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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룩소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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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호

이집트의 고도 룩소르는 여리꾼의 호객 소리와 거간꾼의 흥정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이집트를 찾는 여행자들은 여리꾼을 낮잡아 부르고, 거간꾼이 흥정하는 모습을 보며 ‘바가지’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나 호객은 만 년을 이어온 문명의 손짓이고 흥정은 하루를 이어가는 삶의 외침이다. 세상천지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의 진실과 진심을 마주하는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우수리이자 덤이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인 테베에 세워진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 위로 열기구가 떠오른 모습.

룩소르Luxor에서 아스완Aswan까지의 비행은 고작 20분 남짓이다. 이제 나일강의 물길을 따라 같은 길을 나흘에 걸쳐 항해할 것이다. 선상에서 숙식하며 고대의 역사를 탐험하는 나일강 크루즈는 아스완과 룩소르 사이를 오간다. 룩소르에서 출발할 수도 있고 아스완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카이로에서 가까운 룩소르에서 출발하는 편이 경제적이지만, 물길도 역사도 남쪽 상류에서 북쪽 하류로 향하니 좀 돌더라도 아스완에서 승선하는 것이 결에 맞다. 만 년의 시간을 품은 나일 문명 앞에서 20분 정도 돌아가는 것이야 큰 의미가 없다.
죽은 자의 땅이라고 불리는 왕가의 계곡 서안으로 해가 지고 있다. 비행기의 작은 창으로 사하라를 관통해 지중해로 흐르는 나일강이 보인다. 광막한 사막에 망막한 활주로가 하나 놓여 있다. 착륙을 앞두고 나일 에어 기장이 기내 방송을 한다. 목적지의 시간과 기온을 얘기하고는 코샤리 한 그릇을 먹기에 딱 좋다고 덧붙인다. 동네 아저씨를 자처하는 기장의 위트에 승객들의 불안이 눈 녹듯 사라진다. 착륙은 마치 자기 집 주차장에 주차하듯 정갈하고 상큼하다. 엔진이 멈추고 승객들이 활주로에 내려선다. 적갈색 낙조가 내린 황갈색 사막의 풍경은 마치 사건의 지평선 안으로 들어온 듯 오묘하고 고요하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이집션
대합실 문을 나서자마자 사막의 고요는 돌차간 사라진다. 이제 다시 생존을 위한 흥정에 돌입해야 한다. 수많은 택시, 뜨거운 밤바람에 이집션 택시 드라이버들의 벅적한 호객 소리가 실려 온다. 거리를 따졌을 때 시내까지의 택시비는 200파운드가 적당하다. 하지만 여리꾼의 호가는 2000파운드다. 야간 운행과 편도 운행을 따따블로 계산해도 과하다. 정규 버스가 끊겨 택시만이 시내까지 갈 수 있는 유일한 방편. 흥정의 우위를 점한 택시 드라이버들은 여간해서는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의 수와 택시 대수를 헤아려본다. 방법은 있다. 택시가 승객보다 많으니 잠시 기다리면 될 일이다. 결국 450파운드에 남은 택시 중 하나에 올라탄다.
아스완 시내는 북쪽인데 택시는 남쪽을 향한다. 이집트 남쪽은 수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수단은 현재 대한민국 여권법상 여행 금지 국가다. 이방인의 불안한 모습을 알아챘는지, 택시 드라이버가 통성명하잔다. 이름을 나누니 맘이 누그러진다. 기사는 잠시 주유소에 들르기 위해 방향을 튼 것이었다. 그는 ‘아프리카’라는 단어로 남쪽 방향을 말한다. 이집트는 분명 아프리카 대륙에 있건만 무슬림의 관점에서 그곳은 아프리카와는 다른 땅인 것이다. 아스완하이 댐을 건너며 드라이버는 도시의 역사와 현재를 낱낱이 설명한다. 현지 택시 드라이버는 가장 훌륭한 도시 도슨트다. 목적지에 도착해 거스름돈 50파운드를 건네는 그의 손을 만류한다.

이집트 사람들의 솔푸드인 전통 음식, 코샤리.

