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평에 달하던 미군기지가 차차
반환됨에 따라 곳곳에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이 들어서고 있는 의정부를 여행하다.”
소요 시간 — 서울역에서 지하철로 약 1시간
여행 기간 — 1~2일
여행 타입 — 문화적 욕구가 충만한 사색가
이런 선물 — 바이미노의 벚꽃 모양 젓가락 받침과 도자기 그릇
매년 5월이면 의정부는 운율의 도시로 거듭난다. 국내외에서 초청한 다양한 음악극이 여러 공간에서 펼쳐져 도시 전체가 들썩인다. 횃불과 오토바이로 재구성된 <맥베스>, 동화와 역사를 결합한 <백설공주(또는 베를린장벽의 붕괴)>, 실험적 판소리를 내세운 <9호실로 가다> 등 창의성이 돋보이는 음악극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축제의 규모가 축소되었으나, 그 열기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제한된 상태로 끓어오르던 문화적 욕구는 결국 공간으로 구현되었다. 미술에 대한 갈증은 미술관과 라이브러리로, 음악적 향수는 재즈카페와 도서관으로 표현되었다. 그렇게 이 도시는 여행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겠다 말한다.
공감각적 심상
망월사역에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주택가를 걷는다. 골목 한편에서 마주친 백영수미술관은 강태경 건축가가 설계한 하우스 뮤지엄이다. 미술관은 백영수 화백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집의 형태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의 새하얀 외관과 꼭 닮은 <집>이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 미술계의 거장인 이중섭, 김환기 화백 등과 함께 1947년 국내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인 신사실파를 창립한 백영수 화백은 생전에 생활 속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하고자 했다. 가장 잘 알려진 <모자상> 시리즈는 간결한 화풍으로 애틋한 모성애를 전달했으며, <이른 봄>은 1960년대 우마차를 끌고 다니던 일상을 소박하게 담아냈다. 2016년 이후로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유화 작업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영수증, 택배 상자 등 평범한 오브제로 창조적 콜라주를 완성하기도 했다. “올해가 화백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3월부터 총 2부작으로 나누어 기념 전시를 진행하려고 해요.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오래된 작품들을 꺼내볼까 합니다.”(김명애 관장) 7월에는 지역의 젊은 작가들과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백영수 오마주전을 열 계획이라고. 미술관 옆 아틀리에엔 백영수 화백이 사용하던 화구가 전시되어 있다. 고만고만한 크기의 붓들이 큼지막한 캔버스와 대비를 이루는데, 이는 한 획으로 단숨에 그림을 완성하지 않고 작은 붓으로 물감을 덧칠해가며 작품에 두께를 더했던 화백의 장인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백영수 화백과 신사실파의 희귀 자료를 열람하고 싶다면 의정부미술도서관으로 향하자. 근엄한 분위기의 일반적인 도서관과 달리 이곳은 나선형 계단을 중심으로 리드미컬한 곡선이 공간을 완성해 고요한 활기가 넘친다. 서가의 4단 책장에는 책 대부분이 책등이 아닌 표지가 보이도록 비치되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입구 근처에서 발견한 가로 51cm, 세로 71cm, 두께 10cm, 무게가 무려 47kg에 달한다는 <호크니 빅북> 앞에 선다.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모아 9000부 한정 제작된 책으로, 이곳에서는 3068번째 책을 만나볼 수 있다. 서적 아래 비치된 장갑을 끼고, 한 페이지씩 찬찬히 넘기며 작은 미술관을 탐독해본다. 이곳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하다면 사서 컬렉션의 도움을 받아보자. “매월 예술, 일반, 어린이 세 분야의 주제를 정해 다양한 도서를 소개해요. 3월의 예술 분야 주제는 ‘앙리 마티스: 야수파의 거장’입니다.”(어성욱 사서) 도서관의 꼭대기 층은 그 자체로 복합문화공간이나 다름없다. 하와이의 호놀룰루미술관, BTS의 RM, 대전시립미술관의 선승혜 관장 등이 소장했던 미술 서적을 접할 수 있는 기증존을 거쳐 관내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보자. 카페 좌측 오픈 스튜디오에는 반기마다 신인작가 2명이 입주해 작업을 진행하며, 추후 해당 작가들의 작품을 1층 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사운드 오브 뮤직
