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RAINBOW NATION
감각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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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4월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사파리 투어 외에도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이 가득하다. 수준 높은 음식과 와인, 개성 넘치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신비로운 자연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위부터 시계 방향) 페이자의 홈 키친에서 열리는 쿠킹 클래스. 치치카마 국립공원에 있는 출렁다리. 꽃이 만개한 나마쿠아 국립공원. 요하네스버그의 마보넹 지구에 자리한 버트란드 카페.

아이스크림과 커리
‘마더 시티’라 불리는 케이프타운의 음식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엿보다.
글. 헤더 리처드슨

“아주 오랫동안 아이스크림을 먹어왔지만 아프리카의 특색이 담긴 맛을 개발할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디어가 막 샘솟더라고요.”
케이프타운 동쪽에 자리한 타피타피Tapi Tapi 카페에서 타피와Tapiwa가 운을 뗀다. 카페 벽에는 아프리카 대륙 모양의 코르크판이 걸려 있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요리와 식물의 이름을 적은 종이가 핀으로 꽂혀 있다. 짐바브웨와 콩고 주변에는 바오바브나무가, 남아프리카 웨스턴케이프Western Cape에는 세이지가 적혀 있는 식이다.
토요일인 오늘은 파란색 멜빵바지를 입은 타피와가 손님들의 주문을 받기 위해 수시로 일어선다. “이 아이스크림에는 시나몬, 카다멈, 아니스 씨, 생강으로 만든 케이프 말레이 스타일 향신료가 들어 있어요. 그 옆의 아이스크림은 서아프리카에서 자란 포니오라는 곡물과 시나몬을 첨가해 바삭한 식감을 자랑합니다.” 그가 손님들에게 설명한다. 나는 남아프리카에서 자라는 다육식물인 스펙붐spekboom과 복숭아, 오렌지가 섞인 셔벗을 선택한다.
타피와는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던 중 아이스크림에 대한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연구실에서 사용하다 남은 액체 질소에 온갖 재료를 혼합해보면서 말이다. “이런 맛을 만들어봐야겠다 특별히 계획했던 건 아니에요. 그저 선반에 있던 재료를 남김없이 뒤섞어보았을 뿐이죠.” 이후 타피와는 정통 레시피를 변형해 도전을 거듭했고 그렇게 케이프타운에서 꽤 유명한 디저트 가운데 하나가 탄생할 수 있었다.
케이프타운의 주식인 케이프말레이족Cape Malay 음식은 독특하게도 그 뿌리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남아시아에 두고 있다. 1652년부터 200년 동안 남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한 네덜란드는 지금의 인도네시아에서 노예를 대거 이주시켰다. 이주민들은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게끔 향신료를 덜 넣은 채 고향 음식을 만들었다. 이때 중화된 음식이 지금도 케이프타운에서 인기를 누리는 콕시스터스koeksisters(생선 커리, 양고기 스튜, 향신료를 넣은 도넛의 일종)다.
나는 이 음식을 맛보고자 시그널힐Signal Hill의 낮은 언덕에 있는 보캅Bo-Kaap 지구로 향한다. 아시아에서 온 첫 이주민들이 대부분 이 지역에 정착을 했다고. 오늘날에는 알록달록한 가옥이 특징인 문화유산 보호지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웨일가Wale Street를 지나자 치아피니 거리Chiappini Lane에 자리한 홈 키친Home Kitchen이 모습을 드러낸다.
페이자 에이브러햄스Faeeza Abrahams가 응접실에서 나를 맞이하며 언덕과 포도밭과 대서양에 둘러싸인 테이블마운틴Table Mountain을 품은 케이프타운의 아름다움을 극찬한다. “다른 곳에서 살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녀가 마치 혼잣말처럼 속삭인다. 보캅에서 자란 페이자는 어머니로부터 케이프말레이족 음식을 배웠다. 그러고는 지난 몇십 년간 도시 전역에서 샌드위치를 판매해오다가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홈 키친에서는 종종 쿠킹 클래스를 개최하는데 수강생들은 케이프말레이족 음식의 레시피를 전수받을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향신료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잠시 후 페이자가 고추로 양념한 치킨 사모사, 생강에 재운 닭고기와 감자로 속을 채운 로티를 눈앞에서 직접 만들기 시작한다.
케이프타운에서 다루는 음식들은 아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바디벨루Vadivelu의 셰프들은 자신들의 요리를 ‘남아프리카식 인도 음식’이라고 표현한다. 레스토랑 경영자인 제이슨 무들리Jason Moodley의 조상은 1800년대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남아프리카 동쪽 해안 도시 더반Durban으로 이주해 왔다. 제이슨은 그의 조상들로부터 이어져온 레시피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소개하곤 한다. 더반에 도착한 대다수의 인도 노동자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오늘날 더반은 인도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인도계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손꼽힌다. 바디벨루는 인도인들의 레시피를 참고하지만 한 국가로 정의되는 요리나 퓨전 음식은 지양한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전 세계의 식재료를 수입해요. 퓨전 음식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죠.” 공동 경영자인 팀 와이엇-거닝Tim Wyatt-Gunning이 설명한다. 바디벨루의 벽면에는 호랑이가 위엄을 드러내고 테이블은 손님들로 만석이다. 먼저 감자와 병아리콩을 채워 넣은 파니파니pani pani 튀김으로 식사를 시작해본다. 그리고 양고기로 만든 정통 더반 커리를 메인 메뉴로 고른다. 함께 주문한 티카 마살라는 탄두르 화덕이 아닌 프라이팬으로 조리한 데다가 더반의 향신료가 덧입혀져 양념의 풍미가 강하다.
인도 음식이 지구 한 바퀴를 빙 돌아 이곳 케이프타운에 정착했다. 이후 도시의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완전히 새로운 요리로 탈바꿈했다. 타피와의 범아프리카 아이스크림과 페이자의 케이프말레이족 가정식처럼 복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위부터 시계 방향)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선 케이프타운의 브리가Bree Street. 보캡 지구에 서 있는 페이자 에이브러햄스. 바디벨루에서 한 손님이 파니르 치즈, 양배추, 양파를 얇은 빵인 포파둠popadum으로 감싼 음식을 먹고 있다.

