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여왕과 간디가 사랑한
런던의 커리하우스.”
런던의 랜드마크인 시계탑 빅벤과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대관람차 런던아이,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고딕 양식의 타워브리지와 내셔널 갤러리의 액자 속 터너가 그린 수증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차. 붉은색 이층 버스와 검은색 지붕이 높은 블랙캡 택시가 지나다니는 영화 같은 켄싱턴 거리까지 영국의 런던은 충분히 이국적이고 다채로운 도시다. 그러나 런던에서 무엇을 먹을지 추천하는 일은 전문가에게도 상당한 곤욕이다. 런던의 샌드위치는 우리의 상상과 완전히 다른 맛이며 반숙 달걀에 진한 홀랜다이즈 소스를 뿌린 에그베네딕트는 편안한 조식과는 거리가 있다. 악명 높은 피시앤칩스는 영국 맥주의 아름다운 맛을 해친다. 맛에 대한 악평에도 런던의 식탁을 굳건히 지키는 런던의 대표 음식은 놀랍게도 ‘커리’다.
스페인에서 오지 않은 토마토
라 토마티나La Tomatina,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에서 해마다 8월 마지막 수요일에 열리는 토마토 축제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토마토를 던지며 한여름의 스페인을 만끽한다. 붉은 토마토만큼 스페인다운 게 또 있을까. 그러나 토마토는 스페인의 채소가 아니다유. 럽에서 토마토를 식용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다. 처음 스페인에 남미의 신기한 채소가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늑대의 복숭아’, ‘악마의 버찌’ 혹은 ‘아담의 사과’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다. 심지어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가 토마토라고 믿기까지 했다. 어렵게 토마토를 수입해온 상인들은 의외의 난관에 가로막히게 되자 토마토를 알리기 위한 행사를 기획한다. 포르투갈의 로시우 광장에서 모험가를 자처한 토마토 수입상이 사람들 앞에서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무는 퍼포먼스를 보인 것. 그는 토마토가 맛있게 보이도록 거울을 보고 연습까지 했으나, 붉은 과즙이 입가에 흐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만다. 심지어 토마토는 원래 토마토를 일컫는 단어가 아니다. 스페인어로 토마티요tomatillo는 꽈리다.
파리에서 오지 않은 크루아상
카페와 테라스와 커피, 그리고 크루아상 한 조각은 파리의 아침 풍경이다. 파리지앵에게 크루아상은 단순히 빵의 한 종류가 아니라 프렌치 시크로 대변되는 파리의 문화를 함의한다. 그러나 사실 크루아상은 프랑스 국적의 음식이 아니다. 이 크루아상의 역사는 오스만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나라에서나 제빵사는 아침으로 먹을 빵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어느 날 새벽 빵을 굽던 한 제빵사는 오스만 군대가 오스트리아를 공략하기 위해 지하 땅굴을 파는 소리를 듣게 된다. 제빵사의 신고로 이를 알게 된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막아낸다. 이 공을 높이 산 오스트리아의 왕은 상을 내리고 영리한 제빵사는 초승달 모양의 빵에 대한 특허권을 요구한다. 오스만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은 그렇게 오스트리아에서 만들어진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앙리 16세와 정략결혼을 하면서 왕비가 되고, 이후 엘리제궁에서 고향을 그리며 크루아상을 만든다. 마리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크루아상은 파리에 영원히 남겨진다. 크루아상의 역사를 아는 이슬람의 몇몇 나라에서는 오스만의 패전을 조롱하는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의 판매가 불법이다.
전쟁은 역설적으로 단절되어 있던 경계를 허물고 문물을 소통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만 들어내고 지배하는 쪽과 지배받는 쪽 양방향으로 흘러 들어간다. 영국이 인도를 정복한 시절 인도의 카리kari는 영국으로 건너가 커리curry가 되었다. 영국 해군이 선상에서 먹던 커리는 일본 해군에 의해 카레라이스カレーライス가 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커리는 오뚝이처럼 세계여행을 이어간다. 커리의 노랗고 매콤한 아이러니는 그렇게 세상을 물들인다.
런던으로 온 인도의 커리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Trafalgar Square에는 유명한 커리집들이 성업 중이다. 런던의 커리하우스에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인도의 간디 등 세계적 셀럽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런던과 커리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동인도회사로부터 시작된 긴 역사를 가진다. 타밀어 혹은 힌디어로 ‘카리’는 소스라는 뜻이다. 인도나 남아시아에서 커리는 강황으로 만든 노란색 특정 소스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각종 재료에 여러 향신료를 넣고 끓여 만드는 음식 전체를 아우른다. 우리가 ‘카레’라고 생각하는 강황과 울금을 주재료로 만드는 노란 소스는 ‘마살라’에 가깝다. 1772년 초대 인도 총독 웨런 헤이스팅스가 동인도회사를 통해 향신료와 쌀을 영국에 소개하면서 커리가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인도인처럼 여러 가지 향신료를 배합해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크로스앤블랙웰사에서 여러 향신료를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배합해 만든 커리가루 ‘C&B 커리 파우더’를 선보이면서 커리는 영국의 가정에서 일상적인 요리로 자리 잡는다.
국물 음식에 가까운 인도식 카리와 달리 영국의 커리는 서양식 스튜 같다. 밀가루를 볶은 루roux를 섞어 걸쭉하게 만든다. 이것은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 해군이 소고기 스튜의 묵은내를 없애기 위해 커리가루를 섞은 것이 시초다. 또한 콩 등을 주재료로 하는 경우가 많은 인도식 카리에 비해 영국식 커리는 소고기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당시 영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일요일 점심으로 로스트비프를 먹던 풍습의 영향이다. 커리와 함께 인도의 토제 화덕인 탄두르에서 구운 닭고기를 부드러운 커리소스에 끓여낸 치킨 마살라는 영국을 대표하는 요리 가운데 하나다. 영국 전역에는 1만2000곳이 넘는 커리하우스가 있다. 영국에서 커리하우스는 인도 음식점과는 다른 카테고리의 식당이다. 커리하우스에서 주문할 때 사용하는 단어는 영국과 인도 양쪽 모두와 다르다. 뜨겁고 약간 신맛의 커리인 마드라스 커리는 영어도 아니고 인도에서 통용되는 말도 아니다. 코코넛 파우더를 뿌린 코르마 커리, 고추가 들어 있는 나가 커리, 렌틸콩을 넣은 삼바 커리 모두 커리하우스만의 언어다.
일본으로 간 런던의 커리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무렵 가나가와현의 요코스카항에 정박해 있던 영국 왕립 해군 기지에서 커리 가루를 이용한 스튜 요리를 먹던 것이 일본제국 해군의 군대 식사로 도입된다. 이때 커리를 밥 위에 건더기와 함께 끼얹어 먹는 카레라이스가 만들어졌으며, 이후에 전역한 군인들이 요코스카항 근처, 그리고 각자의 고향에서 카레집을 차리면서 일본 전역으로 퍼진다. 이렇게 일본식 카레를 요쇼쿠(일본식 양식)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카리에서 커리로, 커리에서 카레로. 이렇게 아시아에서 출발한 커리의 모험은 유럽을 거쳐 다시 아시아로 돌아온다. 커리는 세 나라 모두의 대표 음식이 된다.
※ 정상원은 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의 문화 총괄 셰프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 <탐식수필>을 통해 요리에 문화, 예술, 철학 등 서사를 덧입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