낮 1시 무렵, 기온이 오르자 사람들이 하나둘 장암근린공원으로 산책을 나온다. 가볍게 운동을 하거나 의자에 앉아 광합성을 하는 이들 뒤로 의정부음악도서관도 여유롭게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2021년에 개관한 이곳은 의정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타이거 JK와 윤미래, 그리고 미군기지가 주둔했던 지역적 특색을 고려해 힙합, 블루스, 가스펠, R&B 등의 블랙 뮤직을 테마로 공간을 구성했다. 복도마다 그려진 블랙 뮤직 아티스트를 형상화한 그라피티를 따라 이동해보자. 1층에서는 팝, 클래식, 국악 외에 철학, 역사, 문학 등의 일반 서적을 접할 수 있으며, 2층은 오케스트라, 타악기 등의 악보와 음악 매거진이 공간을 채운다. 3층엔 총 8500여 개의 CD, LP, DVD가 장르와 주제별로 깔끔하게 큐레이션되어 있다. 커버에서부터 경쾌한 발걸음이 느껴지는 LP판을 하나 집어 들었다. 재즈 피아니스트 소니 클락이 1958년에 발표한 <쿨 스트러팅>이라는 앨범. LP 플레이어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건반 연주에 기분까지 산뜻해진다. 음악을 좀 더 입체적인 공간에서 공연처럼 즐기고 싶다면 오디오룸을 방문해보자. 매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선곡표가 업로드된다. 대개 오전 11시, 오후 1시 30분, 오후 3시 하루 세 번, 존 리 후커나 칙 코리아와 같은 전설적인 아티스트의 연주, 저명한 뮤지컬의 OST 등 장르를 제한하지 않는다.
뉴올리언스의 어느 재즈바를 연상시키는 빌스카페.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스러운 통로가 열리면 계단 밑에서 재즈계의 쇼팽이라 불리는 빌 에반스의 일러스트가 여행자를 반긴다. “이곳이 빌 에반스의 집이라면 어떨지 상상하며 공간을 꾸몄어요. 마치 그의 침실처럼 의자 대신 침대를 두고, 장롱과 사이드 테이블을 배치했죠.” 재즈 피아노 전공자이자 에반스의 열렬한 팬인 장혁재 대표의 설명에 귀기울인다. 그의 말처럼 카페 내부의 가구들은 가정집에서 볼 법한 것들이고, 모퉁이의 작은 책상 위에는 악보와 책이 쌓여 있어 에반스의 작업실을 엿보는 느낌이다. 책상 너머로는 피아노와 기타 등의 악기와 마이크가 놓여 있다. “여기서는 매주 토요일 4~5시에 공연을 합니다. <보이스 코리아>에 출연했던 음악가 라다정, 가수 주앤 등이 참여해요.” 한편, 오픈키친에서는 음악과 함께 음미하기 좋은 편안한 음료를 제공한다. 매일 의정부제일시장에서 갓 내놓은 곡물가루와 떡으로 만드는 인절미 미숫가루는 어느 시간대에 마셔도 부담이 없다. 아메리카노는 취향에 맞게 원두를 선택할 수 있다. 산미가 없는 클래식 커피는 고소하고 뒷맛이 깔끔해 입문자에게 추천하며, 산미가 있는 오렌지 블렌딩은 과일향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빌스카페의 커피, 음악, 침대, 지하라는 안락한 조합이 어느새 시간의 흐름마저 잊게 한다.
INSIDER
재즈 러버의 카페 취향
의정부 토박이인 빌스카페의 장혁재 대표는 로컬 카페를 즐겨 찾는다. 그가 프랜차이즈 카페와 달리 각각의 감성 코드가 뚜렷한 스폿들을 소개한다.
빈츠그라피
의정부역 근처에 위치한 이곳은 특유의 빈티지한 무드로 이름을 알렸다. 동양화, 낡은 책, 괘종시계 등을 구경하다 창가 자리에 앉자 의정부 중심가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수제 티라미수와 아인슈페너가 시그너처 메뉴다.
아카식레코드
은은한 보랏빛 조명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 대표는 마치 옛날 다방 같은 이곳의 인테리어에 시선이 갔다고 한다. 아카식 경성 쌍화라테, 경성 쌍화 보혈탕약, 제주 봄빛 말차라테 등 메뉴도 이색적이지만, 그보다 한편에 자리한 비밀상담소가 더 큰 인기. 질문 횟수에 따라 비용이 다른 타로, 사주 등을 봐준다.
