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바다만큼 깊고 넓고 아름다운 장인 정신이 빚어낸 시원한 여름 풍경.”
주말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최근 회차에 전통을 사랑하는 힙스터, 유야호가 등장한다. 그는 남성 보컬 그룹 MSG워너비의 멤버를 뽑기 위해 한옥에서 오디션을 진행하는데, 전통 간식을 즐겨 먹고 태극 문양 부채를 갖고 다니며 늘 생활한복을 입는다. 머리를 장식한 매듭은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인 김혜순 선생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과 공예를 동경해온 나는 성북동 수연산방에서 열린 블라인드 오디션을 보면서 유야호와 참가자들 사이에 가리개 대신 통영대발을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상상에 상상을 더해본다. 그 상상의 출발에는 통영에서 만난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기능보유자인 조대용 선생이 있었다. 염장은 발을 짜는 장인을 말한다. 현재 인간문화재인 염장은 조대용 선생 단 한 분뿐이고, 통영대발을 만든다.
통영 여행에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소매물도, 비진도, 사량도 등 어디든 좋으니 걸어서 섬 한 바퀴 돌기. 통영 바다 풍경의 진수라는 삼칭이길에서 자전거 타기. 파도 소리와 함께 살아생전 세계 5대 작곡가로 꼽혔던 윤이상의 음악 감상하기’ 등 한껏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지만, 잠시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인간문화재 장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통영나전칠기의 거장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명예보유자인 송방웅 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한 이후였다. 통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구 대비 인간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의 버킷 리스트는 갓일 정춘모, 두석장 김극천, 염장 조대용 선생 등을 알현하는 것이었다. 지난봄 통영전통공예전수교육관에서 조대용 장인을 처음 뵈었다. 장인의 증조부는 무과에 급제한 후 벼슬을 기다리다가 발을 한 점 엮어 철종 임금에게 진상했는데, 그 진상품을 왕이 매우 칭찬했다는 이야기가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그 솜씨를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장인이 4대째 물려받았다. “아버지 곁에서 자연스럽게 배웠어요. 어느덧 50년이 흘렀네요.” 대발을 만드는 데 쓰이는 대나무처럼 뿌리 깊은 내력이 길이길이 보전되기를 내심 바랐다.
장인은 1년 치 재료 준비를 막 마친 참이었다. 통영대발은 내륙에서 자라는 대나무가 아닌 해안에서 자생하는 시릿대로 만든다. 가늘고 키가 작은 시릿대는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섬유질 자체는 질겨 견고하게 짜인다. 대의 마디가 매끈해 발을 엮어놓고 보면 그 굴곡이 티 나지 않는다. 장인은 시릿대를 직접 채취했던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집 근처 광도면 바닷가에서 구하기도 했고, 욕지도에서 벤 시릿대를 배에 실어 가져오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여름에도 채취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모기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물에 자주 빠지기도 했고요. 작업이 고돼 겨울에도 땀이 흥건했던 기억이 나네요.”
장인의 겨울은 1년 동안 쓸 대나무를 장만하느라 바쁘다. “매년 12월에서 1월 사이 약 300개의 통대를 마련해둬야 하죠. 이때 채취한 대가 아니면 물이 올라 벌레 먹기 때문이에요. 대발을 엮기 위해서는 3년생 시릿대가 가장 좋습니다. 칼로 대쪽의 퍼석퍼석한 겉껍질을 벗기고 여섯 혹은 여덟 조각으로 쪼개요. 그런 다음 속대를 훑어내고 겉대만 말리죠. 그냥 내다 놓고 말리는 게 아니라 아이 돌보듯 틈틈이 어루만져주며 정성스럽게 대해야 해요. 새벽 서리와 이슬을 맞게 하고 다시 햇볕에 건조하고 이렇게 보름에서 한 달 반복하면 청춘 같았던 푸른 대나무가 서서히 연륜이 묻어나는 연한 미색으로 변해가는 걸 보게 됩니다. 그 시간 동안 대는 더욱 견고해져요.”
건조 과정을 거친 대는 보관해두었다가 더 얇게 손질하는 고무쇠 작업을 거친다. 장인이 직접 제작한 둥근 쇠판이 등장하는데, 못으로 구멍을 여럿 뚫고 숫돌로 갈아냈다고 한다. 이 쇠판의 작은 구멍에 1mm로 쪼갠 대를 넣는다. “첫 번째 구멍을 지나면 지름이 0.8mm, 두 번째 구멍을 통과하면 0.7mm, 세 번째 구멍에서 훑어낸 후에는 0.6mm의 가는 대오리를 얻을 수 있다. 한 개의 발을 짜려면 가는 대오리가 1500개 내지 2000개가 필요하다. 즉, 대를 최소 4500번 잡아당겨야 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지문은 닳고 닳았으나 손에 익은 감각은 더욱더 또렷해진다.