가든 루트에서의 6일
장대한 해안 도로인 가든 루트를 따라 무궁무진한 모험이 펼쳐진다.
글. 헤더 리처드슨

케이프타운에서 동쪽으로 386km 떨어진 모셀베이Mossel Bay부터 스톰스강Storms River까지, 가든 루트Garden Route는 국토의 남쪽 해안을 따라 200km 정도 이어진다. ‘N2 고속도로’라고도 불리는 이 해안 도로는 눈부신 해변과 목가적인 마을,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아우테니쿠아산맥Outeniqua Mountains을 아우른다.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번지점프, 여유로운 와인 테이스팅, 싱그러운 생굴 한 접시 등 도로 곳곳에 숨겨진 즐길거리도 놓치지 말자.

1일 차
모셀베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긴 1150m 길이의 집라인과 350m 길이의 샌드보딩 모래언덕을 자랑하는 액티비티의 중심지이다. 하지만 이곳에 스릴 넘치는 모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포인트 오브 휴먼 오리진스 유적지에 무려 16만 년 전 도구 등 중석기 시대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기서 출발하는 아우테니쿠아산맥 하이킹 코스도 거닐어볼 만하다.
mosselbayzipline.co.za, dragondune.com, humanorigin.co.za, sanparks.org

2일 차
차로 50분을 달려 윌더니스Wilderness 마을에 닿는다. 이 마을의 눈부신 해변은 매끄럽고 길게 뻗어 있으며, 파도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바다에는 돌고래가 노닌다. 윌더니스에 속한 가든루트 국립공원은 자생림과 연안의 강과 호수가 보호받는 구역이다. 윌더니스 엡-앤-플로 레스트 캠프Wilderness Ebb-and-Flow Rest Camp에 방문한 여행자들은 투스강Touws River을 따라 카누를 타고 물수리나 물총새의 일종인 하프-칼러드 킹피셔half-collared kingfisher를 발견할 수 있다. 하프-칼러드 킹피셔 관찰을 위해 조성된 워킹 트레일 끝에는 800년이 넘은 아우테니쿠아 버드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다. sanparks.org