스모그커피펍
카페와 펍을 함께 운영하는 곳. 예상과 달리 차분한 분위기라 노트북을 지참한 손님도 꽤 있다고 한다. 기호에 맞게 커피, 에이드, 티 종류나 칵테일, 비어 등을 주문하면 된다. 음료에 걸맞은 크렘 브륄레, 브리치즈 구이, 오븐 나초 등의 사이드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의정부식 오찬
수락산과 도정봉이 감싸 안은 장암동에는 넓은 부지에 자리한 대형 브런치 레스토랑이 몇 곳 있다. 그중 카페 아를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도시를 여행해본다. 카페 이름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소도시의 지명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김은정 대표는 2014년 말, 아를 지역을 방문해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고. “레스토랑과 카페를 잇는 광장은 포름 광장을 재현했어요. 거기서 본 과일가게, 호텔, 카페 등을 본떴죠.” 광장 중앙의 고흐 조각상으로 장식된 분수대가 유러피언 무드를 고조시킨다. 그녀는 고흐의 그림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노란색 벽이 돋보이는 바깥 좌석은 1888년 작품인 <밤의 카페 테라스>를 참고했습니다.” 주변 조경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별이 빛나는 밤에>를 토대로 설계했다고 덧붙인다. 그림 속 강에 비친 노란 불빛은 이곳 정원에서 직선으로 심은 연두색 식물로 표현됐다. 충분히 둘러봤다면 이제 브런치 메뉴를 맛볼 차례다. 프랑스 전통 빵인 캉파뉴는 천연 발효종인 르방을 사용해 쫄깃한 식감, 여기에 무화과 또는 크림치즈를 토핑해 풍부한 맛을 완성한다. 네모난 빵 속에 부드러운 크림파스타를 가득 담아낸 아를 파스타는 베이커리부와 조리부가 합심해 만든 이곳만의 시그너처 메뉴다. 식사 후에는 큐 아라비카 그레이더 자격을 취득한 커피 감별사가 내려주는 커피를 주문해보자.
승마장과 맞닿은 파크프리베는 반려견과 뛰어놀 만큼 넓은 잔디공원을 보유하고 있다. 조성된 길을 따라 한 바퀴만 둘러봐도 하루치 산책으로 충분하다. 여유로운 오전 시간에 방문해 상큼한 브런치를 즐겨보자. 레몬크림소스와 크랜베리 등을 첨가한 클라시카 피자와 요거트콥샐러드, 수란 까르보나라 크림파스타가 인기 메뉴. 여기에 오렌지와 당근을 착즙한 리프레쉬 캐럿을 한잔 곁들여보는 건 어떨까. 보다 힙한 브런치 레스토랑을 찾는다면 흥선역 부근의 산타마리아에 방문해보자. 어느 공간에 카메라 초점을 맞춰도 SNS에 업로드할 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메뉴는 연어포케, 바질콜드파스타, 선드라이 샌드위치 등의 디시부터 캐러멜 스콘, 버터바 등의 디저트까지 아우른다. 은은한 색감이 예쁜 바질토마토 에이드는 모든 메뉴와 잘 어울린다. 흥선광장 교차로에서 북쪽으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보네르도 트렌디한 브런치를 선보인다. 슬라이스 바나나와 견과류, 삶은 달걀과 햄 등을 얹은 오픈토스트는 간단한 오찬으로 적당하다. 보네르시그니처를 주문하니 아보카도, 토마토, 소시지, 샐러드, 빵 등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각기 따로 먹는 것보다 빵 위에 모두 올려서 즐기길 권한다.
별 헤는 밤
의정부천문대가 제안하는
야경 감상법.
천체 관측
매주 화・목・금・토요일에만 가능한 야간 천체 관측은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해가 지면 주관측실과 보조관측실에 비치된 망원경을 통해 달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주간 천체 관측은 오후 2~5시에 진행하는데, 태양의 고도에 따라 시작 시간이 달라지기도 하니 참고하자.
아스트로관
의정부천문대 2층에 위치한 아스트로관에서는 다양한 장치를 활용해 우주를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다. 나만의 별자리 만들기, 우주 내비게이터, 태양계 이야기 등을 통해 우주와 좀 더 가까워진다.
달달 데이
매주 수요일 오후 8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낭만적인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커플 별자리 팔찌 만들기, 천문 해설, 천체 관측, 천문대 데이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만 19세 이상 참여 가능하며, 선착순 12명으로 제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