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ISTANBUL TO ANTALYA
튀르키예의 숨겨진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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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3월호

여름의 화려함에서 저만치 물러나 있는, 겨울빛으로 물든 튀르키예 이스탄불과 안탈리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물길과 골목길마다 나이테처럼 각기 다른 시대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스탄불 모던에서의 전시 관람.

이스탄불 겨울의 문턱
마르마라해의 바닷물 아래를 비집고 흑해의 찬물이 내려오는 계절, 지금이 갈라타 다리 위 낚시꾼들에겐 풍어기다. 다리를 건너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로 이동하는데 거친 파도와 짙은 안개를 놀이터 삼아 검은 바다에 살던 물고기들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이동하는 길목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보인다. 관광객들에게 낚싯대를 빌려주고 돈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잡은 물고기를 팔아 수익을 내는 어부라고 한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로 나뉜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모여 있는 유럽 지구는 다시 골든혼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신시가지와 남쪽의 구시가지로 나뉜다. 구시가지에는 오스만제국 전성기에 세운 톱카프 궁전과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아야소피아 성당, 그랜드 바자르 등의 유적과 관광지가 모여 있고, 신시가지에는 돌마바흐체 궁전과 탁심 광장, 이스탄불 현대미술관 등이 위치한다. 하루하고 반나절, 이스탄불에서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갈라타 다리 아래로 거대한 유람선이 지나간다. 다리 끝에는 고등어 케밥을 파는 노점이 늘어섰고, 다리 아래 식당에서 올라온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낚시 체험에 신난 관광객과 어부들의 상반된 표정 너머로 모스크의 둥근 지붕이 달처럼 떠오른다. 앞으로 이스탄불을 여행하며 만나게 될 시간의 단면처럼 느껴졌다.

오스만 술탄의 모스크와 궁전
튀르키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나톨리아와 투르크족의 역사, 이슬람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굵직한 역사만 살펴보면 이렇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 정착민에 의해 비잔티움이 세워졌고, 330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동로마제국의 수도가 되며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렸다. 오스만제국 때에도 같은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스탄불이라 불리게 된 것은 1930년이니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와 톱카프 궁전은 강성했던 오스만제국의 힘이 느껴지는 곳이다. 시간의 지층을 갈라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로 향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스카프로 머리카락을 가린 채 모스크 안에 들어서자 벽면에 피어난 푸른 꽃이 시선을 압도한다. 모스크 내부를 푸른빛을 띠는 도자기 타일 2만 1034장을 사용해 장식한 것인데, 이 때문에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스크 중앙의 대형 돔은 높이 43m, 지름 27m에 이르는데, 둥근 곡선은 평화를, 황금색 장식과 초승달은 진리의 시작을 의미한다. 대형 돔 아래 중간 크기 돔 4개와 작은 돔 30개가 꽃처럼 피어갈라져 있는데, 200개가 넘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이 들어와 모스크 내부를 환하게 밝힌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아흐메트 1세의 통치 기간인 1609년부터 1617년 사이에 지어졌다. 이 모스크를 유명하게 만든 건 미나레트다. 미나레트란 육성으로 예배 시간을 알리기 위해 모스크 주위에 세우는 첨탑인데, 개수가 모스크의 품격을 나타낸다. 첨탑이 6개인 모스크는 메카의 카바 신전과 더불어 이곳이 유일하다. 건축가가 소통 오류로 6개의 미나레트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술탄 아흐메트는 이곳을 이슬람 성지 순례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훨씬 설득력 있게 들린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광장과 연결된다. 직사각형의 긴 광장은 과거 히포드롬이었다. 히포드롬이란 고대 로마 시대의 마차 경기장으로, 주로 경마와 전차 경주를 위한 경기장을 말한다. 서기 203년 검투 경기장으로 지어진 것을 4세기 무렵 비잔틴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검투 경기를 금지하고, 10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전차경기장으로 바꿨다. 경기장은 480m 길이에 120m 폭의 U자 형태로 지어졌으며, 로마의 전차경기장 다음으로 큰 경기장이었다고 한다.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면서 모스크를 짓기 위해 경기장 좌측 좌석을 부수었고, 귀족들의 저택을 짓기 위해 우측 좌석을 허물었다고 한다. 지금 술탄 아흐메트 광장에는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와 서펜타인 기둥, 콘스탄틴 오벨리스크가 남아 있다.

