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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을 좇아 괌으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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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호

2년 넘게 일식 촬영을 준비한 여행 사진작가 파블로와 여행작가를 꿈꿔온 그의 연인 홍새롬.

지난 2019년 12월 26일 일어난 일식을 좇아 괌으로 떠난 그들이 소망을 이뤘다.

아 위 레디?

여행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한국계 캐나다인 파블로는 2017년 미국에서 달이 태양의 일부를 가리는 부분일식의 순간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당시 그 현장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감격스러운 표정, 황홀한 눈물, 거대한 우주 속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느꼈던 제법 끈끈했던 유대감이 그에게 깊게 각인되었다. 그날 이후 반드시 일식의 여정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꿈을 품었다. 12월 26일, 괌에서 금환일식이 일어난다. 2019년 6월. 일식을 추적하기 위한 플랜 짜기에 돌입했다. 파블로는 괌으로 떠나기 전, 자료를 수집하고 이 여행의 스토리를 공감해줄 수 있는 매거진을 찾기 시작했다. 9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를 만났다.

파블로와 나, 에디터와 아트 디렉터 4명이 모였다. 파블로는 금빛 반지 모양으로 로맨틱한 흔적을 남기게 될 일식을 어떻게 사진으로 담아낼지, 그것이 어떤 궤적을 그리게 될지 조사한 내용을 상세하게 담은 PPT를 설명한다. 뒤이어 일식의 순간과 그것을 마주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찾아 보여준다.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대자연의 신비로운 여정에 감동한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환희의 미소를 짓는다. 그 영상을 보는 우리 넷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에디터가 들뜬 목소리로 연신 감탄의 추임새로 질문을 이어간다. 이후 과정은 때론 느릿하게 때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해결되면서 괌의 26일로 향하고 있었다.

일식 촬영에 적합한 카메라 장비를 구비하는 것도 큰 과제. C 브랜드에서 장비를 협찬해주겠다는 확답을 들었고,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나는 연인으로 그를 응원하며 이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었다. 여행작가를 꿈꿔온 나의 임무는 태양과 달이 만나는 일식을 관측한 감동을 생생한 여행기로 전하는 것. 크리스마스 선물을 열기 직전에 느낄 법한 설렘과 긴장으로 우리는 들떴다.

꿈은 이루어진다

2019년 12월 26일 일어나는 개기일식은 위도가 낮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만 관측할 수 있다. 달이 태양과 겹쳐지지만 해를 모두 가리지 못해서 불의 고리처럼 보이는 금환일식이 진행된다. 괌에서 ‘불의 고리 일식’을 관측 가능한 시간은 단 3분. 깨끗한 하늘, 관측 가능한 장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장비까지. 3박자가 한 치의 오차 없이 계획대로 흘러가야만 한다. 우린 과연 이 미션을 성공할 수 있을까.

괌 여행에서 일식 촬영 다음으로 기대했던 것은 일몰이다. 지인들에게 ‘선셋 러버’로 알려진 나와 파블로가 이번 여행에서는 하늘에서 일몰 포인트를 찾아보기로 한다. 괌 공항 근처에는 개인 경비행기 투어 회사들이 즐비하다. 원하는 시간만큼 하늘에서 괌을 조망하거나 파일럿의 안내에 따라 짧게나마 직접 경비행기를 조종해볼 수 있다. 늦은 오후 우리는 경비행기장에 도착한다.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파일럿 헨리, 나, 파블로가 올라탄 아담한 경비행기에 시동을 켜자 털털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낸다. 한눈에 괌이 보이는 상공에서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며 파일럿 헤드폰를 통해 들려오는 헨리의 이야기에 나와 파블로는 웃음을 터뜨린다. 대만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기 대부분을 캐나다와 호주에서 보낸 헨리는 영어가 유창하다. “1년 반 전 괌 여행 마지막 날 이 회사에 전화했지. 경비행기 자격증이 있는데 혹시 일자리 있나요? 덕분에 아직 여기 살고 있어.”

