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A MEDITATIVE FOREST
사유의 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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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1월호

30여 년의 세월 동안 팔공산의 한 자락을 가꾸어 온 사유원.
3년 동안 담아온 그곳의 사진을 통해 사색의 순간을 전한다.

(왼쪽부터) 별유동천 산수유 고목의 열매와 적설. 새싹이 움트는 모과나무를 찾은 곤줄박이. 별유동천의 배롱나무에 흐드러지게 핀 백일홍과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 풍설기천년의 가을, 잘 익은 모과가 풍성하게 달려 있다.

사유원은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에서 출발한 산지 정원이다. 사유원의 경관은 팔공산, 화산, 가지산, 조림산, 보현산, 태백산, 가야산 등 주변의 가깝고 먼 산줄기를 끌어들인다. 그중에서도 근접한 팔공산은 탁 트인 사유원 어디에서나 한눈에 볼 수 있다. 즉 사유원이 주경이 되고 팔공산이 차경을 이루며 한국 정원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계적인 거장들의 건축 작품을 산지 곳곳에 수놓았다.

 

사유원은 눈이 흔치 않은 곳이다. 그래서 눈 소식을 들으면 곧장 사유원으로 향한다. 이른 새벽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으며 신비로운 풍경 안으로 들어간다. 눈발이 날려도 좋고, 눈이 그친 후 날씨가 흐려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아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 태양을 안고 걷는다. 역광선이 눈결을 섬세하게 살려주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삼각대를 설치하여 날리는 눈발의 모습으로 소리의 흔적을 담는다. 유원은 사유원의 설립자인 유재성 회장이 평생 모은 돌과 소나무로 조성했다. 땅속 깊이 뿌리내린 돌과 소나무가 계절을 품은 자태를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도 바라본다.

(왼쪽부터)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 내부에 매달린 그의 조각 작품에 눈이 쌓여 있다. 유원의 한옥은 박창렬이 설계했으며, 조경은 정영선과 박승진이 담당했다.

 

벚꽃, 진달래 등 사유원의 수많은 꽃은 봄의 전령이 된다. 특히 5월에 피는 정향나무 꽃의 향기가 무척이나 감미롭다. 꽃이 만발한 사유원을 이른 아침에 마주하고는 여기가 바로 환상의 영역이 아닐까 싶었다. 심호흡에 꽃향기가 가슴을 적신다.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도 들린다. 늦은 오후, 별유동천에서 팔공영봉의 아스라한 잿빛을 배경으로 활짝 피어 있는 능수벚꽃을 만난다. 이 벚나무는 마치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것처럼 차경이 되는 팔공산 자락과 어우러지며 대자연을 이룬다. 참으로 아름답다는 감정이 피어올라 자주 시선이 머문다. 저녁이 되어 달이 걸린 모습도 그렇게 마음에 담는다.

(완쪽부터) 팔공산 자락과 함께 자연을 이루는 별유동천의 능수벚꽃. 같은 나무를 보름달이 휘청한 밤에 바라본다.

 

여름의 사유원은 맑은 날씨를 맞이하면 청아하고,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면 편안한 느낌을 준다. 비가 오는 날이나 안개 낀 날은 공기 원근법에 의한 거리감이 서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비가 온 다음 날 새벽 운해는 몽환적인 꿈의 세계 같아서 이때 사유원을 찾으면 몽유도원에 있는 듯하다. 별유동천의 선연한 배롱나무 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배가한다. 풍설기천년은 사유원의 서사가 시작된 곳이자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일본으로 밀반출될 뻔한 모과나무를 사유원의 설립자가 지켜내 정성껏 키워냈다.  300~600년 수령의 모과나무 108그루가 팔공산 천왕봉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이 지점에서 나는 사시사철 사진을 촬영한다.

풍설기천년의 모과나무가 연못과 돌, 팔공산 천왕봉과 어우러진 풍경.

 

일출 직전, 첨단의 정상에서 사유원과 팔공산을 아우르는 전경을 바라본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첨단은 물탱크에 콘크리트를 입혀 지은 별을 보는 제단이다. 이곳에 서면 산에 빙 둘러싸이게 된다. 사유원의 느티나무 숲은 가을에 이곳에서 팔공산의 부드러운 곡선과 함께 원경으로 포착하는 것이 더욱더 아름답다. 사유원의 가장 높은 지대에 수평의 자태로 서 있는 카페 가가빈빈 부근에는 은행나무 길이 펼쳐진다. 물의 정원인 사담과 느티나무 숲을 거닐다 풍설기천년에 이르면 사유원의 가을은 절정을 이룬다. 나는 풍설기천년에 자리한 감나무 고목에서 자주 발걸음을 멈춘다. 밑둥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죽어가다 다시 깨어나 살아가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생명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 풍설기천 년 의 모과나무 가 결실을 맺은 후 자연의 섭리에 따라 대지에 떨어져 있다. 일출 직전 첨단에 서 아름답게 물든 느티 나무 숲과 팔공 산 능선을 품는다. 감의 색감과 푸른 하늘이 일품이다.

 

 

 

글. 강위원 WEE-WON GANG
사진. 강위원 WEE-WON 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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