3일 차
윌더니스에서 40분 거리에 자리한 나이스나Knysna 석호 마을은 현지인이 즐겨 찾는 여행지다. 6월과 11월 사이, 고래 관찰 시즌이 되면 해안에 남방긴수염고래와 혹등고래가 출몰한다. 여행자의 발길을 이끄는 또 다른 요소는 음식, 특히 굴 요리가 일품이다. 바닷가 레스토랑 겸 와인 바인 34사우스에서는 세비체부터 튀김까지 다양한 조리법으로 굴을 선보인다. 또 다른 레스토랑으로 해산물과 타파스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타파스 앤 오이스터스나, 구운 정어리 같은 남아프리카식 포르투갈 음식을 다루는 오페스카도르를 추천한다.
34south.biz, tapasknysna.co.za, opescador.co.za

4일 차
나이스나에서 다시 30분을 이동해 플레턴버그 베이Plettenberg Bay에 다다른다. 바다를 마주한 수영장과 투숙객 전용 해변 진입로를 갖춘 부티크 호텔인 더 플레턴버그를 비롯한 훌륭한 숙소가 여럿 있다. 마을 외곽으로 나가면 브라몬 와인 에스테이트와 뉴스테드 와인 에스테이트 등 몇몇 와이너리에서 소비뇽블랑과 스파클링 매소드 캡 클라시크(남아프리카 전통 스파클링 와인)를 시음할 수 있다. 보다 활동적인 여행자들을 위해서 카누 타기 같은 액티비티도 마련되어 있다. 로버그 자연보호공원Robberg Nature Reserve에 가면 수심 낮은 바다에서 백상아리를 목격할 수도 있다.
theplettenberghotel.com, bramonwines.co.za, newsteadwines.com, africanyon.com, capenature.co.za

5일 차
네이처스밸리Nature’s Valley 마을에서는 63km 길이의 치치카마 트레일Tsitsikamma Trail의 일부를 늦은 밤에도 트레킹할 수 있다. 18km 구간은 아프로몬타네 산림과 토종 핀보스fynbos 초목 지대를 지나간다. 엠티오 트레일스MTO Trails 같은 어드벤처 전문 여행사에서 짐과 음식을 숙박 예정인 오두막에 배달해주는 ‘슬랙패킹slackpacking’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여행자는 가방 하나만 가볍게 메고 하이킹을 한 다음 셔틀버스를 타고 되돌아올 수 있다. 네이처스밸리에서 출발하는 당일 하이킹 코스를 선택하면 강을 따라 먼 바다까지 나갔다가 복귀하는 6km 길이의 그루트 리버 트레일Groot River Trail을 걸을 수 있다. 네이처스밸리 레스트 캠프에서 지도와 허가증을 발부한다. sanparks.org, tsitsikamma.info, mtotrails.com

6일 차
네이처스밸리와 스톰스강 사이에 놓인 블루크란스 다리Bloukrans Bridge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216m 높이의 번지점프가 있다! 출발 지점까지는 집라인을 타고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다. 번지점프가 부담스럽다면 다리에 설치된 산책로인 스카이워크를 따라 걸으며 조금 더 차분하게 계곡 풍경을 즐겨보자. 혹은 마을에서 카약을 빌려 계곡 깊은 곳까지 탐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bloukransbungy.com, untouchedadventures.com

(위부터 시계 방향) 블루크란스 다리에 설치된 번지점프. 34사우스에서 맛볼 수 있는 레몬을 곁들인 현지산 굴. 플레턴버그베이의 로버그 자연보호공원에서 하이킹을 하는 여행자.

대자연의 신비
남아프리카의 다채로운 지형 위에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이 경이로운 장면을 연출한다.
글. 벤 러윌

사딘 런
소과에 속하는 포유류 누wildebeest가 아프리카에서 대이동을 하는 유일한 동물은 아니다. 매년 수백만 마리의 정어리가 국토의 동쪽 해안을 따라 움직이는 사딘런Sardine Run은 지구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자연현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콰줄루나탈주KwaZulu-Natal의 따뜻한 물을 향해 이동하는 물고기 떼는 포식자의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배고픈 돌고래 무리가 정어리 떼를 추격하고 케이프개닛cape gannet 바닷새가 그 위를 배회한다. 상어와 고래는 입을 크게 벌린 채 물고기를 노린다. 일부 여행사를 통해 먼 바다로 나가 사딘런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정어리들이 이동하는 시기는 6월 초부터 7월 말까지.
offshoreportstjohns.com, prodivesardinerun.co.za

