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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동 프렌치 셰프의 재료 탐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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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호

 

“프렌치 레스토랑 ‘르꼬숑’의 정상원 셰프에게 전해 들은, 알아두면 언젠가 쓸 데 있을 신비로운 가리비 이야기."

 

정상원 셰프가 주방에서 가리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움푹 파인 흰 접시 위에 솟은 핑크 솔트의 언덕, 그 정상에는 가리비가 있었다. 셰프는 맛있는 가리비를 구하기 위해 동해와 서해, 남해뿐만 아니라 지중해과 대서양까지 온갖 가리비 산지를 찾아다녔다. 신기하게도 가리비는 출신지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을 지녔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가리비는 짭조름했고 진한 바다 향을 품고 있었다. 영화제로 잘 알려진 유명한 프랑스 북부 도빌에서 난 가리비는 청명한 맛과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좋고, 요리했을 때는 단아한 맛을 낸다. 수온에 따라 서식하는 해조류가 다르기 때문에 패각의 색도 조금씩 다르다.

그가 선호하는 것은 청록빛이 부드럽게 도는 가리비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해의 가장 북단에 위치한 아야진항에서 그가 원하는 가리비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완성된 가리비 요리를 앞에 두고 정상원 셰프가 들려주는 식재료에 대한 탐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고, 그 이야기 속의 가리비의 세계는 넓고도 깊었다. 마치 내가 알던 그 재료가 맞나 싶게 생경했고 다채로웠다. 나는 자타 공인 양식 마니아다. 눅진한 크림과 치즈가 흐르는 음식의 향연을 몇 날 며칠 즐기기 일쑤이다. 조금 색다른 미식 경험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이내 프렌치 요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그 호기심은 나를 원서동의 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으로 이끌었다. 그곳엔 식재료를 탐닉하며 문화와 요리의 흥미로운 접점을 발굴해나가는 정상원 셰프가 있었으니까. 그는 대학 시절 생명과학부에서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했다. 덕분에 그의 특기는 요리를 이해하고 분해한 뒤 재구성하는 것. 여기에 문화, 역사, 예술, 철학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음식 안에 서사의 여정을 덧입힌다. 

 

가리비의 맛

부채꼴의 껍데기를 벗기는 순간, 가리비는 동그랗고 영롱한 진줏빛 속살을 드러낸다. 미식가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열광해 마지않는 가리비 관자다. 그 옆에 있는 내장을 보자. 쉼표 모양의 주황빛 내장은 향을 맡는 순간 모든 감각을 멈추게 한다. 이 아름다운 반점은 특별한 바다의 향을 한가득 품고 있다. 잘 조리된 가리비는 데칼코마니처럼 자연의 맛을 고스란히 돌려준다. 국가와 지역을 막론하고 요리사와 미식가들이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랑스에서는 가리비를 ‘해산물의 왕’이라고 칭송한다. 코트다쥐르 등지의 지중해 사람들은 가리비를 ‘해변의 여왕’이라고도 부른다. 불어로는 ‘생자크’, 노르망디에서는 ‘고드피슈Godefiche’라고 불린다. 이 지역의 대문호인 귀스타브 플로베르도 자신의 소설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노르망디 지역 도빌의 찬 바다에서 난 가리비는 최고로 추앙을 받는데, 껍데기째로 팬에 볶아도, 오븐에 구워도, 얇게 썬 재료 위에 소스를 뿌려 카르파치오로 즐겨도 좋다. 노르망디 어업협회는 매년 ‘위대한 상륙La Grande Débarque’이라는 행사를 연다. 노르망디부터 파리까지 명성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저마다의 개성 있는 가리비 메뉴를 고안해 선보인다. 피에르 카이예Pierre Caillet나 스테판 카르본Stéphane Carbone 같은 스타 셰프들의 기막힌 가리비 요리를 만날 수 있다.

 

요리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마친 가리비.

껍데기를 탄 여인

가리비를 타고 뭍으로 떠내려온 여인이 있다. 봄과 함께 지상으로 온 미의 여신, 초기 르네상스시대의 뛰어난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이다. 비너스의 모델은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 로 알려져 있다. 시모네타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뮤즈로, 르네상스 최고의 미인이었다. 당대 피렌체 지역 예술가들은 모두 그녀를 사랑했고 모델로 삼길 갈망했다. 그녀는 보티첼리 미인상의 핵심적인 기원이기도 했다. 피렌체의 모든 영광과 자부심의 상징이었고, 그녀를 칭송하지 않는 이는 진정한 피렌체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불어주는 바람을 타고 꽃과 함께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칼은 오렌지색 비스크 소스를 닮았다. 작품 속 모든 다른 것들은 그녀에게 경배하듯 몸을 숙인다. ‘코퀼 생 자크’라는 가리비 요리에서도 그렇다. 가리비의 가녀린 단맛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맛들은 선을 지킨다. 소스는 폭신하고, 오렌지빛 송어 알과 초록의 허브는 가리비를 보듬는 것만 같다. 숯불에 직화로 구워낸 가리비 관자의 겉면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그대로 남아 부드럽다. 식감의 간극을 극대화한 조리법이다.

