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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S
SAVORY FOREST
숲에서 채집한 풍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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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호

생동하는 봄의 시작은 숲과 땅으로부터 비롯된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소생하고, 갓 움튼 봄나물이 한껏 비축했던 에너지를 호기롭게 터뜨린다. 성큼성큼 숲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마주한 빛나는 한때를 담아본다.

(왼쪽부터)
한창 잎이 풍성해지는 4월의 산마늘. 조셉 리저우드 셰프가 이번 봄, 산에서 식재료 탐험을 이어가는 중이다.

K-FOREST FOOD
식탁 위의 작은 숲

산림청과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임산물을 더 가치 있게 향유하고자 K-FOREST FOOD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식탁 위의 작은 숲이라는 카피로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데 힘쓰는 중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바로 숲. 그런 연유로 이번 봄, 한국임업진흥원과 숲으로 떠나 임산물 채집의 여정을 함께했다. 숲의 보존을 도모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누리며, 그 안에서 재배된 산물을 활용해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kforestfood.com



채집의 여정을 따라

“하하, 그새 두릅이 좀 더 자랐습니다.”
슬로우파머의 정성훈 대표가 숲길에서 내려오면서 오전보다 단단해진 봄나물의 소식을 전해온다. 그의 말대로 나뭇가지 끝에 새초롬하게 움텄던 두릅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눈에 띄게 제 몸집을 키웠다. 봄의 한복판, 점점 따뜻해지는 날씨에 힘입어 숲속 임산물들은 양껏 토양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나날이 익어가는 중이다.
저 멀리 야트막한 산이 연둣빛으로 물들고, 곳곳에 벚나무와 개복숭아나무가 꽃을 피우며, 야생의 초목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이곳은 ‘K-FOREST FOOD’로 지정된 순수 자연주의 농장이다. 여행자는 이곳 숲길을 따라 트레킹을 하며 폭신한 흙을 밟고, 야생이 키워낸 보드라운 봄나물 잎을 어루만지며, 숲과 계절의 풍미를 만끽할 수 있다. 트레킹 코스로 이어진 길에는 산마늘을 비롯해 두릅, 눈개승마, 표고버섯 등이 봄의 향취를 가득 뿜어낸다. 이곳을 호주 태즈메이니아 출신인 에빗 레스토랑 조셉 리저우드 셰프와 함께 찾았다. 한국의 식재료에 깊은 애정을 가진 그가 선보였던 봄나물의 다채로운 향연과 매주 부지런히 산지를 탐험한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툭 줄기를 꺾어 산마늘을 생으로 먹어보면 입안 가득 특유의 알싸한 향과 싱그러운 맛이 가득 번진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숲길 트레킹 중인 조셉 리저우드 셰프.
가지 끝마다 두릅이 나오기 시작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눈개승마를 정성훈 대표가 살피고 있다.

WILD GREENS TREKKING
산나물 트레킹

총 소요 시간: 90분
매년 4월에서 6월이면 이곳 숲길을 따라 걸으며 산에서 나는 봄나물을 채집할 수 있다. 대부분 야생 그대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나고 자란 것들이다. 3월 말경 산마늘, 눈개승마를 시작으로, 4월 초에는 머위, 뒤이어 4월 중순에는 두릅, 가죽나물, 취나물 등이, 4월 중하순에 이르면 우산나물, 바디나물이 나온다.

일러스트. 조아나

1 산마늘
50~60년 정도 사는 다년생으로 울릉종과 오대산종이 있다. 울릉종은 잎이 넓고, 오대산종은 잎이 좁은 것으로 구분한다. 흔히 명이나물로 불리는 산마늘은 자양 강장 효과가 높으며, 강원도농업기술원 산채연구소에 따르면 혈관 내 혈소판의 응집을 막는 응집 저해 활성도가 파속 식물 중 89.2%로 가장 높게 분석되었다고. 종자로 파종할 경우 우리가 먹는 잎을 내기까지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2 눈개승마
다년생 초본인 눈개승마는 인삼과 두릅의 맛에 식감은 소고기 같아 삼나물이라고도 하며, 삐뚝발이라고도 부른다. 혈액순환, 해독, 정력, 골다공증 예방 및 콜레스테롤 감소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데쳐서 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비빔밥 재료로 혹은 무침으로 활용한다. 고사리 대신 육개장에 넣어 먹어도 좋다.

3 두릅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두릅은 두릅나무에서 자란 어린순이다. 다년생 나무로 4월 중순에 올라오는 새순을 짧은 기간 수확한다. 가지 하나에 새순 하나가 올라와 더욱 귀하다. 가지 끝의 두릅을 채취하려면 손을 보호할 수 있는 장갑과 가위가 필수다. 가시가 강해지기 전에 수확한 뒤 잔가시를 잘 손질해 먹는다.