소드와나 베이의 거북
매년 11월부터 1월 사이에 인도양에서 헤엄쳐 나온 붉은바다거북과 장수거북이 소드와나 베이Sodwana Bay 해변으로 기어 올라가 모래에 알을 낳는다. 이는 선사 시대부터 존재해온 생명의 순환이다. 그리고 약 60일 후에 새끼 거북들이 알을 깨고 나와 해변에서 꼬물거린다. 콰줄루나탈 북쪽 연안의 소드와나 베이는 우거진 숲과 모래언덕에 둘러싸여 있다. 주로 스쿠버다이빙의 명소로 알려져 있지만 갓 태어난 바다거북을 관찰하기에도 적합한 장소이다. 일몰에 시작되는 투어에 참여하면 2시간에서 4시간 정도 바다거북의 행적을 따라가볼 수 있다.
kosi.co.za

나마콸란드 사막의 개화
사막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장면들은 대개 비슷하다. 그중 붉은색 덤불이 끝없이 펼쳐지는 장면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던케이프주Northern Cape에 있는 나마콸란드Namaqualand의 사막은 이 같은 모습이 펼쳐진다. 붉은색 덤불은 나마콸란드 데이지라는 야생화로 외딴 나마쿠아 국립공원을 온통 뒤덮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조금 더 작은 크기의 보라색,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 야생화가 피어나 화려한 꽃의 향연을 이룬다. 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적기는 8월 초부터 9월 말로 남반구의 봄
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호텔 예약이 빠르게 마감되니 방문 계획이 있다면 서두르도록 하자.
experiencenortherncape.com

칼라하리의 밤하늘
2019년, 에이하이 칼라하리 문화유산 공원이 국제 밤하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며 아프리카 내의 유일한 보호구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나미비아 및 보츠와나 국경과 인접한 이 공원은 빛공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세계에서 주목하는 별 관측지이다. 특히 건기인 5월부터 10월까지 하늘이 가장 맑고 별자리가 가장 밝게 빛난다. 또한 약 500km²에 달하는 공원에서는 기분 좋은 고립감을 느낄 수 있다. 초승달이 뜰 무렵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자우스 로지에 머무르며 더욱 선명해진 별 무리를 느긋하게 감상하자 .
xauslodge.co.za

헤르마누스의 고래
헤르마누스Hermanus는 육지에서 즐기는 고래 관찰에 일가견이 있는 곳이다. 웨스턴케이프의 바다로 뻗어 나온 곶에 자리한 해안 마을의 낮은 절벽 덕분에 워커 베이Walker Bay와 그 너머의 대서양이 한눈에 담긴다. 연중 내내 경치가 빼어나지만 하반기, 특히 8월과 10월 사이에는 50여 톤에 이르는 남방긴수염고래가 이 앞을 지나간다. 9월 말에 개최되는 헤르마누스 고래 축제Hermanus Whale Festival는 퍼레이드를 포함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활기 넘치는 연례행사다. 하지만 고래 관찰이 주된 목적이라면 좀 더 조용한 시기를 추천한다. 마을이 케이프타운에서 비교적 가까워 당일치기가 가능하지만 주변 와이너리와 워킹 트레일을 고려한다면 시간을 더욱 할애해도 좋겠다.
hermanus-tourism.co.za

드라켄즈버그산맥의 폭포
남아프리카에는 매우 인상적인 폭포가 다수 존재하는데 그중 무려 25km 길이로 펼쳐진 협곡 블라이드리버 캐니언Blyde River Canyon 주변으로 집중되어 있다. 가장 높은 폭포는 드라켄즈버그Drakensberg 산맥에 있는 983m 높이의 투겔라 폭포Tugela Falls.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폭포로는 91m 높이의 리스본 폭포Lisbon Falls가 언급되곤 한다. 이 폭포는 11월과 1월 사이에 비가 쏟아지는 음푸말랑가주Mpumalanga의 산악 지대에 자리한다. 연초에 방문한다면 무섭게 쏟아지는 폭포의 물살을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다. 이 일대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로지르는 옛 도로인 159km 길이의 파노라마 루트Panorama Route를 따라 걸으면 앞서 말한 폭포들을 단번에 섭렵하게 된다.
mpumalanga.com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나마콸란드의 사막에 핀 꽃. 헤르마누스 앞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남방긴수염고래. 음푸말랑가의 약 24km 길이 블라이드리버 캐니언.