루프톱 카페 파흐리 베이 한Fahri Bey Han에서 본 그랜드 바자르와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

궁전 같은 지하 저수지, 예레바탄 사라이
술탄 아흐메트 광장 끝 게르만 분수 너머로 붉은 전차가 오래된 도시를 비집고 달려간다. 전차를 따라 움직이는 시선 끝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인다. 예레바탄 사라이, 동로마제국 시기인 6세기에 지은 지하 저수지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다. 예레바탄 사라이는 황실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공사를 시작해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인 532년에 완공했다. 수백 년 동안 진흙에 묻혀 있던 것을 1987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했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저수지라기보다 물에 잠긴 거대한 궁전처럼 느껴진다.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된 웅장한 대리석 기둥과 서늘한 기온이 만들어낸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지하 궁전(사라이)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길이 140m, 폭 70m, 높이 9m 크기의 거대한 수조에 약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이스탄불 최대 규모의 저수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336개의 둥근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데, 기둥마다 모양이 다르다. 각기 다른 신전에서 운반해왔기 때문이다. 수로 위 데크를 따라 걷던 사람들이 메두사 머리가 새겨진 기둥 두 개 앞에 서 있다. 지하 궁전인 줄 알고 들어온 도둑이 불을 비춰 메두사와 눈이 마주쳤을 순간을 상상하니 아찔하다.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예레바탄 사라이는 영화 <007 시리즈>를 비롯해 <미션 임파서블>, <인페르노> 같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고, 지금도 이스탄불 예술 비엔날레 기간에 시청각실로 사용된다.

지하 저수지 예레바탄 사라이는 지하 궁전을 연상케한다.

이스탄불의 시간,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션 바자르
보안 검색대를 지나 바자르에 들어서면 돔 형식의 화려한 지붕 아래 빼곡하게 상점이 들어서 있다. 돔은 이슬람 모스크를 닮았고, 곳곳에서 발견되는 정교한 조각은 유럽 고성을 떠오르게 한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길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려 있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오랜 세월 밟고 지나갔는지 반들반들하게 윤이 난다. 상점에는 화려한 보석과 튀르키예 향이 물씬 풍기는 카펫, 스카프, 금은 세공품, 장신구, 그릇, 달콤한 튀르키예 디저트 로쿰과 다양한 버전의 나자르 본주까지 알록달록한 볼거리가 많은데, 쟁반 가득 차이를 싣고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는 남자에게 시선이 머문다. 차 배달하는 남자라니, 우리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랜드 바자르는 세계 최초로 지붕을 덮은 시장으로, 18개의 출입구와 4000개가 넘는 상점이 있다. 1400년대 술탄 아흐메트 2세가 만들었으며, 오스만제국 시대부터 동서양의 물류가 만나는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시장이라기보다 전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처럼 느껴진다. 시식용으로 내준 로쿰을 한입 베어 물고, 차이도 한 잔 마셨다. 코감기에 효능이 있다는 크리스털 멘톨을 한 병 구입했다. 작은 조각 하나를 뜨거운 물이 담긴 컵에 넣고 증기를 쐬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집션 바자르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랜드 바자르보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향신료를 취급하는 상점이 많아 예전에는 스파이스 바자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이집트에서 들여온 물건을 판매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션 바자르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과거처럼 동양과 서양의 문물이 사고 팔리지는 않지만, 그랜드 바자르는 여전히 볼거리가 많다.