4 머위
다년생 풀로 이른 봄 꽃대가 먼저 나오는데 수꽃은 황백색, 암꽃은 백색을 띤다. 쓴맛이 있어 어린잎을 데쳐서 먹고, 5월 말경부터 줄기를 먹는다. 데쳐서 된장에 무쳐 먹거나, 머위 김치 혹은 들깨 무침 등으로 활용해보자. 사포닌 성분이 있어 현기증, 천식, 인후염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5 원목 표고버섯
참나무에 버섯 종균을 접종해 생산하는데 종균 접종을 한 다음 해부터 수확할 수 있다. 이는 톱밥 배지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맛과 향이 훨씬 진하며,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생산된다. 표고버섯의 효능은 일찍이 <삼국사기>와 <동의보감>에 약용법이 기록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섭취해 왔다.

원목에 종균을 접종해 키우는 표고버섯을 숲길에서 발견한 조셉 리저우드 셰프.

봄의 숲을 걷다

충주로 들어서 수안보온천 부근으로 방향을 잡고 이동한다. 과거에 활발했던 온천의 명성은 조금 퇴색해 오래된 동네의 모습이 마치 빛바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여전히 따뜻한 온천물의 온도처럼 다정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동네를 지나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올라 슬로우파머로 향한다. 수안보 시내에서는 영천교를 따라 만개한 벚꽃이 봄을 알려왔고, 그곳에서부터 1km쯤 떨어진 해발 330~550m 숲에 위치한 슬로우파머에는 그보다는 조금 더딘 속도로 봄이 찾아오는 중이었다.
“2011년 귀농을 준비하다가 아버님께 물려받은 이곳 임야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산을 보존하고 그곳에서 나는 산물을 채집하는 삶도 좋겠다 싶어 그다음 해 3월에 귀산촌하게 되었죠.” 그렇게 충주 수안보면에 슬로우파머의 문을 연 정성훈 대표는 매일 아침 7시면 농장으로 와 풀을 관리하고 숲길을 정돈하며 자연 속에서 건강한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임산물을 채집하고 숲길을 거닐 수 있도록 트레킹 코스를 조성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지역은 맑은 계곡을 품고 있습니다.
산림으로 들어오면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일교차가 큰 까닭에 여기서 생산되는 산채류는 맛과 향이 진한 게 특징이죠. 농장 안에 자리한 1급수 계곡에는 가재, 버들치, 도롱뇽 등이 살고 있어요. 과거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기도 했다고 합니다”라고 덧붙이며 트레킹 코스 출발지이자 원목 표고버섯이 특유의 향을 뿜고 있는 장소 부근의 계곡물을 가리킨다.

(시계 방향)
머위가 꽃을 피웠다. 가까이서 본 눈개승마.
두릅을 채취하려면 장갑과 가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숲속 습기 많은 곳에서 자라는 피나물.

계절의 맛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의 에디터와 사진가, 에빗의 조셉 리저우드 셰프 그리고 한국임업진흥원의 손예지 책임과 김인현 선임의 숲길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야생 그대로 군락을 이룬 다양한 종의 나무와 산물이 지금 이 계절에 맞는 모양과 형태로 여행자를 맞이했다. 벚꽃은 절반가량 피었고, 한 해 수확을 멈추고 쉬어 가는 머위도 꽃을 피웠다. 동글동글 노란 꽃이 귀여운 피나물은 줄기를 꺾으면 주황색 진액이 나온다. 걷다 보니 밑동으로부터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자라는 신나무가 군락을 이룬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영어로는 아무르 메이플Amur maple,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단풍나무과의 낙엽소교목이다. 이 신나무에서 채집한 수액은 은은하게 바닐라 향이 감돌아 마셔보면 달콤하고 부드럽다. 함께 걷던 조셉 리저우드 셰프에게도 한 모금 권해본다. 그는 얼마 전 경북 홍림산 자락을 오가며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기도 했으니 그에게 작은 영감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산마늘 재배지. 한창 수확 중인 산마늘은 진한 초록빛으로 탐스럽게 잎이 영근 모습이다. 근처에만 가도 알싸한 마늘 향이 훅 끼쳐온다. 줄기를 꺾어 바지에 쓱쓱 문질러 먼지를 털어낸 뒤 생으로 맛을 본다. 아삭하게 씹히는 느낌 뒤로 상쾌한 산마늘의 맛이 진하게 따라온다. 
비탈진 땅의 폭신한 감촉을 느끼며 때론 거친 숲길을 통과해 두릅 자생지로 향한다. 앞서 설명 들은 것처럼 나뭇가지마다 두릅이 하나씩 왕관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제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한 두릅을 가위로 툭 끊어내 손바닥에 올려두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보드랍고 연하다. 이것도 역시 생으로 한 입 베어 문다. 늘 데쳐서 설컹거리게 씹히던 맛에 익숙했는데, 갓 따서 생으로 먹는 두릅은 식감이며 향이 훨씬 매혹적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정성훈 대표는 근처 두릅나무의 가지를 쳐주고 있다. 가지 끝마다 두릅이 나오니 가지치기를 잘해줘야 다음 두릅을 채취할 때 어렵지 않다고 알려준다. 짧은 두릅 채취 시기가 지날 즈음에 엄나무를 채집할 때가 다가 온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뒤이어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온 눈개승마의 새초롬한 모습을 살핀 뒤 트레킹 코스의 마지막, 원목 표고버섯이 자라는 장소에 도착한다. 나무 그늘에 자른 참나무 기둥을 비스듬히 세워 버섯 종균을 접종해 표고버섯을 키워내는 중이다. 참고로 봄에는 백화고가 많이 나온다고.

