여기서 디에고 무뇨스Diego Muñoz가 등장한다. 그는 가스통 아쿠리오의 대표 레스토랑인 아스트리드 이 가스통을 파인다이닝의 성지로 바꾼 셰프다. 팬데믹 이후, 무뇨스는 리마 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푼타에 르모사Punta Hermosa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 마을은 서핑 문화와 느긋한 분위기 그리고 해산물로 유명한 곳이다.
무뇨스는 리마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참이었지만, 모퉁이 부지에 있던 옛 레스토랑 외벽에 붙은 ‘임대’ 문구를 본 후 계획을 변경했다. 그는 이곳을 인수한 다음 초가지붕을 없애고 외관을 다시 살려 대리석과 목재를 활용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를 꾸몄다. 그렇게 8개 식탁이 있는 나베간테Navegante가 탄생했다.
무뇨스는 레스토랑의 요리를 ‘가스트로노미아 신 프론테라스gastronomía sin fronteras(국경 없는 요리)’라고 설명한다. 이는 특정한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요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재료에 따라 달라지기에 메뉴도 매일 바뀐다. 식재료는 1000년 된 피라미드 단지로 유명한 근처 루린 계곡Lurín Valley의 농업 공동체 파차카막Pachacámac의 작은 농장에서 들여온다.
가장 중요한 점은 무뇨스가 그물과 작은 덫을 사용해 해변에서 능숙하게 낚시하는 어부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어부들은 다른 이들이 원하지 않는 재료를 그에게 가져온다. 그는 찬케chanque(남미산 전복의 일종)와 성게알처럼 시장에서 가치가 없는 재료를 활용해 메뉴에 추가한다.
무뇨스의 ‘라파스 알 올리보lapas al olivo’는 1980년대 후반 일본계 페루 요리사인 로시타 이무라Rosita Yimura가 얇게 썬 문어를 보랏빛 올리브소스로 버무린 ‘풀포 알 올리보pulpo al olivo’를 모델로 했다. 페루에서는 문어가 남획되고 있기 때문에 그는 리마 반대편에 있는 와르메이Huarmey 또는 푼타에르모사Punta Hermosa 남쪽에 있는 피스코Pisco의 삿갓조개를 선호한다. “식감과 풍미가 아주 특별해요. 저는 몇 년 전부터 그곳의 삿갓조개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맛과 독특하게 어우러지는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먼저 무뇨스는 삿갓조개를 식염수에 삶은 후 얇게 썬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레몬 드롭 페퍼, 흑후추로 간을 한 다음 현지산 보티하 올리브로 만든 크림과 구운 칠리, 고수 오일을 더한다. 마지막으로 아보카도 큐브를 고명으로 올리면 완성. 이 요리는 맛뿐만 아니라 비주얼도 훌륭하다.
navegante.peru

(왼쪽부터) 디에고 무뇨스 셰프와 그의 시그너처 요리인 라파스 알 올리보. 다양한 종류의 뿌리채소로 만든 크호예의 요리, 무초스 투베르쿨로스.

우아티아HUATÍA
밀, 모라이
레스토랑 밀Mil의 위치는 이보다 더 적절한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안데스산맥의 해발 약 3600m가 넘는 고도에 자리하며, 고고학 유적지인 모라이Moray의 원형 계단식 농경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모라이는 다양한 미세 기후에서 작물 품종을 실험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찬가지로 밀은 오너인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Virgilio Martínez가 운영하는 비영리기구 마테르 이니시아티바Mater Iniciativa의 연구 일환으로 레스토랑 그 이상이다. 이곳은 마을 공동체인 무야카스-미스미나이Mullak'as-Misminay와 카샤라카이Kacllaraccay 사이에 있으며, 이들 공동체는 수확물을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여행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하루 종일 집과 농장을 개방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행자들은 운이 좋으면 감자를 수확하고 우아티아huatía(요리법이자 이 음식이 만들어지는 지하 화덕의 이름)를 체험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아티아 요리는 농지에서 만들어요. 돌과 흙덩이를 사용해 만든 작은 화덕 안에서 나무 조각과 말린 허브 줄기에 불을 붙입니다.” 셰프 루이스 발데라마Luis Valderrama가 설명한다. “화덕이 뜨거워지면 감자, 오카oca, 오유코olluco, 마슈아mashua 같은 뿌리채소를 넣고 화덕 전체를 부서뜨립니다. 그 상태로 몇 시간 동안 익히고 먹을 준비가 되면 우추쿠타uchucuta 소스에 찍어 먹죠.”
밀에서는 쓴 감자의 독소를 중화하기 위해 식용 점토인 차코chaco로 만든 작은 화덕, 인근 마라스Maras 광산에서 채취한 소금, 안데스산맥의 허브인 무냐muña를 활용해 전통적인 우아티아를 재해석한다. 전통적으로 고추와 허브, 향신료를 돌로 빻아 만든 우추쿠타 소스는 이제 푸드 프로세서로 제조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맛과 매우 유사하다.
“밀에서 우아티아를 만들 때 감자는 차크라chacra, 즉 농지에서 옮겨와요. 그래서 우리가 전통 방식으로 우아티아를 만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들판에서 작업하는 것도 전통에 포함되기 때문이죠.” 마르티네스가 설명한다. “우아티아의 의미는 아주 넓기에 단순히 감자 한 입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요리가 하나의 ‘해석’이라고 말하죠. 주방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마치 우아티아가 실제로 일어나는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순간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milcentro.pe

