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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아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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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1월호

여행하는 인간은 숙명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 위에서 방랑하며 사색하는 유전자를 지닌 것 같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약간의 불안감, 두근거림은 여행의 본질. 잡히지 않는 멀고 낯선 곳으로의 그리움, 떠나고 싶어 하는 유목민적 욕망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아닌가 싶다.

혜량 없이 흐르는 시간의 무한성, 억겁의 시간을 품고 있는 파타고니아 세로토레봉 발치의 그란데 빙하. 호수 끝에서 멈춰 선 파르스름한 흰색 빙하의 뱀 꼬리처럼 흐르는 모습이 괴기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나이가 들면서 커지는 고독, 아쉬움, 허전함, 후회 등을 떨쳐내는 데 여행만 한 게 없다. 70세를 넘은 나이에 파타고니아의 풋내 나는 오지를 두 달 가까이 걸으며 원시적 빙하와 붉은 호수 같은 비경과 한 몸을 이룬다.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의 빙하

파타고니아 빙하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와 신비로운 색조, 이질적인 낯선 아름다움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 빙하가 셀 수 없이 많은 뾰족한 얼음송곳을 바닥에 깔고 산 정상까지 첩첩이 겹을 이루며 이어져 있다. 눈앞에 보이는 빙하의 그 오묘한 색감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한국인의 얼에 비유되는 청자의 신묘한 빛, 아니면 토종 매화인 참매화 이파리의 눈이 시린 파르스름한 흰색과 감히 비교해도 될 듯싶다. 지구상의 빛이 아닌 수억 광년 너머 은하계에서 날아오는 우주의 빛이 이런 색일까. 이 빙하는 수만 년에 걸쳐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켜켜이 얼어붙은 파타고니아 영혼의 결정체다. 순수함을 넘어 비장하고 처연하게 피어오르는 파르스름한 빙하에서 파타고니아의 정신이 읽힌다. 빙하에 빙의되듯 어느 순간 나 자신이 시공간의 무구 속으로 빠져들면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알 수 없는 영적 울림과 함께 어느새 거둘 것 없는 마음이 빙하와 하나가 된다.

고혹적이고 몽환적인 붉은 호수와 홍학의 낯선 아름다움. 짜릿하고 강한 전율이 뒤통수를 때리며 꼬리뼈로 흘러내린다


소금사막의 꽃, 라구나 콜로라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는 진홍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호수가 자리한다. 라구나 콜로라다Laguna Colorada, 일명 붉은 호수. 색감이 너무 고혹적이어서 비현실적이다. 진흙 펄과 외딴섬 같은 기하학적 무늬의 하얀 소금층 그리고 홍학 무리의 군무가 신비스럽다. 호수 주변에 있는 고깔 모양의 황토색 설산도 아름다움을 배가한다. 해발 4278m의 고산 사막에 넓이 60km2, 평균 깊이 30cm, 가장 깊은 곳이 1.5m에 이르는 광활한 붉은 호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호수의 색조는 화산에서 흘러 들어온 각종 광물질과 미네랄에 자생하는 붉은색 조류藻流 40여 종 때문이다. 수많은 선홍색 홍학 무리가 진홍색 수면에 반영을 드리우며 긴 부리로 먹이를 찾는 모습이 아련하다. 홍학은 태어날 때는 흰색이지만 분홍색 조류를 먹고 자라면서 털이 같은 색으로 바뀐단다. 우유니 사막에는 조류나 광물 등 침전물의 종류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다채로운 호수가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호수는 모두 염도가 높아 웬만한 생명체는 서식하기 힘들다. 그러나 조류를 먹고 사는 홍학이 모여 살며 호수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라구나 콜로라다에 홍학이 가장 많이 서식해 우유니 사막의 꽃이라 불린다. 그 꽃을 마음에 품으며 합일된다.

 


김성태는 70세를 넘나드는 나이에 걸어서 세계 오지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30여 년 언론계에서 활동하다 은퇴 후 뒤늦게 오지 트레킹에 빠져들었다. 고원, 밀림, 산, 사막, 빙하, 소수민족 등에 가까이 다가가 교감하는 여정을 즐긴다. 저서로 〈히말라야에 미(美)치다〉, 〈티베트에 미(美)치다〉, 〈안데스 파타고니아에 미(美)치다〉 등을 펴냈다.

 

글. 김성태SUNG-TAI KIM
사진. 김성태SUNG-TAI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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