추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튀르키예 정통 요리, 판델리 레스토랑
이집션 바자르 내부에 있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1901년 문을 열고 정통 튀르키예 요리를 선보인다. 청록색 타일과 돔 형태의 지붕, 흰 식탁보와 낮게 매달린 샹들리에가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양고기에 가지 퓌레를 곁들인 휜카르 베엔디와 구운 생선 요리인 레브렉 캬읏타가 대표 메뉴.
pandeli.com.tr

야경이 아름다운 페리예 로칸타시
오르타쾨이 모스크와 보스포루스 대교의 야경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기기 좋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오스만제국 시대 보안을 담당했던 페리예 경찰서 건물에 위치한다. 신선한 제철 식재료로 메뉴를 구성하는데, 방목한 닭으로 만든 닭고기와 부추를 곁들인 소갈비, 호두 타르타르소스를 곁들인 오리 요리가 시그너처 메뉴다. 창가 자리 예약 필수.
feriye.com

 

(왼쪽부터) 이스탄불 모던에 전시된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보스포루스 해협

과거와 미래를 잇는 미술관, 이스탄불 모던
박물관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라면, 현대미술관은 미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고민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에 들렀다. 2004년 튀르키예 현대미술관으로 처음 문을 연 이스탄불 모던은 2023년 5월 칼라타포트로 이전해 재개관했다. 새 건물의 설계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맡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항구의 장소적 특성을 반영해 배의 형태를 차용하고, 건물 외관은 물고기 비늘처럼 빛에 반짝이는 3D 알루미늄 패널로 장식했다. 투명하고 접근하기 쉬운 디자인은 곧 개방적인 미술관의 정신을 나타내는데, 특히 1층은 유리로 벽을 둘러 미술관 내부에 들어오지 않고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방문했을 때 이스탄불 모던에서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과 치하루 시오타Chiharu Shiota, 이젯 케리바izzet keribar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튀르키예 첫 개인전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을 선보였는데, 빛과 색, 지각, 움직임, 기하학, 환경 등의 주제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치하루 시오타는 시그너처인 빨간 실로 전시장 전체를 거대한 설치작품으로 만들었다. 튀르키예-일본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개인전 는 이스탄불의 코스모폴리탄적 정체성과 작가 자신의 이주 이야기 같은 중간 지대에 대해 말한다. 삶과 기억,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었다. 이스탄불 출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젯 케리바는 아카이브 전시 를 통해 125점의 작품을 공개했다. 6개 섹션으로 이뤄진 전시 첫 섹션에는 1950년대 이스탄불의 급변하는 거리와 한국의 도시와 농촌을 기록한 작가의 작품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두 번째 섹션부터는 1980년대부터 이스탄불의 여러 지역에서의 일상을 기록한 작품과 튀르키예 및 세계를 여행하며 포착한 장면들을 공개했다. 전시장을 돌아 나오며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했다.
이스탄불 모던 맨 위층 테라스에는 반사 연못이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골든혼 하구의 수로를 감상하기 좋은 뷰 포인트다.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 이스탄불 모던에서 나와 요트를 탔다. 카라코이 부두를 지나 갈라타 탑 앞바다에서 방향을 바꾼 요트가 갈라타포트와 돌마바흐체 궁전, 시라간 궁전, 오르타쿄이를 지나 보스포루스 대교 아래를 지난다. 대체 이스탄불에는 얼마나 많은 모스크가 있는 걸까. 누구도 선뜻 답을 못한다. 셀 수 없다는 걸 보니 지금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모스크를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튀르키예를 이해하려면 아나톨리아의 역사와 투르크족의 이동, 이슬람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듯 배를 타고 매일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넘나들며 이 풍경을 본다고 생각하니 부러워진다.

삶과 기억, 관계에 대해 생각했던 치하루 시오타의 사색 공간.

