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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의 달콤한 슬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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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호

 

“지중해의 파스텔색 마을들,
그곳의 달콤함은 모두를 로맨티시스트로 만든다.”

 

프로방스의 라벤더가 만개한 전경. 어떤 수식으로 이 색채를 설명할 수 있을까.

망통의 레몬은 노란색이 아니다. 몽 생 빅투아르의 올리브는 초록색이 아니다. 발랑솔의 라벤더는 보라색이 아니다. 주인의 습관에 따라 저마다 경년 변화한 오래된 가죽 가방의 구겨진 주름처럼 지중해에서 만나는 색들은 보편적 명사로 표현하기 어렵다. 로맹 가리의 자전소설 <새벽의 약속>에서 표현한 니스 기차역의 겨자색은 자신을 키워낸 ‘어머니의 해피엔딩’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바라본 마르세유 비누의 겨자색은 지우고 싶어도 뚜렷하지 않아 그대로 둘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냄새였다. 로맹 가리는 가장 프렌치적인 언어로 노랑을 묘사했고, 알베르 카뮈는 가장 마그레브적인 언어로 노랑을 서사했다. 

지중해 북쪽 해안 프로방스 지역은 동쪽으로 이탈리아와 국경을 만드는 알프스산맥과 서쪽으로 스페인과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산맥 사이에 포근하게 안겨 있다. D559 국도는 지중해를 끼고 프로방스의 다채로운 색 사이를 달린다. 낭만적인 도시들은 저마다의 색과 맛으로 여행자의 기억을 유혹한다. 영국인의 산책로라는 아름다운 니스 해변에서 만나는 샐러드 니수아즈salad niçise, 영화의 도시 칸의 성게 요리 바토 드우장bateau d’oursin, 프로방스의 파스텔톤 색채를 마음껏 발산하는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채소 스튜 라타투이ratatouille, 북아프리카와 서유럽의 관문 마르세유의 생선 스튜 부야베스bouillabaisse, 고흐의 아를과 아비뇽, 피카소의 앙티브, 향수의 도시 그라스, 아름다운 미항 몽펠리에까지 이 도시들은 각자의 색과 맛으로 나름의 낭만을 전한다. 

 

엑상프로방스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칼리송.
경쾌하게 부서지는 얇은 아이싱과 부드러운 아몬드 반죽이 조화롭다.

그녀의 미소, 달콤한 입꼬리를 닮은 칼리송

엑상프로방스를 대표하는 과자는 칼리송calisson d’aix이다. 칼리송의 노란 반죽은 멜론 콩피즈리confiserie, 조린 과일과 아몬드, 오렌지 껍질 등을 오렌지 꽃물에 넣어 만든다. 반죽을 누룩 없이 숙성시키고 증기로 쪄서 부드러운 케이크 같은 식감을 완성한다. 이 과정은 향수의 고장 그라스에서 향수를 만드는 방법과도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글라스 로열galce royale이라는 달걀흰자와 슈거 파우더로 만든 얇은 아이싱을 덮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그 식감 차이가 커야 잘 만든 칼리송이라고 할 수 있다. 12세기부터 사랑받은 긴 역사를 가진 과자인 만큼 그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해진다. 칼리송의 어원은 프로방스 지역의 언어인 오크어의 ‘성배calice’다. 성배를 상징하는 마름모꼴 모양이 칼리송의 특징이다.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슬리퍼 모양이어서 ‘달콤한 슬리퍼’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프로방스에는 칼리송의 달콤함을 담은 사랑스러운 일화도 전해진다. 1454년 프로방스를 통치하던 르네 왕Roy René은 사랑하는 연인 잔 드 라발Jeanne de Laval을 왕비로 맞는다. 그런데 그녀는 도무지 웃지를 않아 왕의 근심이 컸다. 왕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녀의 미소를 찾아주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결혼식을 맞아 왕의 제과장은 지역의 과자 칼리송에 여러 과일 향을 넣어 왕비에게 바친다. 왕비는 이 칼리송을 먹자마자 기적적으로 미소를 되찾는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왕비는 과자의 이름을 물었고, 제과장은 “이것은 포옹câlin soun입니다”라고 답한다. 이를 본 왕이 기뻐하며 그 미소를 본뜬 칼리송을 만들라고 명했다. 그때부터 칼리송을 만드는 틀인 칼리소네즈는 왕비의 입술 모양을 갖게 된다. 