 

(시계 방향)
숲에서 채취한 산마늘로 산마늘페스토를 만드는 중이다. 산마늘을 다지고. 두 종류의 치즈까지 더해 완성한 모습. 올리브오일에 재워둔 산마늘에 견과류를 더하는 과정.

산마늘의 변주

봄 햇살 아래 잘 자란 산나물을 수확하고 내려와 한숨을 돌린다. 경사로와 나무 사이를 헤치고 난 뒤라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된 상태이지만, 신선한 초록의 기운을 맛본 터라 동시에 입맛이 돈다. 아직 손끝엔 산마늘의 알싸함이 남아 있고, 길에서 줍듯이 캐온 자연산 달래도 한 손에 들려 있다. 주머니엔 먹다 남은 졸깃한 표고버섯이 들어 있고, 뽀얗게 예쁜 신나무 수액은 투명한 페트병에 가득 차 있다.
풍요로운 마음으로 산행 아닌 산행을 마친 우리 일행에게 슬로우파머 정성훈 대표의 아내가 산마늘페스토를 만들어 주겠다고 준비 중이다. ‘아하!’ 하고 무릎을 ‘탁’ 친다. 바질페스토에 바질과 마늘 대신 산마늘을 넣는다 하니 흥미롭다.
먼저 신선한 산마늘을 잘 씻어 물기를 털어낸다. 그런 다음 칼로 곱게 다져 올리브오일에 재워 둔다. 산마늘과 올리브오일이 어우러지는 사이, 호두와 잣을 씹히는 맛이 날 정도로 다진다. 준비한 볼에 오일에 재워둔 산마늘, 다진 호두와 잣, 미리 갈아둔 그라나파다노 치즈와 몬트리잭 치즈를 넣고 고루 섞는다. 참고로 이 모든 재료의 비율은 산마늘 2, 나머지는 1의 분량이 알맞다고. 완성된 산마늘페스토는 마늘 한 조각 넣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알싸함이 감돈다. 조셉 리저우드 셰프의 눈빛에도 궁금증이 인다. 한 스푼 떠서 맛보는 순간, 숲의 정기가 입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기분. 올리브유의 깊은 풍미에 산마늘의 쌉쌀하고도 싱그러운 맛이 배어들고, 견과류의 고소함이 날것의 어색함을 중화해준다.
도시에서 온 여행자들은 크래커에 산마늘페스토를 얹어 맛보며 그동안 몰랐던 자연의 촉감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땅을 밟고 사는 일, 산이 내어주는 풍요, 직접 수확하는 즐거움, 무엇보다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가 전해주는 기쁨이 있다는 걸 체득한다.
숲에서의 짧은 여정을 마칠 무렵, 조셉 리저우드 셰프가 숲길에서 식재료를 탐구하며 감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번엔 산초를 구하러 또 다른 산을 찾게 될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아마도 나는 여름엔 산초나무의 노란 꽃이 어디 있나 두리번거릴 테고, 10월 무렵 검게 익은 열매를 보면서 안부 인사를 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숲이 키워낸 산물과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될 테다.

RECIPE
산마늘페스토 활용법 3

산마늘페스토 카나페
크래커에 크림치즈나 잼 등을 펴 바른 뒤 산마늘페스토를 듬뿍 올린다. 그 위에는 취향껏 어린 새싹이나 방울토마토 등을 곁들인다.

산마늘페스토 파스타
바질페스토 대신 산마늘페스토를 넣고 만든 파스타다. 파스타 면을 삶아서 준비한 뒤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방울토마토, 소금, 후추, 면수를 넣고 끓인다. 여기에 해산물이나 베이컨 등 준비한 재료를 넣고 삶은 파스타 면과 산마늘페스토를 더해 잘 볶는다.

산마늘페스토 궁중떡볶이
각자의 방법대로 간장과 맛술 등을 넣어 달콤하고 짭조름한 궁중떡볶이를 만든다. 채소를 넣고 살짝 숨이 죽을 정도로 볶은 다음 산마늘페스토를 1큰술 추가해 한 번 더 볶는다.

 


 

 

글. 임보연BO-YEON L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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