우아한 역동, 콘래드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파도를 닮은 유려한 곡선이 인상적인 콘래드 이스탄불 보스포루스는 이스탄불 신시가지, 그중에서도 베시타식 여객선 터미널 뒤쪽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덕분에 보스포루스 해협을 비롯해 탁 트인 이스탄불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파로 붐비는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조용하게 휴식할 수 있으면서 보스포루스 해협과 돌마바흐체 궁전까지 걸어서 이동하기 좋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탁심 광장을 쉽게 오갈 수도 있다.
1992년 문을 연 이곳은 2016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진행해 시설을 업그레이드했다. 원형으로 설계된 로비 주변으로 리셉션과 간단한 디저트와 함께 커피, 티를 즐길 수 있는 모넷 라운지가 있고, 중앙의 나선형 계단 끝은 메인 레스토랑인 만자라로 이어진다. 올데이 레스토랑인 만자라에서는 지중해에서 영감받은 다채로운 요리를 선보인다. 로마와 그리스, 오스만 문화는 물론 유대인과 아르메니안까지 이스탄불의 오랜 역사가 식탁 위에서도 이어지는 느낌이다. 특히 오스만 스타일의 넉넉한 조식 뷔페는 관광객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절인 고기와 훈제 생선, 신선한 치즈, 풍부한 과일, 달콤한 버터, 신선한 잼과 꿀 등 호화로운 뷔페 스테이션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빵과 소스, 요거트, 견과류가 제공된다. 만자라 레스토랑과 같은 층에는 신선한 현지 식재료로 고급 이탤리언 파인다이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몬테베르디Monteverdi가 있다. 다채로운 큐어드 미트와 장인의 치즈,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준비되며, 요리와 함께 즐기기 좋은 엄선한 이탤리언 와인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콘레드 이스탄불 보스포루스에서 가장 핫한 곳은 루프톱에 위치한 서밋 바 & 테라스다. 야경을 보며 식사를 즐기기 좋아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칵테일과 스시 셀렉션이 시그너처 메뉴. 환상적인 이스탄불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기 좋다. 이곳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마다 라이브 연주가 진행된다.
콘레드 이스탄불 보스포루스는 스위트룸 76개를 포함해 총 553개 객실을 갖추고 있다. 디럭스룸과 이그제큐티브룸은 창밖 풍경에 따라 시티 뷰와 파크 뷰, 보스포루스 뷰로 나뉘며, 스위트룸은 투베드룸과 패밀리룸, 발코니룸과 키친이 달린 룸 등 선택지가 다양하다. 보다 쾌적한 컨디션을 원한다면 앰배서더 스위트와 프레지덴털 스위트를 선택할 것. 이그제큐티브 객실 투숙객에게는 라운지 이용과 무료 조식, 웰컴 다과를 제공하며, 스위트룸에 묵으면 객실 내에서 체크인할 수 있고 VIP 어메니티를 제공한다.
호텔 내에는 테크노짐이 운영하는 피트니스 센터와 스파, 어린이 수영장을 포함한 실내외 수영장, 클레이 테니스 코트가 마련돼 있다. 미술품에 관심이 많다면 호텔 내부를 거니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로비에서 시작해 호텔 곳곳에서 악소이Aksoy 패밀리의 프라이빗 컬렉션 1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휘세인 아브니 리피즈Hüseyin Avni Lifij, 할릴 파샤Halil Pasha, 자난 톨론Canan Tolon, 파룩 지목Faruk Cimok 등 튀르키예 예술가의 작품이다.

(왼쪽부터) 올데이 레스토랑 만자라에서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기기 좋다. 관광객뿐 아니라 현지인 사이에서도 아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루프톱 서밋 바 & 테라스.

TIP. 터키항공 스톱오버 서비스
콘래드 이스탄불 보스포루스는 터키항공이 제공하는 스톱오버 서비스의 제휴 호텔 중 하나이다. 가장 많은 환승 옵션을 자랑하는 터키항공은 이스탄불공항에서 환승하고, 최소 20시간 이상 이스탄불에서 체류하는 승객에게 스톱오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은 4성급 호텔 2박,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은 5성급 호텔 3박 무료 숙박과 조식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노선 기준이며, 최종 목적지가 튀르키예 국내일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왼쪽부터) 원형으로 설계된 로비와 휴게 공간. 이탤리언 파인다이닝을 선보이는 몬테베르디. 노을지는 올데이 레스토랑 만자라 풍경.

다이내믹 안탈리아다이내믹 안탈리아
맑고 청량한 날씨와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바다, 안탈리아는 지중해 최대 휴양도시이자 고대 로마 유적을 간직한 관광도시다. 튀르키예에서 이스탄불 다음으로 여행자가 많은 곳으로, 휴가철이면 관광객 수가 주민 수를 넘어서곤 한다.

새하얀 현대식 빌딩에 둘러싸인 붉은 지붕의 안탈리아 올드시티.