이제 장인은 발을 짜기 위해 기다란 발틀을 가져온다. 무언가가 열매처럼 주렁주렁 늘어져 있다. 발틀의 홈마다 명주실을 감아놓은 고드래가 여럿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 고드래도 장인이 손수 만들어 실을 감고 발틀에 걸어놓는다. 발틀 위에 가는 대오리를 하나씩 올린 후 고드래를 교차해 명주실로 촘촘히 엮어간다. 대발 하나를 완성하는 데 짧게는 40일, 길게는 100일 이상 걸린다.
기예를 펼치는 장인 뒤로 벽에 여러 대발이 걸려 있다. 발에 무늬가 보이기도 하고, 한자가 읽히기도 한다. “육각형은 거북이 등을 닮았다고 해서 귀(거북 귀) 문양, 마름모꼴은 그물 같다고 하여 고(그물 고) 문양이라고 해요. 한자는 ‘기쁠 희(囍)’, ‘복 복(福)’, ‘수복강녕(壽福康寧)’ 등의 길상 문자를 즐겨쓰고요.” 문양을 넣으려면 하나의 홈에 네 개의 고드래를 끼워야 한다. 복잡한 무늬라면 약 400개의 고드래를 달아 작업하므로 소요 시간이 더욱 길어진다. “<경국대전>에 발을 짜던 장인들이 힘들어서 도망을 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해요.” 장인은 그런 마음이 든 적이 없었던 걸까. “내가 엮어야만 통영대발이 존재하잖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장인이 엮고 있는 발은 마름모꼴의 고 문양이 정교하게 들어간다. “먹으로 그린 발을 배경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고종황제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어요. 그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내 마지막 역작이 되었으면 해요. 이보다 섬세할 순 없을 거예요.” 나는 장인이 역작을 엮는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장인이 모아둔 도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전에 도안을 그린다고 하나 장인은 이를 전혀 보지 않고 발을 엮어 나간다. 머릿속으로 실과 실 사이의 간격을 계산하는 것까지 고려하자니 내 뇌는 더 이상 굴러가지 않았다. AI라면 단숨에 반응하겠지만, 장인의 손끝까지는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장인의 공방으로 이동하니 이채로운 색감의 대발이 보인다. 붉은빛을 띠는 것은 옻칠을, 푸른빛이 도는 것은 쪽물을 들였다고 한다. “번개 모양 같기도 하죠? 미국 시카고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방석이 우리나라에 전시되었던 적이 있어요. 신문에서 본 사진이 인상 깊어서 방석에 수놓은 문양을 발에 응용해봤지요. 이건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안한 별 문양입니다.” 장인은 여러 고문헌을 연구하는 동시에 유튜브로 동영상을 찾아보며 언제 어디서나 영감을 얻고자 감각을 예민하게 열어둔다.
발을 다 짠 후에는 남은 실을 깔끔하게 매듭짓고 사방을 천으로 감싸 마무리한다. 장인의 통영대발은 우아하고 조화롭고 기품이 느껴진다. 드라마 <킹덤>에 조대용 장인이 만든 발이 등장해 왕과 신하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왕실에서는 발을 여러 용도로 사용했는데, 용안을 함부로 쳐다볼 수 없게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완전히 가리는 것은 아니어서 소통을 돕기도 했다. 발은 왕실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쓰인 생필품이었다. 전통 한옥이 아닌 아파트 등 현대식 건물에 거주하며 발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을 뿐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어떤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다음 세대에게도 통영대발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장인의 소망도 마찬가지다. 고단한 마감 기간에는 회사 근처 선배네 집에 얹혀사는데 내가 묵는 방에는 문짝이 없다. 문이 고장 나면서 떼어버린 뒤 내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딱히 불편하지는 않았는데 문득 또 한 번 통영대발이 생각난다. ‘문 대신 통영대발을 걸고 싶다!’ 빛은 가리고 그늘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신선한 공기와 서늘한 바람이 통하는 나만의 문이 될 수 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가격이 얼마였더라?’ 어쨌든 결론은 정신적 가치가 물질적 부담을 가뿐히 넘어선다는 것. 단 한 명의 장인이1 년에 겨우 서너 점 완성하는 걸작이기 때문이다. 조대용 장인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통영대발이 걸린 미래의 방을 생각한다. 회상과 상상이 어우러지며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무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