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50년 이상 된 점포에서 점포와 동갑인 주인들이 점포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 유서 깊은 바로 그 건물 안에 새로운 세대들이 바와 작업실 등을 열고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향유한다. 을지로에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감각의 제국
2019년 3월 8일 금요일. 4일간의 을지로 취재를 마무리하는 밤. 나는 을지로3가역 10번 출구 인쇄 골목의 회색 빌딩 앞을 서성이고 있다. 이 빌딩 4층에 ‘감각의 제국’이 있다. 벽에 전단지와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계단을 올라가면 철문에도 ‘헌팅 금지’ ‘주사 금지’ 등이 쓰인 전단지가 청테이프로 붙어 있다. 문을 열면 창에 붉은색 융단 커튼이 쳐져 있고 벽에는 초록색 등이 몇 개 켜져 있다.
천장에는 만국기가 걸려 있고 길고 좁은 나무 의자나 독서실 1인용 책상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한쪽 벽에는 눈에 엑스 자가 쳐진 커다란 둘리 인형이 박제 동물처럼 걸려 있고 그 앞에 디제잉 부스가 있다. 바 안은 얼핏 보면 난해하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오락기나 스펀지밥 풍선 등 청소년기에 가지고 놀던 소품이 많아 친근하다. 나는 디제잉 부스 바로 옆에 앉아 라임, 키위, 파인애플로 만든 청(삼청)이 들어간 ‘삼청교육대카’ 칵테일을 주문했다.
선반에 놓인 목탁을 구경하는데 벽에 걸린 둘리를 닮은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이따 10시에 막춤 파티 해서 그때 테이블 다 치울 거예요. 자기 마음대로 그냥 추면 됩니다.” 알고 보니 그가 감각의 제국 ‘흥건’ 대표였다.(‘흥건’은 그의 닉네임이다.) 그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감각의 제국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걸 하고 싶어서 디제잉도 배웠다. 그러다 금요일, 토요일마다 디제이 파티를 하며 춤출 수 있는 ‘막춤 파티’를 기획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