그리고 지중해 시간 여행, 안탈리아 구시가지
벨렉에서 자동차로 1시간, 지중해 최대 관광도시 안탈리아에 닿는다. 안탈리아는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의 왕 아탈루스 2세가 도시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탈레아라고 명명한 이래로 역사를 이어왔다. 아마도 이 지역 사람들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기 전 멀리 떨어진 이스탄불보다 지중해의 법칙에 따랐을 거다. 먼 바다를 오갈 수 있는 배가 발명되고, 지중해를 항해하던 배들이 쉬어 가던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됐다. 2000년 전부터 배들이 쉬어 가던 마리나 항구, 안탈리아의 역사가 시작된 이곳을 ‘칼레이츠’라 부른다. 칼레이츠란 튀르키예 말로 ‘성안’이라는 뜻이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지나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129년 안탈리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높이 8m에 이르는 하드리아누스 문은 로마 개선문과 달리 입구 세 개의 크기가 같고, 건물 위애틱(다락방)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가족의 동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 시대에 수레가 드나들었을 가운데 문 아래 바닥에는 수레 바퀴에 닳아 푹 꺼진 대리석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문은 일반 도로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 비밀을 찾아 근처 루이나달리아 호텔Ruin Adalia Hotel로 향했다. 박물관과 호텔로 사용 중인 이곳은 1990년대 후반 안탈리아 칼레이츠에 설립된 지중해 문명 연구센터(AKMED)로 사용되던 곳이다. 2003년부터 15년에 걸쳐 발굴 조사를 진행했고, 지하 3.5m에서 고대 집터와 도로, 수로 등을 발견했다. 페르가몬 아탈로스 통치 시절부터 시작해 로마제국, 비잔틴제국, 오스만제국의 문명이 차례로 발견됐으며 공화정 시대의 유물도 발견됐다. 발아래 3.5m 깊이에 6개의 다른 시대가 쌓여 있는 셈이다. 연구팀은 하드리아누스문에서 바닷가에 있는 히딜리크 타워로 이어지는 길이 기원전부터 있던 길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확한 기능과 공간 구분에 대한 문서나 데이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루이나달리아 호텔 박물관은 호텔에 숙박하지 않아도 둘러볼 수 있다. 주택 지하로 내려가 드러난 바닥을 보고 집터와 역할을 추측하는 일이라 매우 흥미롭다. ruinadalia.com.tr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히딜리크 타워Hidirlik Tower는 황갈색 벽돌로 두툼하게 지었다. 하단은 정사각형, 상단은 원통형으로 지은 탑의 높이는 14m, 아래층에 작은 방이 있고 계단으로 위층과 연결된다. 안탈리아를 오가는 배의 등대인 동시에 안탈리아로 접근하는 적의 배를 관찰하는 망루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안탈리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하드리아누스의 문.

고대 성벽 도시로 시간 여행
안탈리아 구시가지 어디서나 보이는 미나레트가 있다. 이블리 모스크에 속한 것인데, 모양이 독특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로 줄무늬가 새겨져 있다. 높이 38m의 이블리 미나레트는 원통형 건물로 1225년경 지어졌다. 정상까지 90개 계단이 있으며, 14세기에 파괴되었던 것을 1373년 오스만 때 재건했다. 이블리 모스크는 복합 단지로 지어졌다. 16세기부터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의 한 종파인 메블라나교 건물로 사용하던 건물에는 데르비시 박물관이 들어섰다. 대부분의 국제무역도시와 마찬가지로 안탈리아에는 과거 다양한 신앙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모양이다. 마드리사는 기념품 가게로 바뀌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으로 여기는 푸른 눈의 장신구 ‘나자르 본주’가 상점마다 주렁주렁 걸려 있다.
칼레이츠를 거닐다 보면 끊기고 허물어진 성벽을 마주하게 된다. 안탈리아 성벽은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국 시절에 처음 세워졌고, 로마 시대에 여러 차례 고쳐 지으며 수많은 문과 탑을 추가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성벽은 파괴되고 보수하길 반복했다. 오스만 통치 시절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하면서 잦은 전투와 지진에도 칼레이츠를 둘러싼 54개 탑과 성벽은 남아 있었다. 지금처럼 성벽이 허물어진 것은 오스만제국 말기 서구화를 추진하면서부터다. 개발이란 명목하에 탑과 성벽이 뜯겨나갔고 성벽에서 나온 돌은 다른 집을 짓는 재료로 사용됐다. 지금은 탑 7개와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카라알리올루 공원에서 내려다보니 안탈리아의 굴곡진 역사가 읽히는 듯했다. 몇 번이고 바뀌었을 땅의 운명과 달리 안탈리아의 드넓은 하늘과 푸른 바다는 수십 세기 전 그대로다. 해가 고도를 낮추며 바다 너머로 떨어진다. 뒤쪽으로 빨간 전차가 지나가며 현재의 시간으로 이끈다.