 

셰프는 가리비의 야들야들하고 간지러운 질감을 부드러운 첫사랑에 비유한다. 두툼한 가리비살은 특유의 질감으로 연하고 쫄깃하면서도 탱글탱글하고 보드랍다. 이 뒤를 양파 향이 풍기는 짙은 비스크 소스가 쫓는다. 갑각류와 채소를 오래도록 끓여 맛을 우려낸 비스크 소스는 요리에 감칠맛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관자 위에 올린 송어알이 톡톡 터지며 바다 향을 풍부하게 덧입힌다. 밀가루를 구워 만든 가니시인 튀일은 홍당무의 붉은색을 띠며 알싸한 향채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입안에 크고 작은 파도가 친다. 탁 트인 통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창경궁과 도심의 풍경은 하나의 미술 작품 같다. 메뉴를 설명하는 셰프는 어느새 도슨트가 되었고, 메뉴는 미술관의 도록으로 읽힌다. 가리비 아래 깔린 핑크 솔트는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다 이내 빛나는 백사장이 된다. 비너스의 탄생이 이 작은 식탁 위에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빵집으로 간 조개

프랑스의 대표 디저트인 마들렌은 가운데가 도톰한 가리비 모양이다. 마들렌은 18세기 중반 프랑스 로렌 지방의 마을인 코메르시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란드의 국왕이자 지방의 공작이었던 스타니슬라스 레크진스키Stanislas Leczinski가 폴란드 국왕에서 물러나 로렌 지방에 머물렀을 때의 이야기다. 그를 위한 연회가 열린 날, 페이스트리 준비를 맡은 어린 시녀는 가리비 모양의 케이크를 구웠고, 이 맛에 감탄한 공작은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과자에 그녀의 이름 ‘마들렌’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혹은 생 자크의 성지로 향하는 순례자들에게 마들렌이라는 소녀가 가리비 모양의 과자를 나눠주던 것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20세기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자전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은 과거를 회상하도록 이야기를 전개하는 단초가 된다. 이야기를 쓰는 데 꼬박 13년이 걸렸고, 편집되어 출간하는 데 다시 14년이 소요됐다. 읽는 데에는 15년이 걸린다고 한다. 제1권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주인공이 마들렌을 베어 무는 순간, 어린 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은 프랑스인들에게 아름다운 향수를 자극하는 메타포로 남았다. 이 이야기는 프렌치 셰프들에게 영감을 줬고, 지금도 다양한 주제로 식탁 위에 오르고 있다. 정상원 셰프는 각각 다른 코스에서 세 번이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오마주했다. 과거 그는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식사의 가장 첫 순서에 마들렌을 준비했다. 메인 디시보다 앞서 나오니 달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그가 마들렌에 감자와 치즈를 더한 이유다. 이렇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은 지금도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핑크 솔트 플레이팅이 인상적인 정상원 셰프의 가리비 요리.

가리비

알.쓸.신.잡


암수 구별법

가리비는 자웅동체에서 출발해 바다의 환경에 따라 성별이 갈린다. 자라는 동안에도 성별이 몇 번이나 바뀌기도 한다. 쉼표 모양의 내장은 생식세포로, 주황색일 경우 암컷이고 흰색이면 수컷이다. 색에 따라 맛도 달라서 빛깔을 보고 가미할 허브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기도 한다. 정상원 셰프는 암컷 가리비에는 싱그러운 딜과 묵직한 펜넬이, 담백한 맛의 수컷 가리비에는 산뜻한 소렐과 알싸한 샬롯이 잘 어울린다고 귀띔한다.

 

좌각과 우각

가리비 껍데기는 위아래가 아닌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어 각각 좌각과 우각이라고 부른다. 조금 더 볼록하고 색이 진한 쪽이 좌각, 평평하고 흰빛을 띠는 쪽이 우각이다. 살아있는 가리비를 손질할 땐 좌각 쪽으로 칼을 넣어 패각을 연다. 속사정을 파악하면 내장이 다치지 않도록 손질할 수 있다. 껍데기에 버터와 치즈를 넣고 관자를 구울 생각이라면 좌각을 사용하자. 움푹 파인 모양이라 소스가 넘치지 않을 테니.

 

속이 빈 가리비는 좋은 캐스터네츠

입을 벌린 껍데기를 오므리듯 잡았다가 다시 손을 떼면 ‘딱’ 소리를 내며 원상태로 벌려진다. 패각 안쪽 쥐눈이콩만 한 아주 작은 삼각형 모양의 해면 조직인 ‘탄력인대’가 스프링 역할을 해 외부에서 힘을 가해 가리비를 닫아도 벌어지도록 만든다. 이 조직 덕분에 가리비의 관자 근육은 수축하는 데 온 힘을 쓸 수 있게 발달한다. 이 조그맣지만 특별한 조직이 가리비 맛의 숨겨진 비밀이 된다. 대다수의 동물에게서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조직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리비 관자는 한쪽으로만 움직이는 조직이어서 특유의 식감을 자랑한다. 결이 존재해 생기는 부드러우면서도 탱탱한, 특별한 질감. 미식 식재료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글. 유수아SOO-A YOO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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