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섬은 아일랜드해에 홀로 남겨진 켈트족의 섬이다.
이 섬에는 엔진의 굉음이 울려 퍼지는 경주장 너머로
울창한 숲과 협곡, 다양한 조류 생태계와 풍요로운
신화가 살아 숨 쉬는 신비로운 유적이 공존한다.
맨섬Isle of Man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분위기가 감돈다. 아일랜드해에서 초록색 보석처럼 반짝이는 이 섬은 종종 안개로 둘러싸인다. 맨부족의 신화에 따르면 안개는 바다의 신 마나난이 던지는 보호용 베일이다. 켈트족의 이 베일을 벗기면 깊숙한 전설이 드러난다. 녹색 협곡, 무너져가는 성, 드라마틱한 해안선 등을 배경으로 검은 악마 개나 거대한 식인 거인 오거 등 다양한 존재가 등장한다. 오늘날에도 현지인들은 항구 마을 포트에린Port Erin과 더글러스Douglas를 잇는 요정의 다리 아래 잠시 멈춰 서서 이곳에 산다고 알려진 ‘소인’에게 인사를 한다.
필Peel 성이나 캐슬타운 같은 해안가 주거지에는 한때 강성했던 요새가 폐허로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내륙에는 에메랄드빛으로 펼쳐진 들판과 숲이 우거진 계곡,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마을이 어우러져 있다. 또한 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제도에서 가장 어두운 밤하늘로 유명한 맨섬에서는 쏟아질 듯한 별을 관찰하기 좋다. 이 모든 요소가 섬에 고요함을 더한다. 하지만 매년 5월 모터사이클 로드 레이스인 TT레이스가 시작되면 고요함은 완전히 사라진다.
첫째 날 - 채집과 민속
아침
사람들은 내 집 울타리 안에서 바로 구할 수 있는 풍부한 먹거리 덕분에 맨섬의 시골 생활에 푹 빠지게 된다. 포트에린 항구 마을의 그림 같은 해안선을 따라 유명한 버사Versa 레스토랑으로 가서 셰프 피파 로벨Pippa Lovell과 함께 식재료 채집에 나선다. 버사는 해안 바위에서 자라는 미나릿과 허브 식물 샘파이어samphire, 블랙베리, 로즈힙 등 되도록 직접 채집한 재료로 매일 다른 메뉴를 선보이는 지속 가능한 식당이다. 이곳에선 현지 먹거리로 이국적인 풍미를 낸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호그위드 씨앗hogweed seeds은 카다멈 맛을, 가시금작화 꽃gorse flowers은 코코넛 향을 낸다. 피파와 함께 방금 구한 식재료로 브런치를 만들어 먹기 위해 버사로 돌아간다. restaurantversa.im
오후
브런치를 먹은 뒤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크레그니시Cregneash 마을에서 시작해 섬의 남서쪽 모퉁이를 탐험해본다. 뿔이 네 개가 달린 맨섬의 토종 양인 로아탄Loaghtan이 오두막이 딸린 작은 농장에서 느긋하게 쉬는 풍경은 마치 살아 있는 박물관 같다. 19세기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던 강인한 영혼들의 삶을 재현해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에서 차로 50분 거리에는 글렌올딘Glen Auldyn 계곡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요정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한 아름답고 울창한 숲이다. 이 계곡에서 요정 왕자가 인간 소녀와 사랑에 빠졌고 벌을 받아 털이 수북한 피노데리 요정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캐시탈 인 아드Cashtal yn Ard 무덤은 깜짝 놀랄 만큼 잘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바다 건너 컴브리아주를 조망할 수 있어 꼭 들러볼 만하다. manxnationalheritage.im
저녁
인근 램지 마을에 있는 더 피노데리 증류소The Fynoderee Distillery에는 글렌올딘Glen Auldyn의 전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장미과 나무의 열매이자 ‘가시자두’로도 불리는 슬로, 로즈힙, 로완베리 등 시골에서 자라는 열매로 맛을 낸 다양한 진을 맛보면서 증류소의 주인 부부 폴과 티파니 케루이시에게 전승된 민속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더 피노데리에서는 변화하는 계절에서 영감을 받아 증류주를 만든다. 겨울에 만드는 진에 들어가는 주니퍼 열매는 글렌올딘이 원산지로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저녁때는 해안가의 램지스 굿 스터프Ramsey’s Good Stuff 레스토랑에서 여유를 즐겨보자. 농어, 숭어, 돔발상어 등 그날그날 잡은 물고기에 따라 달라지는 메뉴가 이 식당의 자부심이다. fynoderee.com, goodstuffiom.co
둘째 날 - 두 바퀴와 와인
아침
해마다 봄이 되면 맨섬에서 개최되는 TT 경주 덕분에 섬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른다. 1907년에 시작한 ‘투어리스트 트로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토바이 경주로, 참가자가 비극적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흔히 발생하는 가장 위험한 경주에 속한다. 대신 전동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느린 속도로 코스를 돌면서 훨씬 더 안전하게 경주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아이오엠(아일오브맨) 트라이크 투어스를 통해 삼륜 오토바이를 타고 원하는 속도대로 티티 경주 코스를 달리며 멋진 산악 구간 곳곳에 멈춰 사진을 남길 수도 있다. 속도는 빨라도 느려도 상관없다. iomtriketours.com
오후
더글러스로 돌아와 리틀피시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맨섬 해안에서 거두어들인 여왕 가리비, 대구, 고등어 등으로 요리한 타코, 차우더 수프, 카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다음 손에 땀을 쥐게 한 삼륜 오토바이 투어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1893년부터 맨섬 일대로 승객을 실어 나른 맹크스 일렉트릭 레일웨이에서 좀 더 차분한 승차감을 즐겨본다. 빅토리아풍 전차를 타고 랙시Laxey 마을에서 내리면 세계에서 가장 큰 물레방아가 오래된 광산 폐허, 글렌무어 계곡과 더불어 멋진 파노라마 풍경을 선사한다. 한두 시간 정도 마을을 둘러본 뒤에 다시 전차를 타고 맨섬에서 가장 높은 스내펠Snaefel 산에 오른다. littlefishcafe.com, manxelectricrailway.co.uk
저녁
기차를 타고 다시 더글러스로 돌아와 맹크스 박물관Manx Museum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섬의 역사에 흠뻑 빠져보자. 중석기 시대에 살았던 수렵채집인들이 사용했던 도구를 살펴보고, 바이킹이 남긴 보물에 감탄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맨섬의 틴월드 의회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그다음엔 더글러스에서 가장 오래된 펍인 로버스 리턴Rovers Return으로 가 현지 양조장 부시스에서 생산한 에일을 맛보며 티티 레이스에서 26번의 기록적인 우승을 차지한 조이 던롭Joey Dunlop의 벽화도 구경해본다. 현지의 훌륭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와 어울리는 다양한 와인도 준비되어 있다. 참고로 크랩, 랍스터, 칵테일새우와 스테이크 파이가 아주 맛있다. bushys.com, winedown.im
♦최고의 숙소 3 ♦
각기 다른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는 맨섬의 머물 곳.