잊지 못할 트레일
국토 남쪽에 있는 콰줄루나탈주에 펼쳐진 드라켄즈버그산맥은 빼어난 풍광에 둘러싸여 세계적인 하이킹 경험을 선사한다.
글. 벤 러윌

아침 6시, 나는 승용차 뒷좌석에 구겨 앉아 인생 최고의 하이킹을 떠나기 위해 안개 덮인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몇 시간 동안 진흙, 체인 사다리 두 개 그리고 내 팔 길이 정도만 보이는 시야가 이어진다. 하지만 드라켄즈버그산맥에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네 시간이면 도착하는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산맥을 하이킹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거대하고 남성적인 곡선을 따라 잔디로 덮인 고원으로 이뤄진 산으로 이 중 2434km² 면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대 암석화가 동굴을 장식하고 개코원숭이가 계곡에서 장난을 치며, 돌출된 암석 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도시에서 출발해서 오후가 되어서야 도착을 한 뒤, 나는 일종의 해탈한 기분을 경험한다. 산기슭은 연두색으로 덮여 있고 산비탈에는 고사리가 자란다. 영양 무리가 길가에 나타난다. 론다벨rondavel(아프리카 전통 초가집)이 모여 있고 닭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을 위로는 온통 햇살이 부드럽게 감싼다. 차는 ‘카멜레온 출몰’ 표지판과 아카시아에 매달려 있는 멋쟁이새 둥지를 지난다.
지평선에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높고 위쪽이 평평하다. 붉은날개찌르레기red-winged starling가 나무고사리 옆을 빠르게 지나가고 매우 건강해 보이는 스패니얼이 로비에서 낮잠 중인 휴양시설 캐번 리조트 앤 스파Cavern Resort & Spa에 도착하자 마이크 믈란제니Mike Mlangeni가 다음 날 트레일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한다. 하이킹 가이드이자 자랑스러운 줄루족Zulu인 마이크는 리버풀 프리미어리그 팬이고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 4시에 출발합니다. 도착하면 출발 지점까지 사륜구동으로 갈아타서 다시 이동해야 해요. 길 상태가 좋지 않거든요.” 이렇게 말한 마이크가 눈을 응시하며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해요.”
그렇게 해서 아침을 먹기도 전에 동틀 무렵의 점점 더 짙어지는 안개를 보면서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쉼없이 달린다. 기이하게 아름다운 급경사면에서 끝나는 12km 길이의 순환 코스인 앰피시어터Amphitheatre 하이킹을 시작한다고 한다. 첫 한 시간 동안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걷는 속도가 느리다. 장엄한 산세 사이에 구름 조각이 걸리면서 시야가 조금씩 보이고서야 심박수가 높아진다. 그리고 체인 사다리에 다다른다.
“간단해요.” 암석 표면으로 사라지는 철제 사다리 아래에 서서 마이크가 말한다. “아래만 내려다보지 마세요.” 얼마 후에 우리는 24m, 15m 높이의 체인 사다리 두 개를 올라 잔디로 뒤덮인 고지대에 도착한다. 사다리 대신 산을 등반하는 다른 길이 있지만 더 오래 걸린다. 공작태양새malachite sunbird 한 마리가 재빠르게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안개 속에 터지는 불꽃 같다. 90분 정도 걸은 지금, 해가 안개 사이를 뚫자 주변 풍경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 해발 2438m 지점에 다다른다. 고원 아래로 강이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보인다. 걸으면서 자세히 보니, 이런 강물이 절벽에서 바로 흐르는 게 아닌가. 심장이 더 빨리 뛰기 시작한다. 바위에 박힌 표지판에 ‘투겔라 폭포–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983m’라고 쓰여 있다. 몇 초 후, 폭포가 시작되는 지점의 탁 트인 시야가 눈앞에 펼쳐지고 나를 온몸으로 강타한다. 쏟아지는 물과 현무암 벼랑 그리고 저 멀리 우뚝 선 산들. 조금 몽롱한 상태로 절벽 가장자리를 따라 멀리 내다보면서 남쪽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다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똑같이 걷는다. 아래 어딘가에 구름으로 생긴 그림자가 계곡 바닥에 자국을 남긴다. 발아래에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멀리 협곡이 있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봐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죠?” 마이크가 웃으면서 말한다.
이틀 후, 우리는 사냥꾼과 사자가 그려진 1000년이 넘은 동굴벽화를 살펴보고 있다. 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차로 이동해서 1939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켜온 커시드럴 피크 호텔Cathedral Peak Hotel 인근의 웅장한 지형에 도착한다. 어리석게도 앰피시어터의 풍경을 이길 곳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산봉우리는 더 모여 있고 모양이 다듬어져 있으며 크기 면에서 더 압도적이다. 꽃이 핀 프로테아protea 나무들이 언덕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산 능선 사이로 흑뻐꾸기black cuckoo 울음소리가 메아리친다.