(왼쪽부터) 깨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튀르키예식 베이글 ‘시미트’는 튀르키예 국민 빵으로 불린다.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안탈리아 구시가지.
(왼쪽부터) 로마의 영향을 받은 미라의 원형 경기장. 미라에 남아 있는 리키아식 암벽 무덤. 지위가 높을수록 높은 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안탈리아에서 페티예까지
튀르키예 남부 해안의 테케반도에 고대 리키아 왕국이 있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문화가 거의 없고 문자 역시 해독하지 못했지만, 가파른 절벽에 새긴 무덤과 석관이 고대 리키아 문명이 발달했던 곳임을 증명한다. 안탈리아에서 페티예까지 그들이 남긴 문명의 흔적을 따라 여행했다. 리키아는 아나톨리아반도 남서부의 옛 지명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에 트로이 동맹으로 묘사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페르시아 지배 이후 알렉산더 대왕을 환영하며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였고, 이후 로마제국의 한주가 됐다. 산지와 바다가 어우러진 리키아 중심에는 23개의 도시국가가 세워졌고, 이들은 기원전 2세기 무렵 리키아 동맹을 맺는다. 주요 안건은 투표로 결정했는데, 대도시 3표, 중간 도시 2표, 소도시 1표씩 주어졌다. 로마에 귀속되어 있었지만 독자적인 행정과 사법권을 행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크산토스, 파타라, 피나라, 올림포스, 미라, 틀로스가 6대 대도시였다. 곳곳에 리키아식 암벽 무덤과 지붕을 씌운 듯한 석관 무덤 등 독특한 무덤 양식이 남아 있다. 로마인들은 리키아에 많은 도시를 건설하고 항구를 발전시켰다. 도로를 만들어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원형극장과 목욕탕, 포럼, 신전 등을 만들어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보여줬다. 로마 문화가 궁금하면 튀르키예로 가라는 말은 이러한 배경 아래 나왔다. 안탈리아에서 페티예까지 이어지는 길, 리키아 왕국의 옛 모습을 간직한 이 길을 리키안 웨이라 부른다.

(왼쪽부터) 그림 같은 페티예의 모습이 펼쳐진 해안도로. 시트러스 향이 가득한 튀르키예 남부 겨울 여행.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리키아 유적.

세계 10대 트레일, 리키안 웨이
페티예에서 안탈리아까지 이어지는 509km 트레일로, 고대 리키아인들이 도시와 항구를 잇는 경로로 사용했던 구간을 연결한다. 영국 출신 이주민 케이트 클로우에 의해 개발되어 1999년에 개통했다. 프랑스 그랑드 란도네 시스템에 따라 자원봉사자들은 트레일 경로에 도로는 50m마다, 비포장도로는 100m마다 바위나 나무줄기에 흰색과 빨간색의 두 줄 표식을 만들고, 교차로마다 노랑 방향 표지판을 설치해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빨간색 십자표시는 진입 금지를 뜻한다. 케이트 클로우는 리키안 웨이의 경로와 구간별 거리, 도보 시간, 트레일에 포함된 마을과 역사 유적 등에 대한 정보를 포함한 가이드북을 출간했다. 현재는 확장 구간을 추가하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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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미선MEE-SEON YI
사진. 조성준SEONG-JOON CHO , 취재 협조. 터키항공TURKISH AIRL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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