해가 지고 어두워진 하늘과 달리 땅은 크리스마스트리와 거리의 불빛으로 빛난다. 헨리는 우리가 비행하는 곳곳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현지인판 가이드’를 제공한다. “여기는 미군 부대야. 원래는 함부로 지나갈 수 없지만 사전에 허가를 받으면 가능해. 여기는 수요일마다 야시장이 열리는 곳인데, 바비큐가 진짜 맛있어. 난 처음에 맛보고 수요일만 기다렸다니까!” 눈으로는 괌 하늘과 바다를 귀로는 헨리의 입담을 담아둔다. 60분의 비행을 마치며 헨리와 다음을 기약한다.

바닷속 유영

빈스Vince는 파블로가 지난 괌 여행에서 만난 친구다. 하와이 태생인 그도 헨리처럼 괌을 여행하면서 만난 친절한 주민들과 천혜의 자연에 빠져들어 괌으로 이주했다. 빈스가 근무하는 피시아이 마린파크Fish Eye Marine Park는 육지에서 약 300m 거리에 위치한 해중 전망대를 갖췄는데, 창문 너머로 열대어와 산호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피시아이 마린파크에서 운영하는 스노클링, 돌고래 와칭과 디너쇼 중에서 빈스와 함께 스노클링을 즐겨본다.

스노클링 장비를 갖추고 뛰어든 괌의 바다는 12월이라 조금은 쌀쌀하지만 금세 적응할 만하다. 물속으로 고개를 들이미니 바닥을 메운 산호와 그 사이를 헤엄치는 화려한 빛깔의 열대어들이 한눈에 담긴다. 나는 스노클링 마우스피스를 물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와우!” 감탄사를 쏟아낸다. 옆에서 빈스가 운이 좋으면 상어나 니모를 볼 수도 있다며 귀띔한다. “상어가 사람을 물었던 적은 없어?”(나) “사람을 물었던 적은 없어. 딱 한 번 상어가 내 엉덩이에 뽀뽀해준 적은 있었지. 그래서 내 엉덩이를 축복받은 엉덩이라고 해.”(빈스) 그의 유머에 친구들은 한바탕 웃는다. 빈스와 파블로는 누가 더 물속 깊이 다이빙하는지 겨뤄본다. 파블로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나온 반면 빈스는 약 9m 깊이까지 내려가 해저의 땅을 밟고도 여유롭다. 옆에 있던 그의 동료 카마초Camacho가 “빈스는 스노클링 투어 가이드 중에서도 물속에서 가장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 애야!”라며 ‘엄지척’을 한다. 45분간의 스노클링을 눈 깜짝할 새 마치고 뭍으로 돌아온다. 올해 2월 여행할 한국에서 생애 첫눈을 볼지도 모른다며 설레하는 빈스에게 다시 만난 날을 약속해본다.

돌고래 터전으로

많은 요트가 정박한 항구에 닿는다. 괌 근방에서는 약 20곳의 돌고래 와칭 포인트가 있는데, 돌고래를 관측할 수 있는 확률이 99%라고 한다. 그 확률에 들었는지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들떠 있다. 배를 타고 마리아나제도로 향한다. 화산활동과 융기로 인해 형성된 괌 해안선의 깎아지른 바닷가의 절벽과 바위들이 제주도와 닮았다. 괌 근방에서 흔히 보이는 스피너 돌고래는 물 위로 뛰어올라 작은 몸을 빙빙 돌리곤 한다. 연안의 얕은 모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이들의 한낮 일과지만, 호기심이 왕성해 보트에 다가와 장난을 치는 경우도 많다.