캐프오브맨 버드 옵저버토리
남쪽 해안에 있는 작은 섬 캐프오브맨은 키티웨이크, 큰부리바다오리새, 독특한 맹크스 슴새 등 다양한 바닷새가 서식하는 조류보호구역이다. 현지 오두막 숙소인 버드 옵저버토리에서 편안하게 하루 머물며 섬의 야생을 탐험하기 좋다. 객실 요금은 약 4만2000원부터. islandescapes.im
녹칼로 베그팜
필 마을에서 가까운 시골에 위치한 양치기용 오두막으로, 평화로운 농장 뒤편 과수원에 자리한 아늑한 통나무집이다. 장작불로 물을 데우는 삼나무 온수 욕조에 편안히 앉아 영국제도에서 가장 캄캄한 밤하늘에 펼쳐지는 별자리를 감상해보자. 객실 요금은 약 12만원부터. knockaloebegfarm.com
할바드 호텔
2018년에 문을 연 우아한 호텔로 신고전주의풍 외관과 아르데코 양식 간판이 인상적이다.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고급스러운 스위트룸 등은 클래식한 분위기다. 더글러스 해변이나 맹크스 박물관도 걸어서 갈 수 있다. 아침식사 포함 객실 요금은 약 20만원부터. halvard.co.uk
맨섬의 신화를 탐험하는 네 가지 방법
맨섬은 인어, 고블린, 엘프 등 무수한 정령과 그들의 이야기로 직조되어 있다. 기이한 이야기의 실제 기원을 찾아본다.
캐프사운드 해협Calf Sound
맨섬의 설화에 등장하는 벤 배리Ben Varrey는 반은 물고기, 반은 여성인 존재로 바위 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지나가는 어부에게 유혹의 눈빛을 보낸다고 전해진다. 인어 신화가 매너티나 듀공 같은 해양 포유류를 본 뒤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처럼, 벤 배리도 섬에 서식하는 물개에서 유래했을지도 모른다. 키터랜드Kitterland 섬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물개를 관찰하거나 보트를 타고 캐프사운드 해협으로 떠나는 맹크스 시라이프 사파리를 이용할 수도 있다. manxsealifesafari.com
세인트 트리니안스 교회St Trinian’s Church
영국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악하고 변신을 잘하고 혼란을 야기하는 정령 보거트가 맨섬에서는 부갠Buggane으로 변형되었다. 섬 중앙에 있는 그레바산Greeba Mountain에 살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인근에 세인트 트리니안스 교회를 세우려 하자 격렬하게 반대하며 불경스럽게도 계속 지붕을 찢었다고 전해진다. 더글러스와 필을 잇는 도로 옆에 위치한 이 교회는 지붕이 없다.
요정의 다리The Fairy Bridges
현지에서 ‘소인’ 또는 ‘그들 자신’으로 통하는 맨섬의 요정 이야기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른 켈트족 신화의 요정처럼 체구가 작고 녹색 재킷에 빨간 모자를 쓴 모습인데 자비롭지만 짓궂은 면이 있다고 한다. 더글러스에서 포트에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요정의 다리도 유명하지만 오크힐Oakhill과 케웨이그Kewaigue 사이를 이어주는 길에 또 하나의 다리가 있는데, 종종 현지 아이들이 요정을 위해 소소한 장신구 등을 놓고 간다고 한다.
필 캐슬 요새Peel Castle
영국 설화에는 뜨거운 석탄처럼 번뜩이는 눈을 가진 거대하고 유령 같은 검은 악마 개가 고정으로 등장한다. 이 검은 개는 맨섬에서는 모디두Moddey Dhoo로 화신하여 분위기 있는 요새인 필 캐슬 경내를 어슬렁거린다고 한다. 필 캐슬은 11세기에 바이킹이 지었으며 지금은 폐허가 되었지만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모디두는 물론, 이 섬에서 장신구와 함께 유골이 발견된 페이건 레이디Pagan Lady 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TRAVEL WISE
더 많은 정보
영국관광청 visitbritain.com/en
교통편
스팀패킷이 영국 리버풀, 헤이샴, 더블린, 벨파스트에서 더글러스로 가는 페리호를 운행한다. steam-packet.com
영국 벨파스트, 버밍엄, 에든버러, 개트윅, 맨체스터 등의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이용하면 맨섬 남쪽에 있는 아일오브맨공항에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