(위부터 시계 방향)
안개가 걷히고 드라켄즈버그의 북녘 산기슭과 투겔라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원으로 올라가는 체인 사다리. 가이드 마이크 믈란제니.

영양의 피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암석화의 사람 형상은 창을 들고 달리는 모습이다. “산족San이 그린 암석화입니다.” 양 볼에 전통 의식으로 인한 절개 흉터가 있는 가이드 즈웰리 시톨레Zweli Sithole가 설명한다. “저희 줄루족보다 먼저 살았던 부족이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요.” 노래하듯 말하는 즈웰리는 따뜻한 인내심을 가진 완벽한 하이킹 파트너다. “한 발씩 천천히 가세요.” 머시룸 록Mushroom Rock으로 불리는 천연 아치형 지형물을 보러 가기 위해 가파른 등반을 하면서 그가 부드럽게 노래한다. “한 발씩 천천히.” 즈웰리가 녹음 진 언덕을 지나는 17km 길이의 순환 코스로 안내한다. 길을 나서기 전에 들은 코스 설명은 평범하게 느껴졌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산꼭대기의 험준한 바위들이 하늘을 찌르고 산비탈과 산등성이 물결치며 멀리 뻗어 나간다. 언덕 옆에 일런드eland 무리가 햇살을 받으며 풀을 뜯고 있다. 풍경은 웅장하고 사방에서 동시에 압도하는 것 같다. 자리에 서서 한 바퀴 돌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전망이 대상감이다. 즈웰리가 레소토Lesotho로 이어지는 산악 길을 가리키고는 냇가에 쭈그리고 앉아 수달이 남긴 게 껍데기 무더기를 보여준다. 우리는 도린 폭포Doreen Falls 아래 천연 웅덩이에서 수영을 하면서 하이킹을 마친다.
걷다가 바위에 앉아 풍경 보는 걸 반복하느라 리조트로 돌아오는 데 거의 일곱 시간이 걸렸다. 등산화는 먼지로 뒤덮이고 종아리는 아프지만 남은 하루 동안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드라켄즈버그는 ‘용산’이라는 뜻인데 줄루어로 우칼람바uKhahlamba라고 부르는 산등선은 ‘창의 장벽’을 의미한다. 이보다 더 극적인 지명은 없을 것이다.

(왼쪽부터) 커시드럴피크 지역의 암석화는 1000년을 거슬러 오른다. 투겔라강 전망과 함께한 요깃거리.

드라켄즈버그 하이킹 코스 3
전망이 좋은 투겔라 협곡Tugela Gorge
투겔라 폭포 아래로 이어진 14km 코스는 협곡 꼭대기로 다시 올라가며 두 손으로 기어오르는 구간도 있다. 도전을 위한 커시드럴 피크Cathedral Peak 하루가 소요되는 19km 거리의 하이킹 코스는 커시드럴 피크 호텔에서 시작해서 같은 이름의 산 정상까지 이어지며 좁은 난간과 가파른 암석면을 따라간다.

더 짧은 론 록Lone Rock
캐번 리조트 앤 스파에서 출발해서 왕복 4km 트레일을 따라 산을 올라 암석화를 구경하고 푸른 계곡과 주변 산봉우리로 이뤄진 절경을 눈에 담자.

루트에 대한 더 많은 정보와 가이드 투어는 캐번 리조트 앤 스파와 커시드럴피크 리조트를 통해서 구할 수 있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4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글. 벤 러윌BEN LERWILL, 헤더 리처드슨HEATHER RICHARDSON
사진. 티건 커니페TEAGAN CUNNIFFE, 멜라니 판 췰MELANIE VAN Z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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