10분쯤 항해하자 저 멀리 돌고래를 기다리는 배들이 떠 있다. 돌고래의 몸짓에 따라 사방으로 고개를 움직인다. 가이드 저스틴Justin에게 돌고래에게 먹이를 주는지 묻자 그는 “아니! 돌고래를 유인하기 위한 보트 운전도 금지되어 있어. 그들의 영역과 자생 능력을 지켜주고 우리는 그냥 잠시 인사를 하러 올 뿐이야”라며 자랑스레 답한다. 건너편에 있던 보트 근처에서 돌고래 한 마리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돌고래 떼는 우리의 마음을 읽었다는 듯 수면 위로 뛰어올라 묘기를 부린다. 모두가 카메라로 그 장면을 담으며 돌고래 무리에게 박수를 보낸다. 좀 더 가까이 보지 못해 아쉽지만, 그들과 마주한 순간에 만족하며 뱃머리를 돌린다.

일식 촬영지를 찾아서

여행자들은 주로 괌의 중북부에 머무르지만 남부까지 탐험해야 제대로 괌을 여행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괌의 가장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탐험을 하면서 일식 촬영 장소를 찾아본다. 메리조 부두 공원Merizo Pier Park은 괌에서 제일 남쪽에 자리한 공원으로 인스타그램 사진 성지이기도 하다. 특히 바다와 이어지는 다리 끝 그리고 바다를 향해 쓰러질 듯한 야자수가 있는 촬영지에서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메리조 부두 공원에서 4번 국도를 타고 5분쯤 달려 솔레다드 요새Fort Soledad에 도착한다. 우마탁만Umatac bay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스페인 강점기 시절 포격 벙커로 사용되던 곳이다. 벙커 오른편에 펼쳐진 잔디밭 너머로 우마탁만과 건너편 마을의 동화 같은 풍경을 한 컷에 담을 수 있다.

솔레다드 요새를 떠나 울창한 숲이 이어지는 도로를 10분쯤 달리자 일식 촬영지로 눈여겨봤던 세티베이 전망대Cetti bay Overlook에 도착해 괌에서 가장 높은 람람산Mount Lam Lam을 등지고 해안선을 내려다본다. 이곳에서는 굽이진 협곡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똑같이 생긴 언덕 두 개가 보이는데 이를 ‘쌍둥이 언덕’이라고 부른다. 눈앞에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데도 파블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높은 곳에서 더 넓은 풍경을 조망하고 싶던 그의 시야에 가까운 언덕과 그 뒤편에 솟아 있는 람람산이 들어온다. 해가 지는 방향을 계산해보니 두 곳 다 적절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 내일 탐험해보기로 한다.

미국의 아침을 여는 태양

미국에서 제일 먼저 해가 떠오르는 괌의 아침은 뉴욕보다 14시간 먼저 시작된다. 인터넷에 괌의 일출 포인트를 검색했더니 수많은 추천지가 나왔다. 우리는 동남쪽에 위치한 이판 해변Ipan beach을 택했다. 일찌감치 어둠을 뚫고 해변으로 향하는 길, 하늘을 올려다본다. 손톱만 한 달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판 해변에 도착해보니 구름이 두껍게 끼어 일출을 볼 수 없었지만 그 덕분에 좀 더 일찍 시작한 오늘 하루에 기대를 걸어본다. 2019년 12월 25일, 괌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우리에겐 내일 일식 촬영을 앞두고 긴장감만이 맴돈다. 괌에 도착한 이후 줄곧 구름 낀 하늘만 봐왔기에 날씨가 가장 걱정이다. 일식 촬영 장소를 결정하는 데 하루를 온전히 보내기로 한다. 어제 봐두었던 세티베이 전망대로 이동한다.

“저 멀리 정글 속에 난 길 보여? 저기서 촬영하는 게 어때? 내가 봐둔 숨겨진 길이 있어”(파블로) 모기에 잘 물리는 나는 정글 한가운데까지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일단 파블로를 따라간다. 주차장 끝에 급경사 모래길을 파블로가 먼저 내려간다. 짧은 한숨을 쉬고 뒤따르던 나는 미끄러져 흙길 저 아래까지 썰매를 타듯 내려간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에서 피가 난다. 내 상태를 살펴보던 파블로는 미안하다며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땀과 흙 범벅이 된 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한숨을 크게 내쉰다. “어제 봤던 저 산 위에서 일식 보는 건 어때?”(나) “사실 난 낮은 지대로 내려가서 산이나 언덕 위로 일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찍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산 정상에서 산과 바다를 함께 담는 게 ‘괌에서 촬영한 일식’다울 것 같기도 해.”(파블로)