인샬라, 코샤리
코샤리koshary는 이집트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이다. 우리의 비빔밥이나 백반과 비슷한, 이집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솔푸드다. 아스완 읍내의 코샤리집 앞은 여리꾼의 주릅드는 소리로 가득하다. 오래된 코샤리집 앞에서 이집트의 축구 영웅 모하메드 살라의 유니폼을 입은 청년이 손님을 모으고 있다. 그는 입은 옷을 가리키며 자신의 이름도 모하메드라고 말한다. 주문을 마치자 모하메드가 매운 소스 한 종지를 건넨다. 소스의 매운맛이 한국인 입에 맞는다. 강매당했나 싶었지만 걱정과는 달리 계산서에는 소스값이 적혀 있지 않다.
정통 이집션 코샤리는 안남미 밥과 렌틸콩, 쇼트 파스타인 마카로니, 롱 파스타인 버미셀리vermicelli를 한 냄비에서 조리해 모양새는 조금 정신없다. 고수 씨앗인 깟씨 가루와 이집트 전통 향신료 쿠민 가루를 넣어서 매콤 쌉쌀한 맛이 감도는 토마토소스를 올린다. 그 위에 마늘과 양파를 튀긴 토핑과 찐 병아리콩을 얹는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레몬즙과 매운 소스를 곁들인다. 지역마다 들어가는 재료와 소스의 맛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지중해에 연한 알렉산드리아의 것은 유럽 사람의 입맛에 맞고 마늘과 양파가 담뿍 들어간 아스완의 것은 한국인에게 잘 맞는다.

아부 심벨 신전과 이집트 나세르 호수 기슭.

샬롬, 람세스
아스완에서 출발한 크루즈는 나흘에 걸쳐 강변의 유적지를 훑으며 룩소르로 향한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아부심벨Abu Simbel, 매 모습을 한 태양신 호루스Horus와 악어 모습의 홍수를 관장하는 신 소베크Sobek를 모시는 콤옴보Kom Ombo 신전, 에드푸edfu 신전 등 며칠에 걸쳐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나일강의 죽음〉에 나오는 장소들이 모두 펼쳐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나일강을 오가는 범선 펠루카felucca에서 수제 직물인 브로케이드brocade를 파는 상인과 소를 몰고 강가를 오가는 사탕수수 농부를 구경하는 것은 덤이다. 유적도 유적이지만, 사실 나일강 크루즈의 백미는 하루 세 끼 차려지는 이집션 뷔페다. 나일강의 민물생선구이부터 양 내장 볶음까지 다양한 이집트 전통 음식을 만날 수 있다. 셰프가 직접 카빙 하는 거대한 소시지는 무슬림 율법에 따라 돼지고기가 아닌 소고기로 만든 것이다.
크루즈의 마지막 정박지는 만년의 고도 룩소르다. 그곳에서 여정을 마치고 뱃삯을 치르려 크루즈 브로커를 만났다. 그는 룩소르 시내 관광 가이드를 자처한다. 여행자가 쉽게 찾을 수 없는 뒷골목이며 룩소르 신전 옆 이슬람 모스크까지 현지 생활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소들로 안내한다. 그는 헤어지기 전 망고 주스 가판으로 향한다. 그가 눈빛을 보내자 상인은 망고 주스에 얼음을 몇 알 띄운다. 그는 룩소르에서 얼음이 망고보다 비싸다고 말한다. 그가 주스값을 치른다. 얼음을 띄운 망고 주스는 달고 시원하다.

광활한 대지 위에 자리한 기자 피라미드.

안녕, 클레오파트라
카이로 기자Giza 지구로 돌아와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를 바라보며 이집션 맥주 한 잔과 포테이토칩을 주문한다. ‘안녕 클레오파트라. 세상에서 제일가는 포테이토칩.’ 이집트 감자 맛에서 게임 속 밈의 근거를 탐험한다. 나일강은 이제 범람하지 않는다. 비옥했던 역사의 터전에도 구황작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남미에서 유럽을 거쳐 이집트로 들어온 감자는 아프리카의 풍토와 아랍의 문화를 만나 향신료의 꽃다발 속에서 화려하게 변신한다. 마지막으로 클레오파트라의 안부를 묻는다. ‘미녀의 대명사’라는 관념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녀는 최후의 파라오이자 당대 최강의 제국과 맞선 나일 문명의 수호자다. 2023년 BBC에서는 클레오파트라가 아프리카 여성이라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이집트 국민의 공분을 샀다. 위대한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의 안녕은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 달려 있어 보인다.
수많은 문명이 들끓는 오래된 용광로 이집트. 그곳의 흥정은 과하다면 과하고, 불편하다면 불편하다. 그러나 에누리가 끈적한 만큼 우수리는 쫀득하다. 나일강 크루즈 거간꾼 만도가 사준 얼음이 든 시원한 망고 주스, 크루즈 안에서 만난 선원들의 세심한 배려, 코샤리 가게에서 여리꾼 모하메드에게 얻은 비밀의 매운 소스 한 종지부터 아스완 택시 드라이버 칼파니의 장구한 역사 도슨트까지, 모든 거래의 끝에는 고혹적인 덤이 딸려 왔다. 그들의 땀 흘리는 방식과 배려의 방향을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셈은 정당한 셈이다.


정상원은 ‘맞는맛연구소’에서 요리와 문화를 연구한다. 프렌치 레스토랑 ‘다이닝룸 뒨니’의 셰프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띈다.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 〈탐식수필〉을 통해 요리에 문화, 예술, 철학 등 서사를 덧입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글. 정상원SANG-WON JUNG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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