칼리송을 입에 넣으면 우선 얇고 단단한 설탕 코팅이 앞니에 닿는다. 깨지기 쉬운 단단함은 친절한 입맞춤의 시작처럼 톡 터지며 사라진다. 칼리송의 속살은 갓 완성한 약과처럼 쫀득하면서도 카스텔라처럼 부서지는 특별한 식감을 가졌다. 혀와 입천장 사이에서 달콤한 과즙이 배어나와 반죽이 숙성되며 만들어진 빈 공간을 채운다. 작은 케이크는 입 속에서 부피가 작아지는 것인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인지 모르게 사라진다. 칼리송을 한 알 먹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은근한 미소를 짓게 된다. 프랑스의 로맨티시스트들은 연인에게 칼리송 한 알을 주고 입속에서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조용히 기다린다. 3g의 칼리송 한 알이 입안을 모두 간지럽히고 넘어갈 때가 사람의 입술 모양이 가장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라고 한다. 

 

누가는 다양한 견과류를 넣어 완성한 프로방스 지역의 대표적 달콤함이다.

달콤함으로 기억되는 프로방스

칼리송과 함께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과자는 누가nougat다. 누가의 종류는 달걀흰자를 거품 내 시럽과 섞는 누가 블랑nougat blanc과 흰자가 들어가지 않아 갈색빛이 도는 누가 누아르nougat noir가 있다. 프로방스 여러 마을에서는 다양한 견과류와 과일 콩피를 넣은 각양각색의 화이트 누가를 만날 수 있는데, 여름철에는 부드럽고 시원한 아이스 누가를 먹기도 한다. 누가의 맛과 질감은 좋은 꿀에 의해 결정된다. 끝없이 펼쳐진 보랏빛 라벤더밭에서 윙윙거리며 분주히 꿀을 따는 꿀벌은 풍미 깊은 누가 맛의 첨병이다. 누가를 자른 단면은 말린 과일과 견과류가 어우러진 점묘화와도 같다.

프로방스의 달콤한 맛들은 알프스에서 지중해로 부는 바람 미스트랄mistral과 이 지역의 땅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건초 향인 가리그garrigue, 그리고 지중해에 반사된 태양이 만들어내는 한편의 로드무비다. 이곳의 과일과 견과는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태양이 만든 엄청난 당도와는 거리가 있다. 어딘가 비어 있어 채도의 콘트라스트는 낮지만 파스텔톤 사이로 계속해서 속삭이는 내러티브적 서사가 있다. 그렇다고 동양의 다과처럼 수줍게 모든 맛을 감추지도 않는다. 마을마다 개성 있는 미장센이 뚜렷한 색을 전한다. 프로방스의 디저트는 달달함 속에 산뜻함이 공존하는 재미있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은근한 달콤함은 기억을 얹기에 적당하다. 그것이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할 나위 없거니와 씁쓸한 애상일지라도 달콤함 위에 얹는 것이 마땅치 않겠는가.

 

맛은 아련한 기억의 도서관이다

기억은 언어적 기표, 혹은 시각적인 이미지로 저장된다. 이에 비해 맛과 향이라는 감각은 아주 여리고 더없이 순간적이다. 객관적으로 정량화할 수도, 전달을 위해 잡아둘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작은 감각은 끈질기고 충실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버스정류장 앞 가판의 번데기 끓는 냄새는 어린이날 동물원에서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지금의 키보다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본 잔점박이물범의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중복 날 만난 푹 고은 닭죽의 맛은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할머니의 포근한 품, 그 온기를 떠오르게 한다. 프로방스의 달콤함도 그 순간엔 눈이 녹듯 사르르 사라졌지만 돌이켜보면 그날의 상황과 그 시간의 대화들은 오히려 뚜렷하다. 그렇게 약하기만 한 맛과 향에 대한 감각은 기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겁 없이 지탱한다. 

 


정상원은 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의 문화 총괄 셰프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 <탐식수필>을 통해 요리에 문화, 예술, 철학 등 서사를 덧입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 정상원SANG-WON JUNG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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