그렇게 우리는 산 정상에서 실전처럼 촬영해보기로 한다. 세티베이 전망대 뒤로는 괌 최고의 람람산과 두 번째로 높은 주멀롱산이 나란히 자리했다. 파블로는 해가 떨어지는 방향을 계산하더니 주멀롱산이 일식 촬영에 더 최적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든 촬영 장비를 어깨에 메고 정상을 향한다. 주멀롱산은 해발 391m로 서울의 인왕산(338m)보다 조금 더 높다. 잊을 만할 때쯤 나타나는 주먹만 한 개구리들, 급경사와 진흙이 묻어 미끄러운 구간이 계속해서 이어져 등산 난이도가 쉽지 않다. 정상까지 등산하는 40분이 결코 만만치 않다.

괌은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말까지 300년 남짓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 영향으로 괌에서 가톨릭 신도가 크게 늘었는데, 그들은 1970년대에 수년 동안 4월 10일 성금요일마다 자신을 희생한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십자가를 지고 산을 올랐다. 주멀롱산 정상에 있는 십자가의 수가 총 14개인데 13개는 나무를 묶어 만들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3m가 넘는 길이의 철십자가로 세워두었다. 37년간 자리를 지킨 그 십자가는 산 아래 고속도로에서도 선명히 보인다.

주멀롱산의 십자가 주위를 맴돌며 촬영 장비를 세팅할 곳을 찾지만 내 키만 한 수풀이 시야를 가리는 곳이 많은 데다 발을 잘못 디디면 질퍽거리는 지대인 까닭에 삼각대가 빠질 것만 같다. 정상 부근을 한참 배회하다가 십자가에서 20m 정도 거리에 삼각대를 세우기 좋고 탁 트인 바다와 해의 경로를 담기 좋은 평평한 흙길을 찾는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키 큰 백인 한 명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세팅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스위스의 병원에서 근무하던 플로리앙Florian은 동남아 일대를 한 달 동안 여행 중이다. 그는 2012년 중국과 2015년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우연히 개기일식을 봤으나 사진으로 담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한다. 괌에서 금환일식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만반의 준비를 해왔단다. 카메라에 일회용 플라스틱 물병을 렌즈 익스텐더처럼 끼우고 태양 관측용 검정 필터를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인 모습이 서툴러 보였지만 그 열정만큼은 대단하다. 플로리앙 역시 괌 여기저기를 다니며 찾아봤지만 이곳이 일식 촬영에 최고라고 말한다. 그는 혼자일 줄 알았는데 함께 촬영할 수 있게 되어 기대된다며 두 눈을 반짝인다. 카메라 세팅을 마치고 지는 해를 바라보니 다음 날 일식 경로와도 맞아떨어진다. 약 22시간 후에 여기서 보게 될 일식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새 일몰이 시작되고, 분홍빛과 보랏빛이 어우러진 석양을 공들여 촬영하고 나서야 하산을 한다. 일식 촬영을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내일 날씨가 맑기를 기도할 뿐이다.

불의 고리 D-day

늘 그렇듯 닭 우는 소리에 일찍 눈을 떴으나 늦잠을 청한다. 오늘 일정은 일식 촬영이 유일하지만 긴 시간 햇빛 아래 있을 것을 대비해서다. 카메라, 렌즈, 삼각대, 드론까지 각종 장비로 파블로와 내 배낭을 가득 채우고 나니 어깨가 묵직해지며 긴장이 몰려온다. 주멀롱산을 오르기 앞서 어제와 똑같은 장소에 주차를 하고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이제 4시간 뒤면 달이 태양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미리 등산 동선을 익힌 덕분에 어제보다 수월하게 정상에 닿는다. 파블로가 촬영 장비 세팅을 마칠 때쯤 플로리앙이 도착한다. “저 구름이 얼른 지나가야 되는데 말이야!”(파블로) 소풍 온 듯 설렌 모습이 역력한 플로리앙에 반해 파블로는 긴장한 듯 갈수록 말수가 적어진다. 산 정상으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삼각대가 쓰러질세라 파블로와 플로리앙은 그 주위를 지킨다. 한참을 서 있던 우리는 이내 흙바닥에 앉아 서로의 여행기를 나눈다.