(왼쪽부터) 밀 레스토랑의 유명한 요리인 우아티아는 이것이 조리되는 지하 화덕의 이름을 따왔다. ‘왕들의 도시’로 알려진 리마의 전통 가옥은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무초스 투베르쿨로스MUCHOS TUBÉRCULOS
크호예, 리마
2018년에 크호예Kjolle를 오픈한 이후 셰프 피아 레온Pía León이 고수하는 요리가 있다. 많은 뿌리채소(덩이줄기 작물)를 뜻하는 ‘무초스 투베르쿨로스Muchos tuberculos’는 안데스 고산지대의 아곡물pseudocereal인 카니와kañiwa(퀴노아와 비슷한 고대 작물)로 만든 작은 타르트에서 시작되었다. 감자 크림을 가득 채우고 분홍색과 노란색의 오유코 조각을 아름답게 말아 올린 후 같은 밭에서 자라는 향기로운 허브 우아카타이로 장식했다. 이 요리의 생동감 넘치는 색상과 다양한 질감, 대담한 맛은 페루의 토종 뿌리채소로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진가를 보여준다.
리마의 보헤미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바랑코Barranco 지역에 위치한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레온은 안데스산맥의 뿌리채소가 가진 요리적, 문화적, 영양적 가치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수 세기에 걸쳐 농부들은 많은 덩이줄기 작물이 새로운 맛과 질감을 내고, 색소 농도를 높이며, 다양한 고도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교배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 요리법 이외의 용도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페루에서는 보통 오유코를 두 가지 방법으로만 먹습니다. 스튜나 수프로요.” 레온이 말한다. “우리는 오유코를 준비하고 제공하는 다른 방식을 탐구하고 싶었어요. 다양한 안데스산맥의 식재료를 하나의 요리에 모아 이 땅과의 연결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크호예는 자매 레스토랑인 센트랄Central 위층에 자리한다. 센트랄은 철학적인 접근을 하는 반면, 레온은 페루 전역의 다양한 생태계에서 온 재료를 섞어 9가지 테이스팅 코스를 선보인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 목록에서 순위가 상승함에 따라 메뉴인 무초스 투베르쿨로스도 진화했다. 요즘에도 다채로운 타르트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는 아마존강 유역의 열매인 사차 파파sacha papa를 담은 그릇 둘레에 유카, 오카, 오유코, 마슈아 같은 뿌리채소를 둥글게 배열해 사이드 디시로 제공한다. 사차 파파는 달콤하고 바삭하며 크리미한 동시에 풍미가 뛰어나다.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문화적 색채가 강렬하죠. 여기서는 한 입만으로도 페루의 풍미와 색깔,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레온) kjolle.com

마라이 광산에서 소금을 채집 중인 모습.

“전통적으로 우아티아 요리는 농지에서 만들어요.
돌과 흙덩이를 사용해 만든 작은 화덕 안에서
나무 조각과 말린 허브 줄기에 불을 붙입니다.”

 

 

글. 니콜라스 길 NICHOLAS GILL
사진. 켄 모토하스, 카밀라 노보아, 토마스 세르빅, 알라미, 루이스 모랄레스, 구스타보 비반코, AWL이미지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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