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몰타의 옛 수도인 음디나Mdina에 있는 피야차 메스키타Pjazza Mesquita 광장이 인파로 북적댄다. 지난5 월 시즌 8이 종영된 미드 <왕좌의 게임>이 바로 이 광장에서 촬영되었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 세계인 웨스테로스Westeros에서 일곱 왕국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다. 황금빛이 도는 석회암 재질의 아치형 광장 입구를 지나자 베이지색 성벽과 건물들이 눈에 띈다.
영화 <글래디에디터>(2000)에 출연한 몰타 출신 배우 말콤 엘룰Malcolm Ellul이 광장 한 켠에 있는 우편함을 가리킨다. “<왕좌의 게임>을 촬영할 때 저 우편함이 문제였어요. 가상 세계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보이거든요.” 몰타에서는 <왕좌의 게임> 시즌 1만 촬영했다. 나머지 시즌은 왜 이곳에서 촬영하지 않았을까. “아주레 윈도Azure Window(해변에 있는 아치 모양의 천연 바위 지형)에서 여주인공인 대너리스가 드로고 장군과 결혼하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그때 바위 일부가 훼손됐거든요. 그러곤 촬영이 중단됐습니다.”
1000년의 시간과 2019년이 공존하는 곳
발레타에는 파리 퐁피두 센터 설계로 잘 알려진 렌초 피아노Renzo Piano가 설계한 의사당 건물이 있다. 그는 먼저16 세기에 지어진 시티게이트를 오래된 성벽에 난 깔끔하게 절단된 틈으로 재해석했다. 미니멀한 석조 구조물의 시티게이트를 지나면 곧바로 의사당이 나타나고 의사당 건물 측면에는 동일한 2개의 계단이 웅장한 날개처럼 뻗어 올라간다.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의사당 건물 외벽 때문에 어떤 비평가들은 치즈 그레이터(일종의 강판)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적이고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경이로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피아노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을 때 옆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던 젊은 남성이 이렇게 중얼거린다. “전문가들이야 예술이라고 하겠지만, 발레타의 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봐요.” 하지만 피아노는 몰타 지역 신문인 <타임스 오브 몰타>와의 인터뷰에서 비교적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과거와 미래, 역사와 현대를 연결한다는 아이디어에 끌렸어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모든 이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공간으로 설계했습니다.”
몰타에 ‘빌바오 효과’는 없는지도 모른다
해가 지고 어두워진 발레타를 걷고 있을 때 어디선가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에 나오는 ‘사탕요정의 춤’이 들려온다. 주인공인 호두까기 인형이 왕쥐와 혈투를 벌인 끝에 꿈의 궁전으로 무사히 돌아와 환영을 받는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몰타를 기대했다. 물론 런던의 대형 갤러리나 에스프레소 커피를 신속하게 뽑아주는 카페는 없었다.
고조섬 중앙에 있는 빅토리아 요새에서 3 60도 뷰로 섬을 보았다. 오랫동안 보수한 끝에 내가 방문하기 이틀 전에 문을 연 곳이다. 돔 형태의 지붕과 바다에 감동하며 나는 더는 이곳이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듬고 정리된 과거에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몰타에 ‘빌바오 효과’는 없는지도 모른다. 박물관 등 현대적인 건축물 대신 현존하는 유적지와 다양한 유산을 통해 현재와 만난다. 택시를 타고 막 몰타를 벗어나려는 참에 운전기사가 창문을 내린다. “저기에 원래는 아주레 윈도가 있었는데, 몇 년 전에 폭풍우로 무너졌어요. 근데 몰타 사람들이 얼마나 웃긴지 알아요? 과거를 그냥 내버려두질 않아요. 사람들은 무너진 아주레 윈도를 이제 아주레 도어라고 불러요. 유리창이 없으면 창문이 아니라 문이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