“어떻게 한 달간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생각을 했어?”(파블로) “태평양전쟁에 관심이 많아 그 흔적을 지닌 동남아시아 일대를 직접 둘러보고 싶어서 한 달 동안 무급 휴가를 냈지.”(플로리앙) “우와 대단한데! 한국은 와봤어?”(나) “시간이 부족해 못 갔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하면서 한국이 일제 식민지를 벗어났잖아. 다음엔 꼭 가보고 싶어.”(플로리앙) “꼭 놀러와! 다음 여행지는 어디야?”(파블로) “내일 사이판으로 가. 거기서 스위스로 돌아가야지.”(플로리앙) 이미 일식이 지나간 곳들의 소식을 검색해보니 인도에서는 구름이 끼어 많은 지역에서 일식을 부분만 관측할 수 있었단다. 뉴스를 보고선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우리 기도가 하늘까지 닿았나 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태양 관측 선글라스를 낀다. “정말 기대되지 않아? 나의 첫 ‘불의 고리’야!”(플로리앙) 우리는 일식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카운트다운을 외친다.

오후 4시다. 태양을 올려다보니 누군가 작게 베어 문 것처럼 보인다. 기나긴 거리를 달려온 달이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이후 5분마다 우리는 태양을 관측하여 달의 움직임을 생생히 관측한다. 달이 조금씩 해의 품 안으로 들어가더니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금환일식이 완성된다. 처음보는 광경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추울 지경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 지구 주위를 맴도는 달. 지구와 태양 사이에 달이 지나가다 그 세 행성이 일직선을 이룬 순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부터 시작해 인도를 거쳐 싱가포르를 지나 바로 여기 괌에서 끝마치게 되는 금환일식을 나, 파블로, 플로리앙 그리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다.

우리 셋은 불의 고리를 바라보며 축제가 열린 듯 소리를 지른다. “저 해와 달을 봐. 엄청나게 커 보여!”(플로리앙) “그냥 멋지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아.”(나) “괌에 살지 않는 우리 셋이 모여 산 정상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다는 게 대단한 것 같지 않아?”(파블로) “저 태양에 비하면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겠어. 우린 자연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플로리앙) “일식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인생에서 한 번도 보기 어렵다고 해. 그래서 더 아름다워 보이나 봐.”(파블로) 나는 일식의 전 과정을 모두 관측한 것이 처음이었다. 완벽히 준비된 삼박자에 플로리앙과의 팀워크가 더해지니 그야말로 완벽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아름다운 사진을 촬영했다. 일식이 끝나고 석양이 지고 나서야 강한 여운을 남긴 일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깜깜한 산길을 내려간다.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나와 파블로는 우리의 여행 중 빈자리를 구석구석 채워준 친구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공교롭게도 그중 많은 이들이 여행하러 괌에 왔다가 이주한 친구들이다. 괌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즐거워하면 본인도 행복하다는 스노클링 가이드 빈스는 하와이 태생인데도 괌의 자연과 진심 어린 주민에게 반해 괌에서 살고 있다. 경비행기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는 헨리도 여행 마지막 날 괌에 남기로 결심해 지금껏 거주 중이다. 이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이 괌에 여행 왔다가 떠날 때 이런 기분이었구나. 결국 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들에게 사랑스러운 일상이 되어주던 괌에서 2019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금환일식의 피날레를 장식했던 불의 고리는 그렇게 모두의 마음을 이어주었다.

 

 

글. 홍새롬SAE-ROM HONG
사진. 파블로 오PABLO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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